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강연회]함께 잘 사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이 있다! - 『꼴찌도 행복한 교실』 박성숙, 김규항
그런 엄마가 행복한 교육에 대한 이야길 들려줬습니다. 우선, 『꼴찌도 행복한 교실』을 통해. 이어서 지난달 21일 서울 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열린 『꼴찌도 행복한 교실』 출간 기념 강연회를 통해. 테마는 이랬습니다.
2010.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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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들은 “결혼도 않고, 아이도 없는 네가 어떻게 이해하겠니”라고, 혀를 찹니다. 아이들은 무조건 놀아야 하고, (사교육과 선행 학습을 명분으로) 학원에 보내는 일은 아이를 망치는 일이며, 경쟁을 내면화하는 지금의 교육(이라고 쓰고, 사육이라고 읽는다)은 미쳤다는 제 의견은 그저 ‘몹쓸 말’로 치부하지요. 그래도 소심하게, “아이들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반박하면, 역시나 어르신 꾸중하듯 날립니다. “시끄럽다. 결혼해서 애 키워봐라.”
뭐, 인정합니다. 아이 없는 원죄(?)랄까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받는 거야, 별 무상관이지만, 눈에 밟히는 건, 아이(들)입니다. 저 부모라는 작자의 강고한 인식이 지속된다면, 그 아이의 몸과 마음은 상처투성이일 테고, 그 몸과 마음은 곧, 우리의 내일이자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물론 어른들의 틀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려는 저 무뇌아적 안간힘이 아이들을 괴롭히기 위해서도 아님을 압니다. 그들에겐 그것이 사랑의 방식이며, 아이들이 나중에 잘 살고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죠. 그러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아이의 감정은 안중에도 없는, 안중에 있어도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금은 참아야 한다는 강요를 하는 부모의 감정은 과연 어떨까요.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글쎄요 이럴 경우, 아픈 만큼 망가진다, 아닐까요.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도 자기들만의 문화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 아이들이 자기 눈높이에 맞춰 놀고 즐기면서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돕자.”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님도 이런 말씀 하셨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어릴 때 제대로 놀지 못하면 평생 몸도 마음도 병든다.”
아마, 이 말들은 지금의 한국에선 소수의 사람에게만 먹힐 씨알일 겁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비슷한 이야길 들려주는 한국(인) 엄마가 있습니다. 무터킨더(‘엄마와 아이들’이라는 뜻의 독일어)라는 아이디로 블로그를 통해 ‘독일 교육 이야기(blog.daum.net/pssyyt)’를 들려주던 그 엄마.
특별한 엄마, 아닙니다. 어쩌면, 가장 보통의 엄마. “‘내가 만약 한국에 살았다면 어떤 학부모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정답은 ‘치맛바람 1등 엄마’다. 내가 독일 교육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게 된 것도 교육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이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워볼까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최고의 과외 선생을 찾아다니든지 성적 우수 학생들만을 위한 그룹 과외를 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p.201)
그런 엄마가 행복한 교육에 대한 이야길 들려줬습니다. 우선, 『꼴찌도 행복한 교실』(박성숙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을 통해. 이어서 지난달 21일 서울 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열린 『꼴찌도 행복한 교실』 출간 기념 강연회를 통해. 테마는 이랬습니다. ‘1등 교육을 넘어 행복한 교육으로.’ 저자 박성숙 선생과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인 김규항 선생이 함께한 시간. 교육이 무엇이고, 이 엄혹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교육시키면 좋을지 고민한다면, 한 번 들어봄직하겠습니다. 책 읽어보면 더욱 좋을 겁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거든요.
학원 전전하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교육
자, 우선 우리가 겪은 제도권 교육을 생각해봅시다. 지나간 과거라고 미화 말고. 이런 풍경, 떠오르죠?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본 세계는 33제곱미터 남짓 되는 좁은 교실의 어두운 벽과 녹색 칠판뿐이었다. 그 위로 쏟아지던 분필 가루를 마시며 미래를 꿈꾸었고 그 꿈속에서는 언제나 책에서 본 세상만이 뿌옇게 그려지곤 했다.”(p.9)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던 감언이설에 힘없이 끌려 다녀야 했던 노예시절. 다소 극단적인 말이지만, 저는 학창 시절을 그리 기억합니다. 공부 잘하면 우성, 꼴찌는 열성으로 구획 지은 끔찍했던 풍경.
독일에선 꼴찌라는 말, 없답니다. 꼴찌부터 일등까지, 그냥 다 같은 학생인 거지요. “자극적으로 말하고 싶어서 (책 제목에) 꼴찌라는 말을 사용했어요.(웃음) 독일에는 성적표에 등수가 없어서 1등, 꼴찌가 존재하지 않거든요. 공부를 못하나 잘하나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독일) 교육이어서 이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요. 독일에서 12년 살았어요. 한국에서 경쟁에 치여 살다가 독일에서 12년 동안 두 아이 키우면서 너무 다른 교육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은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독일에서 적응하는 게 더 다급해서 10년 동안 글 안 쓰고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지켜보다가 2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이젠 박 선생이 말하는 독일 교육, 엿봅시다. 참, 독일 교육이 완벽하거나 완전무결할 것이란 기대 같은 건 하지 마시고요. “독일 교육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의 환경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그래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만족이 나 하나만으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독일 학교의 모습을 나와 같이 교육에 관심 많은 한국의 학부모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지금처럼 성적에 목숨 걸지 않아도 예쁜 우리 아이들을 삭막한 경쟁 속으로 내몰지 않아도 밤 열시가 넘도록 학원을 전전하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p.11)
1. 독일 학교는 우등생을 위한 곳이 아니야
독일 학교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달리, 중하위권 중심의 수업이 진행된답니다. 1~6점의 성적 분포가 있는데, 가장 높은 성적인 1점을 받는 학생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1등만 차별받는 세상’이랍니다. “독일에선 1점을 이상적인 점수로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 공부 외에 더 공부했다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나가게끔 내버려둡니다. 교실에서는 3~4점 받는 학생들에게 더 신경을 쓰죠. 주인공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닌 거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으쓱하고, 그를 부러워하는 면도 있지만, 제도가 부추기진 않아요. 그게 우리와의 차이점이죠.”
우리의 학창 시절은 성적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왠지 1등을 하는 아이는 인생도 1등일 것 같았고 생각도 반듯해서 항상 바른 길만 갈 것 같았다. 당연히 그의 미래도 700여 명의 친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환상이란 말인가. 신문 1면의 굵직한 기사마다 등장하는 1등만 했던 일그러진 군상들은 오히려 대형 범죄와 시퍼렇게 날이 선 오만과 독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병들게 하기만 했다.(p.20)
그러니 자연히, 독일 성적표에는 등수가 없습니다. 성적을 갖고 석차나 줄을 세울 수 없는 시스템인 거죠. 우리처럼 등수로 아이들을 구획 짓는 일, 당연히 없겠죠? 방금 1점이 이상적인 점수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대신 2점을 선호한답니다. 1점은 이기적이고 융화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2점은 타인과 어울릴 줄 알고 공동체에서 화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기업체에서도 선호한다는군요.
