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이 된 삼성, 사회 통제 받아야” -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폭로’라고도 말하지만, 위키리크스(www.wikileaks.ch)는 ‘정보공개’ 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유를 다시 점화시켰다. 특히, 그 문서공개로 세계의 경찰을 자처한 미국(정부)의 위선과 거짓은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201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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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라고도 말하지만, 위키리크스(www.wikileaks.ch)는 ‘정보공개’ 혹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사유를 다시 점화시켰다.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미국정부의 불법 행동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위키리크스의 모토는, 혹은 주제가는 룰라의, “비밀은 없어”(로 혼자 선정했)다. 정보 공개와 확산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마냥 과장된 것은 아니다. 혹은 심정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공식적으로 증명해줬다고나 할까. 아울러, 외교관과 스파이의 경계가 때론 모호함도 확인했다.
경제(학)의 위키리크스?
여기, 거칠게 말하는 것이지만, ‘경제(학)의 위키리크스’도 있다. 역시나 그것도 사유를 촉발하고 위선적인 입놀림에 태클을 걸었다. 미국 외교의 가면을 벗긴 것이 위키리크스였다면, 이것은 미국식 자본주의,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메스를 댔다. 좀 더 까놓고 말해보자. 그것은 ‘돈 넣고 돈 먹기’식의 ‘무조건 돈만 많이 벌면 미덕’이라고 강요하는 ‘팍스 이코노미카’(모든 것은 돈으로 통한다)의 거짓을 폭로했다.
무릇, 경제(학)는 ‘모두가 부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가난하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지 않을까. 신자유주의(시장주의)의 ‘돈질’은 ‘돈 많은 게 좋다’고 설파했지만, 지난 2008년의 금융 위기로 그것을 담보할 재간이 없음을 실토했다. 그 돈질의 악행은 이런 거다. 피자를 시키면, 30분이 표준이 된 마냥, 무의식중에 우리에게 박힌 ‘30분 배달제’. 결국 그것은 피자배달원의 죽음을 불렀다. 속도전과 성과 낚시질 시스템을 내포한 신자유주의의 흉포함.
경제의 위키리크스는, 이런 것을 대놓고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모토를 말하자면, “비밀은 없어”…라기 보다, “속지 마, 죽지 마, 저항해야 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알아챘겠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지음/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펴냄)의 얘기다.
“자유 시장주의자들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온 이야기는 잘해야 부분적으로 맞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틀렸다는 말이 된다.” (p.13~14) 이 말을 한 책의 저자 장하준 교수는, 역시나 거친 비유지만, ‘경제(학)의 줄리언 어산지’쯤 되겠다. 그렇다고, 그를 ‘폭로의 달인’으로 여기진 마시라. 그는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더듬이를 세우는 경제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해 권익을 제대로 지키자는 쪽이니까.
나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 시장 체제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지난 30년 동안의 성적표가 말해 주듯 최선의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p.14)
이는, 책의 부제가 설명한다.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3년 만에 나온 이 책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허상으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속살도 한 몫 할 것이다. 사실, 번지르르한 동안 피부인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과도한 분장에 불과했다. 클렌징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겹겹이 분칠만 한 떡칠 화장술. 장 교수도 거기에 청정 클렌징 폼을 뿌린 셈이다.
장하준, 시장주의의 떡칠 분장을 클렌징하다
그 클렌징 폼은 제대로 먹혔다. 대세적 가치로 여겨졌던 시장주의의 포악함에 지치고 낙망한 대중이 근본적 의문을 품은 까닭일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 두 달여 만에 20만 부를 넘어섰다. 지난 26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 장 교수와 함께 한 티타임의 시간, ‘장하준을 만나다’.
과학저널리스트 이정모 씨의 사회로 펼쳐진 이날의 행사는, 온라인을 통해 미리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과 현장에 모인 독자들의 질의와 응답으로 채워졌다. 특히 장 교수는 이날, 기업, 특히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시즌이니만큼 연말 각종 시상식이나 그들의 수상소감을 보라. 많은 수상자들은 혼자 잘 나서가 아닌 함께 한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그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빛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헌데, 혼자 잘 난 줄 알고, 꾸역꾸역 혼자 잘 살겠다고 고집하는 일부 대기업을 향해 장 교수는 방아쇠를 당긴다. 특히, 삼성에게도 힘에 걸 맞는 책임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꾸 폭로하고 성찰해야 한다. 장 교수의 이야기는, 폭로라기보다 사유와 성찰을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이날 커피 브레이크의 기조 중 하나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였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비교적 평등하게 나누고 사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유명한 주식매매가, 워런 버핏의 이 말(책의 56페이지에 언급됐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 갑자기 옮겨 놓는다면 맞지 않는 토양에서 내 재능이 얼마나 꽃 피울지 의문입니다. 30년 후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예요.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보상이지요.”
서두가 길었다. 이날 커피 한 잔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풀어보자.
지금이라도 세계를 퇴보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참사들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또 빈곤과 불안으로 고통받는 수십억 인구(개발도상국만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p.341)
“돈 많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다른 가치도 고려해야”
책을 보면, 자본주의는 받아들이지만 시장주의에는 반대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자면서 시장주의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처음부터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 (웃음)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와 나는 인식의 차이가 있다. 내 인식은 시장만으로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번 책에서도 국가를 통한 시장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근저에 깔려 있다.
자본주의는 국가와 시장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그 속엔 기업도 있다. 기업이 시장의 일부가 아니냐고 하지만, 기업 내부는 완전 계획경제다. 마르크스가 계획경제를 주장했는데, 마르크스가 계획경제의 영감을 얻은 게 기업이다. 또 기업끼리 협동하는 조직도 있다. 경제단체나 작은 기업들이 뭉친 협동조합도 있고, 노조도 있다. 자본주의는 굉장히 복잡한 제도가 뭉쳐서 형성돼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 외에 다른 것들은 있으면 안 된다거나, 정부처럼 필요악이니 최소한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기업 내부는 계획에 의해 돌아가는데, 시장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 못하고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제도와 형태를 통해 경제가 운영되고 발전되는 건데, 그걸 못 보고 시장에만 맡기면 될 것처럼 얘기한다. 그것이 나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자유 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課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p.20)
스토리텔링이 재밌더라. 논문이 아닌 글쓰기를 어떻게 훈련했나. 기회가 있었는지, 장하준에게 글쓰기란 어떤 것인지 듣고 싶다.
“전공이 경제 정책이었다. 경제학, 순수이론이 아니고. 처음부터 학자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정부관료, 기업가, 엔지오, 국제기구 등. 처음에는 경험이 없어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이야기했는데, 졸고 그러는 거다. (웃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계기로 일반 대중,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왜냐면 여론이 중요하니까. 여론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책을 준비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 내 기준에는 쉽게 쓴다고 했지만, 출판사, 에이전트 등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이해 못한다고 다 던져 버리는 거라. (웃음) 훈련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하면, 일반 독자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지 연구를 많이 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닦은 기술을 발휘해 보려고 노력했다.”
한국을 비롯해 많은 격찬을 받았는데, 정작 영국의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대개 경제학 교수들이 어렵게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극단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나 이야길 이해하면 걱정을 하는 경우도 봤다. “내가 잘못 말했나”하면서. 나는 평소에 그렇게 가르치질 않아서, 제자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책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있다. ‘인터넷이 세탁기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Thing. 4)는 얘기가 책에 있는데, 그건 수업 중에 많이 써 먹었던 거다. 학생들이 그 얘길 듣고, 많이 놀랐지. 그걸 책에 써 놨으니, 이젠 수업 중에 말해도 다 아는 얘기하네, 그럴 게 아닌가. 나한테는 안 좋은 거지. (웃음) 물론 독자들과 나누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서, 괜찮다.”
… 최근의 기술 변화는 100년 전에 있었던 변화만큼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다. … 세계화의 정도(혹은 각국의 개방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지 기술이 아니다. (p.67~68)
영국 아닌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이런 반향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글쎄, 한국의 여러 환경이 영국과 다르긴 하다. 똑같은 책을 썼을 진 모르겠고.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한국말로 책을 썼겠지. (웃음) 사실, 팔린 부수로 하면 한국만큼 반향을 얻은 데가 있을까. 두 달이 안 돼 20만부가 나갔는데, 한국에선 국방부 덕분에 유명해져서. (웃음) 책이 다른 나라에서 팔리는 것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는다. 한국에서 이렇게 열렬한 반응을 받는 게, 참 고맙다.
영국의 분위기랄까, 뭐랄까 교수들이나 학교의 지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뭐든지 여러 면을 보고 권위에 추종하지 말고 의심해보라고 교육을 하고 그렇게 받는다. 그런 게 이런 책을 쓰는데 도움을 받았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 했든 비슷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진보주의자들은 경제 규제는 필요하고 사회생활에는 규제가 없어야 한다고 본다. 책을 보면 장 교수는 경제적으론 진보 같은데, 사회와 가족 생활에선 스스로 어떻다고 생각하나.
