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연회]길 끝에서 나를 만나다 - 『까미노 데 산띠아고』 이강혁, 『순진한 걸음』 순진
순례자의 길, 까미노 데 산띠아고. 그 길의 또 다른 이름은 ‘치유의 길’이다. 간절한 믿음으로 길을 걸었던 옛 순례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종종 변화의 기적을 선사한다.
2010.06.22
운동 중 유일하게 걷기를 좋아한다. 헬스를 몇 달 끊었지만, 근육을 키우는 것은 성격과 맞지 않고, 그렇다고 구기 종목과 친한 것도 아니다. 유일하게 숨쉬기 운동 외에 하는 것이 바로 ‘걷기’. 취미가 사람 관찰이고 특기가 사람 관계 망상인 내게, 걷기는 하늘이 내려준 것에 다름없다. 오른발을 내밀고 다음은 왼발을 내밀고 오른발 그리고 왼발…… 단순한 신체적인 반복을 하다보면 마음은 평화로워진다. 걷는 행위가 리듬을 타면, 내 몸이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우주적인 존재가 된 것만 같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은 상태. 그것은 평지를 걸으면서 완성된다.
걷는 것과 관련되어 내가 겪은 가장 황홀한 체험은 역시,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일 것이다. 개인적인 종교는 기독교지만, 내가 가본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신의 땅이었다. 구름에 온통 휩싸여 꼭대기 만년설만 슬쩍 내보이는 설산엔 지금도 신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루 8시간 넘게 걷는 나름의 강행군이었다. 첫날은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았고, 둘째 날에는 과거의 내가 보였다. 셋째 날에는 미래가 보이는 듯 했고, 넷째 날에는 현재의 나를 반성하게 됐다. 다섯째 날에는 우주적인 존재로서 내가 어렴풋 느껴졌는데…… 3210m 목적지인 ‘푼힐’에 벌써 도착해 있었다. 그때의 기분이란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신들의 세상에서 발로 뻥 차여 인간계로 추방당한 느낌이었다.
고산병이나, 배앓이 없이 가뿐하게 히말라야를 맛본 나의 다음 목표는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이었다.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고, TV에서 안달루시아 지방이라도 비추면 넋이 빠져 보곤 했다. 하지만 여행을 결심한 게 벌써 8년 전. 아직도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많았다. 우선 800km 걷기는 자신 없었으며, 한 달이라는 시간도 현실상 무리였다. 또 스페인에서 유로가 사용되면서, 여행 비용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아, 나는 결국 영영 순례자의 길을 걸을 수 없는 것일까.
가장 현실적인 여행기 『까미노 데 산띠아고』
본격적인 여름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홍대의 주말은 뜨거웠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부터 사람들의 홍수에 휩쓸려 난파된 배처럼 어수선한 마음으로 강연회장에 도착했다. 저자와의 만남이라면, 책과는 또 다른 여행이라 할 수 있는데 도착 전에 이미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강연회. 주말이라서 그런지 쇼핑 보따리가 청중 틈에 놓여 있었고, 그 보따리는 대부분 등산장비였다. ‘아, 이 사람들은 정말 체계적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프로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된 강연회에서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이강혁 작가의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한 손에 척 잡히는 작은 크기의 책이다. 대전외국어고등학교에서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저자답게, 책의 뒷부분은 여행지에서 쓸 수 있는 스페인어 표현이 정리되어 있다. 각 구간별로 자세한 지도와 단면적이 정리돼 있으며, 주요 도시의 볼거리와 묵을 곳이 기록돼 있다. 산을 좋아하고 등산에 자신 있어하는 저자의 현실적인 여행 가이드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제8구간인 ‘로그로뇨 -> 나헤라’의 경우, 29.4km 7시간 30분 걸렸다는 정보가 우선 눈에 띈다. 그리고 “라 리오하 지방의 흙길은 맑을 때는 아름답지만 비가 내릴 때는 진흙으로 변해서 걷기가 불편하다”라는 주위사항도 친절하게 명기되어 있다. 400m에서 610m 사이인 구간 단면도 역시, 실제로 걷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알베르게 역시 ‘뻬레그리노스 데 나바레떼, 엘 깐따로, 산 사뚜르니노, 뻬레그리노스 데 나헤라, 뻬레그리노스 산초 떼르세로-라 후데리아’ 등이 전화번호, 가격,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정리되어 있다. 많은 사진과 지역 역사에 대한 지식도 제공하기 때문에,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까미노 가는 길이 든든할 것도 같다. 그리고 40여 페이지에 걸친 부록, 까미노에서 유용한 스페인어 표현은 뭐랄까 제스추어가 만국 공통어라지만, 영어 한마디 건네는 것도 부담인 사람들에게, 밥을 굶지 않을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 같을 것이다. 그것은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또 대학에서 강의하는 작가만의 특기를 잘 살린, 빛나는 여행 정보서다.
