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횟집 주방장의 로맨스를 쓰고 싶었어요” - 『힌트는 도련님』 백가흠
「힌트는 도련님」을 쓸 때, 창작가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었다. 독서의 편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넣어봤다
2011.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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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백가흠의 세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귀뚜라미가 온다』 『조대리의 트렁크』에 이은 『힌트는 도련님』. 첫 장편이 아쉽게 유산된 뒤, 잉태된 그의 세 번째 소설집은 앞선 작품들과 다른 색깔을 주목받고 있다. 이젠 죽이지 않겠다는, 죽이는 것도 힘들다는 그의 이야기를 반영한 것일까.
지난 1일, 쌀쌀함이 내린 가을밤, 서울 홍대부근의 한 카페에서 와우페스티벌의 일환으로 ‘『힌트는 도련님』 낭독의 밤’이 펼쳐졌다. 서효인 시인이 맡아, 도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독자들과 교감하는 시간. 참고로 백가흠과 서효인, 두 사람은 같은 야구팀 소속으로, 백가흠 작가는 2루수, 서효인 작가는 포수를 맡고 있단다. 물론, 둘 다 주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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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황은 어떤가?
한 달에 반 정도는 소설 연재(주. <나프탈렌(현대문학)>)에 매달리고, 일주일에 나흘은 강의에 매달리고, 2주일에 한 번은 야구에 매달리고 있다.
오늘, 「그래서」라는 작품의 낭독을 많이 하게 돼 있는데…
가끔 낭독회를 했는데, (내 소설에서) 정말 읽을 부분이 없다. 두 번째 소설집을 준비하면서 낭독회를 하면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군데군데 문장을 읽어주는 것보다 단편 하나를 온전하게 읽어보고 싶었다.
낭독할 때, 출신지가 드러난다. (웃음) 「그래서」에는 작가가 한 명 등장한다. 거기 나오는 백이라는 작가가 『힌트는 도련님』에서도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힌트는 도련님』을 쓸 때, 창작가 입장에서 쓴 것은 아니었다. 독서의 편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자리에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넣어봤다. 맨 처음에 카프카를 넣었는데, 카프카가 웬 말이냐, 싶더라. 여러 작가를 넣다가 퇴고를 하는데, 노인의 이미지로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노선생이 떠오르는 거다. 이러면 안 되는데, 김윤식 선생이 떠올랐다. 반쯤은 남진우 평론가도 떠오르고.
두 사람의 이미지가 반반 드러나서,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을 했다. 뒤집어 써야겠다 생각해서 여러 작가들을 빼고 나를 넣었다. 성공적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아는 한 이 두 분은 어마어마한 독서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다.
『힌트는 도련님』에 소설쓰기의 괴로움에 대해 언급한다.
시간이 지나도 답이 보이지 않을 것 같다. 본질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고. 예전의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 같고. 원래 문학이라는 것을 어떻게 하려고 했었지? 그런 생각도 든다. 처음 마음가짐에서 멀어지니까, 작업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때때로 고통스럽다.
이때도 힘들었다. 이제 그만 소설을 쓸까, 딴 걸 해볼까, 여러 생각이 소설 안에서의 관념의 고민이라면, 소설에 나오는 엄마와 작가의 대화는 실제다. 10년을 했는데, 지금도 밤에 1~2시쯤 일을 하고 있으면 어머니가 오셔서 불을 끄고 자라고 그러신다. 어머니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시는 거다. 그런 괴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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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흠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그래서」의 한 부분이었다.
노인이 쓴 입맛을 다시며 입을 비죽거렸다. 허공을 바라보는 노인의 눈은 흔들림이 없었다. 낙엽 위로 살짝 내려앉아 있떤 서리가 반짝였다.… 음, 네놈이 누군지 이제 알 것 같다. 고얀 놈. 노인이 마지막 책장을 넘기며 나직하게 말했다.(pp.82~85)
세 번째 소설집의 색이 달라졌다.
보통 단편집은 쓰면서 계획하고, 몇 년 동안 쓴 것을 모아 책을 낼 무렵엔 다음 책에 대한 구상을 한다. 분위기나 콘셉트를 정하고 소설을 쓰는데, 이 책은 예정에 없던 거다. 문학적인 고민이 드러나는데, 오랫동안 해보고 싶단 생각을 했지만, 처음엔 다른 콘셉트였을 거다.
