디제이는 래퍼의 백업이 아니다! - DJ Shadow의 < Endtroucing... >
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힙합 음악에서 디제이는 랩을 하는 엠시와 동등한 위치를 점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건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힙합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앨범을 꼽자면 아마 이 앨범이 첫 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네요. 디제이의 존재가 격상될 수 있었던 이유, 모두 이 한 장의 앨범 속에 담겨있습니다.
글ㆍ사진 이즘
2012.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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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알고 있듯, 힙합 음악에서 디제이는 랩을 하는 엠시와 동등한 위치를 점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자리 잡게 된 건 그리 오래 전의 이야기가 아니지요. 힙합 음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앨범을 꼽자면 아마 이 앨범이 첫 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네요. 디제이의 존재가 격상될 수 있었던 이유, 모두 이 한 장의 앨범 속에 담겨있습니다. 디제이 섀도우의 명반, < Endtroducing... >입니다.


디제이 섀도우(DJ Shadow) < Endtroducing... > (1996)

자메이칸 프로듀서들의 스튜디오 실험에서 영향을 받아 70년대에 뉴욕의 브롱크스에서 발전하기 시작한 랩 힙합음악은 디제이 쿨 허크(DJ Kool Herc), 그랜드매스터 플래시(Grandmaster Flash),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 등 선구적인 아티스트에 힘입어 권력의 테두리 외곽에서 진보를 거듭한다.

마침내 그것은 런 디엠씨(Run-D.M.C.)의 86년 히트 곡 「Walk This Way」를 도화선으로 예상을 무너뜨리며 폭발했다. 갑자기 미디어와 레코드 회사가 이 ‘미개척 시장’을 주목하게 됐다. 제도권의 적대적인 시선에도 불구하고 힙합은 80년대 대중문화의 새로운 아이콘이 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힙합의 상업화’가 필연적으로 야기되었다.

90년대 전반기는 아이스 티(Ice-T)와 N.W.A.가 제시했던 갱스타 랩 그리고 여기서 약진한 닥터 드레(Dr. Dre)의 지 펑크(G-Funk)가 힙합계의 주도권을 지닌 시기였다. 드 라 소울(De La Soul) 어 트라이브 콜 퀘스트(A Tribe Called Quest) 어레스티드 디벨롭먼트(Arrested Development) 등 소위 ‘얼터너티브 랩’도 나름의 성과는 거두었으나 모두 단발로 끝났다. 주류 힙합계는 갱스타 랩이 MTV에서 보여주는 성과 폭력의 이미지로 한정되어갔다. 음악은 정체되었으며 오직 상품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물론 상업화는 대중을 끌어들이며 음악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이로 인해 인디, 즉 독립음반사의 확장이 가능해지며 결과적으로 무명의 음악가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가 제공된다. 하지만 이러한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점점 심각해지는 주류 음악계의 불균형 현상은 강력한 ‘언더그라운드 힙합’, 이를테면 정통 힙합 문화의 출현을 요구하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댄스 지향의 영국 신흥 음반사인 모왝스(Mo'Wax) 소속인 디제이 섀도우(DJ Shadow)의 < Endtroducing... >이 이 때 등장했다. 그는 힙합이 사운드시스템의 초창기 때는 두 개의 레코드를 사용하여 ‘브레이크비트’를 반복하고 비트를 무한히 팽창시키는 디제이들에 의하여 발전되어 왔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상업화로 질주하며 변질되어 가는 당시의 힙합 풍조를 비판하고 나섰다. 일례로 수록된 곡 가운데 「Why hip-hop sucks in '96」는 지 펑크 쪽 아티스트들이 즐겨 사용하는 신시사이저와 베이스 라인을 그대로 가져와 그것을 비튼 트랙이다.

그는 래퍼의 백업 뮤지션으로 전락해버린 디제이의 위상을 복원시키고자 했다. 디제이의 ‘권한’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로 앨범의 모든 트랙에 보컬을 배제시켜버렸고 출처조차 파악하기 힘든 LP에서 채취한 ‘샘플’의 변주로 가득 채워 놓았다. 딱 알맞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중고 LP를 파는 가게들을 헤집고 다녔다.

“난 이 음반에서 샘플링만을 바탕으로 만든 음악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사명과 같다.”

그는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를 들고 블루스를 혁명화 했듯, 샘플러를 가지고 힙합을 개조(실은 원대복원)하려는 원대한 드림을 이 앨범에다 실현했다. 샘플링 된 파편들이 유기적으로 조직된 사운드 콜라쥬는 공감각의 질감을 드러내며 하나의 웅장한 ‘힙합 심포니’를 연출한다. 이와 같은 디제이 섀도우의 드라마틱한 구성 능력은 총 4부로 이루어진 32분의 대작 「What does your soul look like?」에 결집되어 있다. < Endtroducing... >에는 Part 1&4가 수록되어 있지만 이 대곡의 완전한 버전은 98년 그의 컴필레이션 앨범 < Preemptive Strike >에서 접할 수 있다.



[ Preemptive Strike ]
[ The Less You Know… ]
[ Reconstructed ]
디제이 섀도우를 중심으로 하는 모왝스의 실험적인 인스트루멘틀 힙합(Instrumental Hip-Hop)과 턴테이블 사운드를 중시하는 이른바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을 주창하는 최고의 DJ 집단 인비저블 스크래치 피클즈(Invisibl Skratch Piklz) 메인스트림에 근접할 수 있는 절충주의적 사운드를 구사하는 닥터 옥타곤(Dr. Octagon) 등에 의해 힙합은 세기말의 언더그라운드 음악문법으로 부동의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디제이 공동체에 관한 실험주의를 표방한 X 이큐셔너스(X-Ecutioners)와 비트 정키스(Beat Junkies) 등 유력한 인디 아티스트들도 힙합의 융성을 거들었다. < Endtroducing... > 앨범은 침체와 변질의 위기에 처한 1990년대의 힙합 음악계에 혁신적인 사운드를 공급하여 그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DJ의 위력이었으며 창조성의 개가였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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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 섀도우 #DJ Shadow #Endtroducing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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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2.11.10

DJ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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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