“?Sin prisa, sin pausa!”(서두르지는 말되, 멈추지 마라!)
작가의 강연은 짧게 진행됐고, 스페인을 여행하고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고 곧바로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졌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 위주의 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강혁 작가가 전형적인 교사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정서적인 감정 교류보다는 질문과 답변 쪽이 더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우선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 신고, 배낭을 메는 연습했다는 이강혁 작가. 생필품이 몽땅 든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에 10km씩, 800km를 걸어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동행인 없이 떠난 여행에, 초기 2, 3일은 걱정을 많이 했다는 그. 어떻게 사람을 사귀고, 여행하는 다른 무리에 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하지만 4일째 되던 날 한국 여성을 만나고, 조금씩 마음과 몸이 풀리면서 나머지 25일 동안 밤마다 외국 친구들과 어우러져 파티하고 즐겁게 지냈다는 작가의 말에, 청중들은 부러운 탄성을 흘렸다.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그가 가장 크게 느꼈다는 것은 “다양한 세상과, 아이들의 다양성”이라고. 수십 년 교사로 보낸 이의 ‘직업병’이 여행지에서도 십분 발휘됐다.
순례자의 길에는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스탬프를 찍게 되는데, 스탬프 개수에 집착하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는 이강혁 작가. 마음을 비우는 여행지에서, 오히려 집착을 하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작가는 순례자의 길 중간에 몸이 힘들 경우, 버스나 교통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단순히 ‘걷는 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금 더 실질적인 도움, 질문과 답변
질문의 시간에는 좀 더 많은 청중들이 참여했다. 질문자에게는 책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이들은 여행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마치 다음 달 출발하는 프랑스행 (순례자의 길은 프랑스 쪽에서 시작하는 게 편하다고) 티켓을 끊어놓은 사람처럼 적극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그에 반해 이강혁 작가는 대답을 많은 대답을 ‘잘 모르겠다’고 일관했다. 산티아고 가는 시기 같은 현실적인 질문에는 바로 대답을 했지만, 가장 필요 없었던 물건을 묻는 질문에서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순례자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도움은 주되,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직접 부딪쳐 해결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씀씀이가 느껴졌다.
작가 이강혁이 말하는 산티아고 여행 가는 적기는?
5, 6월이나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이라고.
가지고 갔던 것 중, 가장 소중했던 물건은?
mp3p와 침낭커버라고. 특히 알베르게에 일반적으로 이부자리가 갖춰져 있지만 워낙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지라, 침낭커버를 하나 가져가면 직접 접촉도 안하고 무게도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고. 산악인의 내공이 느껴졌다.