“진보, 이런 건 상대개념이다. 샌델 교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는 간다.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든데, 나는 사회생활에서도 규제가 불필요한 건 아니라고 본다. 서구 진보주의자와는 안 맞는 면이 있겠지만, 한국의 관행이나 관습에 비해선 규제를 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다. 어느 쪽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는 거지. 샌델 교수가 마음에 두는 사람들에 비해선, 사회적인 면에서는 규제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봤을 때, 장 교수가 바라는 국가주도 산업성장 정책이 독재를 불러올 수 있다고도 본다. 독재 가능성이 없으면서도 국가주도 산업정책을 펼 수 있나.
“역사적인 경험이 있어서 개입주의를 하면, 독재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사실 60~70년대 유럽의 상당수 나라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업정책을 펴면서 민주주의도 함께 했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프랑스 등 많다.
산업정책 뿐 아니라 모든 정책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특정한 면이 제약을 받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걸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약하느냐만 도출이 되면 상당히 강력한 정책을 펼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산업정책을 세게 안 했지만, 복지나 임금 정책에서 국가가 세게 개입했다. 그건 산업정책보다 더 무섭고 센 개입이었다. 그런 걸 위해, 독재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당시 냉전구도 속에서 산업정책이 독재와 결합됐을 뿐이지, 꼭 독재가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옛날에 잘못됐던 것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사회를 개선시킬 수가 없다. 핀란드, 스웨덴 등은 옛날부터 국민들이 사이좋게 살았던 것 같지만, 아니다. 20년대 스웨덴은 세계에서 파업 발생률이 가장 높았을 정도로 엄청난 갈등을 겪은 나라였다. 핀란드도 1944년까지 좌파 경력이 있던 사람에게 투표권도 안 주던 그런 나라였다.”
어떤 정책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위배되지 않는 불가피한 국가 개입인지 아닌지는 견해 문제인 것이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규정된 자유 시장의 경계라는 것은 없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역사 자체도 시장의 경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p.29)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당장 크지 않지만…” 책에 나온 장 교수 말씀인데,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경제발전을 먼저 해야 하는가.
“발전단계에 따라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제약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인도는 1947년부터 민주주의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거기도 사실 세습제에 가깝지 않나. 가난한 나라다 보니, 아직 밀가루 한 포대 주면 그걸 준 사람에게 표를 찍고 그런다. 내용적으로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은 거지. 진짜 강고한 민주주의가 되려면 경제발전이 되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전근대적 사고가 없어졌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각 발전 단계별로 최대한 할 수 있는 게 있다. 경제발전 단계가 낮은 상태에서 내용적으로 튼실한 민주주의가 될 순 없다고 하더라도, 독재가 좋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서글픈 건데, 경제발전 초기에 내용 있는 민주주의를 하는 데 제약이 많다.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나 그 가운데서 노력을 해야 한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때부터 진보 지식인들이 가진 의문이나 의심 같은 거다. 책에서 역설한 내용이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가령, 박정희 개발독재를 미화하는 내용 등이 되곤 하는 어떤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따져 보면, 신자유주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그런 것과 변함없이 얘기하는 게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경제성장을 했다. 그런데, 그 경제성장을 가볍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경제성장을 통해 소득이 올라간 것이 물적인 소비만 가능하게 해 준 게 아니다. 평균수명이 늘어 오래 살게 된 것도 그렇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다. 1961~62년, 대한민국 평균수명이 53세였고, 지금은 77세다. 큰 지진이 일어났던 아이티의 평균수명이 54~55세다. 지금 아이티보다 못하던 나라가 지금 이렇게 된 거다. 극단적인 예지만, 아프리카에선 물 길러 가는 데만 2시간씩 쓴다. 그것도 먹을 수 있는 물만 아니고, 그것을 먹고 죽는 사람도 있다. 경제발전,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박정희가 아니면 못했을 거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런 영웅주의에 빠져서도 안 되지만, 경제발전의 성과 자체를 별 거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도 안 된다. 지금 편하게 사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경제발전 자체는 잘 했다고 계속 얘기할 것이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위해 독재를 해야 한다거나, 박정희가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망했을 거라는 해석은 문제가 있다. 경제발전 자체가 굉장히 중요했다는 것은 누누이 말씀 드리고 싶다.”
성장과 복지에는 딜레마가 있다. 복지에 우선하는 정책이 선진국을 이룰 수 있을까.
“책의 21장(‘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에서 얘기했는데, 성장과 복지가 상충 관계에 있는 게 아니다. 복지가 잘 이뤄지면, 국민이 구조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진취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지금은 복지가 안 돼서 성장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복지제도를 잘 만들어서 실천하면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양분법으로 성장과 복지과 상충된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복지는 우선, 돈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다.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함이다. 둘째, 성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양분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성장까지 촉진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소득 불평등의 수준이 낮으면서 빠른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던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이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p.196)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1990년 이후 OECD 핵심 국가 중 가장 빨리 성장한 나라 두 군데가 바로 핀란드(2.6퍼센트)와 노르웨이(2.5퍼센트)라는 것이다. 두 나라 다 복지 정책이 잘 갖춰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잘 설계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종류의 복지 제도는 사람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일 수 있는 여유를 줘서 산업 구조 조정이 쉬워지기 때문에 경제 발전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p.299~300)
최근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대기업이 영세상인의 영역까지 침범해서 한 거라는 의견과 소비자가 값싼 치킨 먹을 기회 박탈당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또 값싼 재벌닭 대신 비싼 동네닭 사먹자는 얘기도 있는데, 이건 착한 소비인가.
“이게 어려운 점이 있다. 중간에 프랜차이즈 본사가 껴 있어서 복잡한 얘기다. 단순히 영세 치킨점과 재벌 간의 대립이 아니다. 어쨌든 이것도 결국 균형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 저렇게 대기업이 들어오면 소비자로선 좋은 면도 있지만, 그런 비즈니스 모델이 커지면 내 직장이 위협받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백화점에 가서 미국식 경영자의 눈으로 보면 종업원의 70%는 해고해도 된다.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백화점에서 구두를 신으려면 종업원이 올 때까지 표를 뽑아 기다려야 한다. 구두나 치킨만 그러면 모르지만, 대부분 품목에서 그런 식으로 가면,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거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양날이고, 소비자 이익도 좋지만, 파는 사람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영세 상인을 위해 기업의 발전을 막을 수도 없고.
그래서 복지국가를 해야 한다. 통큰 치킨 외에 계속 그런 게 나올 거다. 싸우고, 보상해라 마라, 들어오라 마라, 하면서 굉장히 피곤할 것이다. 복지국가는 이런 것을 일괄 타결해 준다. 문제가 생기면 세금을 통해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거든.
통큰 치킨의 문제는, 그걸 하려면 다른 면에서 생계를 보장해주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데, 산발적으로 나왔다는 거다. 롯데가 치킨을 찍어서 그렇지, 다른 분야를 찍었으면 또 이런 갈등이 생겼을 거다. 그래서 복지국가 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복지 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 주는 것처럼, 복지 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 준다. 제2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할 때 더 대담해질 수 있고, 후에 직업을 바꾸어야 할 때에도 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p.297)
주가가 2000에 도달하고, 백화점 매출도 크게 늘어 경제가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진짜 경제가 회복된 것인지, 착시현상인지, 어떻게 보나.
“주가가 오른 가장 주요한 원인이 있다. 경제회복도 일부 있지만, 국내외 모두 이자율이 역사상 가장 낮은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발도상국 주가가 다 올랐다. 선진국의 이자율이 낮아 이윤이 낮으니, 높은 이자율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거지. 우리 경제가 잘 나서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 유입이 엄청나서 거품이 생기고, 그러다가 해외에서 이자가 오르고 돈이 빠져나가면 큰일이 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미약하지만 자본유입을 규제하는 정책도 있고, 뒤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위험을 봐야 한다. 주가가 오른다고 무조건 좋아할 게 아니다. 양극화와도 관계있는데, 형편이 되는 사람만 주식을 할 수 있고, 주가가 오르는 게 온 국민을 위해 좋은 것도 아니다.”
내년에 우리나라가 5% 성장할 것이란 견해가 있는데, 어떻게 보나. 세계 경제위기 가능성은 없나.
“지금 주가를 올린 주동력이 외부의 투기성 자본이다. 그게 빠져나가면 97년(IMF 외환위기)과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자본통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산다. 자유무역협정(FTA)는 그래서 필요하다고 본다. FTA를 반대하셨는데, 의견을 다시 말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FTA 성사를 전제로 하면 어떤 보완책이 있어야 하나?
“지난 노무현 정권부터 잘못 선전하는 게 있다. FTA를 안하면 무역을 안 하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개방도가 높기로 유명한 나라인데, 미국과 FTA를 안 한다고 쇄국정책 하자는 것, 아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큰 게 FTA를 해서 그런 건가. 그건 FTA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겁주려고 하는 소리다.
내가 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은 진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다. 자유 무역론자도 FTA를 찬성하면 안 된다. 자유무역하면 다른 국가와 모두 함께 해야 한다. 순수 자유 무역론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그와티 교수도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은 자유무역이 아니라고 말한다.
