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주변 호텔에 성범죄자 17명이 모여 산다고?
< LA 다운타운 뉴스 >라는 신문이 있다. 다운타운의 부흥을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는 무가지인데, 좋은 기사가 많아서 내가 꼭 챙겨보는 신문이다. 언젠가 LA 다운타운의 성범죄자 집합 현상을 이슈화한 적이 있다. 기사가 났던 2005년 당시, 17명의 성범죄자가 알렉산드리아 호텔에 등록되어 있다는 섬뜩한 내용이었다. 소름이 끼치는 한편, 뭐 하는 소굴인지가 궁금했다.
201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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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다운타운 뉴스 >라는 신문이 있다. 다운타운의 부흥을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는 무가지인데, 좋은 기사가 많아서 내가 꼭 챙겨보는 신문이다. 언젠가 LA 다운타운의 성범죄자 집합 현상을 이슈화한 적이 있다. 기사가 났던 2005년 당시, 17명의 성범죄자가 알렉산드리아 호텔에 등록되어 있다는 섬뜩한 내용이었다. 소름이 끼치는 한편, 뭐 하는 소굴인지가 궁금했다. 나는 좀 안전하다 싶은 대낮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커다란 후드 티에 허름한 추리닝을 갖춰 입고, 위험 상황 시 뜀박질하기 좋은 에어맥스 운동화에 가벼운 똑딱이 카메라로 무장하고서.
호텔 자체는 옛날에 공들여 잘 지은 태가 나는, 꽤 큰 건물이었다. 건물 사진을 찰칵찰칵 찍는데 저만치서 웬 시커먼 남자가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내 얼굴이나 가슴도 아닌, 허벅지 Y라인 한가운데에다 노골적으로 시선을 고정하고서 말이다. 순간 속이 메스꺼웠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넌더리를 치며 후다닥 돌아왔다.
어쩌다가 도심 한복판에 있는 한 건물에 성범죄자가 이렇게나 많이 모이게 되었을까. 미국의 성범죄자 거주 등록제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가해자의 인권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해당 성범죄자는 얼굴, 주소, 실명, 즐겨 쓰는 가명, 직장, 신체적 특징 등의 상세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된다. 이 특정한 전과는 소급되어 1980년대에 판결을 받은 사람도 인터넷에서 검색된다. 웹 지도로 성범죄자의 거주지가 바로바로 뜨고, 그걸 누르면 즉석에서 얼굴과 정보가 보이는 진정한 사이버 주홍글자의 완결판이다.
성범죄자는 법적으로 어린이 관련 시설이나 공원에서 일정 거리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호텔, 오피스, 상업시설이 밀집한 대도시의 도심부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같은 어린이 시설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서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거주 제한구역의 동심원과 겹치지 않는지라, 성범죄자는 도심부에 집중적으로 몰리게 된다. 더 좁혀 말하면, 구 도심이라 집값이 싸고 슬럼화되고 있는 지역 말이다.
성범죄자 정보공개 웹 사이트에는 집 주소와 우편번호, 동네명 등의 다양한 검색조건이 있다. 한번은 지금까지 내가 미국에서 살았던 동네들의 우편번호를 넣어 검색해봤다. 놀랍게도 정말 구석구석 성범죄자가 살고 있었다. 베벌리 힐스 같은 데엔 성범죄자가 없을 거야, 하고 클릭해봤다. 절대 아니었다.
김이나 박 같은 한국 고유의 성을 넣어 클릭했다. 보는 사람 당황하게 앞니를 훤히 드러내고 웃는 여자도, 유학생이었던지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설명이 붙은 훈남도 떴다. 우리 식으로 꼬마 녀석 고추 좀 만져보자다가 신고당한 것인지, 보성 70대 어부처럼 정말 그랬을까 싶은 할아버지도 있었다. 안타깝고 섬뜩하고 창피했다.
며칠간 사이트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성범죄자처럼 보이는 증상까지 생겼다. 어쨌거나 미국 어디서 지낼지를 고민할 때, 성범죄자 정보 공개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성범죄자가 집적되어 있다면 다른 범죄자도 함께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범죄자가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진창을 피해 갈 수 있다. 그다음에 학교, 직장, 공원 등의 제반 사항에 맞추어 거주지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제일 원칙에 입각한 삶의 태도일 듯하다.
