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예전 글에 비해서는 한결 가벼운 글이 될 예정입니다. 원래도 제 글에 대단한 논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이번 글은 논리 없이 팬심으로 써 내려간 신앙 간증에 가까운 오글오글한 글이 될 겁니다. 논리도 없이 A4 다섯 장 이상을 끌어 나가는 걸 보시는 게 독자 여러분들께도 유쾌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됩니다만, 본디 신앙은 논리를 초월하는 믿음을 요구하는 법입니다. 저는 한 번 정도는 스스로에게 이런 글을 써도 된다고 허락할 수 있다 생각합니다. 첫째로는 지난 번 칼럼이 지나치게 무거웠던 터라 한 박자 쉬어갈 필요도 있다 싶고요, 둘째로는 제 자신이 6월 2일을 전후로 해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에너지를 지방선거와 그에 관련해 펼쳐진 담론 싸움에 소모한 바람에 저 역시 쉼표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처음 윤하가 ‘오리콘의 혜성’이라는 별호를 달고 기세 좋게 역수입의 경로를 거쳐 「비밀번호 486」을 들고 나왔을 때를 기억하십니까? 비록 가사는 90년대에 질풍노도 10대를 보낸 세대가 아니면 무슨 뜻인지 모를 486이란 삐삐 암구호를 어떻게든 끼워 맞추느라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었지만, 락 비트에 맞춰서 피아노를 치면서 무시무시한 하이노트를 상큼한 표정으로 청아하게 소화해 내는 스무 살짜리 여가수라니요. 가사야 어찌 되었든 다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대중음악 신을 온통 도배하다시피 했던 흑인음악과 SMP의 물결 속에서 락을 자신의 음악적 기반으로 삼은 젊은 뮤지션이 나온 것만으로도 기특한데, 가창력마저 가히 폭발적이었으니 말 다했지요. 지금이야 비슷한 계열의 여가수로 아이유가 등장을 하긴 했습니다만, 윤하가 한국 대중음악 신에 정식으로 등장했던 2007년 초에는 윤하는 그야말로 독보적인 존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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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가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것은 윤하가 어린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일본에서부터 데뷔를 한 덕도 있었고, 애니메이션 <블리치>의 엔딩곡을 부른 덕도 있었고, 그녀의 오밀조밀한 외모 덕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윤하를 한 해에도 수십, 수백씩 쏟아져 나왔다가 잊히는 신인들 사이에 휩쓸리지 않고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켰던 것은 그녀의 폭발적인 가창력이었습니다. 윤하는 저음과 고음을 큰 힘 들이지 않고 능수능란하게 조율하며 시원시원하게 뽑아내는 보컬 실력을 갖췄고 그것은 지금까지도 동시대 동년배 아티스트들이 미처 갖추지 못한 덕목이지요. 물론 요즘 아이돌 신에서도 수준 이상의 가창력을 지닌 아티스트들이 있긴 합니다. 그러나 그중 누구도 윤하처럼 하이노트를 굵고 선명하고 청아하게 뽑아내진 못합니다. 윤하는 고음부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갑자기 날카로워지지 않는 탄탄한 고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 고음을 유지하면서도 감정 표현에 능숙합니다.