여행에 기회비용은 무엇이었나?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역시 ‘기회비용’일 것이다. 돈, 시간, 한국에서 한 달을 보낸다면 쌓을 수 있는 경력 등. 단순히 며칠 휴가 내고 갈 수 있는 동남아와는 달리 순례자의 길을 정식으로 걷는다면 최소한 한 달에서 한 달반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잘 모르겠다’. 올 겨울 다시 갈 계획이 있는데, 다녀와서 심오하게 생각해보겠다는 이강혁 작가의 얼굴에. 까미노에서 얻은 충만한 행복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여행기 『순진한 걸음』
이날 저자 강연회는 ‘까미노’를 주제로 2명의 다른 작가가 1시간씩 진행하는 구성이었다. 이강혁 작가가 꼼꼼하게 정보를 다뤘다면, 또 다른 작가 ‘순진’ 씨는 여행 중 사람들을 만나고 겪게 되는 에피소드 중심으로 감성적으로 적어내려 갔다. 몸이 약하고 간절한 기적을 바라며 까미노로 향한 젊은 여자와, 두 딸의 아버지이자 학교 교사인 40대 남자와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배낭 메는 법, 등산화 신는 법 등 도보 여행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는 순진 씨. 평소 너무 가고 싶었지만, 감히 갈 수 없었다는 말에 깊이 공감됐다. 운명적인 힘에 이끌려 찾은 산티아고. 거의 100일간 여행을 계획했을 정도로 작가 순진 씨는 몸이 약했다. 오죽했으면 책상 위에 유언장을 써놓고 떠났다고 했을까. 순진 씨 역시 이강혁 작가처럼 사흘째 되던 날 처음으로 순례자들을 만났는데 함께 밥을 먹으며 길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길을 걷는 동안 발톱이 빠지고, 발이 붓고, 식중독에 걸려 닷새 고생했다는 순진 씨. 식중독에 신음하며 울고 있을 때, 한국인 모녀가 슈퍼에서 쌀을 사다가 그녀에게 미음을 끓여줬다고. 루게릭에 걸린 동생을 위하여 치유의 기적이 있는 성수를 받았지만, 순진 씨한테 남겨주고 그들은 몰래 떠나버렸다. 집안의 불화로, 또 약한 몸으로 아파하던 순진 씨가 순례자의 길에서 발견한 것은 “세상에는 친절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진실”.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원해 까미노를 찾았지만, 실제로 다녀온 후 큰 변화는 없었다는 순진 씨. 하지만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가슴 속에서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순례자의 길, 까미노 데 산띠아고. 그 길의 또 다른 이름은 ‘치유의 길’이다. 간절한 믿음으로 길을 걸었던 옛 순례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종종 변화의 기적을 선사한다. 요즘 ‘걷기’가 사람들 사이에 유행이 되면서, 히말라야 트래킹이나 순례자의 길을 많이 찾고 있다. 덧붙여 관련 책자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강혁 작가의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정말 여행 갈 때 가져가기 좋은 ‘정보지’다. “바르지 못한 스페인어 표현을 고쳐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야심처럼, 그의 책은 명확한 스페인어 표기를 하려는 노력이 빛난다. 이 책 한 권이면 순례자의 길 도보 여행이 든든할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책 한 권 옆에 끼고 순례자의 길에 나서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걷는 것과 관련되어 내가 겪은 가장 황홀한 체험은 역시,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일 것이다. 개인적인 종교는 기독교지만, 내가 가본 히말라야는 그야말로 신의 땅이었다. 구름에 온통 휩싸여 꼭대기 만년설만 슬쩍 내보이는 설산엔 지금도 신들이 살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루 8시간 넘게 걷는 나름의 강행군이었다. 첫날은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았고, 둘째 날에는 과거의 내가 보였다. 셋째 날에는 미래가 보이는 듯 했고, 넷째 날에는 현재의 나를 반성하게 됐다. 다섯째 날에는 우주적인 존재로서 내가 어렴풋 느껴졌는데…… 3210m 목적지인 ‘푼힐’에 벌써 도착해 있었다. 그때의 기분이란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신들의 세상에서 발로 뻥 차여 인간계로 추방당한 느낌이었다.
고산병이나, 배앓이 없이 가뿐하게 히말라야를 맛본 나의 다음 목표는 스페인의 ‘순례자의 길’이었다. 인터넷을 열심히 찾아보고, TV에서 안달루시아 지방이라도 비추면 넋이 빠져 보곤 했다. 하지만 여행을 결심한 게 벌써 8년 전. 아직도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많았다. 우선 800km 걷기는 자신 없었으며, 한 달이라는 시간도 현실상 무리였다. 또 스페인에서 유로가 사용되면서, 여행 비용은 천정부지로 올라버렸다. 아, 나는 결국 영영 순례자의 길을 걸을 수 없는 것일까.