“독일 학교는 우수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균에 못 미치는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데 더 주안점을 둔다고 했다. 잘하는 아이들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고 또 대학에 가서도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리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하위권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며 학교가 그 아이들을 버린다면 사회에서 그들을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p.55)
재미있는 건 예습을 금지한다는 겁니다. “예?복습 잘하라”는 말, 귀에 딱지 앉도록 듣고 말하는 우리로선 깜짝 놀랄 만한 일! 특히나 선행 학습을 숭앙(!)하는 우리네 교육풍토로선,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선생님은 집에 가서 공부를 못 하도록 교과서를 학교에 놓고 가도록 합니다. 만약 반에서 1~2명이 선행 학습을 해서, 질문에 손들고 그러면 지적당하기도 하고요. 다른 아이들이 사고를 할 수 없게 방해하고, 선생님이 수업을 준비했는데, 학생이 미리 답을 하면 진행을 못 하고 자기 의도대로 수업을 펼칠 수 없다는 이유죠. 그래서 선생님이 선행 학습하지 말라고 귀에 딱지 앉도록 얘기해요.(웃음)”
또 하나, 과외는 하위권 학생에게만 필요하답니다. 사교육비 걱정? 안드로메다 이야기죠. 박 선생도 12년 동안 몇 시간 하다가 망신당한 적이 있지만, ‘사교육비’라고 든 적이 거의 없답니다. 독일에서 과외는 그야말로 응급처방전입니다. 유급을 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과외를 시키라고 권장하고 과외 선생님을 소개시켜주기까지 하는. “우리처럼 과외가 경쟁의 나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 생각합니다. 중하권이라도 유급 위기가 없으면 과외를 안 합니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등 큰 도시에 있는 한국 사람은 아이에게 과외를 시킵니다. 그런 한국인이 참 많아요.”
우리의 학교와 사교육(학원) 현실과는 참 많이 다르죠잉~ 공교육으로 대변되는 학교는 ‘붕괴됐다’며 생난리 피우면서 학원(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이 한국 대도시의 풍경인데 말이죠.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올 만하죠. “학교가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잘 배우고 있는지 점검만 하면 임무가 다한다고 여기고 있었다.”(p.39)
2. 학교에서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
얘길 듣자면, 독일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만 하는 것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세상 사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 같아요. 아마 한국 대도시에서라면, “공부와 무슨 상관이냐”며 타박 혹은 항의를 들음직한.
박 선생은 몇몇 예를 듭니다. 우선 어학연수보다 세상일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 우리가 흔히 아는 어학연수. 말 그대로 다른 언어를 배우기 위한 수련의 과정에서, 독일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러 간답니다. 우리처럼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 중심이 아닌, 아프리카, 남미에 많이 가고, 북한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물론 북한은 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지만.
처음으로 나가 본 울타리 밖에서 자기보다 덩치 큰 짐을 지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며 ‘그래서 세계가 끈끈한 연대의 그물망으로 연결될 수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운 믿음이 생겨났다.(p.77)
또 꿈도 구체적으로 꾸는 경우가 많대요. 공부만 잘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윽박(?)지르는 우리네 풍토와 달리, 꿈을 향해 어릴 때부터 매진하는 아이들, 꽤 볼 수 있답니다. 가령, 정치인이 되고픈 아이에게 대학이나 엘리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박 선생이 둥지를 틀고 있는 독일의 아헨. 지난해 시장에 당선된 이는, 우리나라 교육체계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 대학에 가지 않은 페인트공 출신이랍니다. 와우, 한국이라고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고 출신의 대통령도 뒤흔든 한국인임을 감안하면, 글쎄요…….
세상을 배우기 위해 꼭 필요한 역사. 그런 면에서 독일 아이들은 히틀러를 비판하며 큽니다. “독일의 모든 교육은 2차 대전 전범국으로서의 반성이 기초가 됩니다. 수학과 같은 특별한 과목을 빼곤 모든 과목에서 이런 것을 언급해요. 역사나 정치에선 특히 더하고. 독일은 절반이 인성 교육입니다. 그것이 빠지면 교육이 존재하지 못해요.”
그런 면에서 박 선생의 큰 아이가 교장 선생님을 인터뷰할 때, 중요한 말씀이 나왔답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의 사회가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오호, 바로 한국 이야기일 수 있겠네요. 인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자가 지도자가 됐을 때, 그 위험한 지도자로 인해 맞닥뜨릴.
예를 들어 대서양에서 해적들이 다섯 명의 양민을 인질로 잡고 100억 유로를 대통령에게 요구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 머릿속에 지식만 가득 들어 있는 대통령이라면 ‘지금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돈을 줄 수 없으니 인질을 포기한다’는 결론을 의심 없이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 속에는 이와 비슷한 예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성공해서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요.(p.246)
독일 학생들이 세상을 배우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일상적으로 이웃과 세계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1년 내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으거나 일주일 내내 수업 없이 학교에 가서 아프리카를 돕자는 프로젝트를 합니다. 아프리카 무용도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팔아서 모아진 성금으로 자매결연 맺은 아프리카 학교를 도와주기도 해요.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1년 내내 있어요.”
나를 놀라게 했던 일들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의식에 있었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지만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진지함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그들의 사회철학과 열린 종교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p.78)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을 사유하도록 만드는 방식. “그렇다고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 사진이 없어요. 아이들 활동이나 설명을 보면, 아프리카를 무척 아름다운 땅으로 표현해요. 불쌍해서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며, 봉사의 사유도 달리 합니다. 받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불쌍한 사진을 보면서 돈이 나오게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면서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문화를 알려주고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있는데, 다 같이 잘 살면 좋겠지, 이런 식으로. 아이들도 공부 안 하니 더 좋죠.(웃음) 놀이처럼 이런 활동을 해요.”
“독일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기부 문화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그것도 단순하게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가져오는 행위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모금을 하고 케이크를 굽고 장사를 하는 등 구체적으로 발로 뛰면서 배운다.”(p.106) 한국에서 교육이라 함은, 아마도 이런 것?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인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의 규율에 딱 들어맞는 인간형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슬픈 생각을 하게 된다.”(p.124) 그러니까, 사육이지. 말 잘 듣는 노예를 만드는 것.
3. 독일에서는 놀면서 공부해도 부족하지 않아
아이들은 뭣보다 공부에 짓눌리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 정정하죠. 잘 놀아야 합니다.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은 그러셨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어릴 때 제대로 놀지 못하면 평생 몸도 마음도 병든다.”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의 성정을 타고 태어난 우리들이 일에 종속된 것은, 산업화와 맞물린 자본의 획책이었습니다. 더 말하자면 길고, 어쨌든 노는 것이야말로 아이들 세계를 넓고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이 아닐까 싶어요.
놀지 못하니까, 지금-여기가 혹시 요 모양 요 꼴? “우리는 왜 그래왔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왜 그래야만 하는지. 가장 아름다운 10대 후반 꽃다운 나이, 청춘이라는 이름 하나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좋은 봄날 같은 시절에 말이다.”(pp.145~146)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도 놀지 못하는 부모의 변명일지도.
