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에서 음악이 걸어 나오다 - 김영하의 도드리
2012.01.13
![]() | |||||
| |||||
![]() |
‘도드리’는 국악에 폭넓게 쓰이는 장단의 이름으로 이 장단이 쓰이는 악곡 이름으로까지 의미의 폭을 넓혔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존 곡을 변주한 상현도드리, 하현도드리, 밑도드리 등으로 파생되었고, 대금을 연주하는 사람이면 가장 처음 연주하게 되는 평이한 가락을 갖고 있다.
도드리는 ‘되돌아간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총 7장으로 구성된 악곡의 1장과 4장이 같고 6장과 7장이 거의 비슷한 것이 자신의 어원과 닮았다. 7장의 끝맺는 가락을 찾지 못하면 영영 곡을 끝내지 못할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7장에서 끝맺는 가락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곤 한다. 도드리를 닮은 인생 탓인지도 모른다.
도드리에 대한 전설이 있다. 조선시대 말엽, 어느 대금의 고수가 매일같이 인왕산 꼭대기에 올라 도드리를 불었고, 그 때마다 나막신에 모래 한 알을 던져 놓고 내려오곤 했다. 어느덧 나막신에 모래가 빼곡히 찰 무렵, 그 속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났다고 한다. 대금의 고수가 평생을 바쳐도 다할까 말까 한 단순하지만 어려운 곡인 것이다.
많은 작가들이 자신을 닮은 작품을 쓴다. 일본의 사소설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개인적 체험이 작품에 영향을 미칠 것은 뻔하다. 하지만 김영하는 좀처럼 작품에서 자신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한 인간을 ‘지금까지 읽어본 책의 총체’로 여기는 지식애가 그의 경험이고 상상을 즐기는 그의 취미가 소설을 쓰게 하는 것 뿐이다. 그런 면에서 ‘도드리’는 이례적인 작품이다. 그는 대학 재학 중 국악 동아리 활동을 했다고 한다.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인상을 쓰는, 투쟁에 모든 것을 바친 선배들을 피해 김영하는 교정의 언덕에 올라 도드리를 불지 않았을까? 끝도 없이 곡조를 이어가지나 않았을까?
김영하는 영상적인 글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TV세대, 즉 신세대 문학의 징후로 여겨지며 9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전혀 영상적인 혜택을 받지 못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밝힌다.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리저리 산골만 다니느라 ‘가장 교훈적인’ KBS 1TV만 겨우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마치 소설이라곤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던 통신사 직원 마루야마 겐지의 혜성 같은 등단처럼, ‘디 아더스’를 연출하고 음악까지 담당한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가 극장이나 TV와 동떨어진 생활을 했던 것처럼… 그리고 때론 CD가 아니라 책 속에서 음악이 걸어 나오는 수도 있는 것이다. 행간을 채우고 있는 絃과 琴이 책장 넘기는 손끝에 타고 운다. 황병기의 「산운(山韻)」, 산의 운치다.
소설 속에서 ‘산운’은 망가졌다. 어떻게 망가졌는지 궁금하다면 소설을 읽어보자. ‘산운’에는 정취와 풍류가 흐른다.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면 들어보자. 기왕이면 전라남도 담양의 식영정에 올라 한 시간쯤 쉬어보는 것도 좋겠다. ‘산운’은 송강 정철의 가사 ‘성산별곡’의 운치를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라 한다. 정철이 식영정에서 바라보며 즐겼을 경치는 댐 공사로 잠겨 남은 것이 거의 없으니 ‘산운’이 이끄는 대로 눈을 감고 당시의 운치를 느껴볼 따름이다.
책 속에 파묻힌 듯 앉아 있던 그가 성큼성큼 강단으로 걸어 나간다. “안녕하세요. 김영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독자에서 작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재미있는 연사이기도 했다. 염색에 귀고리까지 한 작가를 알아보지 못한 주최 측은 당황한 후 곧 안도했고, 독자들은 즐거웠다. 그의 소설처럼 재미있는 순간이었다.
![]() | |||
![]() | |||
| |||
![]() |


34개의 댓글
추천 상품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ghdcks17
2023.04.17
littleforest
2023.04.17
더불어, 지금도 현장에서 고생하는 의료인들을 이해하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예디
2023.04.16
응급실 간호사가 되어 최전선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먼저 경험해 보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미래의 제 모습을 그려보고싶습니다!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