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진은 연예인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연예활동보다 ‘연애’활동이 더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녀의 연애 소식이 자주 뉴스가 되었다. 홍대 청소노동자, 김진숙과 희망버스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시간을 내고, 자주 찾아가고,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뜨거운 연애를 시작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연애”라는 김여진이 이번에는 그 연애 이야기를 책으로 묶어냈다. 밀당 같은 연애의 기술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함께 사랑하는지, 어떻게 함께 살아가는지 그녀는 분명하게 제시한다.
“뭐든 물어보셔도 돼요. 연애 상담도 해 드려요. 얘기하세요.” 이촌동 한 카페에서 김여진 씨를 만났다. 이야기해달라고 인터뷰이로 모신 건데, 이야기를 들어 줄 준비부터 한다. 2011년은 김여진 씨에게 ‘그야말로 대단한 한 해’였다. “저 스스로,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싶을 정도로 브레이크가 달리지 않은 기차처럼 가속도가 붙는 거예요. 이대로 가다가 내가 뭐가 되려나? 싶었어요.” 많은 이들의 트위터 친구, 집회를 즐겁게 달구는 날라리 분위기 메이커, 한마디 말이 뉴스로 퍼지는 소셜테이너, 젊은이들의 멘토. 뜨거운 2011년을 보낸 그는 이런 사람이 되었다.
연극 <엄마를 부탁해>에서 엄마를 잃어버린 딸을 연기하며, 김여진 씨가 극 속에서 찾은 것은 엄마만이 아니었다. 잃어버렸던, 이제껏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보였다. 홍대 청소노동자들의 사건도 그렇게 눈에 들어왔다. ‘우리 엄마와 다를 바 없는 저 사람들이, 누구보다 부지런히 일하고, 더러운 곳도 마다 앉고 일하는 저 사람들이 어째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할까?’ 그렇게 홍대로 향했고, 그들을 돕는 친구들을 만났고, 김진숙을 만났다. 사랑과 응원이 필요한 자리라면 어디든 달려가 즐거운 일을 꾸리는 ‘날라리 외부세력’이 되었다. 그녀가 보여준 것은, 어떤 신념이나 어떤 구호보다도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끈질기게 바라보겠다. 웃으며, 함께, 끝까지”
“많은 사랑하며 살아왔구나. 꽤 근사하게 살아왔구나”
최근 김여진 씨는 예쁘고 귀여운 아들을 출산하고, 아들과의 절대 사랑에 푹 빠져 있었다. 어떻게 하면 연애를 더 잘할 수 있는지, 더 많이 사랑할 수 있는지, 여전히 사랑이 충만한 그녀에게 물었다.
김여진이 그간 벌여놓은 ‘다종다양한 연애질(?)을 담았다. 독자들 중에 지금 내가 이러고 살아도 되나 하는 걱정되는 분이 있다면, 뭐 그렇게 살아도 되는구나, 그래도 살아지는 구나, 그 정도 용기를 얻는 데 이 책이 쓰였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 무조건 행복. (에필로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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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로워 20만 명의 파워 트위터리안인데요. 최근 트윗 글이 잘 안써진다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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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고 나서 그런지 할 말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요즘 아이를 돌보느라 TV도 안보고 책도 안보고 음악이라곤 동요밖에 듣지 않으니까요. 한진 문제나 홍대 문제는 트위터를 하면서 힘을 발휘했잖아요. 그때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었던 건, 제가 직접 현장에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 생동감에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준거죠. 지금은 사람들이 겪은 일을 구경하면서 뭐라고 한마디 던지는 게 웃겨요. 거기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라서 사회 문제에 관해서는 정말 할 말이 없더라고요. 트윗이 많이 줄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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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면서 지난 일들을 쭉 정리할 기회를 가졌을 텐데요. 돌아보면서 어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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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았어요. 그냥 말하는 것과 글을 트위터에 올려서 흘려보내는 것과 달리 내가 한 자 한 자 쓴 글이 책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니 자꾸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고요. 덜 솔직해지고 근사하게 보이고 싶고. 무엇보다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어요. 무엇보다 훌륭한 태교였던 것 같아요. 매일 조금씩 글을 쓰니까 자기 성찰이 되잖아요. 