독일 아이들은 교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없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러냐고요? 천만에. 전날 잠을 충분히 자기 때문이라죠. “아이들이 잠을 줄이고 뭐 한다는 상상을 못합니다. 건강이 최고라서요.(독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얘기하면 다 넘어가요.(웃음)”
“독일 사람들은 왜 영재를 우습게 여길까. 공부뿐 아니라 천재 바이올린 소녀,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 천재 운동선수 등 ‘천재 어쩌고……’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 어린 것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살인적인 연습을 해야 했을까.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는데……’이다.”(p.43)
그래서일까요. 독일에서는 공부, 운동 모두 성공하는 게 드문 경우가 아닌가 봅니다. 하나만 죽어라 해도 될 둥 말 둥 하다는 한국에선 깜짝 놀랄 일. 책에 나온 스테판 선생님의 둘째 아들 미하엘 스테판이 그랬다지요. 프로 탁구 선수 출신의 기업 고문 변호사인 미하엘. 물론 독일에서도 한 사람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쉽지 않다지요. 아니, 이렇게 박 선생은 말합니다. “독일인들은 성공에 죽자사자 목을 매지도 않기 때문에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의외로 두 가지를 모두 이룬 사람도 적지 않다. 느슨한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가능하게도 하는 것이다.”(p.203)
대학 못(안) 가면 곧 죽는 것처럼 겁박하는 사회. 한 번 낙오되면 영영 수렁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협박하는 사회. 루저로 낙인찍히면 운신도 못 하게 포박하는 사회. 우리 사는 한국은 이렇다죠. 그렇다면 박 선생이 독일에서 얻은 깨달음은 이런 것. “인생에서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아니 한 사회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점수로 줄을 세워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에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p.206)
독일은 대학을 못(안) 가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내재화된 사회입니다. 중하위권에 맞춰 수업할 수 있는 이유는, 1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대학을 못(안) 가도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이스터. 즉, 직업교육을 받은 뒤 중산층 문을 열 수 있는 길이 독일에는 널려 있다는군요. 우리에게도 박 선생의 말씀 같은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성적이 되어도 대학을 안 가는 아이들이 독일에는 많아요.”
4. 독일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독일의 학부모는 마음이 참 편할 것 같아요. 우선, 촌지가 없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죠. 한국의 촌지 이야기를 하면, 한 1,500광년 아주 멀리 떨어진 안드로메다 행성 이야기를 하는 줄 알 겁니다. 물론, 어느 나라에선가는 한국 부모들이 촌지 수출(?)을 하면서 그쪽 선생님들에게 한국 촌지 문화를 널리 퍼트렸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독일 어딘가에도 한국 부모가 그런 일을 했을 수도 있겠죠.
한국의 육성회, 그러니까 학부모들의 바람이야 유명합니다. 치맛바람이라고 하죠. 교육의 주체로서 학부모의 역할과 목소리가 높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으나, 제가 언급한 것이 뭘 뜻하는지는 대충 아시죠?
독일에선 그 학부모 대표는 봉사하는 몸과 마음만 필요하다는 것이 박 선생의 설명입니다. 돈? 어느 학부모나 다 같이 씁니다. 무기명으로 자동이체하고. “독일의 학부모 대표는 봉사하는 건데, 명예롭게 생각하니까, 시간 있는 사람들은 서로 손 들어서 하려고 해요. 보니까 우습더라고요. 남지도 않는 거 저리 하려고 그럴까.(웃음) 이 사람들은 그걸 참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봉사하는 마음만 필요한 것이 육성회, 학부모 대표예요.”
부모는 자식의 할 일을 하나하나 챙겨주며 이리가라 저리가라 방향까지 정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며 힘들어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거리 서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던 아이가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어스름 해가 지면 슬며시 집이 그립고 어머니가 생각나듯이 어머니는 그런 존재여야 합니다. 놀이터를 점령하고 친구들까지 줄을 세우는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p.167)
5.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위한 교육
공동체. 함께 산다는 것. ‘사회적’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지요. 독일 교육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독일 교실에 물론 왕따도 있고,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한국은 그런 분위기가 좀 있잖아요. 공부 잘 하면 인간성도 좋아 보이는. “독일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에 이기적인 아이들이 좀 있어요. 친구 관계가 마음만 맞으면, 집이 부자고 가난하고 상관없이, 공부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1등과 꼴찌가 충분히 친구가 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독일에선 절대 터부시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독일인.’ 수업 시간에 이 말을 꺼내면 밖에 나가야 하거나 지적을 받는답니다. 전범국으로서의 반성에 기초한 교육인 셈이죠. “독일 교육은 애국심을 배제합니다. 애국심은 우리만 잘 살자는 주의라는 거죠. 우리 독일인,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말이고요.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잖아요. 대통령이 무슨 일 할 때, 가장 내세우는 말이 조국, 우리 독일인, 우리 한국인과 같은 말이죠. 우리나라가 금 모으기를 할 때 독일 TV에 나왔는데, 되게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직 이 나라에선 이렇게 한다며.(웃음)”
이들은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가는’ 교육을 중요시한다.(p.21)
6. 창의력, 실용성,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교육
독일 교육은 단순 암기와 주입식 교육을 배제합니다. 이에 따라 창의성과 공동체에 어울리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죠. 그 창의성은 어떻게 나올까요. 박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의성도 경쟁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확신해요. 세계 학력경진대회가 열리면 우리가 상위권이고 독일은 이십 몇 위를 하곤 해요. 그럼 독일에서 뭘 배울 수 있느냐고 하는데, 실제 깊이 있는 교육은, 경쟁이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창의, 실용,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교육을 통해 ‘어떤 삶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합니다. 과연 한국의 교육은 어떨까요. 어떤 삶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까요. 혹시 무조건은 아닐까요. 남보다 잘난. 남 보기에 버젓한.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결국, 누구든 짓밟고 서라는 명령을 주입하고 있진 않을까요.
김규항.박성숙 선생, 교육을 말하다
박 선생의 독일 교육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가 됐습니다. 이어서, 아이를 위한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인 두 아이의 아버지와, 독일에서 온 두 아이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것도 한 번 들어보시죠.
김규항(이하, 규항): “경쟁교육 하에서는 깊이 있는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체험을 통해 단언하시는데, 한국은 어떡해야 하나요. 한국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면 10~20년 후에는 인성에 문제가 있고, 생각도 깊지 않은 어른이 돼서 우리 사회를 채우게 되는데, 이 얼마나 암담한 이야기입니까.