윤하의 가창력은 음악 선배들이 먼저 알아차렸습니다. 유희열은 그녀를 TOY의 6집
쓰고 보니 정말 윤하는 한시도 쉬지 않고 2007년을 벅차게 질주했군요. 1집 활동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신의 일본에서의 활동을 정리한 1.5집 <혜성>을 발매했고, 직후에는 TOY의
연달아 발매한 2집
문제는 타이틀곡이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윤하의 팬이라면 대부분 똑같이 투덜거리는 내용입니다만, 그것이 윤하의 결정인지 기획사의 결정인지는 몰라도 이상하게 앨범 전체에서 가장 완성도가 떨어지는 트랙들을 대중성이 있는 곡이라 착각하고 타이틀곡으로 미는 경향이 있단 말입니다. 이 앨범에서 타이틀곡으로 2달 넘게 밀었던 「텔레파시」는 전작 「비밀번호 486」에서 재미를 보았던 틴 로맨스와 피아노 기믹을 내세운 팝락 넘버였습니다만, 앨범 전체의 인상을 결정할 만큼 좋은 트랙은 아니었습니다. 지나치게 통속적인 데다가 전작에 비해 어떤 성장을 보였는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는 안전하기 짝이 없는 트랙이었지요. 타이틀곡만 듣고 넘어간 사람들이야 별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었겠지만, 앨범 전체를 차분하게 들어 본 사람들이라면 도대체 왜 이 곡을 타이틀로 밀었는지 답답해하는 게 당연했지요. 굳이 비슷한 스타일로 대중성을 고려한 타이틀곡을 골라야 했다면 첫 번째 트랙 「Gossip Boy」가 더 완성도도 높고 매력적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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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못해 게시판에 글을 써도 첫 댓글이 그 이후의 댓글들 분위기를 좌우하는 법이고, 영화도 첫 주말 스코어가 전체 흥행 성적을 가늠케 하는 법인데, 첫 싱글 컷이 시원찮으니 앨범 전체에 대한 반응도 신통치 않았습니다. 2달 넘게 「텔레파시」를 밀다가 「Gossip Boy」를 한 달 정도 밀어 보았지만, 윤하에게서 진화의 흔적을 보고 싶어 했던 대중들은 이미 전작의 게으른 반복처럼 보였던 「텔레파시」에 다소 물린 상태였어요. 2집
2009년에 접어들면서 윤하는 그 활동 빈도수가 더 높아졌습니다만, 팬들로 하여금 과연 그게 단지 좋기만 한 걸까 걱정을 하며 지켜보게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 영화와 싱글 앨범 활동을 하다가 4월에 발매한 3집의
물론 소속사가 모두 다 완강히 부정을 했고, 윤하가 직접 작곡한 게 아니라 일본과 스웨덴의 작곡가들이 작곡을 해 준 트랙이긴 합니다만, 싱어송라이터로 성장을 노리던 윤하가 표절 의혹이 짙은 노래를 들고 나왔다는 건 결코 즐거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윤하 본인조차 인정할 정도로 비슷한 노래였으니 말입니다. 덕분에 앨범 전체의 인상이 반감되는 건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더 안타까운 건 그 뒤를 이어 나오는 피아노 연주곡 「She is…」와 밴드 편곡의 발라드 「사랑하다」는 윤하의 자작곡으로 그 완성도로 보아 마땅히 대중의 너른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는 노래들이었단 거죠. 그러나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2008~2009년을 지긋지긋하게 메웠던 일렉트로니카 댄스 장르인 「Luv U Luv U Luv U」가 끼어듭니다. 윤하가 이 노래를 소화를 못 해내는 건 아니었고, 전작에 일렉트로니카 넘버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트랙이 이 앨범의 이 대목에 실려야 하는 그 어떤 맥락이나 당위성도 없이 뜬금없이 툭 던져진 듯한 이 노래는 ‘윤하도 일렉트로니카 댄스 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는 것 외에는 아무 기능도 수행하지 못합니다. 심지어 앞에서 아슬아슬하게나마 유지되던 앨범 전체의 색깔을 단칼에 끊어내는 블랙홀 같은 트랙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2집에서 선보인 바 있던 「My Song And…」의 한국어 버전과 앞선 트랙들의 연주곡 버전들…… 이렇게 들쭉날쭉한 트랙 10개로 채워진 3집
섣부른 넘겨짚기는 글 쓰는 사람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만, 어쩌면 이 모든 혼란은 윤하를 어떤 카테고리에 위치시키고 싶은가 하는, 분류의 불일치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윤하가 아직까지는 라이온미디어 소속 연예인들 중 유일하게 대중의 눈도장을 찍는 데 성공한 가수이다 보니, 소속사 입장에서는 대중성을 강조해서 최대한 홍보를 하고 싶은 게 어쩌면 당연하지 않습니까? 아티스트로서의 성장을 강조하는 곡들보다 어정쩡하게 대중성을 강조한 트랙들을 타이틀로 앞세운 것을 봐도 그런 심증은 더 짙어집니다. 1집 <고백하기 좋은 날>을 발매한 후 음악평론가 임진모와 가졌던 인터뷰에서도 아티스트 본인이 후속곡으로 밀고 싶어 했던 조금은 하드한 락 넘버 「Fly」라는 곡이 엄연히 있었고, 윤하 스스로는 어떤 곡이 후속곡이 될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말하는 그 시점에 이미 기획사에서는 말랑말랑한 팝락 넘버 「연애조건」이 후속곡이라는 기사를 낸 상황인 걸 볼 수 있지요. 소속사가 바라는 윤하의 모습과 윤하 본인이 바라는 윤하의 모습이 조금은 다른 게 아니었을까 하는 부분을 조심스레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3집
“다른 음악인들의 의견을 많이 듣다 보니 내 가치관도 자연스럽게 바꿔졌다. 대중가수는 대중들에 의해 설 수 있는 가수라는 게 핵심이었다.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지만 그 안에 들어가야 하는 게 대중가수의 목표다. 저를 그렇게 만들어주는 건 제 음악을 들어주는 분들이고 그분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만을 하려 한다면 산에 혼자 가서 해도 된다. 날 위해 만드는 거라면 굳이 많은 사람들의 시간을 빼앗아 가면서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중략) 2집은 너무 어둡게 가서 듣는 사람도 어두워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나도 힘내서 밝은 모습을 드러내면 듣는 분들도 조금은 더 밝아질 거라 생각하며 3집을 만들었다.”
