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안녕이라고 말했네” - Goodbye to love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이제 죄다 사라져버릴 골목 갈피마다 어떤 사람과 사연을 품고 있었는지 당신도 당신의 골목을 기억해준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을 것이다.
글ㆍ사진 김현진
201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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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팔리지는 않아도 여러 권의 책을 써왔지만 언제나, 당신을 위해 썼다. 부모도 친구도 아니고 책 사주는, 아니면 도서관에 신청이라도 해주는 끝없이 고마운 독자님들, 지금 이걸 보고 있는 바로 당신. 나의 목적은 언제나, 수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금 당신에게 닿는 것이었다. 대단히 아름다운 문장이나 세상에 큰 보탬이 되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하찮고 정다운 것들에만 정이 가고 늘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속 좁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당신 덕분이었다.

이 책도 당신과 그런 기억을 나누고 싶었던 것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이제 죄다 사라져버릴 골목 갈피마다 어떤 사람과 사연을 품고 있었는지 당신도 당신의 골목을 기억해준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을 것이다. 사랑하고 증오하고 끝내 미워하면서도 또 사랑했던 이 도시, 성장촉진제를 맞은 것처럼 광포하게 확장되어 결국 구차한 주머니 가진 사람은 온몸을 부르르 흔들어 곡식 낟알을 까부르듯 떨구어내고야 말 이 도시에서 나는 끝내 밀려나고야 말 테지만 그래도 그 전에, 골목 갈피의 기억 끄트머리를 하나라도 붙잡고 싶었다. 순식간에 변심하는 사랑했던 남자처럼 이 몇 년 사이에 많이도 변한 도시를 지긋지긋해하면서도 끝내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마음이 조금이라도 당신에게 닿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기쁨은 없을 것이다.


So I’ve made my mind up I must live my life alone

그래서 나는 홀로 살아야만 한다고 마음을 정했지

And though it’s not the easy way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을

I guess I’ve always known

어쩌면 언제나 알았던 것도 같아

I’d say goodbye to love.

사랑에 안녕이라고 말했네

There are no tomorrows for this heart of mine

마음에 내일이란 없고

Surely time will lose these bitter memories

분명 이 쓴 기억들도 시간따라 사라질 거야

And I’ll find that there is someone to believe in

어쩌면 믿을 수 있는 누구를 찾아낼 수도 있고

And to live for something I could live for

그것만을 위해 살아갈 수도 있겠지

All the years of useless search

무의미한 시간들이 지나간 후에

Have finally reached an end

결국 나는 알게 되지

Loneliness and empty days will be my only friend

고독과 텅빈 날들만이 내 유일한 친구임을

From this day love is forgotten

오늘부터 사랑은 잊혀져가겠지만

I’ll go on as best I can.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살아갈 거야


- 카펜터즈 〈Goodbye to love〉 중에서



 

 

뜨겁게 안녕 글 김현진 | 다산책방

『뜨겁게 안녕』은 이제 막 서른 이후의 삶에 접어든 저자가 써내려간 ‘서울살이’의 회고록이자 비망록이다. 여기에는 저자의 개인적 삶이 가장 뜨겁게, 그리고 가장 리얼하게 담겨 있지만, 동시에 서울이라는 도시의 소외된 거리와 시대의 풍경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철거촌과 비개발지역, 서울의 소외된 곳을 옮겨다니며 살아온 삶은 비속하고 하찮고 시시하고 애절한 기억들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정겹고 그립고 끝도 없이 사랑스럽기도 하다. 그 기억의 순간을 새겨놓은 곳들이 재개발의 삽질에 밀려 죄다 사라져버리기 전에..

#뜨겁게 안녕
38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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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ung7655

2023.08.08

1인 신청합니다.
점점더 어려워지는게 인간관계인가 봅니다. 매일 얼굴보며 사는 배우자와 자식관의 관계도 쉽지 않네요.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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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2023.08.08

1인 신청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이 많아지졌다가 대면으로 바뀌었지만 타인간의 관계가 무미건조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 좋은 관계가 무엇인지 희미해져가는 시기인 것 같아 북콘서트를 통해 다시금 정립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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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k77

2023.08.08

관계에.대한.고민이 많은 요즘.꼭듣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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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대구 출생에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였고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 속에 장착한 그녀가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단편영화 <셧 앤 시 Shut And See>(97년) 감독, 웹진 <네가넷>(97년)의 최연소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그래서 한 시사주간지는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텔레비전의 관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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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