교육 문제가 한국 성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하면 위장전입은 기본인데, 대개 고개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그러면 분위기가 누그러집니다. 교육은 그렇게 상하좌우 무관하게 삶을 규정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은 사실 교육 문제가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대학 입시 문제입니다. 대학 입시를 빼면 교육 문제가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 문제를 교육 문제로 치환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사람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고 있지 않습니다.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가 뼈대인데, 한국에서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생각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얼마짜리로 키울 건가 생각하고, 스펙이나 등급을 얘기하고 등급을 매깁니다. 지금 한국 교육의 목표는 인간적 등급을 매기는 것이고, 사회적 공식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절차가 대학 입시입니다. 어떤 등급이 매겨지는가에 부모들이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다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그 문제로 삶과 경제가 재편되고 심지어 가족이 생이별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다들 말하는 교육문제가 실은 교육문제가 아니다. 교육문제는 단지 대학입시 문제의 다른 이름이며 교육의 목표는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건가가 아니라 얼마짜리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일 뿐이다.(추천의 글, p.6)
규항: “자,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독일에서 사니까 이렇게 하지만, 여긴 한국인데, 아무리 옳고 좋다고 해도 한국에서 가능하겠느냐, 우리 현실에선 어렵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죠. 그런데 어떤 교육을 하는가는 한국인가 독일인가와 무관합니다. 어떤 사회이며 국가인가는 무관한 고유한 부분입니다. 독일에서도 한국과 다름없이 하는 한국 부모가 있고, 한국에서도 아주 적지만, 독일식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 선생님 얘기 중에 독일에서 왕따가 이기적인 아이라고 했는데, 그걸 들으면서 흐뭇한 느낌이 있었습니다.(웃음) 저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고1 여자, 중1 남자입니다.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격했고 가장 타협 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다른 사람 배려하지 않고 행동할 때. 그런 행동을 하면 사람 취급 못 받았습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우리가 사수해야 될, 내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어 최소한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 부모들은 극심한 경쟁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워낙 내몰려 가다보니 그런 걸 잊게 됩니다. 독일에선 부모가 소홀해도 학교를 통해 보완되는데, 한국은 (부모가) 각별히 사수하지 않으면 어디서든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주 각별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 사람들의 상식과 인간적 태도들은 한국에서도 몇 십 년 전 시골이나 동네에서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던 태도입니다. 교육을 왜 받느냐면, 기본 인성에 더 깊이 있고, 사회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지성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이웃과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인성을 파괴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때, 그런 문제에 대해 각별하게 하나의 전쟁처럼 사수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제 얘기만 했는데, 박 선생님과 이야길 나눠보겠습니다. 만약 바로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여느 한국 엄마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 한국에 돌아오면 교육을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박성숙(이하, 성숙): “먹는 것만 해결되면 한국에 돌아오는 것 고민 안 합니다.(웃음) 독일에 산다고 한국 사람이 경쟁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독일에서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이들 과외를 시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내가 한국에 와서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특별히 걱정은 않습니다. 명문대 졸업한다고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한두 사람 빼고는 다 평범하게 삽니다. 그런 식의 삶을 독일에서 경험했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여유 있게 살지 않을까요. 아이들 교육 문제는 걱정 않습니다. 독일에 가서 처음엔 저도 정말 힘들었어요. 고통스럽고 두려웠죠. 아이를 저렇게 놔둬도 될까.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더 지내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
사실 독일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거주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나 뒤셀도르프 등 몇몇 도시에 있는 한국 학생들은 이곳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공부에 치여 한국에서처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p.280)
규항: “가수 루시드 폴의 근래 인터뷰를 봤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선망하는 학벌이나 스펙을 갖고 있는데, 불안정한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더군요. 루시드 폴이 그랬습니다. 친구들을 보면 하루 다섯 시간 자고, 개인 시간도 없고, 경쟁 때문에 저리 사는데, 왜 내가 편하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음악 하는 걸 고생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보통 경쟁에서 이겼을 때, 우리 아이에게 주어지는 실질적 이점들을 부각해서 생각합니다. 그런 삶이 진짜 좋은 삶인가, 각박하고 시간도 없고 올라갈수록 경쟁 심해집니다. 물론 선망 받고 우쭐해서 사는 맛에 살 수도 있지만, 경제적 안정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삶, 아닙니까. 경쟁에서 이기는 삶이 초라하고 아이의 삶에서도 손실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답답한 게, 한국 부모들은 인생을 준비기와 본격기로 나눠 생각합니다. 열아홉 살까지는 준비기, 스무 살부터는 본격기. 열아홉까지는 본격기를 위해 준비하는 인생이라 힘들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생에선 오늘이 인생이고, 오늘의 연속입니다. 사람이 일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놀고 즐기고 사랑하려고 태어난 건데, 박정희부터 일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만 했어요. 이건 정신병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라는 건,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함이지, 일 자체를 위함이 아니잖아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보다 밝은 내일’밖에 없습니다. 계속 내일입니다. 오늘이 없어요. 그 다음 나이 들면, 우리 아이의 미래. 이런 바보 같은 삶이 어디 있습니까. 미래를 어떻게 살고 하는 것도 좋지만, 강박에만 빠져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스무 살을 넘으면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사귈 때 스펙으로 사귑니다. 진짜 사랑은 중학교 때나 하는 거죠. 결혼할 때 사람 인성을 보나요. 조건이나 스펙을 보는데, 그건 성매매 계약이지, 결혼이 아닙니다.
아, 제가 말이 길어졌는데, 독자 여러분의 질문도 함께 받겠습니다.”
아이가 한국에 들어와도 문제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그쪽 문화에 적응했다가 다른 아이가 자라온 환경과 생각을 이해 못하고 분열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성숙: “어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교를 경험해보고 싶어 집 옆의 학교를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적응 못 할 거라고. 한마디로 오길 원하지 않았고, 이방인이 와서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게 관심사 같았습니다. 그 학교가 명문 고등학교라 하던데, 집이 가까워 갔을 뿐이었거든요.(웃음) 어쨌든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도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적응하고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독일에도 한국 아이가 와서 적응 못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규항: “독일에서 상식적인 환경에서 살다가 한국의 야만적이고 체념적인 상황에 처해도, 바른 교육을 받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불편을 겪기도 하지만, 감화시키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옆에서 보면 근사하고 멋지니까.”
독일에서 경쟁이 별로 없고 대학을 안 가도 원하는 직업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사는지요.
성숙: “그게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제가 알기로 83%인가 그렇고, 핀란드가 92%라고 알고 있어요. 독일은 대학 진학률이 39%입니다. 그중에 졸업하는 게 50%니까, 20% 정도가 대학을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우리보다 훨씬 대단하게 봅니다. 중요한 건, 독일엔 명문대학이 없습니다. 20%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대학이고, 서열이 아닌 평등한 관계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면 대학에 갈 수 있고, 대신 많이 놀면 졸업을 못 하죠.
경쟁을 없앨 수 없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명문대를 없애면 됩니다. 그래서 불가능하죠.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하죠.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부모들이 많이 바뀌어서 대안학교도 가고…….”
우리도 이제는 사교육을 잠재우겠다고 입시 제도만 가지고 흔들어댈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명문대학의 존폐를 고려야 보아야 한다. 아주 극단적인 방법이겠지만 전국에 있는 특목고를 모두 폐지하는 것보다 몇몇 명문 대학이 사라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p.287)
규항: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저나 박성숙 선생님이 대학 갈 때 진학률이 20%였는데, 지금은 90%에 가깝습니다. 독일의 대학 진학률이 40% 정도 안 되는데, 한국이 독일보다 고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구조는 아니거든요. 공포나 강박 때문에 대학 장사꾼들이 대학 문을 열어놓은 거지, 진짜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면 대부분의 대학 가는 아이들이 헛일을 하는 상황이죠. 대학을 가지 않고 소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나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도 적성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애들이 있습니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운동에 적성이 없다고 하면 편하게 인정하는데, 공부에 적성이 없다고는 쉽게 인정을 못합니다. 머리는 좋은데 노력 안 한다고 생각하죠. 그게 머리가 나쁜 겁니다. 공부가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가 되니까, 공포가 있는 겁니다. 한국에는 머리가 좋은데 노력 안 하는 애들이 너무 많은 거죠.(웃음)”
아이가 지금 31개월 됐고, 직장 때문에 강남에 살게 됐는데, 요즘 공포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 동네에서 보면, 밤 10시에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차가 늘어서 있어요. 이 동네에 계속 살게 된다면, 아이에게 사교육을 안 시켜서 아이가 행복하고 원하는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탈출해야 하나, 나 혼자 끌고 가야 하나,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성숙: “그런 사회에 들어가면 나 혼자 초연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얘기를 못하겠네요. 그런데 엄마가 잘 생각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규항: “그 동네가 어떤 엄마한테는 위장전입이라도 하고픈 가치가 있을 테고, 그 동네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교육이 뭔가, 하는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후자에 가까운 사고 같은데, 생각대로 결단하는 것이 자기 존중을 할 수 있는 길이고, 아이에게도 떳떳한 길이 아닐까요. 학원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학원도 분명 보조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원을 금지해야 하나요. 학원은 그런 기능이 있는데, 그게 전도돼서 학원의 기능적인 학과 교육이 실제 인성교육을 포함한 교육을 뒤집어 버리는 그 풍경이 끔찍한 거죠.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누구든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공립 고등학교 교사인데, 한 부류는 대학을 가고자 하고, 다른 부류는 이미 대학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고민은, 아이들이 대학을 가겠다? 성심껏 지원해줄 수 있지만, 안 가겠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조언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성숙: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라 어려운데, 독일은 그럴 때 고민이 안 됩니다. 대학은 성적이 돼도 안 가는 애들이 많고, 마이스터라는 길이 있기 때문이죠.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대학과 직업의 두 가지 길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야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거라고 얘기하지만, 독일에선 이 길도 저 길도 좋아서, 위험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독일 교육 이야길 들려주는 건 어떨까요.(웃음)”
규항: “지금 당장 묘안이 있을 수 있다면 한국 교육에 문제는 없겠죠.(웃음)”
두 아이 아빠로 아내가 초등 교사입니다. 아내가 학교를 울산부터 대구, 서울로 옮겨오면서 보니, 사교육을 받고 안 받은 차이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오늘 이 자리가 행복한 교육으로 갈 수 있겠다, 해서 왔는데, 대안이 없는 느낌도 듭니다.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큰 틀에서 우리 교육의 숙제나 앞으로 우리 교육을 위해 쓴소리를 해주신다면요.