둘째,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FTA를 맺으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격차가 나는 나라끼리 하면 단기적으로 이익을 볼 수도 있는데, 장기적으로 하면 뒤처진 나라가 손해를 본다. FTA를 발전된 나라와 하면 고도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가 60~70년대 미국과 FTA를 맺었으면, 지금 자동차를 못 만들고 있었을 거다. 지금 FTA를 하자는 사람들은 미국 시스템을 따라가고 싶고, 한국 경제를 미국식으로 바꾸고 싶은 거다. 그 사람들도 단기적인 이익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그렇게 하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로 성장한 국가들이 후진국에 도움을 주기도 했고, 후진국은 선진국 시스템을 따라가야 살아남고 필요하지 않나.
“선진국을 큰 의미에서 따라하는 거지. 우리도 언제부터 이런 데서 커피 마시고 그랬겠나. 문제는 자기 단계에 맞는 걸 따라야 하는 거다. 지금 우리가 미국을 따라해야 한다는데, 그건 아니다. 자꾸 미국, 미국 얘기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에 얼마나 다양한 모델이 있는데, 꼭 미국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가 봉건제를 이긴 거지만, 그 속에서 여러 다양한 자본주의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가 그걸 따라한다 해도 단계에 맞게 따라해야지, 지금 선진국이 한다고 따라할 건 아니다.
다른 면에서도 보자. 복지나 세금을 현재 선진국에서 낮추고 깎는 추세라는데, 이걸 따라할 건 아니다. 그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뚱뚱한 사람이 다이어트 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데, 그것처럼 멍청한 짓이 어이 있나. 하려면, 제대로 따라해야지.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197)
어쨌든 후진국은 선진국과 교류해야 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술, 제도를 본 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선진국이 후진국을 착취했다고 해서, 그 자체를 부정할 순 없지. 물론 착취를 얘기하면 정말 엄청나지. 헌데 그런 체제에서 받아들인 건 받아들이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한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꾸준히 성장해서 결국 높은 수준의 발전 단계에 도달했다. 이 제도들은 대부분 경제 성장이 일어난 후, 아니면 적어도 경제 성장 과정과 동시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말은 양질의 제도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성장의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낙후된 제도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성장 실패 요인으로 거론될 수가 없다. (p.168)
직업을 5년 후 농업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한국에서 농업을 어떻게 봐야 하나. 비교우위론에서 보면 농업을 포기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비교우위론이라는 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인 뒤 제일 나은 게 뭔가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기술이나 제도, 그걸 받아들이고 난 다음 얘기다. 그걸 바꿀 수 있다는 게 경제발전의 요체다.
현재 농업 수출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가 프랑스다. 임금이 다른 나라보다 몇 십 배나 비싼 데 농업을 어떻게 할까. 3위가 네덜란드인데, 기막힌 건, 네덜란드는 땅도 없거든. 인구밀도도 높고. 비결은 기술이다. 땅이 없으니 수경재배를 한다. 최대한 효율 높이기 위해, 시간 맞춰 비료 주고 약 주고. 그 약은 네덜란드의 막강한 화학회사에서 나온다. 기술만 있으면 농업, 충분히 할 수 있다.”
공정무역 운동이나 착한 소비가 신자유주의에 물든 세계화를 치유할 수 있나.
“나름, 분명한 의미가 있다. 후진국 문제에 대해 선진국 사람들이 너무 무지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공정무역 운동을) 하는 건데, 나름 의미가 있으나 한계도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생산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가격을 주겠다는 건데, 단기적으로 봐도 커피는 의미가 있다. 브라질 등을 빼고 대부분 아프리카나 다른 대륙의 자영농이 커피 농사를 짓고 가격을 잘 쳐주면, 그들도 혜택을 본다. 헌데, 다른 작물이나 농업으로 보면 임금노동자가 있는데, 노동자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조건은 현재 공정무역에선 없거든.
두 번째 장기적으론, 그런 나라들이 커피를 안 키우게 하는 것이 경제발전이다. 기술력 등이 제한돼 있어서, 농작물에 몰려들어서 깎아먹는 경쟁을 하는 건데, 그걸 넘어가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무역은 제한적인 의미에선 의미가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해외 원조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듣고 싶다.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하게 됐으니, 가난한 나라들을 더 도와줘야 한다. 그 서러운 꼴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잘함으로써 좁은 의미의 국익에서도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 대비 0.7%를 해외원조로 주라고 하는데, 미국, 영국은 절대금액은 크지만, 0.3~04%로 낙제 수준이다.
스웨덴, 노르웨이가 우등생인데, 그들은 1.0~1.2% 수준이다. 작은 덩치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그들 나라가 비중이 큰 이유다. 그런 걸 잘하면 우리나라에게도 좋은 거고, 그걸 떠나서도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0.1%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옛날에 원조를 받아 경제발전에 도움을 받은 나라인 만큼 그런 걸 할 의무가 있다.”
장 교수가 말한 경제학, 어디서 배울 수 있나. 학교 경제학 수업엔 수학만 나오고. (웃음)
“이 책을 보면 된다. (웃음) 경제학자 중에선 현실에 대해 얘기하는 분이 많지 않고, 추상적인 수학모델을 연구하는 분들도 많다. 경제학 수업에 가면 경제에 대해 배우겠거니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와 상관없는 얘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책을 썼고, 이 책을 읽고 다른 책을 찾아가면서 읽는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서도 여러 움직임도 있는데,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경제학 교과서나 책도 있다. 일반 독자들이 좀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웃음)”
지난 30여 년에 걸쳐 벌어진 경제 현상들을 보면 우리는 자유 시장 경제학보다 이들 다른 경제학자에게서 배울 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기업, 정부, 정책들 중 어떤 것들은 성공하고 어떤 것들은 실패하는지를 보면 이제는 무시당하고, 심지어 잊힌 이런 경제학자들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제학은 쓸모없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올바른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p.326)
‘더 나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말해 준다면.
“사람마다 가치관이 달라서 뭐가 나은지 한마디로 규정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보다 10~30% 일을 더 많이 한다. 가치관에 따라 일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면 좋다는 사람도 있는 한편, 적당히 일하고 자기 계발하고 가족?이웃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좋은 사람도 있다.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고려해야 할 부분은 있다.
미국인들처럼 여가 시간보다는 물건을 많이 갖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유럽인들처럼 물건을 더 살 돈보다는 여가 시간을 확보하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단연 더 높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p.143)
우선 소득을 고려해야 한다. 너무 소득 수준이 낮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 어느 정도 소득이 있어야 대다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반면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돈이 더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설문조사 하면 다 그렇게 나온다.
이어 노동시간도 고려하고, 얼마나 나누면서 살 수 있느냐, 도 고려해야 한다. 최소한 어느 정도는 사회적 평등이 유지돼야 사회가 험악하지 않고 다 같이 맘 편하게 살 수 있다. 극단적으로 보면, 브라질 등 남미의 많은 나라는 소득 불평등이 큰데,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제일 성행하는 사업이 뭔지 아나? 기업인 납치다. 그래서 기업인들이 방탄차를 타고 다니거나 헬리콥터를 타고 다닌다.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비교적 평등하게 나누고 사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아울러 전문가가 아니라, 잘 쓰는 얘긴 아니지만, 생태계와 균형을 생각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지도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여러 고려할 점이 많은데, 간단히 얘기하면 돈 많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다른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도, 설사 돈 많은 게 좋다 해도, 시장주의가 그걸 담보하지 못한다. 시장주의가 유일하게 강조하는, ‘돈 많은 게 좋다’는 것도 실현을 못한 것이 신자유주의 시장주의다. 그런 면에서 (시장주의는) 낙제다.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이것만 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것도 못했다.”
자본주의를 하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자유 시장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눈을 떠,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물론 이 다른 종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목표, 가치, 믿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p.329~330)
“대기업들, 사회적으로 중요해졌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는 문제가 많다. 관료주의에 따른 비생산성, 부패 등이 그것인데, 관주도나 정부주도에 의해 성장정책을 추진하면 큰 정부가 돼서 예산을 많이 쓰고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부패를 낮추는 건데, 걱정스럽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는 부패도가 높고, 관료주의도 문제가 있다.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헌데, 그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기업도 함께 부패해 있거든. 삼성과 같은 기업은 조직적으로 공무원들을 부패시키지 않나. 술 사주고, 선물 주고.
전반적인 부패의 문제이자, 전반적인 정치 문화의 문제이지, 정부와 시장의 문제는 아니다. 또 둘 다 정도의 문제이지,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거나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패를 없애야 한다는 데는 100% 동의한다.
아울러, 큰 정부의 정의도 문제가 되는데, 우리나라는 세금 기준으로 보면, 큰 정부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산업에 개입한 걸 보면 강력한 정부다. 문제는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더욱 활력 넘치고 안정적이며 더 평등한 경제 시스템에서 정부가 어떻게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는지를 더 창조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더 좋은 복지 국가, 더 나은 규제 시스템(특히 금융 부문에 관한), 더 우월한 산업 정책 등이 필요하다. (p.339)
97년 삼성과 지금의 삼성은 그 위치나 위상이 다르다고 본다. 삼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이게 부담스럽다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바람직한 기업모델을 말해 달라.