“삶이 구차하고 남루할수록 농담은 힘이 세다고 믿는다. 줄곧 글 쓰는 삶을 살아왔고 계속 쓸 것이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대구 출생에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였고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 속에 장착한 그녀가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단편영화 [셧 앤 시 Shut And See](97년) 감독, 웹진 [네가넷](97년)의 최연소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영화 시나리오와 서사 창작을 공부했다. 그래서 한 시사주간지는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텔레비전의 관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 학교를 7년 만에 졸업, 간신히 영화 [언니가 간다]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나 전국 18만 8000명으로 종결 후 좌절하였다. 먹고 살기위 해 아르바이트와 직장생활 등 애써봤으나 여전히 도시빈민 겸 철거민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통합과정 전문사에 진학했으나, 등록금 대출 이자를 갚지 못해 달마다 '신불자'가 될 위기에 처한 상태로 휴학 중인 그녀는 이러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다. MB 정권과 격렬히 불화했다. 기륭전자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터에서 그 어떤 학교에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웠다 한다. '최상의 연대는 입금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앞으로도 구체적 연대를 꿈꾸는 그녀는 강자에겐 얼음처럼 차갑게, 약자에겐 불처럼 뜨겁게 반응하며 거창하게 무슨 무슨 '주의자'로 불리기보다는 항상 지는 편에 붙는 '내 감정주의자'로 살아가겠노라고 강단 있게 말한다. 그녀를 주목받게 한 데뷔작 『네 멋대로 해라』(1999년)는 십대에 쓴 글들을 엮은 것으로, 글에서 밝히는 바와 같이 소위 일류 대학에 들어간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은 책과는 사뭇 다르다. 이 책은 공교육 공간에서 부대끼는 아이들 중 한 사람으로 아프게 혹은 당차게 살아낸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 있다. 교복을 입고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무심코 "참 좋은 때야" 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좋은 시절만이 아닌, 제도와 체벌 혹은 또래 아이들에게 치이는 생활로 인해 아파하고 견디어내야 하는 따갑고 아픈 시절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남대문 시장의 미싱을 돌리는 외국인 노동자와 여인숙에서 일하는 여성을 자연스레 볼 수 있던 생활환경으로 일찍 '진실'에 노출된 아이가 십대 초반부터 사회문제와 '나'에 관하여 고민했던 생각을 담은 글들은 문화비평적인 성격을 띄기도 한다. 결국 자퇴를 선택했던 자신과 학교에 남은 아이들, 때로는 분노에 찬 음성으로, 때로는 깊은 슬픔을 간직한 눈으로 바라본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자신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는 그런 그녀가 A급 연애는 못 하고 늘 B급 연애만 하는, 늘 지는 연애의 홍수에서 허우적대는 이십 대 여성 동지들의 영혼에 바치는 위로와 동감의 노래이다. 유기견 네 마리를 데려다 기르는 그녀의 성품에서 잘 드러나듯 버림받고 약하고, 작고, 아픈 것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 의식은 이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청소년 계간지 [풋]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매거진T], [씨네21], [독서평설], [시사IN] 이외에도 다수의 일간지와 월간지 등에 에세이를 기고했다. 『뜨겁게 안녕』, 『내가 죽고 싶다고 하자 삶이 농담을 시작했다』, 『육체탐구생활』, 『우리는 예쁨 받으려고 태어난 게 아니다』 등의 에세이와, 장편소설 『XX 같지만, 이건 사랑 이야기』, 김나리 작가와 공동 집필한 『말해봐 나한테 왜 그랬어』, 『녹즙 배달원 강정민』 그 외 저서로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불량소녀백서』, 『질투하라 행동하라』, 『당신의 스무 살을 사랑하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동물애정생활』, 『새벽의 방문자들』(공저) 등이 있다. 독자에게 직접 글을 보내는 에세이 메일링 서비스 『월간 살려줘요 김현진』을 발행 중이다.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게임 시나리오, 영화 시나리오, 회사 홍보자료 등등 살기 위해 각종 글을 썼고 한때는 녹즙 배달원으로 일하다 업계의 생리를 약간 터득하고 알코올의존증을 거의 이겨냈다. 다음 20년도 계속,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