혼자 명상하는 것과 또 다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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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연애담. 행복한 기억들을 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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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되게 행복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 많은 사랑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꽤 근사하게 살고 있구나. 아이가 예정보다 빨리 나와서, 책도 빨리 마무리를 짓긴 했지만, 산뜻한 느낌은 있어요. 아이를 갖기 이전의 삶을 싹 정리하고 보니, 미련이 없달까요. 제가 지금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미련이 없어졌어요. 나는 정말 실컷 누리고 즐겼구나. 게다가 이제 정리까지 했구나!(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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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문에 ‘몇 번이고 날 울린 김진숙에게’라고 쓰셨죠. 김진숙 씨도 트위터로 책 홍보를 활발히 해주고 계신 데요.(웃음) 책 읽고 뭐라고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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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찬을 해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그렇게 여러 가지 감정이 있는지 몰랐다고 말해줬어요. 자기는 거기에 비하면, 문맹이 아니라 ‘감맹’이었다고. 그 얘길 듣고 제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했죠. 김진숙 씨야말로 다종다양한 사람들을 말로 설득해낼 수 있는 사람이에요. 사람의 감정을 모를 리가 없죠. 다만 본인이 아주 극한 상황에서 살아와서, 저처럼 아기자기한 일상 속에서 시시한 연애질은 안 하셨을 거예요.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요.”
“어느 책을 봐도, 부모님 말 잘 듣는 주인공은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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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라리라는 말이 정말 재미있어요. 어렸을 때 완전 모범생이셨잖아요. 그 무섭다는 늦바람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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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거예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입시를 위한 공부에만 매진했는데 그 와중에도 소소한 반항도 하고, 책도 읽고, 친구들하고 많이 어울리면서 숨통은 틔웠어요. 대학교 입학 때 부모님 뜻을 처음 거스르면서 인생이 살짝 틀어진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자. 누군가를 실망시켜야 한다면……. 시키자.(웃음) 그러면서 날라리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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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얌전했던 학생이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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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였어요. 고등학교 1, 2학년 때 정말 흡수력이 좋아서, 책을 읽으면 쑥쑥 빨아들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그때 읽은 책에는 어떤 주인공도 부모 말을 잘 듣는 인물이 없더라고요. 부모님 뜻대로 살았던 위인도 없었어요. 거역이라기보다 극복이죠. 부모님을 뛰어넘는 거죠. 부모님은 살아온 인생과 그 한계 안에서 가장 좋은 길을 제시하는 거잖아요.
자신이 가지 않은 길, 상상하지 못한 길을 간다고 하면, 이해도 안 될 거고, 불안할 거에요. 그런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려면 내가 확신이 있어야 해요. 칼을 딱 꽂을 힘이 있어야죠. 그런 힘을 준 게 책이었어요. 책에 있는 누구도 부모님 말대로 좋은 학교 가서, 취직해서, 좋은 아파트 사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런 게 이상이 되지 않았어요.” -
특별히 좋아했던 캐릭터가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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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아요! 초등학교 때는 펄 벅의 『대지』에 나오는 못생긴 오란 부인이 되게 존경스러웠어요. 말없이 묵묵히 일하면서도 상대를 한마디로 제압하죠. “내 진주!” 이렇게.(웃음) 그 무게감이 초등학생에게 멋져 보여서 그 흉내를 내고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는 전혜린, 루이제 린저 같은 여자가 멋있어 보였고요. 그렇게 문학, 철학, 사상을 위해서 살고 싶었어요.”