“우선, 삼성이 대표적인 예지만, 다른 대기업도 덩치가 너무 커지면 사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미국의 GM(제너럴 모터스)의 경우, 파산하니까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막아줬다. 그런 덩치의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가 개입해야 할 만한 기업이라면, 경영권 승계든, 내부 경영방식이 됐든, 사회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GM의 사례는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유익한 교훈을 준다. 즉, 기업에 좋은 것,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국가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p.259)
삼성은 특히 덩치가 엄청 커졌고, 여러 방법으로 정치인이나 관료 등을 부패시키면서 세력을 확장해 온 터라, 더 (사회적인) 견제가 들어가야 하겠지. ‘삼성법’ 같은 식으로 만들 순 없겠지만, 사회적으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내 원칙이다.
그 통제와 관련해서는 먼저, 노조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노조,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다. 얼마 전 기사에 방글라데시의 우리나라 기업들이 문제가 됐는데, 그 기업들이 얘기하더라.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조가 있었으면 좀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삼성 뿐 아니라 다른 기업도 마찬가진데, 사회적으로 중요해졌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 경제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각 개별 기업에 단기적으로 손해를 끼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도 있을 수 있다. 노동자 교육 규정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p.252~253)
노동시장이 유연해지면, 비정규직만 늘어난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것이 상당히 단기주의적인 발상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할까, 생각을 하니까, 빨리 자르고 고용하는 발상을 한다. 단순한 기술만 필요한 직장은 그리 할 수 있겠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곳은, 그렇지 않다. 직장이 불안하면 노동자들의 기술 습득에도 문제가 있고, 기술 수준 유지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것이 수량적 유연성인데, 일부 학자들은 유연성이 필요하다면 기능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끌어안지 못하는 ‘속 좁음’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만 비정규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유럽에선 비정규직에서 해고를 당한다고 해도 기본생계에 위협을 받진 않거든.
선진국 중에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복지국가 잘 만들면 이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 최대한 비정규직 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정규직을 하나도 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제도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금융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자들의 고용, 해고 절차를 쉽게 하면 기업들의 구조 조정이 더 쉬워져서 당장 보기 좋은 대차대조표를 만들기가 용이해지므로 기업 매매가 원활해져 높은 금융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p.92)
장 교수를 비판하는 견해 가운데, 재벌 옹호론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말 많이 듣는데, 나는 초역사적인 시각에서 재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재벌 옹호론이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얘기하는 게 있다. 제도라는 걸 한 번 시행하면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있는 걸 고쳐 쓰자고 얘기하는 거다.
사실, 우리나라는 백지에서 그린다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 많지. 나는 혁명주의자가 아니고, 과거 재벌이 (경제 발전에) 중요한 기능을 했다는 사실을 말한 거다. 고쳐야 한다는 것에 수긍하는 면도 있지만, 고치는 방법에서 소액주주 강화, 주주민주주의 등을 말하는데, 주주들이 투표하는 건 민주주의랑 상관없다.
문제는 주주들이 기업의 법적 소유주이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이해 당사자 중에서 기업이 장기적 생존에 제일 관심이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주주들이야말로 기업에서 가장 쉽게 손을 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p.43)
그런 식으로 재벌 문제에 접근하면, 삼성의 이씨 집안이 보기 싫으니 외국자본에게 넘어가게 하자는 건가? 그러면, 그 외국자본은 깨끗하고 착할까. 이씨, 정씨 집안은 이름도, 얼굴도 알지만, (웃음) 외국 자본은 무슨 펀드라고 하면서 마약밀매단인지, 독재자가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정치적인 판단 하에서 한국에 뿌리를 가진 사람이 하는 게 낫다고 본 거지.”
장 교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유시민 씨가 장 교수를 부러워하더라. 코스모폴리탄적이라면서, 자신의 책이 부끄럽고, 장 교수가 읽을까봐 두렵다고. 한국 사회에 애정을 가진 한편, 비판적 시각은 코스모폴리탄적이다. 한국 사회를 구조 조정하는데 혹시 참여할 의사가 있나.
“유시민 씨의 책은 안 읽어서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 나는 이미 현실에 참여하고 있고, 계속해서 여론을 일으키려고 하며, 학계 의견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내겐 현실 참여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유시민 씨가 쓴 글 중에, 다른 사람이 쓴 내 얘길 인용하면서, 우리도 지금 이만큼 발전했는데, 왜 옛날식의 보호무역 하냐는 내용의 글이 있었는데, 그건 잘못된 것 같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하고 비판하는 거라면 사과하지만, 그건 이런 말이다. 군대 가서 구타당했다고 고참 돼서 밑의 애들 패자는 얘기다. 그건 맞지 않다고 본다.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익을 떠난 코스모폴리탄이라서 그리 보는 게 아니라, 한국의 이익을 생각할 때도, 장기적으로는 우리를 해하는 일이다.
다른 각도지만, 새마을 운동은, 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반감은 있지만, 농촌을 개발한데 공헌이 크다고 생각한다. 외국도 이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 오면, 70년대에 하던 식으로 구보나 점호를 시킨다. 그러니, 한국을 싫어하면서 가지. 우리가 생각할 때 맞다며,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게, 장기적으로 틀린 게 될 수 있다. 우리가 필요하고, 이익을 볼 게 많으니 자유 무역을 하자고 하면, 다른 나라도 우리의 (보호 무역을 했던) 역사를 아는 데, 욕 안 하겠나. 그러면 안 된다.”
자기들의 과거 행적에도 불구하고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국경을 허물어서 경제를 본격적으로 국제 경쟁에 노출시키도록 요구한다.… 자신들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쓰지도 않았던 정책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선진국들의 행태는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 (p.105~106)
<가디언>이 이 책을 소개하면서, 노동당 대표로 새로 선출된 에드 밀리밴드에게 “장 교수와 점심을 하라”고 했는데, 실제로 했나? (웃음)
“그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한 정당의 당수인데, 아직 연락은 없었다. (웃음) 보수당에선 보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러니 내가 욕 들어먹는다.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거지. 다음 주에 한나라당에 가서 강연하기로 돼 있는데, 민주당에는 왜 안 가냐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 원래 예정돼 있었는데, 민주당이 장외 투쟁하느라 취소돼서, 못 가는 거다. (웃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씌워 놓은 장밋빛 색안경을 벗어 달라는 것이다. 이 색안경을 쓰고 보면 온 세상이 단순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이제 안경을 벗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 보자 (p.15)
경제(학)의 위키리크스?
여기, 거칠게 말하는 것이지만, ‘경제(학)의 위키리크스’도 있다. 역시나 그것도 사유를 촉발하고 위선적인 입놀림에 태클을 걸었다. 미국 외교의 가면을 벗긴 것이 위키리크스였다면, 이것은 미국식 자본주의, 약육강식과 무한경쟁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메스를 댔다. 좀 더 까놓고 말해보자. 그것은 ‘돈 넣고 돈 먹기’식의 ‘무조건 돈만 많이 벌면 미덕’이라고 강요하는 ‘팍스 이코노미카’(모든 것은 돈으로 통한다)의 거짓을 폭로했다.
경제의 위키리크스는, 이런 것을 대놓고 ‘거짓’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모토를 말하자면, “비밀은 없어”…라기 보다, “속지 마, 죽지 마, 저항해야 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알아챘겠지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장하준 지음/김희정?안세민 옮김|부키 펴냄)의 얘기다.
“자유 시장주의자들 혹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 온 이야기는 잘해야 부분적으로 맞고, 최악의 경우에는 완전히 틀렸다는 말이 된다.” (p.13~14) 이 말을 한 책의 저자 장하준 교수는, 역시나 거친 비유지만, ‘경제(학)의 줄리언 어산지’쯤 되겠다. 그렇다고, 그를 ‘폭로의 달인’으로 여기진 마시라. 그는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좀 더 더듬이를 세우는 경제 시민으로서 권리를 행사해 권익을 제대로 지키자는 쪽이니까.
나는 수많은 문제점과 제약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는 인류가 만들어 낸 가장 좋은 경제 시스템이라고 믿는다. 그저 지난 3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 온 특정 자본주의 시스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싶을 뿐이다. 자유 시장 체제가 자본주의를 운영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며, 지난 30년 동안의 성적표가 말해 주듯 최선의 방법은 더더욱 아니다. (p.14)
이는, 책의 부제가 설명한다.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이후 3년 만에 나온 이 책을 전 세계가 주목하는 것은, 허상으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속살도 한 몫 할 것이다. 사실, 번지르르한 동안 피부인 줄 알았다. 허나, 아니었다. 과도한 분장에 불과했다. 클렌징 한 번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겹겹이 분칠만 한 떡칠 화장술. 장 교수도 거기에 청정 클렌징 폼을 뿌린 셈이다.
장하준, 시장주의의 떡칠 분장을 클렌징하다
그 클렌징 폼은 제대로 먹혔다. 대세적 가치로 여겨졌던 시장주의의 포악함에 지치고 낙망한 대중이 근본적 의문을 품은 까닭일까.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출간 두 달여 만에 20만 부를 넘어섰다. 지난 26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 장 교수와 함께 한 티타임의 시간, ‘장하준을 만나다’.
