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고기 구워 먹는 서울 한옥 신혼집
남들과 다른 선택은 생활의 빛깔도 달라지게 한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마당에서 개를 키우고 지인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지낸다니, 여느 신부와는 다른 신혼집을 꿈꿔 온 심효진 씨의 선택이 준 선물이다. 언젠가는 떠나겠지만 오래 기억될 그녀의 첫 번째 신혼집이자 첫 번째 한옥을 구경했다.
글ㆍ사진 임상범
2012.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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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진ㆍ김성욱 부부의 89.1㎡ 한옥

주거 형태-‘ㄱ’자 형태 한옥
크기-89.1㎡(27평)
구조-주방, 침실, 서재&다이닝 룸, 공부방, 드레스 룸, 욕실, 화장실(외부), 마당
총 비용-7백만 원(전기 공사+도배 공사+하수구 공사+기타)

남들과 다른 선택은 생활의 빛깔도 달라지게 한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마당에서 개를 키우고 지인들과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지낸다니, 여느 신부와는 다른 신혼집을 꿈꿔 온 심효진 씨의 선택이 준 선물이다. 언젠가는 떠나겠지만 오래 기억될 그녀의 첫 번째 신혼집이자 첫 번째 한옥을 구경했다.


마당 있는 집을 갖고 싶다는 신부의 바람은 소박했다. 개를 키우고 가드닝 하고 삼겹살을 구워 먹고……. 마당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막연하게 꿈꾸며 주택에서 살아 보고 싶었다. 사실 그녀의 꿈이 소박하다는 건 틀린 말이다. 집값 비싸기로 악명 높은 서울에서 마당을 꿈꾼다는 건, 고가의 강남 아파트보다 현실감이 없으니까. 신부의 꿈을 이뤄 주고 싶었던 신랑은 그의 애마인 오토바이를 타고 연희동, 성북동 등 그들이 곧잘 데이트하던 동네들을 다니며 많은 집들을 보았다.

“처음부터 한옥을 찾은 건 아니에요. 마당 있는 집을 구하다 보니 한옥을 만난 거죠. 성북동에서 주택을 구하긴 했는데, 지대가 높아서 겨울에 눈이라도 쌓이면 옴짝달싹 못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더라고요.”

부부 모두 야근 많기로 소문난 언론사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라 교통 조건도 무시할 수 없었다. 주택에 살았던 경험이 있는 남편이 아내보다는 나을 테니, 두루두루 여러 모를 살펴 성북구 동소문동, 지금의 집으로 결정했다. 딸 가진 부모의 마음이 그렇듯, 살림하기 힘들다는 한옥에서 신혼을 시작한다니 친정 부모님들의 반대가 심했다고. 게다가 집의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다. 근대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으로, 살던 사람이 필요에 따라 조금씩 고쳐 왔지만 여기저기 허술한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겨울엔 춥고 사방이 막혀 여름조차 시원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심효진 씨는 이 집이 좋다. 꿈꾸던 바람은 이미 이뤘고, 하루의 끝 무렵 마루에 앉아 깜깜한 밤하늘을 바라보는 일도 좋아졌다. 반려견 백손이와 매일 두 번씩 나서는 산책도 힘든 줄 모른다. 그녀는 집에서 하는 모든 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침실은 안쪽 공간에 차분한 분위기로 연출하다


이 집은 아파트처럼 거실과 침실이 따로 구별되지 않는다. 비슷한 크기의 방 3개가 미닫이문으로 구분되어 일직선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는 구조다. 침실은 가장 채광이 좋지 않은 안쪽에 꾸몄다. 휴식의 공간이니 밝기를 민감하게 따지진 않았다. 침실은 묵직함이 느껴지는 침대와 결혼 전 쓰던 책장, 서랍장, 화장대로 가득 찼다. 구입처가 모두 각각이지만 나무라는 소재가 같아서 나름의 조화를 이룬다. 책장에는 집게형 스탠드를 달아 부드러운 조명을 연출했다.

서랍장은 부부의 옷장이다. 드레스 룸으로 쓰는 다용도 공간이 따로 있지만, 침실과 떨어져 있어 일부러 그쪽까지 나가기는 번거로운 일. 그래서 평상시에 입는 옷들은 서랍장에 두었다. 그 위에는 친정 어머니가 챙겨 준 도톰한 방석들을 놓았더니 이 집과 썩 잘 어울리는 소품이 되었다.

“인테리어 책을 정말 많이 봤어요. 내 집만큼은 제대로 꾸미고 살고 싶었거든요. 또 직업상 주택이나 잘 꾸며진 집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이 봐 왔고요. 그런데 막상 내 일이 되니까 따라 하기가 어려웠어요. 책이 너무 이상적인가 싶기도 하고요.”