“재지 말고, 내 안의 틀을 한번만 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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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이면 첫사랑, 연극이면 연극, 운동이면 운동, 뭘 하든 끝까지 최선을 다하셨더라고요. 그렇게 온 힘을 기울이고 끝내서, 그 다음 문이 열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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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요. 빠질 때 푹 빠져서 돌아설 때 미련이 없어요. 연애도 그렇게 하고 일도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자기가 먼저 매달려 놓고 어떻게 이렇게 차가워질 수 있느냐고 상대 쪽에서 황당해하는 경우도 있어요. 일도 그래요. 만약 더는 연기하는 게 재미가 없고 잘 못할 것 같다 싶으면 그날로 그만둘 거고, 그렇다 하더라도 그때 불행한 느낌이 들진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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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열정은 타고난 기질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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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 번만 그렇게 해보면 알 것 같아요. 사람들은 늘 뭔가 할 때 재잖아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그 틀을 깨보면 돼요. 내가 가진 걸 다 잃어도 상관없다고 덤비면, 실패든 성공이든 얻어지는 게 있고, 그걸 그만 둘 때 어떤 죄책감이나 미련이 없어요. 그렇게 한번 맛 들이면 어떤 일 앞에서 더는 주저하지 않을 거고, 두려움을 기반을 둔 삶을 살고 싶지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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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로서 사회적인 활동, 발언한다고 언론이 지목할 때,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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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 나요.(웃음) 2011년 상반기는 정말 그야말로 대단했었잖아요.(웃음) 저 스스로,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웃음) 브레이크가 달리지 않은 기차처럼 가속도가 붙어갔어요. 이대로 가다가 내가 뭐가 되려나? 싶을 때 갑자기 아기가 들어서면서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되었어요. 그때 조금 두려웠어요. 제가 하던 거 다 버리고, 아이에게 미련 없이 올인할 수 있을까? 여태까지는 선택이었지만, 이 일은 닥친 일이니까요. 받아들이기 전엔 무서웠는데 지금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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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 기관차처럼 달릴 때, 이러다 어디로 가지? 싶을 때, 사람들은 두려워하는데요.(웃음) 불투명하거나 확실하지 않은 것에 관해서는 전혀 두려움이 없으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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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스릴이 생기죠. 어디로 갈까아?(웃음)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압도적으로 커요. 세상의 모든 것은 불투명해요. 사람들이 확실하고 투명한 걸 찾아가잖아요. 하지만 실은, 점점 암흑을 향해 가는 거예요. 제가 엄마 말 듣고, 의사가 됐다고 지금 행복했을까요? 언제까지 의사를 할 수 있을까? 의사를 하는 와중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거기에도 답은 없거든요. 그때 문제가 생기면 끊임없이 누군가를 탓하면서 살겠죠. ‘엄마 때문에 이래.’ 그런데 그럴 바에야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는 게 낫죠. 실패한 경험도 되게 많아요. 다만 연연하지 않을 뿐이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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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의 치열한 연애가 시작됐는데요.(웃음) 엄마 김여진. 뭐가 달라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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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죠. 조리원 원장님이 정말 명쾌하게 말씀해주시는 거예요. ‘여태까지 일하다가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면, 휴일엔 푹 자고 그랬죠? 근데 이제 그런 건 끝이에요~(웃음) 푹 긴장 놓고 살았던 삶은 끝난 거에요~(웃음)’ 아예 그렇게 빨리 받아들이래요. 출산하고 산후 조리하는 일이 그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이렇게 힘든 일을 세상 모든 엄마가 다 하고 살았단 말인가! 제가 여태까지 해온 것과도 비교가 안 되는 일이에요. 육체적으로도 힘들고. 수유하는 것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아기한테는 겁도 많이 생겨요. 혹시 어디 아픈가. 용감해지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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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엄마가 되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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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선생님이 하신 말인데, ‘담요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 담요는 필요할 땐 덮고 자고, 일어나면 한쪽에 치워두잖아요. 밖에서 열심히 놀다가, 힘들고 지치면 집에 와서 또 담요를 펼치죠. 그런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처음 만나는 세상이 저라면, 정말 행복하고 따뜻한 사랑이었으면 좋겠어요. 일보다 돈보다 명예보다 저의 어떤 것보다도 당분간은 아이가 가장 우선일 것 같아요.”