성숙: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명문대를 없애면, 바로 모레 변합니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부모들이 의식을 개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학부모들의 문제가 가장 크고, 기득권 욕심에서 오는 문제들이죠. 의식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천천히 가겠지만, 의식 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알고 모르고는 천지 차이거든요. 이 세계가 전부다, 우리가 사는 방법이 전부다, 라고 생각 말고요. 저도 독일에 처음 갔을 땐, 독일 사람들이 다 바보처럼 보이더라고요. 머리에 든 것도 없이.(웃음) 우리는 머리에 든 게 지식밖에 없잖아요. 제가 대표적인 예인데, 저도 12년 동안 조금씩 바뀐 겁니다.”
독일 교육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경쟁에서 벗어나면 학교 교육은 깊이를 가질 수 있으며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더불어 향상된다’는 진실을 알 수 있다. 명문 대학이 바로 우리 청소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경쟁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p.288)
진보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대학을 안 가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자식에 대해서만은 그런 말을 못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성숙: “대학을 무조건 안 보내자고 하는 운동은 아닐 겁니다. 가는 사람을 막을 순 없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도 보는데요. 공부하고 싶은 아이가 대학을 가겠다는 것을 부모라고 막을 수 있겠어요.”
규항: “전적으로 그렇진 않으나, 제가 알고 있는 얘기를 들려드리죠. 이번에 서울대에 들어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회 저명인사의 아들이 있습니다. 외고를 나왔는데, 아빠가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들씌워 비난해선 안 되나 과정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경쟁 교육 비판하는 사람이 자기 아이의 경쟁력 앞에선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인 거죠. 그 아들의 담임이 보기에도 흉했던 모양입니다. 교사가 실망했다고 그 저명인사에게 얘기했더니,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부끄러워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말하길, 그게 부끄러워하는 거냐, 부끄럼을 감수하겠다는 거지.(웃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부분들에서도 많이 있는 거죠. 성명서나 토론 등에선 그렇게 말하면서, 내 아이의 경쟁력에서 별개로.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싶진 않고,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아이의 부모에 대한 존경이 파괴되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세상에 그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습니까. 위선적이라기보다 어리석은 거죠. 왜 그렇게 부모와 자식 간의 존경과 존중심을 깨트릴까. 굳이 진보 교육 운동 안 하면 되는데. 편하게 살면 되는데. 스스로도 괴롭고 자식의 존경심도 파괴하고.”
역시 교육 문제라 열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넘어 후끈 달아오른 현장, 그렇게 슬슬 마무리가 됐지만, 교육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건, 그 근원에는 교육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행해지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집착과 사육이 불러올 파행은 다른 모든 분야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의 기저에 자리한 그 맹목적인 교육열을 보세요.
솔직히, 지금 비혼에, 무자식이기에 다행이라고 자위할 따름입니다. 혹 아이가 있는 상상을 하면 괴로워집니다. 한국을 떠나지 않는 한, 이 제도권 사육에 주파수를 맞추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가장 보통의 존재인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제도권 학교엔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모를 문제지요.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구절의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독일 사람들은 1등으로 수영하는 것보다 함께 수영하는 것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p.69) 함께 수영한다는 것. 함께 살아간다는 것. 교육은 그런 사회적 인간을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어야 하고요.
남을 이길 재간이 없으니 루저로 버티고 견디는 자의 어설픈 교육론이지만, 아이는 무조건 놀아야 하고, 때론 아이가 끼워준다면 함께 노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강연장을 빠져나왔지요. 아울러 지금은 고래동무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고래가 그랬어』를 구독해서 아이와 함께 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자, 함께 다시 고민합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펼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그러니 문제를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문적이고 인간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지요. 교육이란 이 둘 중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자립적이고 창의적으로 또한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겠지요.(p.247)
뭐, 인정합니다. 아이 없는 원죄(?)랄까요.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취급받는 거야, 별 무상관이지만, 눈에 밟히는 건, 아이(들)입니다. 저 부모라는 작자의 강고한 인식이 지속된다면, 그 아이의 몸과 마음은 상처투성이일 테고, 그 몸과 마음은 곧, 우리의 내일이자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죠.
농부 철학자 윤구병 선생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이들도 자기들만의 문화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려 하지 말자. 아이들이 자기 눈높이에 맞춰 놀고 즐기면서 건강한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돕자.”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님도 이런 말씀 하셨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어릴 때 제대로 놀지 못하면 평생 몸도 마음도 병든다.”
아마, 이 말들은 지금의 한국에선 소수의 사람에게만 먹힐 씨알일 겁니다. 그런데 독일에서 비슷한 이야길 들려주는 한국(인) 엄마가 있습니다. 무터킨더(‘엄마와 아이들’이라는 뜻의 독일어)라는 아이디로 블로그를 통해 ‘독일 교육 이야기(blog.daum.net/pssyyt)’를 들려주던 그 엄마.