과학저널리스트 이정모 씨의 사회로 펼쳐진 이날의 행사는, 온라인을 통해 미리 받은 질문에 대한 답변과 현장에 모인 독자들의 질의와 응답으로 채워졌다. 특히 장 교수는 이날, 기업, 특히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시즌이니만큼 연말 각종 시상식이나 그들의 수상소감을 보라. 많은 수상자들은 혼자 잘 나서가 아닌 함께 한 사람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그들이 있었기에 자신이 빛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헌데, 혼자 잘 난 줄 알고, 꾸역꾸역 혼자 잘 살겠다고 고집하는 일부 대기업을 향해 장 교수는 방아쇠를 당긴다. 특히, 삼성에게도 힘에 걸 맞는 책임을 요구한다.
우리는 자꾸 폭로하고 성찰해야 한다. 장 교수의 이야기는, 폭로라기보다 사유와 성찰을 요구하는 것에 가깝다. 이날 커피 브레이크의 기조 중 하나는,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가’였다. “사회적 불평등으로 불안에 떨어야 하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비교적 평등하게 나누고 사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유명한 주식매매가, 워런 버핏의 이 말(책의 56페이지에 언급됐다). “개인적으로 나는 지금까지 벌어들인 돈의 많은 부분이 내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벌어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만일 나를 방글라데시나 페루 같은 곳에 갑자기 옮겨 놓는다면 맞지 않는 토양에서 내 재능이 얼마나 꽃 피울지 의문입니다. 30년 후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할 거예요. 지금 활동하는 시장은 내가 하는 일에 아주 후한 보상을 내리는 환경입니다. 사실 불공평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큰 보상이지요.”
서두가 길었다. 이날 커피 한 잔하면서 나눈 이야기를 풀어보자.
지금이라도 세계를 퇴보시키고 재앙의 구렁텅이로 내몰았던 원칙들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예전과 비슷한 대참사들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또 빈곤과 불안으로 고통받는 수십억 인구(개발도상국만 이런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어떤 일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p.341)
“돈 많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다른 가치도 고려해야”
책을 보면, 자본주의는 받아들이지만 시장주의에는 반대하는 것 같다. 자본주의자면서 시장주의에 대한 입장이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처음부터 제일 어려운 질문이네. (웃음) 기본적으로 시장주의자와 나는 인식의 차이가 있다. 내 인식은 시장만으로 자본주의가 굴러갈 수 없다는 것이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고, 이번 책에서도 국가를 통한 시장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근저에 깔려 있다.
자본주의는 국가와 시장만으로 되는 게 아니고, 그 속엔 기업도 있다. 기업이 시장의 일부가 아니냐고 하지만, 기업 내부는 완전 계획경제다. 마르크스가 계획경제를 주장했는데, 마르크스가 계획경제의 영감을 얻은 게 기업이다. 또 기업끼리 협동하는 조직도 있다. 경제단체나 작은 기업들이 뭉친 협동조합도 있고, 노조도 있다. 자본주의는 굉장히 복잡한 제도가 뭉쳐서 형성돼 있다.
시장주의자들은 시장 외에 다른 것들은 있으면 안 된다거나, 정부처럼 필요악이니 최소한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기업 내부는 계획에 의해 돌아가는데, 시장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 못하고 얘기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제도와 형태를 통해 경제가 운영되고 발전되는 건데, 그걸 못 보고 시장에만 맡기면 될 것처럼 얘기한다. 그것이 나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지점이다.”
자유 시장은 정치적으로 정의되는 것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자신들이 정부의 정치적 개입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課다. 정부는 언제나 시장에 개입하고 있고, 자유 시장론자들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이다. 객관적으로 규정된 자유시장이 존재한다는 신화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p.20)
“전공이 경제 정책이었다. 경제학, 순수이론이 아니고. 처음부터 학자가 아닌 사람들과 소통할 필요가 있었다. 정부관료, 기업가, 엔지오, 국제기구 등. 처음에는 경험이 없어서 학생들에게 강의하듯 이야기했는데, 졸고 그러는 거다. (웃음)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계기로 일반 대중,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써보자고 마음먹었다. 왜냐면 여론이 중요하니까. 여론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책을 준비하면서 고생 많이 했다. 내 기준에는 쉽게 쓴다고 했지만, 출판사, 에이전트 등에게 보여주면, 사람들이 이해 못한다고 다 던져 버리는 거라. (웃음) 훈련을 많이 받았다. 어떻게 하면, 일반 독자들에게 와 닿을 수 있는지 연구를 많이 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닦은 기술을 발휘해 보려고 노력했다.”
한국을 비롯해 많은 격찬을 받았는데, 정작 영국의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
“대개 경제학 교수들이 어렵게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극단적으로, 학생들이 자신의 강의나 이야길 이해하면 걱정을 하는 경우도 봤다. “내가 잘못 말했나”하면서. 나는 평소에 그렇게 가르치질 않아서, 제자들이 좋아했다.
그런데, 나는 이번 책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있다. ‘인터넷이 세탁기보다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Thing. 4)는 얘기가 책에 있는데, 그건 수업 중에 많이 써 먹었던 거다. 학생들이 그 얘길 듣고, 많이 놀랐지. 그걸 책에 써 놨으니, 이젠 수업 중에 말해도 다 아는 얘기하네, 그럴 게 아닌가. 나한테는 안 좋은 거지. (웃음) 물론 독자들과 나누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서, 괜찮다.”
… 최근의 기술 변화는 100년 전에 있었던 변화만큼 혁명적이라고 할 수 없다. … 세계화의 정도(혹은 각국의 개방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지 기술이 아니다. (p.67~68)
영국 아닌 한국에 있었다면 이런 책을 쓸 수 있었을까, 이런 반향을 기대할 수 있었을까.
“글쎄, 한국의 여러 환경이 영국과 다르긴 하다. 똑같은 책을 썼을 진 모르겠고. 계속 한국에 있었다면 한국말로 책을 썼겠지. (웃음) 사실, 팔린 부수로 하면 한국만큼 반향을 얻은 데가 있을까. 두 달이 안 돼 20만부가 나갔는데, 한국에선 국방부 덕분에 유명해져서. (웃음) 책이 다른 나라에서 팔리는 것에 비해 ‘0’이 하나 더 붙는다. 한국에서 이렇게 열렬한 반응을 받는 게, 참 고맙다.
영국의 분위기랄까, 뭐랄까 교수들이나 학교의 지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뭐든지 여러 면을 보고 권위에 추종하지 말고 의심해보라고 교육을 하고 그렇게 받는다. 그런 게 이런 책을 쓰는데 도움을 받았다. 그게 아니라면, 어디서 했든 비슷했을 것이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보면, 진보주의자들은 경제 규제는 필요하고 사회생활에는 규제가 없어야 한다고 본다. 책을 보면 장 교수는 경제적으론 진보 같은데, 사회와 가족 생활에선 스스로 어떻다고 생각하나.
“진보, 이런 건 상대개념이다. 샌델 교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는 간다. 한 마디로 규정하기 힘든데, 나는 사회생활에서도 규제가 불필요한 건 아니라고 본다. 서구 진보주의자와는 안 맞는 면이 있겠지만, 한국의 관행이나 관습에 비해선 규제를 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다. 어느 쪽에서 보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가 있는 거지. 샌델 교수가 마음에 두는 사람들에 비해선, 사회적인 면에서는 규제를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역사적 경험을 봤을 때, 장 교수가 바라는 국가주도 산업성장 정책이 독재를 불러올 수 있다고도 본다. 독재 가능성이 없으면서도 국가주도 산업정책을 펼 수 있나.
“역사적인 경험이 있어서 개입주의를 하면, 독재하는 것이 아니냐고 얘기하는데, 사실 60~70년대 유럽의 상당수 나라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산업정책을 펴면서 민주주의도 함께 했다. 핀란드,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프랑스 등 많다.
산업정책 뿐 아니라 모든 정책에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특정한 면이 제약을 받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그걸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제약하느냐만 도출이 되면 상당히 강력한 정책을 펼 수 있다. 스웨덴의 경우, 산업정책을 세게 안 했지만, 복지나 임금 정책에서 국가가 세게 개입했다. 그건 산업정책보다 더 무섭고 센 개입이었다. 그런 걸 위해, 독재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우리나라는 당시 냉전구도 속에서 산업정책이 독재와 결합됐을 뿐이지, 꼭 독재가 필요하다는 건 아니다. 옛날에 잘못됐던 것이 반복된다고 생각하면, 지금의 사회를 개선시킬 수가 없다. 핀란드, 스웨덴 등은 옛날부터 국민들이 사이좋게 살았던 것 같지만, 아니다. 20년대 스웨덴은 세계에서 파업 발생률이 가장 높았을 정도로 엄청난 갈등을 겪은 나라였다. 핀란드도 1944년까지 좌파 경력이 있던 사람에게 투표권도 안 주던 그런 나라였다.”
