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다디’ 인기 포기하고 런던에 간 이유 - 『이상은, London Voice』이상은
런던은 가수 이상은이 음악을 발견한 곳이다. 그리고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음악을 만나 존 레논이 된다. 『이상은, London Voice』의 저자 가수 이상은과 십대시절 존 레논이 ‘런던’에서 만났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11.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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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은 이미 내게 진한 생채기를 남긴 도시다. 8년 전, 나는 런던에서 ‘유학생’으로 살아갔다. 음악이 아닌, 미술을 공부하는 유학생.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름 석 자만 대면 누구나 인정해주던 시절, 인기라는 녀석이 내 곁에 든든히 붙어 있던 시절. 모든 걸 팽개치고 홀연히 떠난 나를 사람들은 알 수 없다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떠나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 시절 나는 헤매고 있었다. 음악이라는 숲속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다. 어쩌다 숲속을 벗어나도 돌아가야 할 곳이 내겐 보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뮤지션으로 살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건만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내 안의 ‘나’라는 아이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듯한 기분.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내가 원하는 삶의 원형이 자리하고 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가로막고 있는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p.18)


보헤미안 뮤지션 이상은의 ‘삶은 여행’, 두 번째 이야기. 그녀가 이번에 다시 찾은 곳은 런던이다. 저자는 8년 전 런던을 여행했을 때, “‘작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런던은 가수 이상은이 음악을 발견한 곳이다. 그리고 여기,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은 음악을 만나 존 레논이 된다. 『이상은, London Voice』의 저자 가수 이상은과 십대시절 존 레논이 ‘런던’에서 만났다. 2011년 3월 8일,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영화 <존 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를 보고 저자와 함께 존 레논과 런던을 이야기했다.





<존 레논 비긴즈-노웨어 보이>는 존 레논이 처음 기타를 잡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헤어스타일을 흉내 내며 로큰롤을 연주하다, 비틀즈의 전신인 쿼리멘 밴드를 결성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특히, 십 대 시절 이모 손에서 자란 존 레논과 그의 엄마와의 관계를 조명하며 성장영화로서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저자는 “존 레논의 십대 시절 이야기를 마치 다큐멘터리로 보고 있는 것 같은 영화”였다며,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빨려 들어갔다가, 여기서 끝나면 안 되는데, 하면서 그대로 계속 이야기가 이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말한다.


“그 시대에는 존 레논의 외모가 인기가 많았다고 하죠. 영화에서 존 레논 역을 맡은 아론 존슨의 핸섬한 외모가 가슴에 와 닿았고(청중 웃음), 존 레논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의 어린 시절 트라우마, 특히 마더 콤플렉스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으리라 생각해요. 그것들이 어떻게 음악적인 성취를 이루게 되어, 전 세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런 명곡을 쓰게 되?는지를 알 수 있었죠. 그리고 폴 매카트니와의 만남도 재밌었죠. 다큐멘터리로는 복원할 수 없는 부분까지 볼 수 있는 영화였어요.”

저자는 그 밖에도 “비틀즈의 음악은 알고 있지만, 그들이 어떤 음악들을 들었기에 비틀즈의 음악이 탄생했는지를”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고 말한다.

“런던에서 오노 요코를 만난 적이 있어요. 사실 런던행을 다시 결심한 데에는 오노 요코의 강연 소식을 들었던 이유도 있었어요. 존 레논은 계속 자신과 자신이 속한 세상을 부셔 나아가며 살아간 거 같아요. 마지막에는 인종차별의 문제까지 닿은 것이죠. 둘에게는 각자 가정도 있었으니까요. 아직 영국에도 오노를 미워하는 분들이 보이더라고요.” 저자는 책의 네 번째 트랙 「비밀의 화원」에서 오노 요코를 향한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존 레논의 아내로 알려진 오노 요코는 실제로는 서구 플럭서스 운동의 형성기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아티스트다. 그녀의 예술 반경은 가히 홍길동다웠다. 미술, 음악, 영화, 퍼포먼스 등 장르 막론, 주제 막론이었다. 한마디로 전위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 예술계의 뮤즈였다. 내가 오노 요코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녀가 평생동안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물론 그녀의 이름만 들어도 긍정과 희망이라는 단어가 절로 샘솟아 오르기 때문이다. (p.322)




폴에서 존에게로, 그리고 다시 비틀즈로


비틀즈의 수많은 팬들은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 중 누구를 더 좋아해야하는지 깊은 고민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그리고 결정을 한다. 일정 주기별로 선택은 바뀌기도 한다. 짐작하겠지만, 저자의 선택은 언제나 존 레논이었다. 저자는 존 레논의 어떤 매력에 빠졌을까.