물론 대중음악이란 것 자체가 대중의 사랑을 받았을 때야 가능한 거란 지적은 정확합니다. 그러나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노래를 한다는 것이 아티스트로서의 자기 색을 죽이는 것과 같은 뜻은 아닐 겁니다. 정작 그때까지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많은 부분에 직접 참여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이 지점에서 제 주변의 동료 리스너들은 슬슬 윤하를 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기획사에서 밀어주는 타이틀곡들은 매번 납득이 안 갔으니 마음 놓고 팬질을 할 수 없잖습니까. 매번 타이틀곡을 접하는 심정이 흡사 ‘이래도 계속 팬질할 거니’라는 소속사의 가혹한 질문에 답해야 되는 어린 양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지난날 「O-正反合」을 들으며 ‘내가 이런 노래를 공방 가서 따라 부를 수 있을까’ 고뇌하던 동방신기 팬을 놀렸던 게 뼈저리게 후회가 되더군요. 가뜩이나 타이틀곡 선정도 가혹한데, 3집
그러나 저로서는 윤하에 대한 기대를 접기 어려웠습니다. 윤하는 데뷔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동시대에 활약하는 동년배 아티스트들 중 가장 발군의 가창력을 지니고 있으며, 주류 신에서 활동하는 여가수들 중에서 트렌드에 함락당하지 않고 여전히 밴드 음악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2집에서 보여준 것처럼 앨범 전체의 기승전결을 고민할 줄 아는 자의식 있는 아티스트였습니다. 어떻게 쉽게 포기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 기대는 2009년 12월에 발매된 3집
언제나 속을 썩이던 타이틀곡 선정도 이번에는 비교적 양호했습니다. 두 번째 트랙 「오늘 헤어졌어요」는 그 통속성에서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하는 포인트가 노골적인 발라드 트랙이었습니다만, 적어도 앨범 전체의 인상을 흐리게 할 만큼 퀄리티가 심하게 떨어지는 곡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가사와 멜로디가 앞 트랙 「Say Something」을 부드럽게 승계해서 장르가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연결이 어색하지 않았지요. 무엇보다 윤하가 이제 부드러운 발라드 넘버에서도 힘 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해낼 수 있을 만큼 완숙한 테크닉을 갖췄음을 증명했고, 그럼에도 발라드 장르 안에서 특유의 청명하고 힘 있는 고음을 조화롭게 소화할 수 있다는 것까지 보여줬습니다. 대중성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느라 오히려 대중들이 윤하에게 기대했던 점들을 놓쳤던 예전 타이틀곡들에 비해서 「오늘 헤어졌어요」는 귓가에 쉽게 달라붙는다는 기본적인 미덕을 잃지 않는 동시에 윤하의 보컬리스트로서의 매력까지 과시할 수 있는 괜찮은 선택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직도 「Say Something」을 타이틀곡으로 정했다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여전히 타이틀 곡 선정에 있어서는 좀 불만입니다.)
