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날]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뜨거운 시간이 열리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화려한 컬러로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짐을 잔뜩 이고 개미처럼 일렬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단란하다 싶을 정도의 인원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입구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다.
2010.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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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록페스티벌, 그 뜨거운 시간이 열리다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서로 인사하느라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소리,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호성, 부릉부릉거리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 등등.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서 몸을 굴렸다. “대체 뭔 일이야?”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옷을 주워 입고 17번 B도로변으로 걸어나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인파의 행렬이 차를 타거나 걸어서 베델로 들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 옆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테이킹 우드스탁』, p.169)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화려한 컬러로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짐을 잔뜩 이고 개미처럼 일렬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단란하다 싶을 정도의 인원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입구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다. 무성한 후기들과 인터넷에 떠돌던 사진을 보며 부풀었던 마음이 벌렁거린다.
록 페스티벌, 아마 국내에서 이뤄지는 축제 중에 가장 일탈적인 행사가 아닐는지. 대기를 떠도는 강한 비트의 사운드가 연신 가슴을 둥둥 울려대고, 술렁술렁한 분위기는 누구에게나 약간의 도발과 파격을 부추긴다. 행여 내가 그렇지 못하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의 기이한 행동에도 이전에 없던 호의가 생긴다. 반전 메시지의 깃발과 약간은 낯간지러운 구호에도 흐르는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곳. 그러니까 이곳 지산 록 페스티벌에 온 거다.
이 정도면 단란하다 싶을 정도의 인원이 잔디에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작년에 비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선배는 말했다. 뙤약볕이었다. 록 페스티벌에는 비가 빠지지 않는다고 해서 우비까지 챙겨왔건만, 비가 올 날씨가 아니다. 강렬한 사운드는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즉시 산화되어 흩어진다. 빅톱 스테이지 앞 잔디에 앉았는데, 햇볕을 고스란히 쬐고 있으니,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작자는 벨 앤 세바스찬이었다! 설렘이 용솟음칠 줄 알았건만, 큰 감흥이 없던 까닭은……. 역시 더위 탓이려니.
◆ 미모의 뉴요커와 발랄한 인디밴드로 몸풀기
정신을 차리고 다이앤 버치 여신님을 영접하러 그린스테이지로 향했다. 빅탑 스테이지와 그린 스테이지의 거리가 생각보다 꽤 멀다. 오기 전부터 여러 번 상상했던, ‘끝없이 푸르른 잔디’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스키장 코스에 눈 대신 잔디가 돋아있는 풍경을 상상하면 된다. 경사의 각도가 꽤 큰 풀밭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무대를 내려다보며 턱을 괴고 음악을 들으면 얼마나 신날까 상상했다. 아마 누군가 넘어져 구르기 시작하면, 아래로 내려올수록 인간들이 한 무더기의 눈덩이처럼 불어나 맨 아래 무대를 볼링 핀처럼 넘어뜨리고 말 것이라고, 선배가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었다. 정작 그린스테이지는 한쪽 언덕진 곳에 마련되어 있어, 많은 관객을 수용하지는 못했다.
선배는 180센티미터 미모의 뉴요커, 다이앤 버치를 본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사람들은 무대 펜스 근처에서 미모의 뉴요커를 가까이 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음반으로 듣던 목소리, 손색없는 원본 라이브!’라고 선배는 감격했다. 올해 초 앨범을 낸 다이앤 버치와 뱀파이어 위켄드를 지산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수확! 다이앤 버치는 큰 키만큼이나 시원스러운 성량을 뽐내며, 두 대의 피아노 앞에서 요리하듯 연주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매력적이었다. 이어진 뱀파이어 위켄드는 이제까지 잔잔했던 라인업에서 그나마 흥을 돋워준 밴드였다. 빠른 비트와 독특한 사운드로 록페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는 몸으로 단련시켜주었다.
◆ 매시브어택이 하고 싶었던 말
빅톱 스테이지로 돌아왔을 땐, 사방이 깜깜했다. 오늘의 헤드라이너 매시브어택의 몽롱한 음악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야 좀 분위기가 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맥주와 칵테일을 쥐고 있다. 매시브어택의 공격(attack)을 고스란히 받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디제이 클럽 같이 꾸며진 무대 위로 매시브한 존재감을 풍기며 「United snakes」를 연주한다.
