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범죄자가 유영철은 아니다” - 『진보집권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조국
이제껏 우리 시대 모든 가치는 ‘성장’으로 요약되어 왔다. 그간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했을지 몰라도, 개개인은 성숙하지 못했다. 왜 요즘 사회에 이런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인문학 열풍이 불까?
201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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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다.”
지난 1월 20일, 세 번째 인문학 강연을 맡은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껏 우리 시대 모든 가치는 ‘성장’으로 요약되어 왔다. 그간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했을지 몰라도, 개개인은 성숙하지 못했다. 왜 요즘 사회에 이런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인문학 열풍이 불까? 성장이라는 가치에 중독되어 살던 우리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거다. 인문학은 성찰을 하기 위한 학문이다. 우리 속에 야만이 있는지 없는지, 그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했을 때 우리가 진정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 국가위원회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 속에서 구현되는 법과 인권의 문제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던 조국 교수의 오늘 강의 주제는 ‘진보와 인권’. 그간 ‘부자되세요’라는 구호 아래 삶의 양을 불려가느라 놓치고 살았던 삶의 질과 가치의 문제를 따끔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살펴보는 일은, 지금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는 일이다.
“가슴이 아프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자리가 무거워질지도 모르겠다.” 조국 교수는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다. 우리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습관적으로 무시해왔는지, 존중 없이 내 맘대로 해석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하인스 워드가 한국에서 자랐더라면?
“우리는 성공에서 돌아온 하인스 워드에게 박수치고 열광한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쭉 자랐더라면 아마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거다. 사람들은 혼혈이라고 하면, 으레 인순이, 하인스 워드를 떠올리며, 혼혈인들은 운동을 잘하거나 연예활동을 잘하겠거니 생각한다. 실제로 보면 70퍼센트 이상 혼혈인은 직장을 갖지 못한다.
예전에 어른들이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화교가 정착하지 못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청나라 말미부터 살아온 화교가 왜 정착을 못했을까? 과거 유신시대 때는 정책적으로도 경계했다. 화교가 하는 중국집에서는 밥을 팔 수 없도록 법을 만든다. 한국인 식당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화교라고 하면 자장면을 팔면 되겠거니 생각해왔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서 핍박을 받을 땐 우리가 분노한다. 우리는 우리 속에 오래 함께 했던 화교를 경제적, 다양한 방식으로 몰아내고 있다. 이게 우리가 우리 속의 타자를 대하는 방식이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동성애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면?
“과거와 다르게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동성애 문제가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선입견은 거둬졌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이해하는 것과 실제 삶 속에서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학교, 회사, 사회의 동료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추측건대 많은 불이익을 받을 거다. 영화 볼 때, 저들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박수 치던 사람도 이웃의 동성애자를 접한다면, 대부분 ‘에이즈 아냐?’하는 식의 견제를 할 것이다.”
거리에서 마주친 장애우,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전동 휠체어를 올려 싣는 버스가 많이 도입됐다. 중증 장애우가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탑승하려면 반드시 기사 아저씨가 내려야 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려고 하는 장애우가 있다면, 우리 마음 속에서 무슨 생각이 들까. ‘저 사람 왜 나왔나. 몸도 불편한데, 집에서 쉬지.’
장애우들은 이렇게 말한다. “답답해 미치겠다.” 그들이 집에나 있었으면 하는 건 우리만의 생각이다. 중증 장애가 있어도, 뇌는 멀쩡하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이 나가고 싶고,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 제도적으로 심리적으로 우리가 이들을 억압해온 것이다.”
언제나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하는가?
“서울대 법과 대학에서 학생 담당 업무를 맡았을 때, 두 학생이 입학을 하게 됐다. 한 학생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전맹, 한 학생은 절도 사고로 두 다리가 없는 학생이었다. 전맹 학생이 오면, 모든 강의 교재를 점자화해야 하고, 강의실이나 화장실을 갈 때 보좌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다리 없는 친구를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학교 기구를 손봐야 한다.