수년 만에 LA로 돌아와 글을 쓰게 되었다. 다운타운의 한 카페에서 신문을 보다가, 브라질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젊은 처자와 우연히 만나 수다를 떨게 되었다.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매장도 있었다는 그녀는, 경기 침체로 사업을 말아 먹고 LA로 훌쩍 날아와 재기를 준비 중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알렉산드리아 호텔에 방을 구했단다. 어라? 거기 이상한 곳인데! 내가 얼굴빛을 바꾸며 물었다. 그녀는 정색하면서 아니라고 했다. 그녀처럼 아직 큰돈을 벌지 못한 예술가들이 사는 곳이라나? 알고 보니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몇 년 사이에 상황이 참 급속히도 변했다.
1906년 개장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는 LA 최고의 럭셔리 호텔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비롯한 당시의 미국 대통령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영국 황태자 에드워드 8세 등 쟁쟁한 인물들이 이 호텔에 머물렀다. 인근에 빌트모어 호텔이 들어서고 나서 지속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50~1960년대에는 이 호텔의 가장 아름다운 홀, 그 유명한 티파니가 만들었다는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천창이 달린 홀이 복싱선수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다.
2000년대 후반 LA 다운타운에는 부동산 경기 붐에서 시작된 도심 재생의 토네이도가 밀려왔다. 다운타운 히스토릭 코어에는 대리석과 철골로 매우 잘 지었으나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수십 년이나 버려졌던 은행이나 호텔이 많았다. 이를 헐값에 사들여 아파트로 개조하면 투자용이나 주거용으로 아주 잘 팔렸다. 이 붐을 타고 2008년 알렉산드리아 호텔은 집합주택으로 개조되었다. 여전히 소득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집합주택이나, 이전과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 한 지역에 모여 복작거리기 좋아하는 젊은 예술가들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배우 조합에서 젊은 배우들의 월세 지원 프로그램을 알렉산드리아 호텔과 공동으로 시행 중인지라, 사는 사람의 물이 많이 달라졌다. 현재 알렉산드리아는 예전의 영화를 되살려 임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험프리 보가트는 904호, 매 웨스트는 454호. 그리고 당신의 역사도 여기에서 만드세요” 하고.
오랜만에 웹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2005년에는 17명이었던 이곳의 성범죄자 숫자가 2012년에는 세 명으로 줄었더라. 정말 빠른 도심가의 슬럼 정화 속도였다. 나는 알렉산드리아 호텔에 산다는 브라질 처자에게 “이 얼굴은 조심해야 할 거야” 하고 이메일로 링크를 보냈다. 그 호리호리한 처자는 의외의 대인배였는지 “어, 그래?”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국땅에서 산전수전을 하도 많이 겪어,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나 보다.
호텔 자체는 옛날에 공들여 잘 지은 태가 나는, 꽤 큰 건물이었다. 건물 사진을 찰칵찰칵 찍는데 저만치서 웬 시커먼 남자가 내 쪽을 향해 걸어왔다. 내 얼굴이나 가슴도 아닌, 허벅지 Y라인 한가운데에다 노골적으로 시선을 고정하고서 말이다. 순간 속이 메스꺼웠다. 뭐 이런 데가 다 있나 넌더리를 치며 후다닥 돌아왔다.
어쩌다가 도심 한복판에 있는 한 건물에 성범죄자가 이렇게나 많이 모이게 되었을까. 미국의 성범죄자 거주 등록제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가해자의 인권을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해당 성범죄자는 얼굴, 주소, 실명, 즐겨 쓰는 가명, 직장, 신체적 특징 등의 상세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된다. 이 특정한 전과는 소급되어 1980년대에 판결을 받은 사람도 인터넷에서 검색된다. 웹 지도로 성범죄자의 거주지가 바로바로 뜨고, 그걸 누르면 즉석에서 얼굴과 정보가 보이는 진정한 사이버 주홍글자의 완결판이다.
성범죄자는 법적으로 어린이 관련 시설이나 공원에서 일정 거리 떨어져서 살아야 한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호텔, 오피스, 상업시설이 밀집한 대도시의 도심부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같은 어린이 시설이 없거나 멀리 떨어져서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거주 제한구역의 동심원과 겹치지 않는지라, 성범죄자는 도심부에 집중적으로 몰리게 된다. 더 좁혀 말하면, 구 도심이라 집값이 싸고 슬럼화되고 있는 지역 말이다.
성범죄자 정보공개 웹 사이트에는 집 주소와 우편번호, 동네명 등의 다양한 검색조건이 있다. 한번은 지금까지 내가 미국에서 살았던 동네들의 우편번호를 넣어 검색해봤다. 놀랍게도 정말 구석구석 성범죄자가 살고 있었다. 베벌리 힐스 같은 데엔 성범죄자가 없을 거야, 하고 클릭해봤다. 절대 아니었다.
