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 현장에는 과학수사 요원이 있다!
이 현장은 어떤 현장일까? 살인 사건 현장이라면 과연 여기서 살해 행위가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용의자는 어떻게 이곳에 침입하여 피해자와 조우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물음이 현장을 찾은 과학수사 요원에게 던져진다.
글ㆍ사진 표창원
2012.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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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보존(preservation of the scene) - 현장 요원들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현장통제선(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범죄 현장을 발생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유지하기 위한 조치다. 통제되지 않은 현장은 가족, 구경꾼, 때때로 언론 카메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하는 만큼 많은 증거가 훼손되고 사건 발생 당시의 모습을 유지할 수 없다. 현장통제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과학수사 요원뿐이다.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도 없고 들어갈 필요도 없다.


* 청취(notification) - 과학수사 요원이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증거 수집을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사건을 처리하던 순찰 경찰관과 구급대원, 목격자, 피해자 그리고 형사들에게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청취해야 한다. 보통 과학수사 요원은 현장의 증거만 취급하고 조사와 검거 등 나머지는 형사들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잘못된 인식이다. 증거를 발견하려면 어떤 종류의 증거가 어디에 남아 있을 것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사건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지 못한다면 증거 수집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용의자를 검거해야 하는 형사들도 마찬가지다. 과학수사 요원이 수집한 증거가 아니면 용의자를 검거하는 일이 어려우며, 검거한 후에도 범죄 행위를 조사하기가 쉽지 않다. 범인이 어디로 들어왔는지, 무엇을 만졌는지, 어떤 동선을 따랐는지, 어디로 도주했는지 등에 대한 정확한 정보 수집은 과학수사 요원이 증거를 좀 더 확실하게 수집하는 데 필수 요소가 된다.


* 둘러보기(walk-thru) - 이 현장은 어떤 현장일까? 살인 사건 현장이라면 과연 여기서 살해 행위가 이루어졌을까? 아니면 다른 곳에서? 용의자는 어떻게 이곳에 침입하여 피해자와 조우할 수 있었을까? 다양한 물음이 현장을 찾은 과학수사 요원에게 던져진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장을 처음으로 한번 둘러본다는 의미의 워크 스루는 매우 중요한 절차다. 현장과 그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건에 대한 최초의 재구성(initial reconstruction)을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과학수사 요원은 범죄와 관련된 다양한 가설을 세워 본다. 범죄 유형, 침입 방법, 범행 목적, 공격 방법, 시체 처리와 도주 방법 등에 대한 최초의 가설은 수사가 진행되면서 많은 수정 과정을 거치지만 수사 초기에 수사의 방향을 설정하고 좀 더 정확한 증거를 수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증거의 발견과 기록(searching for evidence) - 자, 현장 둘러보기가 끝났다. 현장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은 현장 과학수사 요원은 증거를 발견하기 위해 구체적인 수색(searching)을 시작한다. 수색은 매우 체계적이다. “중복은 있어도 누락은 없다”라는 말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돌 하나라도 뒤집지 않은 채 남겨 둬선 안 된다(no stone must be left unturned)”라는 표현을 쓴다. 수색을 하기 전과 수색 과정, 수색을 통해 발견하고 수집한 물품에 대해서는 철저히 기록해야 한다. 기록은 사진, 동영상, 스케치, 필기 등의 방법을 함께 사용한다.