“상대의 마음을 상상하는 힘”
하고 싶은 대로 살아서, 혹자의 눈에는 잠시 손해를 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다.(…) 경험해본 바로는 이런 손해는 일시적인 것이다. 결국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서 스스로 행복하고, 실패나 실수조차도 기까이 자신의 책임으로 껴안으며 사는 게 훨씬 가뿐한 삶이다.(p.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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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했을 텐데,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동력은 절박함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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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요. 저를 움직이는 힘은 재미에요. 행복하다는 건 보통 그런 거죠. 의미가 있고 재미도 있는 상태. 재미만 있으면 행복과는 조금 다르죠. 좋아하는 게임을 막 한다거나 만화책을 막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하긴 조금 모자라잖아요. 이 일이 의미가 있어서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고, 이바지할 수 있을 때 뿌듯함. 내가 이런 걸 했다는 성취감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중에서 또 굳이 택하라면 저는 재미를 택할 거에요.
홍대를 처음 가게 한 것은 트위터였죠. 한번 가고 끝났을 텐데, 거기 재미있는 사람이 많이 모였고, 일이 순식간에 북적북적 대니까 신났어요. 그분들은 절박한 문제인데 우리는 맨날 히히덕거려서 죄송하기도 했는데, 그러면서 또 풀어지는 게 있거든요. 조금 덜 힘들죠. 그런 저희를 지켜보던 김진숙 씨가 말을 걸어왔죠. 저는 그 사람 자체가 또 신기하고 재미있었고요.” -
사회에 나가거나 집 밖에 나가면, 정말 나쁜 사람도 있잖아요. 싸워야 하는 사람들.(웃음) 그들 가까이에서 어떻게 건강한 멘탈을 유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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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쪽에서 날 봐도 그럴 걸?(웃음) 객관화라는 게 그런 거에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옳아요. “난 이게 정말 나쁜 짓인 줄 알지만, 나쁜 짓만 하고 싶어서 이렇게 살아.” 이런 사람은 없어요. 그건 병적인 경지고요. 대부분은 자기가 생각하는 가장 옳은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요. 사람이라는 게 그런 존재에요. 그것만 정확하게 알고 있어도 덜 미워요. 6. 25 전쟁을 겪고, 박정희 시대 때 겨우 먹고 살게 됐었고, 북한 사람에게 가족 잃었던 사람이라면 그 두려움으로 평생을 살 거예요. 그런 사람에게는 우리가 하는 말은 정말 씨알도 먹히지 않겠죠. 그분들이 태생적으로 나쁘고 젊은이를 싫어해서 그런 건 아닐 거라는 거죠.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사람들의 본심은 두려움이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이해할 수 없는, 잘 모르는 것이 무서우니까 쳐버리려고 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그들이 무섭지 않아요. 동요하지 않게 돼요. 그분들보다 저를 화나게 하는 건, 내가 정말 믿고 좋아했던 사람이 아주 사소한 말실수로 바닥을 들어낼 때에요. 차별적인 발언을 하거나 생각지 못한 말을 뱉었을 때 약간 싫어져요. 오히려 저와 비슷한 사람 사이에서 참을 수 없는 차이를 느낄 때 멀어지는 일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아직 먼 거죠. 저도.(웃음)” -
김여진 씨 말씀하실 때 느끼는 게 있어요. 단순히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는 게 아니라, 그 상대가 처한 맥락을 살펴보려고 하세요. 20대 문제를 얘기하거나, 홍대 총학생회장에게 말을 걸 때, 남들이 놓치는 부분까지 살피는 감수성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대학생이 친근하게 다가가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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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렸을 때 독서가 중요한 것 같아요.(웃음) 사람의 마음을 상상하는 힘은 독서로 갖게 됐지만, 연기하면서 더 커졌죠. 연기하려면 상세히 상상해야 해요. 점점 세밀하게 상상할수록 연기가 좋아져요. 저 사람은 그냥 가볍게 연기하는데 되게 자연스럽고 편하고, 이 사람은 되게 열연하는데 힘들고.(웃음) 저는 그게 상상력의 차이인 것 같아요. 디테일하게 상상하면 툭 해도 나와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나 마음을 생각할 때도, 그때 훈련이 도움되는 것 같아요.”