학교 내에 주장이 갈렸다. 이 학생들은 똑똑하지만, 입학을 허가하기에는 학교가 부담할 각종 비용이 엄청나다. 이 비용을 두 명의 학생들을 위해 쓰기보다는, 어렵게 공부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쓰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거다. 비장애우 학생 중에도 어려운 학생이 많다는 거다.
결국 이 두 학생은 서울대에 입학했다. 점자책을 만들고, 학생 순번제로 자원봉사원을 두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작년에 연수원에 들어갔다. 조만간 최초로 전맹 법률가가 나올 거다. 아마 다른 비장애우가 장애우를 위해 해주는 변호보다, 훨씬 더 생생한 변호를 해줄 거다. 우리 사회의 장애우 인권이 한걸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즉, 이렇게 늘 다수 위해 소수를 희생하라고 말한다면, 앞서 본 소수자는 항상 희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옳은가?”
모든 피의자가 범죄인은 아니다. 모든 범죄인이 유영철, 김길태는 아니다
“1987년, 민주화 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 1992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이다. 신림동 청수장 여관의 주인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올라가보니 여자 하나가 죽어 있었다. 숙박계를 봤더니 남자와 함께 올라갔다. 남성 경찰관이었다. 이 경찰이 아침에 나가고 난 후 아무도 들어간 이가 없었다. 그 경찰은 여자의 애인이었지만, 죽인 적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어떤 증거도 없었지만, 동료들은 경찰의 수치라며 그를 때리고, 범인이라는 게 확실한데 계속 부인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결국 그 경찰은 자포자기 상태로, 자기가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자백하고 반성해서 사형은 받지 않는다. 그런데 1심 재판 진행 중에 진범이 잡혔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 개인의 충격이 엄청났고, 가족들도 엄청 큰 상처를 받았다. 동네에서 이 집은 살인범 집안이 되는 거다. 누가 잡혀가면 신문에 나지만, 무죄로 풀려난 얘기는 없다. 평생 살인자로 낙인 찍혀 살게 된다.
피의자 인권 문제가 99퍼센트로 잘되고 있다고 쳐보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통계 숫자로 1%이지만, 그게 내 문제로 닥쳤을 때는, 그게 1,000%, 10,000%의 문제다. 피의자, 피고인에게 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묵비권 등이 필요한가 고민해봐야 된다. 모든 피의자가 김길태, 유영철은 아니다. 나쁜놈, 혼나야 돼. 이런 생각만으로는 위험하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사회권이 시급하다
“인권을 두 가지로 나누면 자유권, 사회권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권은 근본적인 인권문제로,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먹고 사는 문제의 권리다. 정치의 민주화를 이뤄 그 부분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워졌지만, 배고픔이나 양극화는 훨씬 심해졌다. 부의 양극화만이 아니다. 이는 교육의 양극화로 연결되어, 부와 빈곤이 세습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 있더라도 교육을 통해 계층상승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계층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새로운 불안이 생긴 거다.
자유권은 양심과 사상을 표현하는 자유의 문제다. 사회가 진보적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자유권이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군부독재 시절을 거쳐와 자유권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사회권 문제는 더 갈급한 데도 덜 민감하다.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국가는 사회권을 보장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불필요하게 새고 있는 세금으로 복지 예산 확보할 수 있다”
1시간 가량의 강연에 이어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독자들은 조국 교수가 강연 말미에 강조한 사회권에 대해 물었다.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는 복지에 대한 관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복지는 혜택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였다. 복지는 성장을 충분히 해낸 뒤에 시작할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국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권이 잘 안되어있다고 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 법 개정이 필요한가?