* 증거 수집(collect evidence) - 발견된 증거에 대한 원칙은 이렇다. 옮길 수 있는 것은 옮긴다. 옮길 수 없는 것은 현장에서 모든 방법을 동원해 분석한다. 흉기, 범인이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유리컵 등 옮길 수 있는 물건을 경찰서나 지방경찰청 또는 경찰청의 실험실로 모두 옮기는 것은 매우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다. 증거물은 미세한 증거들이 전이되거나 서로 섞여 훼손되는 교차 오염(cross-contamination)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하나 개별 포장을 한다. 권한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 모르게 증거물에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든 포장을 봉인하고 증거물에 대한 이동과 보관의 연결고리(chain of custody)를 유지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방법을 통해 증거를 실험실로 옮기는 이유는 최적화된 환경에서 증거물을 분석하기 위해서다. 현장에는 많은 장애 요소가 존재한다. 이러한 환경에서 증거를 분석하는 것은 증거물의 오염, 멸실, 변형, 왜곡 등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 현장 감식의 종결 - 현장에서 모든 증거를 수집하고 그 결과를 용의자를 검거해야 하는 형사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 과학수사 요원의 1차 임무다. 하지만 이것이 임무의 끝은 아니다. 증거는 마지막으로 법정에 제출되어 범인이 그의 행위에 대해 법적책임을 지는 데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다. 과학수사 요원(때로는 이 증거를 분석한 법과 학자)은 법정에 출두하여 자신이 수집하고 분석한 증거를 증언함으로써 판사(국민 참 여 재판일 경우 국민 배심원 포함)에게 그 의미를 납득시켜야 한다. 이러한 법정 증언을 통해 과학수사 요원은 범죄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그 결과 법을 집행하여 정의가 구현되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수사 요원에게 주어진 임무의 결정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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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CSI 표창원,유제설 공저 | 북라이프

‘과학수사’를 통해 형사들을 지원하는 현장 과학수사 요원과 실험실 법과학 전문가들을 ‘CSI’로 정의하고, 그 세부 분야와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들을 소개한다. 오 제이 심슨 사건의 무죄 판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세계적 법과학자 헨리 리 박사, 촉망 받는 생명공학도에서 국내 최고 수준의 지문 감식 전문가로 탈바꿈한 임승 검시관, 안정된 연구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남자들도 손사래 치는 사건 현장 업무에 뛰어든 이현정 검시관 등 과학수사계의 ‘스타’들을 망라한다. 이들이 육성으로 들려주는 생생한 현장 사례와 다양한 정보들은 CSI 요원을 꿈꾸는 젊은 세대에게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현장 감식 #과학수사 #CSI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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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e78

2013.05.30

표창원님의 글이라니 칼럼 계속 읽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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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e23

2013.02.03

우리나라도 미국 CSI 못지않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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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둥이

2012.03.27

우리나라는 어떻게 사건 현장에서 단서를 잡는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보면 많은 궁금증이 풀릴거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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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원

표창원 교수는 실제 경찰관 출신으로 연쇄살인, 엽기범죄 등 각종 범죄와 살인자들의 심리를 날카롭게 분석해내는 걸로 유명한 한국의 ‘프로파일러’로 현재 범죄학, 범죄심리학, 피해자학 등을 강의하는 경찰대학 교수이다. 그는 1989년 경찰대학을 졸업하고 1990년~1991년 경기도 화성경찰서, 1991년~1992년 경기도 부천경찰서 형사과, 1992년~1993년 경기지방경찰청 외사계에서 근무했다. 1993년부터 4년간 학업에 매진하여 영국 Exeter 대학교 석사 및 박사 (경찰학, 범죄학)학위를 받았다. 경찰청 강력범죄 분석팀(VICAT) 자문위원, 경찰청 미제사건 분석 자문위원, 범죄수사연구회 지도위원를 역임했으며 미국 샘휴스턴 주립대학교 형사사법대학 객원교수, 한국심리학회 범죄심리사 과정 강사, 경찰 수사보안연수소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 법무연수원 범죄학 및 범죄심리학 강사로 활발한 강의활동을 해왔으며 아시아경찰학회 총무이사 및 회장을 지냈다. 그는 지금도 어디에선가 이유 없는 분노와 복수심에 빠져 있는 잠재적 연쇄살인범들이 우리 사회 각 기능의 제역할로 인해 상처를 치유 받고 교훈을 얻고, 행동이 교정되어 무모하고 비극적인 공격의도를 꺾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관련된 범죄 관련 저서들을 집필 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연쇄살인』,『EBS 지식 프라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