특별한 엄마, 아닙니다. 어쩌면, 가장 보통의 엄마. “‘내가 만약 한국에 살았다면 어떤 학부모가 되었을까?’라는 의문에 대한 정답은 ‘치맛바람 1등 엄마’다. 내가 독일 교육에 대해 이처럼 자세히 알게 된 것도 교육에 관한 관심이 남달랐기 때문이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잘 키워볼까 고심하고 또 고심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 한국에 있었다면 지금쯤 나는 최고의 과외 선생을 찾아다니든지 성적 우수 학생들만을 위한 그룹 과외를 짜고 있었을지도 모른다.”(p.201)
그런 엄마가 행복한 교육에 대한 이야길 들려줬습니다. 우선, 『꼴찌도 행복한 교실』(박성숙 지음 | 21세기북스 펴냄)을 통해. 이어서 지난달 21일 서울 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열린 『꼴찌도 행복한 교실』 출간 기념 강연회를 통해. 테마는 이랬습니다. ‘1등 교육을 넘어 행복한 교육으로.’ 저자 박성숙 선생과 어린이 교양잡지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인 김규항 선생이 함께한 시간. 교육이 무엇이고, 이 엄혹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교육시키면 좋을지 고민한다면, 한 번 들어봄직하겠습니다. 책 읽어보면 더욱 좋을 겁니다.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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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 전전하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교육
자, 우선 우리가 겪은 제도권 교육을 생각해봅시다. 지나간 과거라고 미화 말고. 이런 풍경, 떠오르죠?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본 세계는 33제곱미터 남짓 되는 좁은 교실의 어두운 벽과 녹색 칠판뿐이었다. 그 위로 쏟아지던 분필 가루를 마시며 미래를 꿈꾸었고 그 꿈속에서는 언제나 책에서 본 세상만이 뿌옇게 그려지곤 했다.”(p.9) 대학만 가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던 감언이설에 힘없이 끌려 다녀야 했던 노예시절. 다소 극단적인 말이지만, 저는 학창 시절을 그리 기억합니다. 공부 잘하면 우성, 꼴찌는 열성으로 구획 지은 끔찍했던 풍경.
독일에선 꼴찌라는 말, 없답니다. 꼴찌부터 일등까지, 그냥 다 같은 학생인 거지요. “자극적으로 말하고 싶어서 (책 제목에) 꼴찌라는 말을 사용했어요.(웃음) 독일에는 성적표에 등수가 없어서 1등, 꼴찌가 존재하지 않거든요. 공부를 못하나 잘하나 다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독일) 교육이어서 이 제목을 그렇게 지었어요. 독일에서 12년 살았어요. 한국에서 경쟁에 치여 살다가 독일에서 12년 동안 두 아이 키우면서 너무 다른 교육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사실은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독일에서 적응하는 게 더 다급해서 10년 동안 글 안 쓰고 아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지켜보다가 2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래요, 이젠 박 선생이 말하는 독일 교육, 엿봅시다. 참, 독일 교육이 완벽하거나 완전무결할 것이란 기대 같은 건 하지 마시고요. “독일 교육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까지의 환경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그래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이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만족이 나 하나만으로 그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독일 학교의 모습을 나와 같이 교육에 관심 많은 한국의 학부모들에게도 알리고 싶었다. 지금처럼 성적에 목숨 걸지 않아도 예쁜 우리 아이들을 삭막한 경쟁 속으로 내몰지 않아도 밤 열시가 넘도록 학원을 전전하지 않아도 꿈꿀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p.11)
1. 독일 학교는 우등생을 위한 곳이 아니야
독일 학교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과 달리, 중하위권 중심의 수업이 진행된답니다. 1~6점의 성적 분포가 있는데, 가장 높은 성적인 1점을 받는 학생이 소외감을 느낄 정도로, ‘1등만 차별받는 세상’이랍니다. “독일에선 1점을 이상적인 점수로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 공부 외에 더 공부했다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 나가게끔 내버려둡니다. 교실에서는 3~4점 받는 학생들에게 더 신경을 쓰죠. 주인공은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닌 거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으쓱하고, 그를 부러워하는 면도 있지만, 제도가 부추기진 않아요. 그게 우리와의 차이점이죠.”
우리의 학창 시절은 성적이 모든 것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왠지 1등을 하는 아이는 인생도 1등일 것 같았고 생각도 반듯해서 항상 바른 길만 갈 것 같았다. 당연히 그의 미래도 700여 명의 친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할 것 같았다.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환상이란 말인가. 신문 1면의 굵직한 기사마다 등장하는 1등만 했던 일그러진 군상들은 오히려 대형 범죄와 시퍼렇게 날이 선 오만과 독선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병들게 하기만 했다.(p.20)
그러니 자연히, 독일 성적표에는 등수가 없습니다. 성적을 갖고 석차나 줄을 세울 수 없는 시스템인 거죠. 우리처럼 등수로 아이들을 구획 짓는 일, 당연히 없겠죠? 방금 1점이 이상적인 점수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대신 2점을 선호한답니다. 1점은 이기적이고 융화할 수 없다는 인식이 강한 반면, 2점은 타인과 어울릴 줄 알고 공동체에서 화합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기업체에서도 선호한다는군요.
“독일 학교는 우수한 아이들을 지원하는 데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균에 못 미치는 아이들을 끌어올리는 데 더 주안점을 둔다고 했다. 잘하는 아이들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제대로 된 길을 찾을 수 있고 또 대학에 가서도 더 깊이 있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니 그리 시급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중하위권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하며 학교가 그 아이들을 버린다면 사회에서 그들을 받아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선생님의 설명이었다.”(p.55)
재미있는 건 예습을 금지한다는 겁니다. “예?복습 잘하라”는 말, 귀에 딱지 앉도록 듣고 말하는 우리로선 깜짝 놀랄 만한 일! 특히나 선행 학습을 숭앙(!)하는 우리네 교육풍토로선, 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선생님은 집에 가서 공부를 못 하도록 교과서를 학교에 놓고 가도록 합니다. 만약 반에서 1~2명이 선행 학습을 해서, 질문에 손들고 그러면 지적당하기도 하고요. 다른 아이들이 사고를 할 수 없게 방해하고, 선생님이 수업을 준비했는데, 학생이 미리 답을 하면 진행을 못 하고 자기 의도대로 수업을 펼칠 수 없다는 이유죠. 그래서 선생님이 선행 학습하지 말라고 귀에 딱지 앉도록 얘기해요.(웃음)”
또 하나, 과외는 하위권 학생에게만 필요하답니다. 사교육비 걱정? 안드로메다 이야기죠. 박 선생도 12년 동안 몇 시간 하다가 망신당한 적이 있지만, ‘사교육비’라고 든 적이 거의 없답니다. 독일에서 과외는 그야말로 응급처방전입니다. 유급을 한 학생에게 선생님이 과외를 시키라고 권장하고 과외 선생님을 소개시켜주기까지 하는. “우리처럼 과외가 경쟁의 나쁜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 생각합니다. 중하권이라도 유급 위기가 없으면 과외를 안 합니다. 물론 프랑크푸르트 등 큰 도시에 있는 한국 사람은 아이에게 과외를 시킵니다. 그런 한국인이 참 많아요.”
우리의 학교와 사교육(학원) 현실과는 참 많이 다르죠잉~ 공교육으로 대변되는 학교는 ‘붕괴됐다’며 생난리 피우면서 학원(사교육)에 매달리는 것이 한국 대도시의 풍경인데 말이죠. 그러니 이런 말이 나올 만하죠. “학교가 학생들에게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주는 것이 아니라 학원에서 잘 배우고 있는지 점검만 하면 임무가 다한다고 여기고 있었다.”(p.39)
2. 학교에서 세상을 배우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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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선생은 몇몇 예를 듭니다. 우선 어학연수보다 세상일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 우리가 흔히 아는 어학연수. 말 그대로 다른 언어를 배우기 위한 수련의 과정에서, 독일 아이들은 세상을 배우러 간답니다. 우리처럼 미국, 영국 등의 선진국 중심이 아닌, 아프리카, 남미에 많이 가고, 북한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답니다. 물론 북한은 가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지만.