“한국 사람들은 시장임금에 매달려 있다. 오직 내가 벌어서 내가 쓸 돈을 버는 일에 삶이 집중되어 있고, 그렇게 번 시장임금은 주택, 과외 비용으로 나가기 때문에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웬만한 월급쟁이가 서울 지역의 아파트 사기 힘들다. 반값 아파트 정책 전면화, 부동산 원가 공개 등을 통해 주택 가격 전체를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면 시장에서 돈을 적게 벌어도 빠져나가는 돈도 적기 때문에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다.
전국 의사 분들이 하는 운동인데, 준무료, 반무료 의료보험 정책 운동도 한창이다. 그들 얘기를 들어보면 국가 차원에서 의료 보험료를 일인당 만원씩 높이면, 포괄범위가 높아져서 좋아질 수 있다고 한다. 의료 문제나 주택문제 이런 것들을 정리를 국가 사회 차원에서 해결하게 되면 그 속에서 시민들이 시장에서 적게 벌더라도 삶 자체가 팍팍해지지 않는다.”
사회권을 보장받으려면, 국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 훨씬 세금도 많이 내야 할 텐데, 국민들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나?
“어느 나라 시민이든 사람들은, 세금은 적게 내고 많이 받길 원한다. 이런 상태에서 어떻게 복지할 건지, 어떻게 재정을 확보할 것인가 중요하다. 시민들에게 ‘먼저 세금을 내십시오. 세금 먼저 받고 복지 해주겠습니다’하는 식으로는 절대 안될 거라고 생각한다. 현 시스템 하에서 조세를 확보하려면 불필요하게 세고 있는 세금들을 뽑아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대인 씨의 책 『프리라이더』를 권하고 싶다.
우리 사회에서 세금을 전혀 안내고 이익을 얻는 집단이 분명 있다. 조세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먼저다. 있는 돈을 안 쓰면 다음 예산에서 깎이기 때문에 멀쩡한 아스팔트를 뒤엎는다. 이런 식으로 누락된 예산을 되찾는 일로 세금을 확보해야 한다. 이 돈으로 중요한 무상시리즈 몇 개를 가동해서, 복지의 맛을 시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내가 이미 낸 세금으로, 나에게 이런 이익이 온다는 걸 국가가 확인시켜줘야 한다. 그때 조금 더 하려면 ‘일인당 만원은 더 냅시다’ 주장 할 수 있는 거다. 그것도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세금을 올릴 때도, 우리나라 소득 집단을 세밀하게 나눠야 한다. 최상층 집단의 조세율을 많이 높이고, 아래층은 훨씬 낮춰야 한다. 이 격차를 늘려야 한다. 이제 1인당 2만불 된 사회에서는 예전처럼 떼돈 벌던 시기는 지난 거다. 그냥 성장이 아니라, 복지를 통한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 왜 박근혜 씨 조차 복지를 얘기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건 진보/보수를 떠나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이제는 성장과 복지를 따로 언급하는 패러다임을 깨야 한다.”
국가수준 퇴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대화와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하는데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진보와 보수가 존재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진폭을 좁혀야 하는 게 문제다. 우리는 교집합 없이 극과 극만 있다. 교집합이 뭘까? 인권의 문제다. 인권에는 진보/보수가 없다. 그런 문제에서 공동의 영역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소통이 중요하다. 세상에 같은 생각만 가지고 사는 사회는 아무데도 없다.
소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너 잘못됐다’ 하기 전에 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너와 내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합의를 해야 한다. 정파와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이면 나쁘다’ 이런 문제나 인간에 대한 예의, 인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문제는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다른 부분에서는 경쟁해야 한다. 물론 공정경쟁을 해야 한다. 이렇게 성찰과 소통, 공정경쟁을 통해 사회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본다.”