“연애도 연기도 다른 패턴으로 많이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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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 <엄마를 부탁해>에서 상실을 겪은 사람을 연기하다가 청소 노동자 문제를 만나죠. 일과 삶이 연결되어 있달까요? 일에서 느낀 것이 삶에 영향을 주고, 그것이 또 연기에 영향을 주고 순환하는 게 근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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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죠. 연기했던 캐릭터가 저한테 영향을 주고요. 제가 하는 경험이 연기에 영향을 줘요. 연기하면서 항상 제 한계를 절실히 느껴요. 캐릭터가 제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가면, 흉내밖에 안 되거든요. 그럴 때 굉장히 답답함을 느껴요. 그게 연기 기술을 연마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그릇이 커지는 수밖에 없겠더라고요. 김여진이라는 사람의 상상력, 이해의 폭이 커져야 어떤 캐릭터든 가능해지는 거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좋은 직업을 가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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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내 안에 폭을 넓히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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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뭐든 해보는 거죠. 뭐든. 인연이 닿는 대로 뛰어들면 다른 일이 또 생기고. 다른 사람과 이어져요. 받아들이면 돼요. 인생이 나한테 주는 여러 가지에 대해서 선입견이나 두려움 없이 그냥 훅 받아들이는 게 좋아요. 그것도 좋아요. 자기 인생을 하나의 무대나, 한 권의 책으로 조금 떨어뜨려 놓고 생각하면, 덜 무서워요. 어쨌든 막은 내리고, 언젠가는 죽는 건데. 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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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마음을 쓰는 사람이라는 말이 와 닿았어요. 배우든 소셜테이너든 마음을 움직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아무리 누가 선동해도 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 듣지 않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연애가 직업인 셈이에요. 그런 맥락에서 연애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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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하죠?(웃음) 많이 해야 해요. 연기든 연애든 많이 하는 것에 장사 없어요. 대신 똑같은 패턴으로 하면 안 돼요. 한 남자랑 연애하면서 좋다가, 어느 순간 살짝 어긋날 때가 있잖아요. 그때 어떻게 행동할 건가? 내 맘대로 고집을 피우면, 상대는 반동으로 튕겨 나가게 되어 있어요. 그렇게 싸우고 끝났어. 울고불고 하다 다음 사람을 만나서 또 똑같이 해요.(웃음) 오랜 친구들은 알죠. 쟤는 맨날 레퍼토리가 똑같아. 사람만 바뀌어. 그러면서 늘 비극의 주인공인 양 하죠.(웃음)
연애가 늘어야 해요. 이번에 이렇게 했으면 좀 다르게 해봐야지. 원래 하던 방식으로 돌아갈지언정 자꾸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봐야 해요. 전화를 맨날 기다리기만 했다면, 그냥 무조건 해보고, 전화 안 한다고 화를 내봤으면, 전화 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해보는 거죠. 맨날 뭐 해줘, 얘기했다면 내가 해줄게 해보고. 그래서 어떻게 되나 보세요. 만약 맨날 퍼주다가 끝났다면, 이번엔 안 퍼줘 보고. 이렇게 하면서 자꾸 느는 것 같아요. 연애를 정말 잘하는 사람은 뭘 해도 잘할 것 같아요. 그건 내 마음을 알고 상대의 마음을 잘 안다는 거거든요.”