김이나 박 같은 한국 고유의 성을 넣어 클릭했다. 보는 사람 당황하게 앞니를 훤히 드러내고 웃는 여자도, 유학생이었던지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설명이 붙은 훈남도 떴다. 우리 식으로 꼬마 녀석 고추 좀 만져보자다가 신고당한 것인지, 보성 70대 어부처럼 정말 그랬을까 싶은 할아버지도 있었다. 안타깝고 섬뜩하고 창피했다.
며칠간 사이트에 너무 몰입하다 보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성범죄자처럼 보이는 증상까지 생겼다. 어쨌거나 미국 어디서 지낼지를 고민할 때, 성범죄자 정보 공개 사이트를 이용하는 것도 좋겠다. 성범죄자가 집적되어 있다면 다른 범죄자도 함께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범죄자가 집단적으로 모여 사는 진창을 피해 갈 수 있다. 그다음에 학교, 직장, 공원 등의 제반 사항에 맞추어 거주지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제일 원칙에 입각한 삶의 태도일 듯하다.
수년 만에 LA로 돌아와 글을 쓰게 되었다. 다운타운의 한 카페에서 신문을 보다가, 브라질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라는 젊은 처자와 우연히 만나 수다를 떨게 되었다. 뉴욕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매장도 있었다는 그녀는, 경기 침체로 사업을 말아 먹고 LA로 훌쩍 날아와 재기를 준비 중이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알렉산드리아 호텔에 방을 구했단다. 어라? 거기 이상한 곳인데! 내가 얼굴빛을 바꾸며 물었다. 그녀는 정색하면서 아니라고 했다. 그녀처럼 아직 큰돈을 벌지 못한 예술가들이 사는 곳이라나? 알고 보니 그녀의 말은 사실이었다. 몇 년 사이에 상황이 참 급속히도 변했다.
1906년 개장 당시의 알렉산드리아는 LA 최고의 럭셔리 호텔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를 비롯한 당시의 미국 대통령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 영국 황태자 에드워드 8세 등 쟁쟁한 인물들이 이 호텔에 머물렀다. 인근에 빌트모어 호텔이 들어서고 나서 지속적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50~1960년대에는 이 호텔의 가장 아름다운 홀, 그 유명한 티파니가 만들었다는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천창이 달린 홀이 복싱선수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을 정도다.
2000년대 후반 LA 다운타운에는 부동산 경기 붐에서 시작된 도심 재생의 토네이도가 밀려왔다. 다운타운 히스토릭 코어에는 대리석과 철골로 매우 잘 지었으나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수십 년이나 버려졌던 은행이나 호텔이 많았다. 이를 헐값에 사들여 아파트로 개조하면 투자용이나 주거용으로 아주 잘 팔렸다. 이 붐을 타고 2008년 알렉산드리아 호텔은 집합주택으로 개조되었다. 여전히 소득 낮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집합주택이나, 이전과는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다. 한 지역에 모여 복작거리기 좋아하는 젊은 예술가들이다. 게다가 할리우드 배우 조합에서 젊은 배우들의 월세 지원 프로그램을 알렉산드리아 호텔과 공동으로 시행 중인지라, 사는 사람의 물이 많이 달라졌다. 현재 알렉산드리아는 예전의 영화를 되살려 임대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험프리 보가트는 904호, 매 웨스트는 454호. 그리고 당신의 역사도 여기에서 만드세요” 하고.
오랜만에 웹 사이트를 검색해보니, 2005년에는 17명이었던 이곳의 성범죄자 숫자가 2012년에는 세 명으로 줄었더라. 정말 빠른 도심가의 슬럼 정화 속도였다. 나는 알렉산드리아 호텔에 산다는 브라질 처자에게 “이 얼굴은 조심해야 할 거야” 하고 이메일로 링크를 보냈다. 그 호리호리한 처자는 의외의 대인배였는지 “어, 그래?” 정도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이국땅에서 산전수전을 하도 많이 겪어, 이 정도쯤은 아무렇지도 않았나 보다.
- LA 도시 산책 안나킴 저 | 허밍버드
건물 모퉁이를 돌아서며 거리에 흩어져 있는 백 년의 시간 속에서 찾아낸 LA의 오늘을 채집하면서 앤젤리노가 되어버린 안나킴. LA 폭동 때의 기억이나 뉴욕에 이은 두 번째 도시 정도로 생각해버리고 말았던 LA의 진짜 매력을 포착한다. 한반도를 제외하고 한국인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공간인 여기에 왜 그들이 모이는가? 세계를 사로잡은 ‘천사의 도시’를 한나절 느린 걸음으로, 미국 근현대사를 만들어낸 역동적이고 화려한 도시의 역사, 문화, 그리고 사람 이야기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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