저자는 일단, “정신상태가 가장 불량한 것”이 좋단다. MBC FM <이상은의 골든디스크>의 진행자이기도 한 저자는 프로그램 관계자들은 폴에게 손을 드는 편이라고 말한다. “일본에서는 존 레논의 예??이 폴에 대중성에 앞서는 것 같았어요. 저에게도 존 레논이 만들어 낸 음악과 그 사람의 삶이 주는 매력은 특별합니다. 「Strawberry Fields Forever」라는 곡이 존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어린 시절부터 팬이었어요.”

이날 함께 자리한 북노마드 출판사 윤동희 대표가 비틀즈 ‘인기투표’의 패턴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처음에는 폴에게 빠져들다, 존의 깊은 예술세계에 빠져들고 그 다음은 비틀즈의 음악으로 정착한다는 말도 있죠.”

‘보헤미안 뮤지션’이라는 저자의 이름 앞에 따라붙는 수식답게 독자들의 질문도 현실보다는 꿈 쪽에 중심축이 서 있었다. 서른에 음악을 시작하려고 하는 한 남성 독자의 질문. 저자는 “두려움이 가장 큰 적”이라고 말한다. 이어지는 저자의 답변이 신랄하다. “당초 너무 걱정스러우면 하지 않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녀의 다음 여정은 어디일까. 여행 계획을 물었다.

“한국만 아니면 어디든지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현실에 너무 파고들어 앉아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해요. 태국을 좋아하는데, 북노마드 윤동희 대표께서 처음 만났을 때, 어디든 여행가면 여행기를 내주신다고 했습니다. 믿습니다(웃음). 사실 태국을 무지 좋아합니다. 런던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5년 전 태국에 갔을 때, 무례한 백인 남성과 여성들을 많이 봤어요. 영국에는 존 레논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청중 웃음). 당시 가방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찾기 위해 노력해준 현지인들과의 소통에서 특별한 공감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존 레논의 음악 이야기를 한 토막 들려주었다. “존 레논의 음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You’라고 해요. 오노 요코는 존 레논이 살아 있다면, 현재 전자음악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You, 바로 당신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는 것이죠.”

런던은 1988년 강변가요제 대상 「담다디」로 인기에 취해 있던 제가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심원한 질문 앞에서 고꾸라졌을 때 저를 받아준 도시입니다. 그 시절, 아일랜드의 록 밴드 ‘U2’의 음악에 심취해 있던 저에게 「담다디」라는 현실은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저를 런던은 조심조심 보듬어주었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연예인이나 스타와 맞지 않다고, 존중받고 싶다면, 반짝하고 사라지고 싶지 않다면 오로지 ‘작품’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p.376)





#이상은 #런던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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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gnose

2012.11.23

You라는 단어에 그런 의미가 들어 있구나.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우리라는 말 많이 쓰잖아요. 이건 어떤 의미가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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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itter

2011.04.02

담다디 때문에 나무 탬버린 을 샀던 당시의기억이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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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1.03.28