가장 현실적인 여행기 『까미노 데 산띠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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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여름은 시작되지 않았지만, 홍대의 주말은 뜨거웠다. 홍대입구역 5번 출구부터 사람들의 홍수에 휩쓸려 난파된 배처럼 어수선한 마음으로 강연회장에 도착했다. 저자와의 만남이라면, 책과는 또 다른 여행이라 할 수 있는데 도착 전에 이미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었다. 어렵게 찾아간 강연회. 주말이라서 그런지 쇼핑 보따리가 청중 틈에 놓여 있었고, 그 보따리는 대부분 등산장비였다. ‘아, 이 사람들은 정말 체계적으로 여행을 준비하는 프로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된 강연회에서 역시나 내 생각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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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제8구간인 ‘로그로뇨 -> 나헤라’의 경우, 29.4km 7시간 30분 걸렸다는 정보가 우선 눈에 띈다. 그리고 “라 리오하 지방의 흙길은 맑을 때는 아름답지만 비가 내릴 때는 진흙으로 변해서 걷기가 불편하다”라는 주위사항도 친절하게 명기되어 있다. 400m에서 610m 사이인 구간 단면도 역시, 실제로 걷는 이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알베르게 역시 ‘뻬레그리노스 데 나바레떼, 엘 깐따로, 산 사뚜르니노, 뻬레그리노스 데 나헤라, 뻬레그리노스 산초 떼르세로-라 후데리아’ 등이 전화번호, 가격,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이 정리되어 있다. 많은 사진과 지역 역사에 대한 지식도 제공하기 때문에, 이 책 한 권만 있으면 까미노 가는 길이 든든할 것도 같다. 그리고 40여 페이지에 걸친 부록, 까미노에서 유용한 스페인어 표현은 뭐랄까 제스추어가 만국 공통어라지만, 영어 한마디 건네는 것도 부담인 사람들에게, 밥을 굶지 않을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 같을 것이다. 그것은 스페인어를 전공하고 또 대학에서 강의하는 작가만의 특기를 잘 살린, 빛나는 여행 정보서다.
“?Sin prisa, sin pausa!”(서두르지는 말되, 멈추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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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강연은 짧게 진행됐고, 스페인을 여행하고 책을 쓰게 된 이유를 이야기하고 곧바로 질문과 답변으로 이어졌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 위주의 책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강혁 작가가 전형적인 교사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정서적인 감정 교류보다는 질문과 답변 쪽이 더 어울렸다고 생각한다.
우선 발에 맞는 신발을 찾아 신고, 배낭을 메는 연습했다는 이강혁 작가. 생필품이 몽땅 든 배낭을 짊어지고 하루에 10km씩, 800km를 걸어야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특히 동행인 없이 떠난 여행에, 초기 2, 3일은 걱정을 많이 했다는 그. 어떻게 사람을 사귀고, 여행하는 다른 무리에 낄 수 있을까 고민했다고. 하지만 4일째 되던 날 한국 여성을 만나고, 조금씩 마음과 몸이 풀리면서 나머지 25일 동안 밤마다 외국 친구들과 어우러져 파티하고 즐겁게 지냈다는 작가의 말에, 청중들은 부러운 탄성을 흘렸다. 외국 사람들과 이야기하면서 그가 가장 크게 느꼈다는 것은 “다양한 세상과, 아이들의 다양성”이라고. 수십 년 교사로 보낸 이의 ‘직업병’이 여행지에서도 십분 발휘됐다.
순례자의 길에는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스탬프를 찍게 되는데, 스탬프 개수에 집착하는 여행자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다는 이강혁 작가. 마음을 비우는 여행지에서, 오히려 집착을 하는 것 같았다고. 그래서 작가는 순례자의 길 중간에 몸이 힘들 경우, 버스나 교통의 힘을 빌리는 것도 좋은 것 같다고 말한다. 단순히 ‘걷는 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는 그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금 더 실질적인 도움, 질문과 답변
질문의 시간에는 좀 더 많은 청중들이 참여했다. 질문자에게는 책을 주는 이벤트가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이들은 여행에 대한 현실적인 대답을 원하고 있었다. 마치 다음 달 출발하는 프랑스행 (순례자의 길은 프랑스 쪽에서 시작하는 게 편하다고) 티켓을 끊어놓은 사람처럼 적극적인 질문이 이어졌다. 그에 반해 이강혁 작가는 대답을 많은 대답을 ‘잘 모르겠다’고 일관했다. 산티아고 가는 시기 같은 현실적인 질문에는 바로 대답을 했지만, 가장 필요 없었던 물건을 묻는 질문에서는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순례자의 길을 걸으려는 사람에게 현실적인 도움은 주되, 감성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직접 부딪쳐 해결하기를 바라는 작가의 씀씀이가 느껴졌다.