어떤 정책이 자유 시장 자본주의에 위배되지 않는 불가피한 국가 개입인지 아닌지는 견해 문제인 것이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규정된 자유 시장의 경계라는 것은 없다.… 실제로 자본주의의 역사 자체도 시장의 경계를 둘러싸고 벌어진 끊임없는 투쟁의 역사였다. (p.29)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미치는 영향은 당장 크지 않지만…” 책에 나온 장 교수 말씀인데, 동의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경제발전을 먼저 해야 하는가.
“발전단계에 따라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제약이 되는 건 사실이다. 인도는 1947년부터 민주주의를 했다고 자부하지만, 거기도 사실 세습제에 가깝지 않나. 가난한 나라다 보니, 아직 밀가루 한 포대 주면 그걸 준 사람에게 표를 찍고 그런다. 내용적으로 민주주의에 문제가 많은 거지. 진짜 강고한 민주주의가 되려면 경제발전이 되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전근대적 사고가 없어졌을 때 가능하다고 본다.
물론, 각 발전 단계별로 최대한 할 수 있는 게 있다. 경제발전 단계가 낮은 상태에서 내용적으로 튼실한 민주주의가 될 순 없다고 하더라도, 독재가 좋다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서글픈 건데, 경제발전 초기에 내용 있는 민주주의를 하는 데 제약이 많다. 한계를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하나 그 가운데서 노력을 해야 한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때부터 진보 지식인들이 가진 의문이나 의심 같은 거다. 책에서 역설한 내용이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가령, 박정희 개발독재를 미화하는 내용 등이 되곤 하는 어떤 현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따져 보면, 신자유주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나는 그런 것과 변함없이 얘기하는 게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50년 동안 세계 역사상 유래 없는 경제성장을 했다. 그런데, 그 경제성장을 가볍게 생각하는 측면이 있다.
경제성장을 통해 소득이 올라간 것이 물적인 소비만 가능하게 해 준 게 아니다. 평균수명이 늘어 오래 살게 된 것도 그렇고, 편하게 살 수 있게 됐다. 1961~62년, 대한민국 평균수명이 53세였고, 지금은 77세다. 큰 지진이 일어났던 아이티의 평균수명이 54~55세다. 지금 아이티보다 못하던 나라가 지금 이렇게 된 거다. 극단적인 예지만, 아프리카에선 물 길러 가는 데만 2시간씩 쓴다. 그것도 먹을 수 있는 물만 아니고, 그것을 먹고 죽는 사람도 있다. 경제발전, 경제성장이라는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렇다고 그것이 박정희가 아니면 못했을 거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런 영웅주의에 빠져서도 안 되지만, 경제발전의 성과 자체를 별 거 아니라고 얘기하는 것도 안 된다. 지금 편하게 사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경제발전 자체는 잘 했다고 계속 얘기할 것이다. 그래서 경제발전을 위해 독재를 해야 한다거나, 박정희가 없었으면 우리나라는 망했을 거라는 해석은 문제가 있다. 경제발전 자체가 굉장히 중요했다는 것은 누누이 말씀 드리고 싶다.”
“책의 21장(‘큰 정부는 사람들이 변화를 더 쉽게 받아들이도록 만든다’)에서 얘기했는데, 성장과 복지가 상충 관계에 있는 게 아니다. 복지가 잘 이뤄지면, 국민이 구조변화를 잘 받아들이고, 진취적으로 행동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지금은 복지가 안 돼서 성장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복지제도를 잘 만들어서 실천하면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양분법으로 성장과 복지과 상충된 것처럼 말하는데, 그건 아니다. 복지는 우선, 돈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다.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기 위함이다. 둘째, 성장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양분법 자체에 문제가 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으로 추진되기만 한다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가 경제성장까지 촉진한다고 믿을 만한 근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오늘날과 같은 불황기에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득 재분배’이다. 소득이 적을수록 가용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지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소득 불평등의 수준이 낮으면서 빠른 경제 성장이 이루어졌던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이 같은 메커니즘이 작동한 덕분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p.196)
아주 흥미로운 사실은 1990년 이후 OECD 핵심 국가 중 가장 빨리 성장한 나라 두 군데가 바로 핀란드(2.6퍼센트)와 노르웨이(2.5퍼센트)라는 것이다. 두 나라 다 복지 정책이 잘 갖춰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잘 설계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이 가지고 있는 종류의 복지 제도는 사람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일 수 있는 여유를 줘서 산업 구조 조정이 쉬워지기 때문에 경제 발전을 촉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p.299~300)
최근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과 관련해,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대기업이 영세상인의 영역까지 침범해서 한 거라는 의견과 소비자가 값싼 치킨 먹을 기회 박탈당했다는 의견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또 값싼 재벌닭 대신 비싼 동네닭 사먹자는 얘기도 있는데, 이건 착한 소비인가.
“이게 어려운 점이 있다. 중간에 프랜차이즈 본사가 껴 있어서 복잡한 얘기다. 단순히 영세 치킨점과 재벌 간의 대립이 아니다. 어쨌든 이것도 결국 균형을 맞추는 수밖에 없다. 저렇게 대기업이 들어오면 소비자로선 좋은 면도 있지만, 그런 비즈니스 모델이 커지면 내 직장이 위협받을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나라 백화점에 가서 미국식 경영자의 눈으로 보면 종업원의 70%는 해고해도 된다. 미국이나 영국에 가면, 백화점에서 구두를 신으려면 종업원이 올 때까지 표를 뽑아 기다려야 한다. 구두나 치킨만 그러면 모르지만, 대부분 품목에서 그런 식으로 가면, 해고의 위협에 시달리게 될 거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양날이고, 소비자 이익도 좋지만, 파는 사람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그렇다고 영세 상인을 위해 기업의 발전을 막을 수도 없고.
그래서 복지국가를 해야 한다. 통큰 치킨 외에 계속 그런 게 나올 거다. 싸우고, 보상해라 마라, 들어오라 마라, 하면서 굉장히 피곤할 것이다. 복지국가는 이런 것을 일괄 타결해 준다. 문제가 생기면 세금을 통해 희생당한 사람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거든.
통큰 치킨의 문제는, 그걸 하려면 다른 면에서 생계를 보장해주고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데, 산발적으로 나왔다는 거다. 롯데가 치킨을 찍어서 그렇지, 다른 분야를 찍었으면 또 이런 갈등이 생겼을 거다. 그래서 복지국가 해야 한다.”
노동자들에게 제2의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복지 정책은 노동자를 위한 파산법이라고 할 수 있다. 파산법이 기업가들로 하여금 위험을 더 적극적으로 감수하게 해 주는 것처럼, 복지 정책은 노동자들이 변화에 더 개방적이고, 그에 따른 위험을 더 기꺼이 감수하는 태도를 갖도록 해 준다. 제2의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할 때 더 대담해질 수 있고, 후에 직업을 바꾸어야 할 때에도 더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p.297)
“주가가 오른 가장 주요한 원인이 있다. 경제회복도 일부 있지만, 국내외 모두 이자율이 역사상 가장 낮은데, 우리나라뿐 아니라 개발도상국 주가가 다 올랐다. 선진국의 이자율이 낮아 이윤이 낮으니, 높은 이자율을 찾아서 돌아다니는 거지. 우리 경제가 잘 나서 오르는 것이 아니다.
그 유입이 엄청나서 거품이 생기고, 그러다가 해외에서 이자가 오르고 돈이 빠져나가면 큰일이 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미약하지만 자본유입을 규제하는 정책도 있고, 뒤에 숨어 있는 또 하나의 위험을 봐야 한다. 주가가 오른다고 무조건 좋아할 게 아니다. 양극화와도 관계있는데, 형편이 되는 사람만 주식을 할 수 있고, 주가가 오르는 게 온 국민을 위해 좋은 것도 아니다.”
내년에 우리나라가 5% 성장할 것이란 견해가 있는데, 어떻게 보나. 세계 경제위기 가능성은 없나.
“지금 주가를 올린 주동력이 외부의 투기성 자본이다. 그게 빠져나가면 97년(IMF 외환위기)과도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자본통제를 더 강화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준비를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수출로 먹고 산다. 자유무역협정(FTA)는 그래서 필요하다고 본다. FTA를 반대하셨는데, 의견을 다시 말해 주셨으면 한다. 그리고 FTA 성사를 전제로 하면 어떤 보완책이 있어야 하나?
“지난 노무현 정권부터 잘못 선전하는 게 있다. FTA를 안하면 무역을 안 하는 것처럼 말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개방도가 높기로 유명한 나라인데, 미국과 FTA를 안 한다고 쇄국정책 하자는 것, 아니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큰 게 FTA를 해서 그런 건가. 그건 FTA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국민들을 겁주려고 하는 소리다.
내가 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은 진정한 자유무역이 아니다. 자유 무역론자도 FTA를 찬성하면 안 된다. 자유무역하면 다른 국가와 모두 함께 해야 한다. 순수 자유 무역론자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그와티 교수도 양국 간 자유무역협정은 자유무역이 아니라고 말한다.