'담다디'는 지금 들어도 좋을 노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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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싱어 송 라이터. 1988년 MBC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면서 갑자기 스타가 되었다. 1889년에 1월에 1집을, 12월에 2집을 발표하며 가수로 활동했으나, '공인'이라는, '스타'라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훌훌 털어버리듯 1990년 홀연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1991년에 미술 공부를 이해 미국 뉴욕으로 또 한번 유학을 떠난 그녀는, 이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통속성에 물들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그리는 뮤지션이 되었다. 지난 18년동안 특유의 짙은 감수성과 시(詩)처럼 섬세한 가사, 독특한 멜로디로 그만의 음악화법을 만들어왔으며, 이제 ‘이상은스타일’이라는 하나의 코드가 되었다. 2008년 그녀의 첫 저서 『올라! 투명한 평화의 땅, 스페인』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녀는 비로소 참다운 평화의 땅을 대면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된 그녀의 여정은, 세비야와 발렌시아, 톨레도를 거쳐 다시 마드리드까지 이어진다. 물빛처럼 투명한 그의 영혼이 만난 평화의 땅, 그 길 위에서 만난 사람과 이야기가 그녀의 섬세한 목소리로 풀려나온다. --------------------------------------------------------------------------------------------------------------------- 그녀의 음악은 어느 순간부터 구도자의 노래 혹은 정체성을 상실한 보헤미안의 시와 같은 것이 되었다. ‘담다디’와 ‘사랑할꺼야’에서처럼 핏대를 올리며 노래를 부르지 않지만 맥빠진 듯한 음성에서 나오는 울림은 끊임없이 세상을 공명하고 어느 순간 우리의 가슴속에 들어와 앉는다. 그리고 개인의 철학만으로 똘똘 뭉친 불가해 속의 가사들은 전혀 낯설지만은 않은 우리의 표상을 스치며 끊임없이 되새김질을 유도하고 있다. 그녀가 스타덤에서 들려주던 초기의 노래는 목소리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현인의 모습으로 우리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있다.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수퍼스타로 떠오른 이상은(Lee Tzsche, 1970년)은 표절시비의 2집을 뒤로하고 훌쩍 한국을 떠났다. 그리고 연극영화를 전공하던 자신의 위치에서 한껏 멀어진 미술 공부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로 들어갔다.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그녀가 예상보다 일찍 들고 온 3집은 수퍼스타에서 아티스트로 접어드는 변화의 과정을 뚜렷이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작사, 작곡은 물론 앨범의 재킷에서부터 연주, 편곡, 프로듀싱, 녹음, 마스터링, 배급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쫓아다니며 관여를 한 이 앨범은 외국인 친구들과 같이 한 연주곡과 타이틀곡 ‘더딘 하루’, ‘영원히’, ‘너무 오래’, ‘어느 날 아침’ 등 몇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곡들로 채워져 있다. 그리고 ‘어느 피아노 곡을 들으며’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 글귀의 모호한 감성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지배되는 그녀의 시적 형상을 대표하고 있다. 이 앨범이 나온 후 몇 달 뒤 우리 음악계는 한 번의 천지개벽을 맞는다. 그리고 이전까지의 모든 스타들이 모두 메인 무대에서 물러나는 비극을 맞는다. 하지만 TV 브라운관의 립싱크가 없는 세상을 택한 이상은은 이 후로 점점 더 주목을 받으며 한번의 걸림돌도 없이 지금까지 줄곧 자기 스타일의 앨범을 내 놓았다. 이상은은 댄스씬으로 주목받지 못한 저주받은 4집 이후 내놓은 5집에서 ‘언젠가는’의 빅히트로 재기에 성공한다. 그리고 <공무도하가>로 다시 한번 아티스트의 이름에 도전장을 내민다. 일본 음악인들과 함께 하며 만든 이 앨범은 우리의 음악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었고 우리 나라를 비롯한 제3세계를 돌아보도록 만들었다. 한마디로 ‘공무도하가’, ‘새’, ‘삼도천’은 미래가 없어 보이던 우리 음악계에 신선한 공기를 제공했다. 1997년 음악 동료 다케다 하지무와 같이 한 7집에서는 명곡 ‘어기여 디여라’로 일본 쪽에서 호평을 받고 이소무라 가즈미치 감독의 <간밧테이끼마쇼이>란 영화 음악을 맡았으며 1998년에는 영국의 버진 레코드와 계약하고 영어 음반 를 내놓았다. <간밧테이끼마쇼이>이의 영화 음악인 은 일본에서 다음으로 많이 팔리는 앨범으로 기록되었으며 5집 이후 일본에서의 인기는 컬트팬을 끌어 모으는 것 이상의 수준이 되었다. 영어 음반에 쓰인 리채란 이름은 아버지의 성과 어머니의 성을 각각 따서 지은 것으로 그녀는 외국 쪽에서는 계속 이 이름을 쓰고 있다. 세계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이후 그녀는 국내에서 박철수 감독의 영화 <봉자>의 음악을 맡았고 2001년에는 라는 제목의 음악을 발표하며 끊임없는 창작욕을 과시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음악 가운데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그녀의 음악을 모두들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점점 더 여려지고 조용해지는 이 음유시인의 음악은 전자음을 배제하고 리얼 뮤직으로 자기 세계를 투영시켜 그렇게 선과 도의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고 나면 변하는 세상의 문법으로 그녀를 재단하지 말고 그냥 놓아두자. 그녀는 지금껏 알아서 잘 해왔으며 인기나 평단의 힘없이 혼자의 힘으로 아티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또 무언가가 되기 위해 자신에게 자유를 허락하고 있다. 우리는 그녀의 자유를 얻어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 제공 : IZM (www.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