“인생의 절정이 계속 갱신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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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김여진 씨 말고도 멋진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과 있으면 점점 더 멋진 사람들이 되겠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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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하고 싶고 재미있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해버리면, 당연히 좋은 사람을 만나요. 만약 하고 싶었던 봉사활동을 해요. 그러면 그걸 하러 오는 사람을 만나겠죠. 시간과 돈을 떠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용기도 있는 사람이겠죠. 그런 사람들과 뭔가 하다 보면, 또 넓어져요. 그다음 번에는 흔쾌히 뭔가 할 수 있을 만큼 커져요. 뭔가 하고 싶다, 고민만 하지 말고 툭 해버리세요. 제가 연기를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한 달만 포스터 붙여보지 뭐. 무슨 일이 생길지는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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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담백한 삶을 사나요? 하나 선택하고 하나 포기하고. 시작한 건 끝을 보고. 하고 싶은 건 뛰어들고. 끝나면 뒤돌아서고. 이게 연애를 잘하는 비결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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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하면서 배웠어요. 찌질한 연애 많이 했어요. 집착도 많이 했었고, 남자 때문에 울기도 많이 울고. 그러면서도 조금씩은 늘었던 것 같아요. 잘 보면 계속 비슷한 타입을 만나요. 만약 내가 매력을 느껴도 나랑은 안 맞는 사람이라면 그만둬야 하는 거죠. 그러면서 조금 더 나한테 맞는 상대를 고르는 눈도 생기고, 그런 게 저는 훈련이 많이 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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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 돌아보면 참 극적인 순간이 많았어요. 그럼에도 늘 열정과 사랑은 항상 상승지수였고요. 지금은 인생의 어떤 순간인 것 같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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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저의 인생의 절정이죠. 계속 절정을 갱신하고 있죠.(웃음) 2011년 상반기가 제 인생의 절정일 줄 알았는데 아기가 생겨서 더 절정의 순간을 맞았어요. 왜 절정이라고 하느냐면, 이만큼 나를 몰입시키는 대상은 없었어요. 절대적이에요. 이 아이한테 제가 절대적이고, 저한테 이 아이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도 끼어들기 어려워요. 다른 것에 마음 두고 싶지 않아요. 굉장히 행복한 일이에요. 그야말로 절대적 사랑이잖아요. 이것도 얼마 안 가거든요. 아이가 크면 친구를 찾을 거에요. 엄마는 그야말로 담요지. 세상을 보러 나갈 거에요. 지금은 제 품 안에서 오로지 저만 있잖아요. 이건 정말 기쁜 일이에요. 정말 즐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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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꿈은 뭔가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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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늙어갈 일만 남았으니까. 웃기고 예쁜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할머니가 될 텐데, 무슨 일을 하든 유머감각이 있고, 누구하고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대화할 수 있는 할머니였으면 좋겠어요. 거기다가 곱게 늙어서 미모도(웃음). 그런 할머니가 된다면 행복할 거로 생각해요.”
한 사람을 사랑해봐야 안다.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어떨 떄 행복한지, 얼마나 찌질하고 잔인한지, 얼마나 자주 작은 일에 상처받고 자기 연민에 빠지는지, 감정이라는 게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연애해봐야 한다. 그게 어떤 형태의 사랑이든 해보면 해볼수록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우리 인생에서 연애만큼 매순간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하는 일도 없으므로.(p.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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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애 김여진 저 | 클(퍼블리싱컴퍼니클)
한국의 대표적인 ‘소셜테이너’, 소신 있는 ‘개념배우’ 김여진의 첫번째 에세이.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김여진이 지난 1년 동안 직접 써내려간 글들을 모았다. 자신의 경험을 통해 마음과 행복을 탐구하고, 수많은 관계들을 성찰하면서 발견한 인생의 메시지들이 그만의 따뜻한 시선으로 책 전반에 녹아 있다.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날카로운 문제의식도 여전히 빛을 발하며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프로 작가 못지않은 유려한 문장들로 촘촘히 채워낸 '연애'는 쉽고 재미있게 읽히지만 만만치 않은 여운을 오래 남기는, 본격 에세이스트로서 김여진의 성공적인 데뷔를 알리는 기대작이다…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는 중요한 거 하나만 생각하자,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chang0307
2013.03.28
이 책 읽고 싶습니다 ^^
십일월사람들
2013.02.19
freewired
201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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