배경화면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뜬다. 전쟁, 인권, 교육에 관한 메시지가…… 한글로 뜨는 바람에 사람들이 읽는다. 흔들리던 몸의 반동은 서서히 줄고, 눈동자가 빨라진다. 미국에 사는 인디언들의 숫자, 캐나다인이 하루에 쓰는 물의 양, 관타나모 미군기지…… 급기야 일주일의 뉴스도 휙휙 지나간다. 한국 여자들, 50퍼센트 이상이 김치 사먹어…… 이효리 표절 시비 등등. 사람들은 제 각기 뉴스에 환호하기도 하고, 무슨 뜻이냐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때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Tear drop」을 들으며 부들부들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그때도 내 몸은 뭔가 읽거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 음악으로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감동이 밀려오는 한편, 음악의 대기는 점점 낮은 곳으로 침잠하는데, 의식은 또렷하게 부유하는 바람에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혁명가는 가둘 수 있어도, 혁명은 가둘 수 없다’라는 끝내주는 문구가 지나갈 때,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끄덕이던 사람들도 나처럼 그 문장은 기억해도, 무엇을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을 거다. 마지막 문장. ‘이제 네 의견을 말해봐. 그게 나한텐 중요해.’ 매시브어택이 들려주고 싶었던 건 이런 것이었다.
“옆 사람의 심각하고 숙연한 표정을 봤어.” 선배는 록페 역사상 경건한 공연이자, 유래 없이 특이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놀려고 작정한 사람들을 이렇게 숙연하게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매시브어택의 포화와 잠잠해지자, 셔틀버스를 예약해둔 사람들은 부지런히 나가고, 한 무리들은 댄스, 일렉트로닉 스테이지로 흩어졌다. 페스티벌의 첫날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오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묻자, 선배는 “한국 여성의 50퍼센트가 김치를 구매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가 매시브어택 공연에서 무엇을 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답이 아닐는지.
나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서로 인사하느라 울려대는 자동차 경적 소리, 사람들이 내지르는 환호성, 부릉부릉거리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 등등.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몽롱한 상태로 침대에서 몸을 굴렸다. “대체 뭔 일이야?” 나는 커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옷을 주워 입고 17번 B도로변으로 걸어나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인파의 행렬이 차를 타거나 걸어서 베델로 들어오고 있었다.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 옆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테이킹 우드스탁』, p.169)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운 광경은 아니었지만, 화려한 컬러로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짐을 잔뜩 이고 개미처럼 일렬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직은 단란하다 싶을 정도의 인원이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입구로 속속 들어가고 있었다. 무성한 후기들과 인터넷에 떠돌던 사진을 보며 부풀었던 마음이 벌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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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페스티벌, 아마 국내에서 이뤄지는 축제 중에 가장 일탈적인 행사가 아닐는지. 대기를 떠도는 강한 비트의 사운드가 연신 가슴을 둥둥 울려대고, 술렁술렁한 분위기는 누구에게나 약간의 도발과 파격을 부추긴다. 행여 내가 그렇지 못하더라도 처음 보는 사람들의 기이한 행동에도 이전에 없던 호의가 생긴다. 반전 메시지의 깃발과 약간은 낯간지러운 구호에도 흐르는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게 되는 곳. 그러니까 이곳 지산 록 페스티벌에 온 거다.
이 정도면 단란하다 싶을 정도의 인원이 잔디에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작년에 비하면 꽤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고 선배는 말했다. 뙤약볕이었다. 록 페스티벌에는 비가 빠지지 않는다고 해서 우비까지 챙겨왔건만, 비가 올 날씨가 아니다. 강렬한 사운드는 스피커에서 터져 나오는 즉시 산화되어 흩어진다. 빅톱 스테이지 앞 잔디에 앉았는데, 햇볕을 고스란히 쬐고 있으니, 잘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무대 위에서 연주하는 작자는 벨 앤 세바스찬이었다! 설렘이 용솟음칠 줄 알았건만, 큰 감흥이 없던 까닭은……. 역시 더위 탓이려니.