첫 번째 소설집부터 사회시스템에서 오는 부조리를 다루고 싶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힘들더라. 자꾸 후회가 됐다. 극서사에 대한 것들, 그리고 왜 내가 한 발 더 나갔을까, 하고. 소설이 후지고 마음에 안 들어서가 아니고, 소설의 다른 세계로의 진입이 한정되고 작은 구멍만 남겨놓았다는 걸 알았다. 폭넓고 보편적인 것을 열어놓았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보니 일상이 무너지기도 했다. 그 안에서 소설만 찾으니 더 어렵고, 소설로 다시 들어가는데 집중도 안 되고. 소설을 쓰지 못하는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작가도 직업으로 보면 직업의 일상성이 존재한다. 직장을 다니는 것 외에 출퇴근을 반복하고 패턴화 된 일상성이 작가에게도 존재한다. 생활이나 일상을 찾는데 대한 어려움부터 스스로의 정화라고나 할까, 작가로서 의식을 정화하는 소설을 써봐야겠다, 나를 위한 소설을 써야겠다, 마음을 먹었고, 「P」라는 소설을 썼다.
『힌트는 도련님』은 하다하다 다 포기하고, 처음엔 작가가 있는 횟집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모와 주방장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옛날처럼 안 나오는 거다. 문장을 참을 수도 없고, 인물이 그려낸 심리도 어렵고. 그래서 하나를 포기하고 쓴 소설이었다.
「P」는 말 그대로 자전소설이다. 여기에서 드러나는 에피소드, 인물 등은 내 기억일 수 있고, 왜곡된 것일 수도 있고, 남이 가진 기억일 수도 있다. 작가의 기억 혹은 과거라는 것이 개인만의 것일 수 있냐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전작 『귀뚜라미가 온다』를 카페에서 다시 읽었는데, 누군가를 때리고 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새롭게 해야 할 문학보다는 이야기가 돌아 돌아서 자신한테 왔고, 웅크린 소설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문학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힌트는 도련님』은 편집자에게 바치는 변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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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의 한 부분을 읽은 서효인 시인의 낭독을 끝으로 1부가 끝나고, 2부는 초대 손님과 함께 한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의 초대 손님은 소설가 김태용과 시인 신용목. 백가흠 작가의 친구들이다.
어떻게 친한가?
(백가흠, 이하 흠) 동갑내기 친구들이다. 데뷔한 연도나 활동이 다르긴 하나, 만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성격이 다 지랄 같아서. (웃음) 몇 년 전부터 친하게 지내는 소중한 친구들이다. 같이 놀자고 불렀는데, 사실 나보다 재미없는 친구들이다.
(신용목, 이하 목) 나이도 같고 그래서 (백가흠의) 첫 책부터 열심히 읽었다. 읽고선 피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그냥 놔두지 않더라. 죽이든지, 괴롭히던지. (웃음) 도망을 다니다가, 불가피한 자리에서 함께 술을 마셨는데, 그게 아니더라. 사람 잘 챙기고 오지랖도 넓고.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친하게 지내야겠다.
(김태용, 이하 태) (오늘 백가흠이) 요점 없이 말을 엄청 하던데, 어제 나랑 술 엄청 먹고, 12시에 헤어졌다. 문단에서 같은 나이 또래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잘 챙겨줘서 친하게 혹은 부담스럽게 지내고 있다.
김태용 작가의 낭독이 있었다. 백가흠 작가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다. 낭독을 한 소설은 「그래서」였다.
집 안은 아침이 되었는데도 어두컴컴했다. 흐린 날씨 탓으로, 집을 감싸고 있는 자욱한 안개 탓으로, 또 지붕을 타고 올라가며 창을 뒤덮은 담쟁이덩굴 때문에 집 안 가득 어둠의 빛이 무겁게 침잠되어 있었다.… 노인은 느긋하게 지난밤 다 읽지 못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제 그는, 책으로 만든 방에서 영원히 나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pp.97~98)
왜 이 부분을 낭독했나?
(태) 자주 보지만, 만나면 문학 이야길 하지 않는다. 술, 여자, 연예인 이야길 하는데, 그래서 더 편하게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가끔 동료작가를 만나면 어떤 표정 등을 하며 글을 쓸까, 궁금했다. 이 글을 보면서 백가흠도 고통스럽게 글을 쓰는구나, 동질감을 느꼈다. 또 작품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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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시인의 낭독이 따랐다. 「쁘이거나 쯔이거나」였다.
쯔이를 군산의 미군 클럽 근처에 데려다 준 것은 기종 씨였다. 짓누르는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는 한집에서 쯔이와, 형을 마주 보기가 힘들었다. 누군가는 집에서 나가야 했지만, 갈 곳 없기로는 기종 씨도 쯔이와 마찬가지였다. 도망치겠다고 제안한 그녀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쯔이를 차에 태울 때까지 동생 기종 씨는 그녀의 허리춤을 움켜쥔 손을 한 번도 놓지 않았다. 저는, 행복하고, 싶어. 놓아줘. 부탁입니다.(pp.218~220)
시인으로서 보는 작가 백가흠의 소설은?