지난 1월 20일, 세 번째 인문학 강연을 맡은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제껏 우리 시대 모든 가치는 ‘성장’으로 요약되어 왔다. 그간 우리가 경제적으로 성장했을지 몰라도, 개개인은 성숙하지 못했다. 왜 요즘 사회에 이런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인문학 열풍이 불까? 성장이라는 가치에 중독되어 살던 우리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된 거다. 인문학은 성찰을 하기 위한 학문이다. 우리 속에 야만이 있는지 없는지, 그러한 성찰을 바탕으로 했을 때 우리가 진정 한 단계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 국가위원회위원으로 활동하며 사회 속에서 구현되는 법과 인권의 문제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던 조국 교수의 오늘 강의 주제는 ‘진보와 인권’. 그간 ‘부자되세요’라는 구호 아래 삶의 양을 불려가느라 놓치고 살았던 삶의 질과 가치의 문제를 따끔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을 살펴보는 일은, 지금 우리 삶에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는 일이다.
“가슴이 아프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자리가 무거워질지도 모르겠다.” 조국 교수는 몇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했다. 우리가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습관적으로 무시해왔는지, 존중 없이 내 맘대로 해석해왔는지 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
하인스 워드가 한국에서 자랐더라면?
“우리는 성공에서 돌아온 하인스 워드에게 박수치고 열광한다. 하지만 그가 한국에서 쭉 자랐더라면 아마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을 거다. 사람들은 혼혈이라고 하면, 으레 인순이, 하인스 워드를 떠올리며, 혼혈인들은 운동을 잘하거나 연예활동을 잘하겠거니 생각한다. 실제로 보면 70퍼센트 이상 혼혈인은 직장을 갖지 못한다.
예전에 어른들이 이런 말을 자랑스럽게 했다. ‘화교가 정착하지 못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청나라 말미부터 살아온 화교가 왜 정착을 못했을까? 과거 유신시대 때는 정책적으로도 경계했다. 화교가 하는 중국집에서는 밥을 팔 수 없도록 법을 만든다. 한국인 식당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화교라고 하면 자장면을 팔면 되겠거니 생각해왔다. 한국 사람들이 일본에서 핍박을 받을 땐 우리가 분노한다. 우리는 우리 속에 오래 함께 했던 화교를 경제적, 다양한 방식으로 몰아내고 있다. 이게 우리가 우리 속의 타자를 대하는 방식이다.”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동성애라고 커밍아웃을 한다면?
“과거와 다르게 요즘엔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동성애 문제가 확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선입견은 거둬졌지만,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이해하는 것과 실제 삶 속에서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학교, 회사, 사회의 동료가 커밍아웃을 한다면? 추측건대 많은 불이익을 받을 거다. 영화 볼 때, 저들의 사랑이 아름답다고 박수 치던 사람도 이웃의 동성애자를 접한다면, 대부분 ‘에이즈 아냐?’하는 식의 견제를 할 것이다.”
거리에서 마주친 장애우,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전동 휠체어를 올려 싣는 버스가 많이 도입됐다. 중증 장애우가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탑승하려면 반드시 기사 아저씨가 내려야 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 버스를 타려고 하는 장애우가 있다면, 우리 마음 속에서 무슨 생각이 들까. ‘저 사람 왜 나왔나. 몸도 불편한데, 집에서 쉬지.’
장애우들은 이렇게 말한다. “답답해 미치겠다.” 그들이 집에나 있었으면 하는 건 우리만의 생각이다. 중증 장애가 있어도, 뇌는 멀쩡하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이 나가고 싶고, 보고 싶고, 느끼고 싶다. 제도적으로 심리적으로 우리가 이들을 억압해온 것이다.”
언제나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해야 하는가?
“서울대 법과 대학에서 학생 담당 업무를 맡았을 때, 두 학생이 입학을 하게 됐다. 한 학생은 완전히 보이지 않는 전맹, 한 학생은 절도 사고로 두 다리가 없는 학생이었다. 전맹 학생이 오면, 모든 강의 교재를 점자화해야 하고, 강의실이나 화장실을 갈 때 보좌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다리 없는 친구를 위해서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학교 기구를 손봐야 한다.