이론과 실전의 간극을 느낀 것일까?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고, 보기에도 좋은 스타일링의 균형을 맞추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더 나은 신혼집을 꾸미는 데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부부가 함께 공부할 공간으로 꾸민 중간 방


3개의 방 중 가운데에 위치한 중간 방은 뚜렷한 기능을 찾기가 애매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시간을 다이닝 룸에서 머물다 보니 침실과 다이닝 룸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이 대부분이었고, 마당과 연결되는 입구가 있다는 점이 특이할 만했다. 최근 TV만 덜렁 있던 썰렁한 중간 방이 새로운 기능을 가지게 되었다. 남편과 공부하자고 의기투합해 테이블을 놓고 공부방이라 이름 붙였다고.

벽면의 길이와 적당히 매치되는 긴 테이블은 한옥과도 잘 어울린다. 사실 이 공간은 알고 보면 한옥의 진수를 보여 준다. 겉은 한옥이지만 실제로는 생활 패턴에 맞추거나 편리한 현대식 가구를 들여 입식 생활을 하는 집이 대부분인데, 이곳은 책상 하나를 두었을 뿐 뒹굴거리며 지내기에 좋은 좌식 공간이기도 하다. 바닥에 누워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한여름 낮 잠을 청하는 공간, 지인이 찾아오면 놀다가 밤에는 게스트 룸이 되는 등 상황에 맞게 방의 용도를 바꿔 쓰는 한옥다운 방이다.


서재와 거실을 겸한 올인원 공간, 다이닝 룸


‘ㄱ’자 구조에서 꺾이는 위치에 있는 공간은 부부에게 거실이자 다이닝 룸이고, 서재도 되어 준다. 주방이 좁아서 식탁을 둘 여유 공간이 없자 바로 옆 이 방에 자연스럽게 다이닝 룸의 기능을 기대하게 되었다.

“공간을 어떻게 나눠야 할까 고민했을 때, 이곳을 드레스 룸으로 꾸밀까 했어요. 욕실과 가까운 곳에 옷이 있어야 편하잖아요. 그런데 공간들이 연결되어 있다 보니 손님이라도 오면 나중엔 불편하겠더라고요.”

이 방을 집의 메인 공간으로 꾸미기로 결정하고 나서는 주방과의 사이에 있던 여닫이문을 떼어 내어 움직임을 편하게 하고, 소통도 원할하게 했다. 조명도 바꿔 달았더니 한결 분위기 있는 공간이 연출되었다. 여러 기능을 한데 모은 공간에서 눈길을 끄는 건 그릇장과 널찍한 테이블이다.

“회사 일이 바빠서 혼수 보러 많이 다니질 못했어요. 그러다가 하루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회사 근처 백화점을 돌았어요. 그러다가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 그릇장을 발견한 거죠. 의욕만큼 집을 꾸미진 못했지만 가구를 잘 만난 것 같아요. 심플하고 너무 가볍지 않은 나무 가구를 원했거든요.”

인테리어 스타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던 그녀는 그릇장 구입을 계기로 그것과 어울릴 테이블, 화장대를 순서대로 사면서 스타일의 방향을 잡았다. 존재감이 큰 가구를 중심으로 작은 부분들을 결정해 가는 식으로 집을 꾸민 것이다. 책은 신혼 살림 중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수납이 걱정이었는데 주문 제작한 책장을 배치해 고민을 해결했다.


신혼 냄새 폴폴 나는 화이트 주방


주방은 결혼한 여자에게 살림하는 재미를 가장 먼저 느끼게 하는 공간이 아닐까? 한옥의 주방은 번듯한 시스템 주방과는 거리가 멀다. 마당으로 나가는 문이 있고, 욕실로 연결되는 독특한 구조에다가 조리 공간이 크지 않다. 거기에 디자인이 좋아서 구입한 소형 가전제품들과 덩치 큰 양문형 냉장고까지 들이니 더 좁게 느껴졌다. 환상을 좇기보다는 현실과의 절충안을 찾는 것이 진짜 인테리어라는 진리를 주방에서 실감하게 된다.

상부장 옆 벽이 쑥 들어가 있는 벽감은 조리 도구를 오픈 수납하는 용도로 활용했다. 이동이 가능한 아일랜드 식탁은 주방의 소형 가전제품을 정리해 두는 용도로 쓴다. 주방은 좁고 수납공간이 부족하지만 마당 쪽으로 난 창문에 꽃 한 송이를 꽂아 둘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공간에 맞춰 쇼핑 스타일도 달라졌어요. 아파트에 살 때는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한꺼번에 잔뜩 산 다음 차 트렁크에 싣고 돌아왔었죠. 여기서는 많은 양의 물건을 사는 일이 없어졌어요. 퇴근할 때 시장을 거치게 되니까 필요한 걸 그때그때 사게 돼요. 벌써 채소 가게 아저씨랑 친해졌는걸요. 길을 지나는 할머니와 인사도 나누고요.”

주방의 기능이나 가구는 아파트와 주택이 크게 다르지 않을 테지만 시장에서 사 오는 물건마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이야기가 담기고, 그 행복은 고스란히 부부의 식탁으로 옮겨 간다. 약간의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하고도 주택을, 한옥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이유를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드디어 그녀의 로망인 마당을 갖다


자그마한 마당은 그녀가 신혼집의 첫 번째 조건으로 내건 공간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그녀는 이곳에서 해 보고 싶던 일들을 차곡차곡 모두 이뤘다. 그중 백손이와의 만남은 운명처럼 이뤄졌다. 백손이는 그녀의 반려견 이름으로 남편이 임꺽정의 아들 이름이라며 지었단다. 덩치와는 달리 처음에는 낯을 가리는 녀석은 유기견이었다.