전작들을 떠올리게 하는 경쾌한 틴 로맨스 락 넘버인 세 번째 트랙 「좋아해」도, 전작과 비교하면 제법 무게 있게 편곡된 터라 다른 트랙들과 외따로 떨어져서 방방 뜨는 일 없이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유희열이 선물해 준 네 번째 트랙 「편한가봐」는 윤하가 앞으로도 유희열식 발라드를 능숙하게 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을 심어주지요. 「오늘 서울은 하루 종일 맑음」에 이은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여성 보컬임에도 불구하고 김연우나 김형중을 연상시키는 풍부한 볼륨감을 자랑합니다. 남성 보컬에 비해서 여성 보컬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TOY의 객원 보컬 라인업이 좀 더 풍성해질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헤어진 후에야 알 수 있는 것」에 이르러서는 예상 못한 장르에 도전하는데, 자신과 보컬 색이 사뭇 다른 김범수와의 퓨전 재즈 협연을 시도합니다. 물론 이 앨범을 윤하가 락에서 재즈/R&B 발라드로 방향 전환을 하는 기점으로 생각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만, 이제 스물세 살이 된 젊은 보컬리스트가 소화할 수 있는 장르의 영토가 더 넓어진 건 아쉬워할 일이 아니라 축하할 일이지요. 윤하는 비교적 담담하게 자기 식으로 기교를 소화하며 김범수와의 협연을 성공적으로 해냅니다.
(연주곡을 제외하면) 이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들인 「LaLaLa」와 「스물두 번째 길」은 윤하의 자작곡입니다. 전작에 실린 「사랑하다」에 비해서도 더 매끈하게 뽑혀져 나온 두 트랙은 걸출한 선배들의 도움을 받은 앞 트랙들과 나란히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완성도를 자랑하지요. 본격적으로 스캣을 시도했던 재즈 보컬 트랙 「LaLaLa」와, 자기 고백적인 가사가 서정적인 멜로디와 조화롭게 어우러진 발라드 트랙 「스물두 번째 길」은 6년 차 가수로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선보이기에 아쉬움이 없을 만한 곡이었습니다. 특히나 「스물두 번째 길」은 조용히 중얼거리는 듯한 초반부에서 후렴으로 가면 감정을 듬뿍 담아 청아하게 뽑아내는 고음을 자랑하는데요. 청춘의 한복판에서 혼자 남겨진 듯한 막막함과 쓸쓸함을 담담하게 그려낸 이 곡은 완성도도 높지만 윤하가 자신의 보컬 출력을 능수능란하게 통제하는 광경이 실로 놀라운 트랙입니다.
문제는 앨범을 발매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발생합니다. 첫 콘서트를 10대 남성 팬들의 환호 속에서 성황리에 마친 윤하가, 2010년 정초부터 신종 플루 의심 증세를 보이다가 결국 1월 1일 병원에 입원하게 된 겁니다. 다행히도 신종 플루는 음성으로 나왔습니다만, 고열과 몸살 증상은 가시지 않았고, 진단은 폐렴 증상을 동반한 후두염으로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급기야 1월 3일과 4일 양일에 걸쳐서 혼수상태로 중환자실 입원을 고려 중이라는 기사까지 떠서 팬들이 집단 패닉 상태에 시달리는 와중에, 1월 14일로 예정 잡힌 새 스케줄이 기사화되는 웃지 못할 사태가 발생합니다. 팬들은 ‘가수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정신을 되찾고도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데, 완치도 되기 전에 벌써부터 열흘 후의 스케줄을 잡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며 반발했고, 소속사는 1월 5일 ‘다행히 5일 오전부터 상태가 호전되고 있지만, 며칠 더 입원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상태가 호전될 때까지 방송 출연은 안 한다’고 입장을 밝힙니다. 그러나 팬들이 채 안심을 하기도 전에 1월 7일 퇴원하고 바로 다음 날인 8일 KBS <뮤직뱅크>에 출연하는 무리한 스케줄을 잡아서 다시 팬들을 경악하게 했는데요. 이날 윤하는 목 상태가 도저히 라이브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결국 립싱크를 하고는 눈물로 사과를 했습니다.