작가 이강혁이 말하는 산티아고 여행 가는 적기는?
5, 6월이나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이라고.
가지고 갔던 것 중, 가장 소중했던 물건은?
mp3p와 침낭커버라고. 특히 알베르게에 일반적으로 이부자리가 갖춰져 있지만 워낙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지라, 침낭커버를 하나 가져가면 직접 접촉도 안하고 무게도 부담이 없어서 좋았다고. 산악인의 내공이 느껴졌다.
여행에 기회비용은 무엇이었나?
여행을 꿈꾸는 이들의 가장 현실적인 질문은 역시 ‘기회비용’일 것이다. 돈, 시간, 한국에서 한 달을 보낸다면 쌓을 수 있는 경력 등. 단순히 며칠 휴가 내고 갈 수 있는 동남아와는 달리 순례자의 길을 정식으로 걷는다면 최소한 한 달에서 한 달반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직 잘 모르겠다’. 올 겨울 다시 갈 계획이 있는데, 다녀와서 심오하게 생각해보겠다는 이강혁 작가의 얼굴에. 까미노에서 얻은 충만한 행복이 가득 자리하고 있었다.
또 다른 여행기 『순진한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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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 메는 법, 등산화 신는 법 등 도보 여행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는 순진 씨. 평소 너무 가고 싶었지만, 감히 갈 수 없었다는 말에 깊이 공감됐다. 운명적인 힘에 이끌려 찾은 산티아고. 거의 100일간 여행을 계획했을 정도로 작가 순진 씨는 몸이 약했다. 오죽했으면 책상 위에 유언장을 써놓고 떠났다고 했을까. 순진 씨 역시 이강혁 작가처럼 사흘째 되던 날 처음으로 순례자들을 만났는데 함께 밥을 먹으며 길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고.
길을 걷는 동안 발톱이 빠지고, 발이 붓고, 식중독에 걸려 닷새 고생했다는 순진 씨. 식중독에 신음하며 울고 있을 때, 한국인 모녀가 슈퍼에서 쌀을 사다가 그녀에게 미음을 끓여줬다고. 루게릭에 걸린 동생을 위하여 치유의 기적이 있는 성수를 받았지만, 순진 씨한테 남겨주고 그들은 몰래 떠나버렸다. 집안의 불화로, 또 약한 몸으로 아파하던 순진 씨가 순례자의 길에서 발견한 것은 “세상에는 친절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진실”. 기적과도 같은 변화를 원해 까미노를 찾았지만, 실제로 다녀온 후 큰 변화는 없었다는 순진 씨. 하지만 자신을 옭아매고 있던 모든 존재들에 대해서 가슴 속에서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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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길, 까미노 데 산띠아고. 그 길의 또 다른 이름은 ‘치유의 길’이다. 간절한 믿음으로 길을 걸었던 옛 순례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하겠지만, 현대인들에게도 종종 변화의 기적을 선사한다. 요즘 ‘걷기’가 사람들 사이에 유행이 되면서, 히말라야 트래킹이나 순례자의 길을 많이 찾고 있다. 덧붙여 관련 책자도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강혁 작가의 『까미노 데 산띠아고』는 정말 여행 갈 때 가져가기 좋은 ‘정보지’다. “바르지 못한 스페인어 표현을 고쳐주고 싶었다”는 작가의 야심처럼, 그의 책은 명확한 스페인어 표기를 하려는 노력이 빛난다. 이 책 한 권이면 순례자의 길 도보 여행이 든든할 것 같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책 한 권 옆에 끼고 순례자의 길에 나서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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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진한 걸음
출판사 | 샨티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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