“결혼식 직전 무렵에 회사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애예요.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시킨다는 말에 우리 집에서 키우기로 했어요. 어차피 강아지를 사지 않고 입양할 생각이었으니까요. 신혼여행 가기 전에 내가 꼭 데리러 올 테니 잘 지켜 달라고 임시 보호소에 신신당부하고 갔다가, 돌아오자마자 다른 일을 제쳐 두고 백손이 먼저 데리고 왔어요.”

날벌레가 많아 들인 식충 식물이나 허브 화분 등을 손보고 있으면 백손이가 친구가 되어 준다. 마당을 공유하는 친구인 셈이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그녀는 마당에서 색다른 경험들도 한다. 여럿이 둘러 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즐기는 특별한 시간은 마당이 아니라면 감히 서울 한복판에서 가능한 일이었겠는가. 여러 집주인을 거치면서 집의 모습이 군데군데 망가졌지만, 다른 계절에는 이 마당이 어떻게 달라질까 기대하는 마음은 그마저도 잊게 만든다.


한옥 속 또 다른 공간들


지은 지 수십 년 된 집이다 보니 욕실이나 바깥 화장실, 마루 등에는 살면서 고친 흔적이 있다. 특이한 공간은 마루를 통해 이어지는 드레스 룸이다. 직사각형 형태로 길쭉한 방은 골목길에 접하고 있어서 침실로 꾸밀 순 없지만 공간이 넉넉해 쓸모가 많다. 붙박이장 같은 수납공간을 갖춘 요즘 아파트와 달리 오래된 한옥은 별도의 공간이나 가구들로 짐들을 정리해야 한다. 이 방에는 시스템 행어를 두고 철 지난 옷이나 외투, 이불 등을 수납하고, 마땅히 둘 자리가 없는 자질구레한 살림들도 보관해 둔다. 덕분에 다른 공간들을 어수선하지 않게 제 기능에만 충실하게 꾸밀 수 있었다. 세탁실도 마당 한 켠에 별도로 있다. 젖은 빨래는 마당의 빨랫줄에 널어 말린다. 뭔가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집의 모습이다.

부모님 밑에서 말 잘 듣는 딸로 살다가 결혼해서 독립한 기분이 묘하면서도 좋았다는 심효진 씨는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고, 내 손으로 쓸고 닦으며 정을 쏟는 공간이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손볼 곳이 많아 예상치 못한 지출도 해야 했던 집. 그래도 이 집이 좋은 그녀는 이 공간을 온전히 누릴 시간이 주말뿐이라 가끔은 속상해진다. 그렇지만 또 다른 꿈들을 품어 본다. 나중에는 좀 더 튼실한 집을 구해서 다시 한번 꾸며 보고 싶다는……. 일본 특유의 내추럴한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그녀는 아마 그 순간이 올 때까지 열심히 공부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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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 인테리어 임상범 저 | 나무수
신혼부부를 위한 신혼집 꾸미기에 관한 모든 것. 10평부터 30평대의 아파트, 빌라, 복층, 한옥, 단독주택 등 각양각색의 집에 북유럽, 빈티지, 모던, 내추럴 등 부부의 취향에 맞춰 다양한 콘셉트로 꾸민 신혼집들을 소개한다. 내 취향을 알아보는 인테리어 질문지, 좁은 집을 넓게 쓰는 법, 인테리어 플랜 짜기 등은 집 꾸밈의 준비 과정을 도와준다. 또 과감하게 셀프 인테리어를 시도하거나 시공 업체와 손잡고 신혼집을 꾸민 스무 커플의 조언은 인터넷보다 신뢰할 수 있는 확실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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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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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2012.11.13

서울 한옥집은 제 로망인데 부럽습니다 ㅠㅠ 책사서 한번 봐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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쭝야

2012.11.09

마당이 주는 특별함은 말로 다 표현이 안되죠. 저도 마당이 있는 한옥집에서 살고 싶은데 많은 정보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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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er08

2012.11.08

마당에 있는 집 집 집 로망입니다! 사진에 나와있는 두 부부의 표정이 보기좋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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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범

육아 전문 잡지 [베스트베이비]와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리빙센스]에서 12년 동안 일하며, 요리, 인테리어, 리빙 등 생활에 관련된 모든 분야를 섭렵했다. 거의 매달 ‘누군가의 집’을 방문했고,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에 폭 빠져 1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비좁은 집부터 위풍당당한 전원주택, 삼엄한 경계를 받으며 들어간 대한민국 상위 1%의 집까지, 무수히 많은 집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녀는 집에 방이 몇 개인지, 돈을 얼마나 들였는지가 아니라 공간이 풍기는 냄새와 온도를 통해 집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집이란 사는 사람의 생활과 역사를 담아야 비로소 아름답고 넉넉해진다는 진리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