처음으로 나가 본 울타리 밖에서 자기보다 덩치 큰 짐을 지고 돌아온 아이들을 보며 ‘그래서 세계가 끈끈한 연대의 그물망으로 연결될 수 있구나!’라는 새삼스러운 믿음이 생겨났다.(p.77)
또 꿈도 구체적으로 꾸는 경우가 많대요. 공부만 잘하면 최고가 될 수 있다고 윽박(?)지르는 우리네 풍토와 달리, 꿈을 향해 어릴 때부터 매진하는 아이들, 꽤 볼 수 있답니다. 가령, 정치인이 되고픈 아이에게 대학이나 엘리트 여부는 중요하지 않답니다. 박 선생이 둥지를 틀고 있는 독일의 아헨. 지난해 시장에 당선된 이는, 우리나라 교육체계론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 대학에 가지 않은 페인트공 출신이랍니다. 와우, 한국이라고 물론 불가능한 것은 아니겠지만, 상고 출신의 대통령도 뒤흔든 한국인임을 감안하면, 글쎄요…….
세상을 배우기 위해 꼭 필요한 역사. 그런 면에서 독일 아이들은 히틀러를 비판하며 큽니다. “독일의 모든 교육은 2차 대전 전범국으로서의 반성이 기초가 됩니다. 수학과 같은 특별한 과목을 빼곤 모든 과목에서 이런 것을 언급해요. 역사나 정치에선 특히 더하고. 독일은 절반이 인성 교육입니다. 그것이 빠지면 교육이 존재하지 못해요.”
그런 면에서 박 선생의 큰 아이가 교장 선생님을 인터뷰할 때, 중요한 말씀이 나왔답니다. 주입식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의 사회가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오호, 바로 한국 이야기일 수 있겠네요. 인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자가 지도자가 됐을 때, 그 위험한 지도자로 인해 맞닥뜨릴.
예를 들어 대서양에서 해적들이 다섯 명의 양민을 인질로 잡고 100억 유로를 대통령에게 요구했다고 가정합시다. 이때, 머릿속에 지식만 가득 들어 있는 대통령이라면 ‘지금은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이라 돈을 줄 수 없으니 인질을 포기한다’는 결론을 의심 없이 합리적인 해결책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극단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역사 속에는 이와 비슷한 예가 의외로 많습니다. 이런 사람이 성공해서 지도자가 된다면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지요.(p.246)
독일 학생들이 세상을 배우는 중요한 방법 중의 하나는, 일상적으로 이웃과 세계를 생각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1년 내내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모으거나 일주일 내내 수업 없이 학교에 가서 아프리카를 돕자는 프로젝트를 합니다. 아프리카 무용도 배우고 마지막 날에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팔아서 모아진 성금으로 자매결연 맺은 아프리카 학교를 도와주기도 해요. 그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1년 내내 있어요.”
나를 놀라게 했던 일들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라 이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도저히 내가 따라갈 수 없는 의식에 있었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지만 사람의 도리를 저버리지 않는 진지함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무엇보다 싫어하는 그들의 사회철학과 열린 종교관, 가난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이 그것이다.(p.78)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아이들을 사유하도록 만드는 방식. “그렇다고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불쌍한 아이들 사진이 없어요. 아이들 활동이나 설명을 보면, 아프리카를 무척 아름다운 땅으로 표현해요. 불쌍해서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며, 봉사의 사유도 달리 합니다. 받는 사람이 기분 나쁘지 않게. 불쌍한 사진을 보면서 돈이 나오게 하지 않습니다. 즐겁게 놀면서 아프리카의 아름다운 문화를 알려주고 이렇게 아름다운 나라가 있는데, 다 같이 잘 살면 좋겠지, 이런 식으로. 아이들도 공부 안 하니 더 좋죠.(웃음) 놀이처럼 이런 활동을 해요.”
“독일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기부 문화에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그것도 단순하게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가져오는 행위가 아니라 거리로 나가 모금을 하고 케이크를 굽고 장사를 하는 등 구체적으로 발로 뛰면서 배운다.”(p.106) 한국에서 교육이라 함은, 아마도 이런 것? “우리 사회는 진정한 인재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도권 교육의 규율에 딱 들어맞는 인간형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슬픈 생각을 하게 된다.”(p.124) 그러니까, 사육이지. 말 잘 듣는 노예를 만드는 것.
3. 독일에서는 놀면서 공부해도 부족하지 않아
아이들은 뭣보다 공부에 짓눌리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 정정하죠. 잘 놀아야 합니다. 놀이운동가 편해문 선생은 그러셨죠.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 어릴 때 제대로 놀지 못하면 평생 몸도 마음도 병든다.”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의 성정을 타고 태어난 우리들이 일에 종속된 것은, 산업화와 맞물린 자본의 획책이었습니다. 더 말하자면 길고, 어쨌든 노는 것이야말로 아이들 세계를 넓고 풍성하게 만드는 가장 기본이 아닐까 싶어요.
놀지 못하니까, 지금-여기가 혹시 요 모양 요 꼴? “우리는 왜 그래왔는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왜 그래야만 하는지. 가장 아름다운 10대 후반 꽃다운 나이, 청춘이라는 이름 하나면 무슨 짓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 것 같은 그 좋은 봄날 같은 시절에 말이다.”(pp.145~146)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도 놀지 못하는 부모의 변명일지도.
독일 아이들은 교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일이 없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그러냐고요? 천만에. 전날 잠을 충분히 자기 때문이라죠. “아이들이 잠을 줄이고 뭐 한다는 상상을 못합니다. 건강이 최고라서요.(독일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얘기하면 다 넘어가요.(웃음)”
“독일 사람들은 왜 영재를 우습게 여길까. 공부뿐 아니라 천재 바이올린 소녀, 천재 피아니스트 소년, 천재 운동선수 등 ‘천재 어쩌고……’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이들의 반응은 한결같다. ‘그 어린 것이 그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살인적인 연습을 해야 했을까. 아이들은 뛰어놀아야 하는데……’이다.”(p.43)
그래서일까요. 독일에서는 공부, 운동 모두 성공하는 게 드문 경우가 아닌가 봅니다. 하나만 죽어라 해도 될 둥 말 둥 하다는 한국에선 깜짝 놀랄 일. 책에 나온 스테판 선생님의 둘째 아들 미하엘 스테판이 그랬다지요. 프로 탁구 선수 출신의 기업 고문 변호사인 미하엘. 물론 독일에서도 한 사람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쉽지 않다지요. 아니, 이렇게 박 선생은 말합니다. “독일인들은 성공에 죽자사자 목을 매지도 않기 때문에 반드시 그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러나 의외로 두 가지를 모두 이룬 사람도 적지 않다. 느슨한 사회 분위기가 그것을 가능하게도 하는 것이다.”(p.203)
대학 못(안) 가면 곧 죽는 것처럼 겁박하는 사회. 한 번 낙오되면 영영 수렁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처럼 협박하는 사회. 루저로 낙인찍히면 운신도 못 하게 포박하는 사회. 우리 사는 한국은 이렇다죠. 그렇다면 박 선생이 독일에서 얻은 깨달음은 이런 것. “인생에서 기회를 다시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한 인간에게, 아니 한 사회를 위해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점수로 줄을 세워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에게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던 것이다.”(p.206)
독일은 대학을 못(안) 가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내재화된 사회입니다. 중하위권에 맞춰 수업할 수 있는 이유는, 1등을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대학을 못(안) 가도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이스터. 즉, 직업교육을 받은 뒤 중산층 문을 열 수 있는 길이 독일에는 널려 있다는군요. 우리에게도 박 선생의 말씀 같은 이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성적이 되어도 대학을 안 가는 아이들이 독일에는 많아요.”