학교 내에 주장이 갈렸다. 이 학생들은 똑똑하지만, 입학을 허가하기에는 학교가 부담할 각종 비용이 엄청나다. 이 비용을 두 명의 학생들을 위해 쓰기보다는, 어렵게 공부하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쓰는 게 낫지 않겠냐는 거다. 비장애우 학생 중에도 어려운 학생이 많다는 거다.
결국 이 두 학생은 서울대에 입학했다. 점자책을 만들고, 학생 순번제로 자원봉사원을 두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작년에 연수원에 들어갔다. 조만간 최초로 전맹 법률가가 나올 거다. 아마 다른 비장애우가 장애우를 위해 해주는 변호보다, 훨씬 더 생생한 변호를 해줄 거다. 우리 사회의 장애우 인권이 한걸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 즉, 이렇게 늘 다수 위해 소수를 희생하라고 말한다면, 앞서 본 소수자는 항상 희생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게 옳은가?”
모든 피의자가 범죄인은 아니다. 모든 범죄인이 유영철, 김길태는 아니다
“1987년, 민주화 헌법이 만들어지고 난 후, 1992년에 있었던 실제 사건이다. 신림동 청수장 여관의 주인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올라가보니 여자 하나가 죽어 있었다. 숙박계를 봤더니 남자와 함께 올라갔다. 남성 경찰관이었다. 이 경찰이 아침에 나가고 난 후 아무도 들어간 이가 없었다. 그 경찰은 여자의 애인이었지만, 죽인 적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어떤 증거도 없었지만, 동료들은 경찰의 수치라며 그를 때리고, 범인이라는 게 확실한데 계속 부인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결국 그 경찰은 자포자기 상태로, 자기가 어떻게 살인을 했는지 생생하게 증언한다. 자백하고 반성해서 사형은 받지 않는다. 그런데 1심 재판 진행 중에 진범이 잡혔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 개인의 충격이 엄청났고, 가족들도 엄청 큰 상처를 받았다. 동네에서 이 집은 살인범 집안이 되는 거다. 누가 잡혀가면 신문에 나지만, 무죄로 풀려난 얘기는 없다. 평생 살인자로 낙인 찍혀 살게 된다.
피의자 인권 문제가 99퍼센트로 잘되고 있다고 쳐보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통계 숫자로 1%이지만, 그게 내 문제로 닥쳤을 때는, 그게 1,000%, 10,000%의 문제다. 피의자, 피고인에게 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 묵비권 등이 필요한가 고민해봐야 된다. 모든 피의자가 김길태, 유영철은 아니다. 나쁜놈, 혼나야 돼. 이런 생각만으로는 위험하다.”
최소한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 사회권이 시급하다
“인권을 두 가지로 나누면 자유권, 사회권으로 나눌 수 있다. 사회권은 근본적인 인권문제로, 최소한의 삶을 누릴 수 있는, 먹고 사는 문제의 권리다. 정치의 민주화를 이뤄 그 부분에서는 상당히 자유로워졌지만, 배고픔이나 양극화는 훨씬 심해졌다. 부의 양극화만이 아니다. 이는 교육의 양극화로 연결되어, 부와 빈곤이 세습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리 어려운 조건에 있더라도 교육을 통해 계층상승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계층의 이동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새로운 불안이 생긴 거다.
자유권은 양심과 사상을 표현하는 자유의 문제다. 사회가 진보적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자유권이 확산되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군부독재 시절을 거쳐와 자유권에는 매우 예민하게 반응하지만, 사회권 문제는 더 갈급한 데도 덜 민감하다. 국가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국가는 사회권을 보장해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도 최소한의 삶을 유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한 사회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고 본다.”