둘째, 수준이 비슷한 나라끼리 FTA를 맺으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격차가 나는 나라끼리 하면 단기적으로 이익을 볼 수도 있는데, 장기적으로 하면 뒤처진 나라가 손해를 본다. FTA를 발전된 나라와 하면 고도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우리가 60~70년대 미국과 FTA를 맺었으면, 지금 자동차를 못 만들고 있었을 거다. 지금 FTA를 하자는 사람들은 미국 시스템을 따라가고 싶고, 한국 경제를 미국식으로 바꾸고 싶은 거다. 그 사람들도 단기적인 이익이 얼마 안 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그렇게 하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자본주의로 성장한 국가들이 후진국에 도움을 주기도 했고, 후진국은 선진국 시스템을 따라가야 살아남고 필요하지 않나.
“선진국을 큰 의미에서 따라하는 거지. 우리도 언제부터 이런 데서 커피 마시고 그랬겠나. 문제는 자기 단계에 맞는 걸 따라야 하는 거다. 지금 우리가 미국을 따라해야 한다는데, 그건 아니다. 자꾸 미국, 미국 얘기하면 안 된다. 자본주의에 얼마나 다양한 모델이 있는데, 꼭 미국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결국은 자본주의 체제가 봉건제를 이긴 거지만, 그 속에서 여러 다양한 자본주의 형태가 있다. 우리나라가 그걸 따라한다 해도 단계에 맞게 따라해야지, 지금 선진국이 한다고 따라할 건 아니다.
다른 면에서도 보자. 복지나 세금을 현재 선진국에서 낮추고 깎는 추세라는데, 이걸 따라할 건 아니다. 그건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이 뚱뚱한 사람이 다이어트 하는 걸 보고 따라하는 셈이다. 우리나라 복지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인데, 그것처럼 멍청한 짓이 어이 있나. 하려면, 제대로 따라해야지.
단순히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준다고 해서 나머지 사람들이 더 부유해지는 것은 아니다.… 복지 국가 같은 메커니즘을 통해 전 사회 구성원들과 성장의 과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p.197)
어쨌든 후진국은 선진국과 교류해야 한다. 남들이 만들어 놓은 기술, 제도를 본 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런 식으로 보면 극단적으로 선진국이 후진국을 착취했다고 해서, 그 자체를 부정할 순 없지. 물론 착취를 얘기하면 정말 엄청나지. 헌데 그런 체제에서 받아들인 건 받아들이고, 비판할 건 비판하고, 책임질 건 책임져야 한다.”
지금의 선진국들은 꾸준히 성장해서 결국 높은 수준의 발전 단계에 도달했다. 이 제도들은 대부분 경제 성장이 일어난 후, 아니면 적어도 경제 성장 과정과 동시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말은 양질의 제도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성장의 결과물로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낙후된 제도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경제 성장 실패 요인으로 거론될 수가 없다. (p.168)
직업을 5년 후 농업으로 바꾸려고 하는데, 한국에서 농업을 어떻게 봐야 하나. 비교우위론에서 보면 농업을 포기해야 하지 않나 싶은데.
“비교우위론이라는 건, 주어진 것을 받아들인 뒤 제일 나은 게 뭔가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기술이나 제도, 그걸 받아들이고 난 다음 얘기다. 그걸 바꿀 수 있다는 게 경제발전의 요체다.
현재 농업 수출이 두 번째로 많은 나라가 프랑스다. 임금이 다른 나라보다 몇 십 배나 비싼 데 농업을 어떻게 할까. 3위가 네덜란드인데, 기막힌 건, 네덜란드는 땅도 없거든. 인구밀도도 높고. 비결은 기술이다. 땅이 없으니 수경재배를 한다. 최대한 효율 높이기 위해, 시간 맞춰 비료 주고 약 주고. 그 약은 네덜란드의 막강한 화학회사에서 나온다. 기술만 있으면 농업, 충분히 할 수 있다.”
공정무역 운동이나 착한 소비가 신자유주의에 물든 세계화를 치유할 수 있나.
“나름, 분명한 의미가 있다. 후진국 문제에 대해 선진국 사람들이 너무 무지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공정무역 운동을) 하는 건데, 나름 의미가 있으나 한계도 명확하다. 기본적으로 생산하는 것에 대해 제대로 된 가격을 주겠다는 건데, 단기적으로 봐도 커피는 의미가 있다. 브라질 등을 빼고 대부분 아프리카나 다른 대륙의 자영농이 커피 농사를 짓고 가격을 잘 쳐주면, 그들도 혜택을 본다. 헌데, 다른 작물이나 농업으로 보면 임금노동자가 있는데, 노동자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조건은 현재 공정무역에선 없거든.
두 번째 장기적으론, 그런 나라들이 커피를 안 키우게 하는 것이 경제발전이다. 기술력 등이 제한돼 있어서, 농작물에 몰려들어서 깎아먹는 경쟁을 하는 건데, 그걸 넘어가게 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정무역은 제한적인 의미에선 의미가 있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해외 원조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듣고 싶다.
“우리나라가 먹고 살만하게 됐으니, 가난한 나라들을 더 도와줘야 한다. 그 서러운 꼴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잘함으로써 좁은 의미의 국익에서도 영향력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소득 대비 0.7%를 해외원조로 주라고 하는데, 미국, 영국은 절대금액은 크지만, 0.3~04%로 낙제 수준이다.
스웨덴, 노르웨이가 우등생인데, 그들은 1.0~1.2% 수준이다. 작은 덩치에 비해 국제사회에서 그들 나라가 비중이 큰 이유다. 그런 걸 잘하면 우리나라에게도 좋은 거고, 그걸 떠나서도 다 같이 잘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의미에서도 무시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0.1%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가 옛날에 원조를 받아 경제발전에 도움을 받은 나라인 만큼 그런 걸 할 의무가 있다.”
장 교수가 말한 경제학, 어디서 배울 수 있나. 학교 경제학 수업엔 수학만 나오고. (웃음)
“이 책을 보면 된다. (웃음) 경제학자 중에선 현실에 대해 얘기하는 분이 많지 않고, 추상적인 수학모델을 연구하는 분들도 많다. 경제학 수업에 가면 경제에 대해 배우겠거니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경제와 상관없는 얘기가 많다. 그래서 이런 책을 썼고, 이 책을 읽고 다른 책을 찾아가면서 읽는 수밖에 없다. 경제학에서도 여러 움직임도 있는데,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는 경제학 교과서나 책도 있다. 일반 독자들이 좀 찾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웃음)”
지난 30여 년에 걸쳐 벌어진 경제 현상들을 보면 우리는 자유 시장 경제학보다 이들 다른 경제학자에게서 배울 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기업, 정부, 정책들 중 어떤 것들은 성공하고 어떤 것들은 실패하는지를 보면 이제는 무시당하고, 심지어 잊힌 이런 경제학자들에게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제학은 쓸모없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올바른 경제학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p.326)
‘더 나은’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말해 준다면.
“사람마다 가치관이 달라서 뭐가 나은지 한마디로 규정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미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보다 10~30% 일을 더 많이 한다. 가치관에 따라 일을 많이 하고 돈을 많이 벌면 좋다는 사람도 있는 한편, 적당히 일하고 자기 계발하고 가족?이웃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좋은 사람도 있다. 뭐가 더 낫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고려해야 할 부분은 있다.
미국인들처럼 여가 시간보다는 물건을 많이 갖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유럽인들처럼 물건을 더 살 돈보다는 여가 시간을 확보하는 쪽이 더 나은 삶이냐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의견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다른 부자 나라들에 비해 생활수준이 단연 더 높은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p.143)
우선 소득을 고려해야 한다. 너무 소득 수준이 낮으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 어느 정도 소득이 있어야 대다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그런 반면 어느 정도를 넘어가면 돈이 더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설문조사 하면 다 그렇게 나온다.
이어 노동시간도 고려하고, 얼마나 나누면서 살 수 있느냐, 도 고려해야 한다. 최소한 어느 정도는 사회적 평등이 유지돼야 사회가 험악하지 않고 다 같이 맘 편하게 살 수 있다. 극단적으로 보면, 브라질 등 남미의 많은 나라는 소득 불평등이 큰데,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제일 성행하는 사업이 뭔지 아나? 기업인 납치다. 그래서 기업인들이 방탄차를 타고 다니거나 헬리콥터를 타고 다닌다. 그런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비교적 평등하게 나누고 사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아울러 전문가가 아니라, 잘 쓰는 얘긴 아니지만, 생태계와 균형을 생각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지도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할 때다. 여러 고려할 점이 많은데, 간단히 얘기하면 돈 많다고 마냥 좋은 게 아니다. 다른 가치도 고려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도, 설사 돈 많은 게 좋다 해도, 시장주의가 그걸 담보하지 못한다. 시장주의가 유일하게 강조하는, ‘돈 많은 게 좋다’는 것도 실현을 못한 것이 신자유주의 시장주의다. 그런 면에서 (시장주의는) 낙제다.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이것만 해도 된다고 했는데, 그것도 못했다.”