몇몇 대중문화평론가들은 립싱크가 만연한 시대에 립싱크를 했다는 사실에 수치심을 느끼고 눈물로 팬들에게 사과를 한 윤하에 대해 ‘신선한 충격’이라며 찬사를 보냈고요, 언론들은 소속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팬들의 걱정과 배려에 윤하가 감사하고 있다는 내용을 기사화했습니다. 앞뒤 맥락을 떼어놓고 보면 훈훈한 미담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불과 나흘 전에 혼수상태를 오락가락했던 가수를 아직 제 컨디션도 찾기 전에 등 떠밀어 라이브 무대로 올려 보내는 일은 애초부터 벌어지지 말았어야 하는 겁니다.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무대에 오른 윤하를 보는 팬들은 말 그대로 격분했어요. 급기야 「오늘 헤어졌어요」의 노래 말미의 가사 ‘그냥 나오지 말 걸, 그냥 아프다 할 걸’ 부분에서 보다 못한 어느 팬이 ‘빨리 들어가’라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결국 윤하는 1월 10일 이후 다시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휴식에 전념합니다. 쉬어야 할 때 제대로 쉬지 못 하고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강행군을 감행했던 후유증 때문에 3집
그 뒤로의 윤하의 행보는 이렇습니다. MBC <개인의 취향> OST에 참여한 트랙 「말도 안 돼」가 각종 차트에서 OST 부문 1위를 차지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더했습니다. 저 차트 정상이 윤하의 정규 앨범으로 이룬 결과가 아니라 아쉬움 속에 정규 앨범 활동을 어영부영 접은 뒤 참여한 OST로 이룬 거란 생각을 하면 아쉬울 수밖에요. 또한 2009년 8월 무렵부터 촬영해 온 케이블TV 채널 T의 <윤하, 일본을 담다>가 4월 초순부터 전파를 타서 최종화 6화까지 모두 방영이 끝났습니다. 일본 관광청의 ‘Yokoso! Japan’ 캠페인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는 윤하가 6부에 걸쳐서 여행하는 모습을 담아낸 프로였지요. 이 프로그램을 보며 팬들은 한편으로는 ‘얘가 그래도 작년에 방송 덕에 도쿄 디즈니도 가고 온천욕도 하면서 조금은 쉬었구나’ 싶다가도 금새 ‘4월에 한국에서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하는 시점이네요. 그녀의 커리어를 숨 가쁘게 정리해 놓은 글의 말미에서 어떤 분들은 ‘그래서 어쩌라고’ 싶으실 겁니다. 글쎄요, 우선 저로서는 지금 당장 윤하의 다음 스케줄이 빡빡하지 않다는 게 참 기쁩니다. 내가 팬질하는 연예인이 스케줄이 널널하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숨 가쁜 2009년을 달려왔고 2010년 정초부터 큰 병으로 앓아누웠던 윤하에게 잠시라도 숨을 돌릴 시간이 주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퍽이나 안도가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음악적으로 꾸준히 성장하고 변화를 모색해 왔던 윤하가 오랜만에 찍은 광고가 무려 한국 정규앨범 타이틀 「비밀번호 486」을 가사만 바꿔 다시 부른 치킨 광고여도 그것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도대체 언제 적 노래입니까. 게다가 윤하 뒤에서 빵끗 웃으며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밴드는 MBC 2007년 <쇼바이벌> 우승자 출신 밴드 슈퍼키드입니다.) 띄엄띄엄 업데이트되는 윤하의 트위터(twitter.com/younhaholic)를 들여다보며 윤하가 즐거워하면 저도 괜히 피식거리고 윤하가 뭔가 고민할 때면 저 역시 함께 걱정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소소한 낙이지요.
그냥 그렇게, 윤하가 음악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꾸준히 지켜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기쁨을 여러분께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오토튠과 후크송이 차트를 지배하고 아이돌 산업이 마치 음반 시장의 전부인 것처럼 우리의 시야를 가릴 때, 실수도 많고 흔들림도 많았지만 꾸준히 자기 색을 담은 음악을 생산해내는 아티스트가 우리 시대에도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기쁘고 설레는지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아티스트는 올해 겨우 스물세 살이어서 지금껏 이뤄온 것보다 앞으로 이룰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가 된다는 이 기쁜 소식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윤하가 바쁜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한숨 돌리고 있는 이 순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윤하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가 우리 시대에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 이 기쁜 소식ㅡ복음ㅡ을 여러분들께 전파하는 것이 이번 글의 주된 목표였습니다. 객관과 논리라는 글 쓰는 사람의 상도의를 벗어 던지고 오로지 팬심으로만 쌓아 올린 성채(城砦), 이번 <땡땡의 요주의 인물>의 주인공은 ‘오리콘의 혜성’, 윤하였습니다.
p.s.
이번 칼럼 제목은 요한복음 1장 14절을 인용했습니다.

땡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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