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잔디를 등 뒤에 깔고 하늘을 이불 삼아 음악 속으로 빠져들다
다 큰 어른들이 비눗방울을 불어대고 고성방가를 해도 상관없다.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어도 좋고 서로 감정 상하는 앞자리 경쟁도 없다. 푸른 잔디를 등 뒤에 깔고 하늘을 이불 삼아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곳.
2010.08.17
작게
크게
공유
|
다 큰 어른들이 비눗방울을 불어대고 고성방가를 해도 상관없다. 땅바닥에 대자로 누워 있어도 좋고 서로 감정 상하는 앞자리 경쟁도 없다. 푸른 잔디를 등 뒤에 깔고 하늘을 이불 삼아 음악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곳. 올 여름 가장 기대되는 페스티벌 1위, 2010년 지산 밸리에서 록축제가 시작되었다.
|
빅탑 스테이지의 첫 무대는 국카스텐이었다. 금요일인데다가 한낮이라 관객이 많지는 않았다. 펜스로 분리된 3지역 중에 양 옆은 조금 헐렁했고 가운데 지역만 사람들로 빽빽한 정도였다. “무대를 다 때려 부수고 가겠다”는 국카스텐의 선언은 아쉬움으로 돌아왔다. 공연 중간에 마이크 문제가 생겼고 앵콜없이 시간상 5곡만 부르고 내려왔다. 섭섭한 마음에 엠넷 와이드연예뉴스 공개인터뷰 자리를 찾았다. 안산으로 연습실을 옮겼다는 근황과 곧 신곡을 담은 싱글앨범이 발매될 계획을 전했다. 완벽한 2집을 위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작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익숙한 기타리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빅탑스테이지에 서울전자음악단이 보였다. 「나무랄 데 없는 나무」를 시작으로 「중독」 「모래성」이 이어졌다. 록 팬들을 위한 선곡이라 대외적인 행사용 선곡과는 차이가 있었다.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곡들을 위주로 연주가 진행되었다. 국카스텐에 이어 기타에 문제가 생기는 등 연타로 음향사고가 터져 안타까웠다.
3호선 버터플라이 공연을 보기 위해 200m 정도 떨어진 그린 스테이지로 향했다. 「티티카카」 「식민지」 등 놀기 좋은 빠른 곡들을 선보이자 그린 스테이지는 광란의 스테이지로 변해갔다. 이동이 거의 없던 멤버들도 활기차게 무대를 뛰어다니며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
유앤미블루의 이승열의 무대가 이어졌다. 산 속에서 본 공연이라 그런지 그를 본 첫 느낌은 외로이 어슬렁거리는 짐승 같았다. 그는 감사하다는 말을 연발하며 신곡 「워크(Walk)」를 깜짝 공개하기도 했다. 「시크리틀리(Secretly)」가 끝나고 서울전자음악단의 신윤철을 깜짝 게스트로 초대했다. 한 무대에 선 두 남자의 기타플레이는 이 날 공연 중 최고의 순간이었다.
|
인디 1세대들의 존재감 강한 공연이 지나고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의 보컬 스튜어트 머독(Stuart Murdoch)이 무대에 등장하자 관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는 나오자마자 손을 아래위로 흔들며 관광버스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일단 선춤 후노래였다. 이내 이런 어설픈 동작은 바이러스처럼 퍼져 원시부족들의 거대 축제처럼 사람들은 집단 춤의식에 들어갔다. 페스티벌에 베스트 인기상이 있다면 이들에게 주고 싶다. 관객이 뜨거운 반응을 보이자 직접 무대에 불러내기도 했다. 결국 간택된 다섯 관객은 밴드와 무대를 휘저으며 페스티벌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6시가 넘었다. 낮처럼 환한 주변, 생크림처럼 고루 펼쳐져 있는 구름, 산들산들 바람까지 페스티벌을 위한 무대 장치처럼 느껴질 정도로 모든 환경이 완벽했다. 공연을 따라 이어진 긴 행렬을 끝에 도착한 곳은 다이안 버치(Diane Birch)의 무대였다. 뉴욕에서 날아온 이 미녀는 노래할 때는 부드럽고 조신했지만 멘트할 때는 터프하고 걸걸했다. 바람 사이로 흩어지는 「Rewind」의 트럼펫 리프는 달콤한 와인처럼 깊고 「Valentino」 시원한 맥주처럼 청량감을 더했다.
|
해가 기울어지자 관객들이 더 많이 모여 빅탑 스테이지에도 사람들 간의 간격이 많이 좁아졌다. 뉴욕에서 대박을 치고 있는 뱀파이어 위켄드(Vampire Weekend)는 「Holiday」를 시작으로 독특한 비트의 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클럽을 방불케 하는 빠른 비트는 사람들을 흥분시켜 자연스레 슬램존도 만들어졌다. 특히 잔뜩 게인을 먹인 기타 톤과 한껏 강조된 업비트는 신선하고 탄력 있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그린 스테이지의 마지막 주자로 브로콜리너마저가 올랐다. 매우 혼잡스러운 가운데 ‘춤’이 시작되었다. 2집을 앞두고 있는 만큼 새로운 곡이 많았다. 최근 발매된 두 번째 싱글곡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물론, 「마음의 문제」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등의 신곡을 선보였다.
|
사방에 둘러싼 산허리를 축축하고 어두운 기운이 휘감았다. 헤드라이너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United snakes」가 똬리를 풀고 스피커 사이로 미끄럽게 빠져나왔다. 무대 조명을 끄고 LED 전광판만 켜서 그들의 실루엣만 간신히 보였다. 「Babel」 등 서너 곡은 그린 스테이지에서 공연을 마친 마티나 토플리-버드(Martina Topley-Bird)가 함께 했다.
‘비명 / 관타나모 미군기지 / 끄다 / 끊임없는’ 낮은 읊조림 사이로 전광판에는 붉은 글자들이 뜨기 시작했다. 이후 서너 차례 더 메시지의 행렬은 계속되었다. ‘한국 여성 50% 김치 구매해’ 등의 사회 현상부터 ‘어부의 수입’ ‘영국 석유 회사의 수입’같은 자본주의에 대한 통계 ‘이라크 전쟁 비용’ ‘주한민군 논쟁으로 재배치 예정’ 등 북한과 전쟁에 관련된 메시지가 전광판으로 흘러나왔다.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사람들도 나중에는 모두 일어나 글자를 지켜보았다. 비트 속에 흐르는 이데아, 관객은 소리 없이 그것에 집중했다. 매시브 어택의 목적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처음 뱉은 한국어는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어때요?” “괜찮아요?”였다.
지산의 첫날은 인디들의 축제였다. 국카스텐부터 브로콜리너마저같은 스타 밴드들이 총출동하고 서울전자음악단, 3호선버터플라이, 이승열 등 인디 1세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영국, 미국, 스코틀랜드 인디신에서 선전 하고 있는 밴드들까지 모여 ‘세계인디박람회’가 열린 듯 했다. ‘점점 재밌게’의 매력을 가진 지산밸리 록 페스티벌. 더 화려한 출연진과 주말의 자유를 탑재한 둘째 공연으로 이만 바통을 넘긴다.
글 / 김반야(10_ban@naver.com)
0개의 댓글
필자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