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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바보처럼 살 때가 있다. |
익숙한 구정물은 이후로도 조금만 비가 많이 쏟아지는 날이면 어김없이 나를 찾아왔다. 자다가도 찰랑찰랑 소리를 들으면 얼른 깨어나서 양동이와 한 편이 되어 넘쳐오르는 물과 맞서 싸웠다. 이게 포세이돈 어드벤처야, 타이타닉이야. 나는 한숨을 푹푹 쉬었지만 어디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도 나타나서 당신은 살아야 해, 살아서 애도 낳고 행복하게 살아야 해, 뭐 그런 소리로 위로해주는 일 따위는 없었고 방도 날씨도 마음도 춥기만 했다. 그 바쁜 와중에도 마음 붙일 곳 없어 줄곧 연애를 그치지 않고 해댔지만 생활이 그랬듯이 연애 역시 번번이 거칠었고 연인을 갈아탈수록 마음은 수척해지기만 했으며 사랑도 애인도 이쪽으로 쳐들어오는 파도를 막아줄 수는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바보고, 바보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대로 바보처럼 살 때가 있다. 그때는 그 바보 같은 상태를 그냥 견뎌내는 수밖에 없다. 머저리 같은 자신을 참아내는 수밖에 없다. 나도, 같이 사는 언니도, 옆집 여자도 그 집 아들도 다 견뎌야만 하는 게 이놈의 인생이지…… 그러다가 바로 길 건너에서 황당한 일이 터졌다. 살인사건이었다.
태초에는 빤한 얘기였다.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서 일을 하기 시작한 조선족 여자는 한국 남자와 연애를 하게 되었고, 그 남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게 그 동네였다. 지금의 왕십리는 뉴타운이 되어 민자 역사에 대형마트다 쇼핑센터다 영화관이다 주상복합이다 하고 흥청망청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도 기어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니까. 그 조선족 여자는 독하게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모았고, 그 돈은 많다면 많다고 할 수 있고 적다면 적다고 할 수 있는 2천만원이었다. 같이 사는 그 남자에게는, 죽었다 깨어나도 만져볼 수 없을 돈이어서 탐이 나고 결국 누구를 죽여서라도 갖고 싶은 그런 돈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 남자는 같이 사는 그 여자를 죽였다. 그 여자는 제대로 된 무덤에 가지도 못하고…… 어디로 갔느냐 하면, 다용도실이었다. 남자는 여러 번 품에 안았을 그 여자의 몸을 다용도실 시멘트를 부수어 묻고 그 위에 다시 한 번 공구리를 쳤다. 2천만원 버느라 한국 땅에서 모진 고생을 했을 그 여자는, 몸 주고 마음 주고 밥상 같이 나누고 텔레비전 같이 보면서 낮과 밤을 보낸 남자 손에 죽어서 세탁기가 털털거리며 돌아가던 다용도실에 묻혀 다시 깨어나지 못할 잠을 자고,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남자는 말끔하게 그 위를 도배한 집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범인을 잡아낸 것은 유능한 경찰이나 이웃 여자의 돌연한 실종을 이상하게 여긴 주변 사람도 아니고, 초파리였다.
초파리는 죽도록 일만 하다 끝내 죽은 여자가 다시 깨지 못할 잠을 자는 그 무덤 위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다용도실에 자꾸 초파리가 붙어 있는 걸 이상히 여긴 부동산 사람의 신고로 여자는 발견될 수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외로운 그 여자의, 고작 2천만원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 손에 세상 뜬 가엾은 그 여자의 유일한 장례 행렬이자 죽음의 고발자가 되어준 초파리들. 비가 많이 와서 물을 퍼낼 때마다 초파리가 날아다니면 문득 무서웠다. 시체 구경이라도 하게 될까 싶어 무서운 게 아니라 또 누가 다용도실에서 깨지 못할 잠을 자는 건 아닌지, 또 저 파리들이 누구의 애달픈 장례 행렬을 해주는 건 아닌지 싶어 자다가 자꾸 깼다. 보증금 2천, 연봉 2천, 월수입 2천, 뭐가 됐든 2천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그 돈 때문에 죽은 그 여자를 누가 기억할까 싶어 끝도 없이 울고 싶었다. 당연히 그 파리들도 다 죽은 지 오래일 것이다. 2천만원이 절대로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 돈 때문에 죽을 정도는 아닌데. 사람 죽일 만한 돈은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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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안녕
출판사 | 다산책방

김현진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스스로를 도시빈민이라 부르는 그녀는 대구 출생에 목회자인 부친의 모든 희망에 어긋나게 성장하였고 기어코 말 안 듣다가 고등학교를 두 달 만에 퇴학에 준하는 자퇴를 감행하였다.
냉소와 분노와 우울을 블랙 유머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을 몸 속에 장착한 그녀가 숨 막히는 고등학교를 용감히 박차고 나온 '불량소녀'로 세상에 알려진 지 이제 10년이 넘어간다. 그녀는 단편영화 <셧 앤 시 Shut And See>(97년) 감독, 웹진 <네가넷>(97년)의 최연소편집장,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최연소 합격 등의 화려한 타이틀을 가졌다. 그래서 한 시사주간지는 성공한 10대라는 제목으로 그를 표지인물로 내세웠다.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자퇴생이라는 사실이 언론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텔레비전의 관심도 남달랐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명확하게 직시하면서 자기만의 삶을 꾸준히 살아왔다.
책방꽃방
2012.02.13
sun7076
2012.01.28
초파리가 그 여자분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게 되었지만...
너무 안타까운 사연이네요...ㅠ.ㅠ
날도래
2012.01.28
모두가 다 뜨겁게 뭉치며 사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참 가슴이 아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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