◆ 미모의 뉴요커와 발랄한 인디밴드로 몸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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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180센티미터 미모의 뉴요커, 다이앤 버치를 본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사람들은 무대 펜스 근처에서 미모의 뉴요커를 가까이 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음반으로 듣던 목소리, 손색없는 원본 라이브!’라고 선배는 감격했다. 올해 초 앨범을 낸 다이앤 버치와 뱀파이어 위켄드를 지산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수확! 다이앤 버치는 큰 키만큼이나 시원스러운 성량을 뽐내며, 두 대의 피아노 앞에서 요리하듯 연주했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매력적이었다. 이어진 뱀파이어 위켄드는 이제까지 잔잔했던 라인업에서 그나마 흥을 돋워준 밴드였다. 빠른 비트와 독특한 사운드로 록페에 완전히 적응할 수 있는 몸으로 단련시켜주었다.
◆ 매시브어택이 하고 싶었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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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톱 스테이지로 돌아왔을 땐, 사방이 깜깜했다. 오늘의 헤드라이너 매시브어택의 몽롱한 음악이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제야 좀 분위기가 난다.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맥주와 칵테일을 쥐고 있다. 매시브어택의 공격(attack)을 고스란히 받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디제이 클럽 같이 꾸며진 무대 위로 매시브한 존재감을 풍기며 「United snakes」를 연주한다.
배경화면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뜬다. 전쟁, 인권, 교육에 관한 메시지가…… 한글로 뜨는 바람에 사람들이 읽는다. 흔들리던 몸의 반동은 서서히 줄고, 눈동자가 빨라진다. 미국에 사는 인디언들의 숫자, 캐나다인이 하루에 쓰는 물의 양, 관타나모 미군기지…… 급기야 일주일의 뉴스도 휙휙 지나간다. 한국 여자들, 50퍼센트 이상이 김치 사먹어…… 이효리 표절 시비 등등. 사람들은 제 각기 뉴스에 환호하기도 하고, 무슨 뜻이냐며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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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무슨 음악을 들었는지 기억이 잘 나질 않는다. 「Tear drop」을 들으며 부들부들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그때도 내 몸은 뭔가 읽거나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 음악으로 이런 것도 할 수 있구나, 감동이 밀려오는 한편, 음악의 대기는 점점 낮은 곳으로 침잠하는데, 의식은 또렷하게 부유하는 바람에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혁명가는 가둘 수 있어도, 혁명은 가둘 수 없다’라는 끝내주는 문구가 지나갈 때, 옆에서 맞장구를 치며 끄덕이던 사람들도 나처럼 그 문장은 기억해도, 무엇을 들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을 거다. 마지막 문장. ‘이제 네 의견을 말해봐. 그게 나한텐 중요해.’ 매시브어택이 들려주고 싶었던 건 이런 것이었다.
“옆 사람의 심각하고 숙연한 표정을 봤어.” 선배는 록페 역사상 경건한 공연이자, 유래 없이 특이한 공연이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놀려고 작정한 사람들을 이렇게 숙연하게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매시브어택의 포화와 잠잠해지자, 셔틀버스를 예약해둔 사람들은 부지런히 나가고, 한 무리들은 댄스, 일렉트로닉 스테이지로 흩어졌다. 페스티벌의 첫날밤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오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을 묻자, 선배는 “한국 여성의 50퍼센트가 김치를 구매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우리가 매시브어택 공연에서 무엇을 했는지 단적으로 말해주는 대답이 아닐는지.
6개의 댓글
필자
채널예스
채널예스는 예스24에서 운영하는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책, 영화, 공연, 음악, 미술, 대중문화, 여행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 보세요.
퐁당퐁당
2010.08.16
개인적으로는 벨엔세바스찬, 첫 날 가장 기대한 밴드-
가지 못했으나 머리속, 마음속으로 상상하며 음악을 듣게 했죠!
art519
2010.08.11
siair5
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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