(목)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내가 아는 친구가 맞는가, 할 때가 많다. 평소에는 헐렁하고 턱 없이 사람 좋은 웃음만 흘리는데, 소설을 보면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 보인다. 특히 예전 작품은 인간의 마음의 끝, 절벽으로 내몰리기 직전의 얇은 막을 여지없이 찢었다면, 최근 작품은 그 막을 어루만지고 있는 듯하다.
그전의 백가흠은 메마르고 가파른 현실을 보여주고자 했다면, 낭독에서 쯔이가 했던 말을 보면, 어떤 것들이 우릴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가를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술 마실 때 모습과 달리. (웃음)
김태용에게 백가흠이란?
(태) 백가흠은 소주다. (웃음) 맥주가 아닌 소주다. 아까 낭독한 부분(「그래서」)을 선택한 이유도 노교수처럼 같이 동료작가로서 가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소주, 우리가 버릴 순 없잖나. (웃음)
신용목에게 북한이란?
(목) 문제가 많은 곳이지만, 그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다. 그것을 깨닫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내게) 백가흠은, 안주로 하겠다. 이 친구랑 술 마시면서 심심했던 적은 없다. 다만, 내가 힘들어서 술 마시자고 하면, 늘 힘든 얼굴로 나타나는 것이 단점이다. (웃음)
소설가로서 주변에 좋은 친구가 참 많다. 친구는 어떻게 만나나?
(흠) 사실, 친구 유지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친하다가도 다시 보기 힘든 경우도 있고. 글로 오래봤고 오랫동안 지켜보고 들어보고 만나는 사이라 싸울 일이 없다. 늦게 만난 친구도 좋은 것 같다. 내 글을 봐주는 것도 고맙고, 다른 장르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다.
Q &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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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으로 연재했던 ‘향’은 어떻게 된 건가?
그 장편은 작년 2월부터 7월말까지 문지 웹진에서 연재를 했다. 많이 준비했고, 자신 있었다. 내용은 원죄에 대한 것이었다. 불교적인 것도 들어가고 기독교적인 것을 바탕으로 한. 그런데 소설이 중간부터 팍팍한 거다. 내가 읽기에. 단편이 가진 습성을 장편을 적용시켜 놓은 것 같았다. 가끔 여유도 부려야 하고 숨도 골라야 하는 장편의 테크닉을 감안 못하고 큰 욕심을 부려놓았더라.
이런 부분이 있다. 자기 딸을 강간한 남자를 죽이려는데, 마을 사람들이 죄를 묻으려 한다. 마을에서 일어난 최초의 살인을 막기 위해, 남자를 도망가게 해주고 대신 죽는 내용을 쓰는데, 화형을 시켰다. 그걸 냄새로 풀었는데, 살이 타는 냄새를 한 번도 맡아본 적은 없으니 어렵더라.
그 글을 읽고 원고를 덮었다. 안 되겠더라. 너무 어렵고, 연기하자고 마무리 지었다. 왜 그랬냐. 책은 스스로 살아나가는 생명력이 있다. 그런데 이 책을 내면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일일이 설명하고 다녀야 할 것 같은 거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이야기해야 할 텐데, 그건 책 스스로의 생명력이 없다는 의미잖나. 딱 그날 하룻밤만 슬퍼하고, 지금까지 좋았다.
백가흠 교수의 수업을 듣고 있는데, 늘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다. (웃음) 소설 쓸 때 언제, 어떻게 쓰는 편인가?
몸을 극복하고 싶었다. 옛날엔 밤 11~12시 뉴스를 보고 방으로 들어가선 바로 소설은 못 쓰고 분위기를 잡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보통 5~6시에 시작해 8~9시까지 쓰고 밤을 꼴딱 샜는데, 너무 힘들더라. 해서 생활을 찾으려고 지난봄부터 도서관에 가서 쓰기 시작했다. 수업 전까지도 도서관에서 쓰고. 나는 작가입네 그런 걸 싫어한다. 쥐도 새도 모르게 쓴다. (웃음)
마무리할 시간. 서효인 시인은 그를 순정한 소설마초라고 표현했다. 소설을 못 살게 굴고, 소설을 쓰면서 자신을 가학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란다. 힘들어하면서도 쓸밖에 없는 소설이라니. 순정하지 않으면 이것은 당최 불가능한 일이다. 순정은 원래 고통을 동반하는 법이니까. 백가흠 작가의 끝인사는 순정마초의 고민과 행복이 하나씩 더 늘었음을 보여준다.
“독자에 대한 배려를 그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지금은 진심으로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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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낭독의 밤'의 밀도깊은 분위기가 손에 잡힐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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