자본주의를 하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 자유 시장주의라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맹목적 사랑에 눈을 떠, 더 잘 규제된 다른 종류의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물론 이 다른 종류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목표, 가치, 믿음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p.329~330)
“대기업들, 사회적으로 중요해졌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 한국 경제에는 문제가 많다. 관료주의에 따른 비생산성, 부패 등이 그것인데, 관주도나 정부주도에 의해 성장정책을 추진하면 큰 정부가 돼서 예산을 많이 쓰고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부패를 낮추는 건데, 걱정스럽다.
“말씀하신대로, 우리나라는 부패도가 높고, 관료주의도 문제가 있다. 당연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헌데, 그게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기업도 함께 부패해 있거든. 삼성과 같은 기업은 조직적으로 공무원들을 부패시키지 않나. 술 사주고, 선물 주고.
전반적인 부패의 문제이자, 전반적인 정치 문화의 문제이지, 정부와 시장의 문제는 아니다. 또 둘 다 정도의 문제이지,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하거나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패를 없애야 한다는 데는 100% 동의한다.
아울러, 큰 정부의 정의도 문제가 되는데, 우리나라는 세금 기준으로 보면, 큰 정부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산업에 개입한 걸 보면 강력한 정부다. 문제는 어떤 영역에서,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 개입하느냐의 문제다.”
이제 우리는 더욱 활력 넘치고 안정적이며 더 평등한 경제 시스템에서 정부가 어떻게 핵심 요소가 될 수 있는지를 더 창조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더 좋은 복지 국가, 더 나은 규제 시스템(특히 금융 부문에 관한), 더 우월한 산업 정책 등이 필요하다. (p.339)
97년 삼성과 지금의 삼성은 그 위치나 위상이 다르다고 본다. 삼성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이게 부담스럽다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바람직한 기업모델을 말해 달라.
“우선, 삼성이 대표적인 예지만, 다른 대기업도 덩치가 너무 커지면 사회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미국의 GM(제너럴 모터스)의 경우, 파산하니까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막아줬다. 그런 덩치의 회사에 문제가 생기면,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정부가 개입해야 할 만한 기업이라면, 경영권 승계든, 내부 경영방식이 됐든, 사회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GM의 사례는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이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유익한 교훈을 준다. 즉, 기업에 좋은 것,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것일지라도 국가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p.259)
삼성은 특히 덩치가 엄청 커졌고, 여러 방법으로 정치인이나 관료 등을 부패시키면서 세력을 확장해 온 터라, 더 (사회적인) 견제가 들어가야 하겠지. ‘삼성법’ 같은 식으로 만들 순 없겠지만, 사회적으로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내 원칙이다.
그 통제와 관련해서는 먼저, 노조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무노조, 시대에 뒤떨어진 얘기다. 얼마 전 기사에 방글라데시의 우리나라 기업들이 문제가 됐는데, 그 기업들이 얘기하더라.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노조가 있었으면 좀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삼성 뿐 아니라 다른 기업도 마찬가진데, 사회적으로 중요해졌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은 국민 경제에는 말할 것도 없고 기업 자신에게도 좋지 않을 수 있다.… 각 개별 기업에 단기적으로 손해를 끼칠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기업 부문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규제도 있을 수 있다. 노동자 교육 규정 같은 것이 그런 예이다. (p.252~253)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것이 상당히 단기주의적인 발상이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열심히 일하게 할까, 생각을 하니까, 빨리 자르고 고용하는 발상을 한다. 단순한 기술만 필요한 직장은 그리 할 수 있겠지만,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곳은, 그렇지 않다. 직장이 불안하면 노동자들의 기술 습득에도 문제가 있고, 기술 수준 유지에도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것이 수량적 유연성인데, 일부 학자들은 유연성이 필요하다면 기능적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끌어안지 못하는 ‘속 좁음’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만 비정규직이 있는 건 아니지만, 유럽에선 비정규직에서 해고를 당한다고 해도 기본생계에 위협을 받진 않거든.
선진국 중에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다. 복지국가 잘 만들면 이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다. 최대한 비정규직 비율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비정규직을 하나도 없이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제도를 통해 보완해야 한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금융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자들의 고용, 해고 절차를 쉽게 하면 기업들의 구조 조정이 더 쉬워져서 당장 보기 좋은 대차대조표를 만들기가 용이해지므로 기업 매매가 원활해져 높은 금융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p.92)
장 교수를 비판하는 견해 가운데, 재벌 옹호론이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말 많이 듣는데, 나는 초역사적인 시각에서 재벌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재벌 옹호론이라는 욕을 들으면서도 얘기하는 게 있다. 제도라는 걸 한 번 시행하면 갈아엎고 다시 시작하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그래서 있는 걸 고쳐 쓰자고 얘기하는 거다.
사실, 우리나라는 백지에서 그린다면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 많지. 나는 혁명주의자가 아니고, 과거 재벌이 (경제 발전에) 중요한 기능을 했다는 사실을 말한 거다. 고쳐야 한다는 것에 수긍하는 면도 있지만, 고치는 방법에서 소액주주 강화, 주주민주주의 등을 말하는데, 주주들이 투표하는 건 민주주의랑 상관없다.
문제는 주주들이 기업의 법적 소유주이기는 하지만, 불행하게도 여러 이해 당사자 중에서 기업이 장기적 생존에 제일 관심이 없는 집단이라는 사실이다. 주주들이야말로 기업에서 가장 쉽게 손을 뗄 수 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p.43)
그런 식으로 재벌 문제에 접근하면, 삼성의 이씨 집안이 보기 싫으니 외국자본에게 넘어가게 하자는 건가? 그러면, 그 외국자본은 깨끗하고 착할까. 이씨, 정씨 집안은 이름도, 얼굴도 알지만, (웃음) 외국 자본은 무슨 펀드라고 하면서 마약밀매단인지, 독재자가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정치적인 판단 하에서 한국에 뿌리를 가진 사람이 하는 게 낫다고 본 거지.”
장 교수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유시민 씨가 장 교수를 부러워하더라. 코스모폴리탄적이라면서, 자신의 책이 부끄럽고, 장 교수가 읽을까봐 두렵다고. 한국 사회에 애정을 가진 한편, 비판적 시각은 코스모폴리탄적이다. 한국 사회를 구조 조정하는데 혹시 참여할 의사가 있나.
“유시민 씨의 책은 안 읽어서 뭐라 말씀은 못 드리겠는데, 나는 이미 현실에 참여하고 있고, 계속해서 여론을 일으키려고 하며, 학계 의견을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게 내겐 현실 참여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유시민 씨가 쓴 글 중에, 다른 사람이 쓴 내 얘길 인용하면서, 우리도 지금 이만큼 발전했는데, 왜 옛날식의 보호무역 하냐는 내용의 글이 있었는데, 그건 잘못된 것 같다. 혹시 내가 잘못 이해하고 비판하는 거라면 사과하지만, 그건 이런 말이다. 군대 가서 구타당했다고 고참 돼서 밑의 애들 패자는 얘기다. 그건 맞지 않다고 본다. 내가 한국이라는 나라의 이익을 떠난 코스모폴리탄이라서 그리 보는 게 아니라, 한국의 이익을 생각할 때도, 장기적으로는 우리를 해하는 일이다.
다른 각도지만, 새마을 운동은, 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어서 반감은 있지만, 농촌을 개발한데 공헌이 크다고 생각한다. 외국도 이에 관심이 있어서 한국에 오면, 70년대에 하던 식으로 구보나 점호를 시킨다. 그러니, 한국을 싫어하면서 가지. 우리가 생각할 때 맞다며, 같은 방식으로 하는 게, 장기적으로 틀린 게 될 수 있다. 우리가 필요하고, 이익을 볼 게 많으니 자유 무역을 하자고 하면, 다른 나라도 우리의 (보호 무역을 했던) 역사를 아는 데, 욕 안 하겠나. 그러면 안 된다.”
자기들의 과거 행적에도 불구하고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국경을 허물어서 경제를 본격적으로 국제 경쟁에 노출시키도록 요구한다.… 자신들이 개발도상국이었을 때에는 쓰지도 않았던 정책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선진국들의 행태는 다음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내가 했던 대로 하지 말고 내가 말하는 대로 하라.’ (p.105~106)
<가디언>이 이 책을 소개하면서, 노동당 대표로 새로 선출된 에드 밀리밴드에게 “장 교수와 점심을 하라”고 했는데, 실제로 했나? (웃음)
“그 사람이 자존심이 있지, 한 정당의 당수인데, 아직 연락은 없었다. (웃음) 보수당에선 보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러니 내가 욕 들어먹는다. 정체가 불분명하다는 거지. 다음 주에 한나라당에 가서 강연하기로 돼 있는데, 민주당에는 왜 안 가냐고 하는 분들도 있더라. 원래 예정돼 있었는데, 민주당이 장외 투쟁하느라 취소돼서, 못 가는 거다. (웃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내가 말하는 ‘경제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요구하는 데에는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단, 한 가지 전제 조건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씌워 놓은 장밋빛 색안경을 벗어 달라는 것이다. 이 색안경을 쓰고 보면 온 세상이 단순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이제 안경을 벗고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 보자 (p.15)
4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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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prognose
2012.10.13
jere^ve
2012.03.30
천사
201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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