“불필요하게 새고 있는 세금으로 복지 예산 확보할 수 있다”
1시간 가량의 강연에 이어 질의응답 시간이 주어졌다. 독자들은 조국 교수가 강연 말미에 강조한 사회권에 대해 물었다.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는 복지에 대한 관심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복지는 혜택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였다. 복지는 성장을 충분히 해낸 뒤에 시작할 일이 아니라, 지금부터 바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국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권이 잘 안되어있다고 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 법 개정이 필요한가?
“한국 사람들은 시장임금에 매달려 있다. 오직 내가 벌어서 내가 쓸 돈을 버는 일에 삶이 집중되어 있고, 그렇게 번 시장임금은 주택, 과외 비용으로 나가기 때문에 실제 쓸 수 있는 돈은 거의 없다. 웬만한 월급쟁이가 서울 지역의 아파트 사기 힘들다. 반값 아파트 정책 전면화, 부동산 원가 공개 등을 통해 주택 가격 전체를 떨어뜨려야 한다. 그러면 시장에서 돈을 적게 벌어도 빠져나가는 돈도 적기 때문에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다.
전국 의사 분들이 하는 운동인데, 준무료, 반무료 의료보험 정책 운동도 한창이다. 그들 얘기를 들어보면 국가 차원에서 의료 보험료를 일인당 만원씩 높이면, 포괄범위가 높아져서 좋아질 수 있다고 한다. 의료 문제나 주택문제 이런 것들을 정리를 국가 사회 차원에서 해결하게 되면 그 속에서 시민들이 시장에서 적게 벌더라도 삶 자체가 팍팍해지지 않는다.”
사회권을 보장받으려면, 국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것 같다. 훨씬 세금도 많이 내야 할 텐데, 국민들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나?
우리 사회에서 세금을 전혀 안내고 이익을 얻는 집단이 분명 있다. 조세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먼저다. 있는 돈을 안 쓰면 다음 예산에서 깎이기 때문에 멀쩡한 아스팔트를 뒤엎는다. 이런 식으로 누락된 예산을 되찾는 일로 세금을 확보해야 한다. 이 돈으로 중요한 무상시리즈 몇 개를 가동해서, 복지의 맛을 시민에게 보여줘야 한다. 내가 이미 낸 세금으로, 나에게 이런 이익이 온다는 걸 국가가 확인시켜줘야 한다. 그때 조금 더 하려면 ‘일인당 만원은 더 냅시다’ 주장 할 수 있는 거다. 그것도 어려운 일일 수 있다.
세금을 올릴 때도, 우리나라 소득 집단을 세밀하게 나눠야 한다. 최상층 집단의 조세율을 많이 높이고, 아래층은 훨씬 낮춰야 한다. 이 격차를 늘려야 한다. 이제 1인당 2만불 된 사회에서는 예전처럼 떼돈 벌던 시기는 지난 거다. 그냥 성장이 아니라, 복지를 통한 성장을 고민해야 한다. 왜 박근혜 씨 조차 복지를 얘기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이건 진보/보수를 떠나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뜻이다. 이제는 성장과 복지를 따로 언급하는 패러다임을 깨야 한다.”
국가수준 퇴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다. 갈등의 원인은 대화와 소통의 부재라고 생각하는데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진보와 보수가 존재한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그 진폭을 좁혀야 하는 게 문제다. 우리는 교집합 없이 극과 극만 있다. 교집합이 뭘까? 인권의 문제다. 인권에는 진보/보수가 없다. 그런 문제에서 공동의 영역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물론 소통이 중요하다. 세상에 같은 생각만 가지고 사는 사회는 아무데도 없다.
소통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너 잘못됐다’ 하기 전에 나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너와 내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두고, 합의를 해야 한다. 정파와 관계 없이 ‘사람을 죽이면 나쁘다’ 이런 문제나 인간에 대한 예의, 인권을 지켜줘야 한다는 문제는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이 다른 부분에서는 경쟁해야 한다. 물론 공정경쟁을 해야 한다. 이렇게 성찰과 소통, 공정경쟁을 통해 사회 갈등을 풀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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