4. 독일에서 학부모로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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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육성회, 그러니까 학부모들의 바람이야 유명합니다. 치맛바람이라고 하죠. 교육의 주체로서 학부모의 역할과 목소리가 높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으나, 제가 언급한 것이 뭘 뜻하는지는 대충 아시죠?
독일에선 그 학부모 대표는 봉사하는 몸과 마음만 필요하다는 것이 박 선생의 설명입니다. 돈? 어느 학부모나 다 같이 씁니다. 무기명으로 자동이체하고. “독일의 학부모 대표는 봉사하는 건데, 명예롭게 생각하니까, 시간 있는 사람들은 서로 손 들어서 하려고 해요. 보니까 우습더라고요. 남지도 않는 거 저리 하려고 그럴까.(웃음) 이 사람들은 그걸 참 명예롭게 생각합니다. 봉사하는 마음만 필요한 것이 육성회, 학부모 대표예요.”
부모는 자식의 할 일을 하나하나 챙겨주며 이리가라 저리가라 방향까지 정해주는 역할이 아니라 뒤에서 지켜보며 힘들어할 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거리 서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놀이터에서 정신없이 놀던 아이가 친구들이 모두 돌아가고 어스름 해가 지면 슬며시 집이 그립고 어머니가 생각나듯이 어머니는 그런 존재여야 합니다. 놀이터를 점령하고 친구들까지 줄을 세우는 어머니가 되어서는 안 되지요.(p.167)
5.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위한 교육
공동체. 함께 산다는 것. ‘사회적’이라는 말은 그런 뜻이지요. 독일 교육에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독일 교실에 물론 왕따도 있고, 자기만 생각하는 아이들도 더러 있습니다. 한국은 그런 분위기가 좀 있잖아요. 공부 잘 하면 인간성도 좋아 보이는. “독일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 공부 잘하는 아이들 중에 이기적인 아이들이 좀 있어요. 친구 관계가 마음만 맞으면, 집이 부자고 가난하고 상관없이, 공부 잘하고 못하고 상관없이, 1등과 꼴찌가 충분히 친구가 됩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독일에선 절대 터부시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독일인.’ 수업 시간에 이 말을 꺼내면 밖에 나가야 하거나 지적을 받는답니다. 전범국으로서의 반성에 기초한 교육인 셈이죠. “독일 교육은 애국심을 배제합니다. 애국심은 우리만 잘 살자는 주의라는 거죠. 우리 독일인,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말이고요. 애국심에 호소하면서 엄청난 범죄를 저질렀잖아요. 대통령이 무슨 일 할 때, 가장 내세우는 말이 조국, 우리 독일인, 우리 한국인과 같은 말이죠. 우리나라가 금 모으기를 할 때 독일 TV에 나왔는데, 되게 신기하게 보더라고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직 이 나라에선 이렇게 한다며.(웃음)”
이들은 ‘경쟁에서 이겨서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모두 함께 가는’ 교육을 중요시한다.(p.21)
6. 창의력, 실용성,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교육
독일 교육은 단순 암기와 주입식 교육을 배제합니다. 이에 따라 창의성과 공동체에 어울리는 인간을 양성하는 것이 목표죠. 그 창의성은 어떻게 나올까요. 박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의성도 경쟁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거라고 확신해요. 세계 학력경진대회가 열리면 우리가 상위권이고 독일은 이십 몇 위를 하곤 해요. 그럼 독일에서 뭘 배울 수 있느냐고 하는데, 실제 깊이 있는 교육은, 경쟁이 있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들은 창의, 실용,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교육을 통해 ‘어떤 삶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를 스스로 깨닫도록 합니다. 과연 한국의 교육은 어떨까요. 어떤 삶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까요. 혹시 무조건은 아닐까요. 남보다 잘난. 남 보기에 버젓한. 남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않는. 결국, 누구든 짓밟고 서라는 명령을 주입하고 있진 않을까요.
김규항.박성숙 선생, 교육을 말하다
박 선생의 독일 교육 이야기는 이쯤에서 정리가 됐습니다. 이어서, 아이를 위한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발행인인 두 아이의 아버지와, 독일에서 온 두 아이의 어머니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진짜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그들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것도 한 번 들어보시죠.
김규항(이하, 규항): “경쟁교육 하에서는 깊이 있는 교육은 불가능하다고 체험을 통해 단언하시는데, 한국은 어떡해야 하나요. 한국 아이들은 이렇게 자라면 10~20년 후에는 인성에 문제가 있고, 생각도 깊지 않은 어른이 돼서 우리 사회를 채우게 되는데, 이 얼마나 암담한 이야기입니까.
교육 문제가 한국 성인들의 삶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인 건 사실인 것 같습니다. 고위 공직자 인사청문회를 하면 위장전입은 기본인데, 대개 고개를 숙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죄송합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 그러면 분위기가 누그러집니다. 교육은 그렇게 상하좌우 무관하게 삶을 규정하는 문제입니다. 한국은 사실 교육 문제가 실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교육은 교육이 아니라, 대학 입시 문제입니다. 대학 입시를 빼면 교육 문제가 있습니까, 대한민국에서. 대학 입시 문제를 교육 문제로 치환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교육은 사람이 사람을 키워내는 것이지만, 한국의 부모들은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고 있지 않습니다. 껍데기는 사람이지만.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가 뼈대인데, 한국에서 어떤 사람으로 키울 것인가 생각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얼마짜리로 키울 건가 생각하고, 스펙이나 등급을 얘기하고 등급을 매깁니다. 지금 한국 교육의 목표는 인간적 등급을 매기는 것이고, 사회적 공식적으로 등급을 매기는 절차가 대학 입시입니다. 어떤 등급이 매겨지는가에 부모들이 올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다들 ‘아이들 교육 문제 때문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그 문제로 삶과 경제가 재편되고 심지어 가족이 생이별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만 살펴보면 다들 말하는 교육문제가 실은 교육문제가 아니다. 교육문제는 단지 대학입시 문제의 다른 이름이며 교육의 목표는 아이를 어떤 사람으로 키울 건가가 아니라 얼마짜리 인간으로 만들 것인가일 뿐이다.(추천의 글, p.6)
규항: “자,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독일에서 사니까 이렇게 하지만, 여긴 한국인데, 아무리 옳고 좋다고 해도 한국에서 가능하겠느냐, 우리 현실에선 어렵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죠. 그런데 어떤 교육을 하는가는 한국인가 독일인가와 무관합니다. 어떤 사회이며 국가인가는 무관한 고유한 부분입니다. 독일에서도 한국과 다름없이 하는 한국 부모가 있고, 한국에서도 아주 적지만, 독일식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박 선생님 얘기 중에 독일에서 왕따가 이기적인 아이라고 했는데, 그걸 들으면서 흐뭇한 느낌이 있었습니다.(웃음) 저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고1 여자, 중1 남자입니다. 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엄격했고 가장 타협 없이 단호한 태도를 보인 것은 단 한 가지였습니다.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 다른 사람 배려하지 않고 행동할 때. 그런 행동을 하면 사람 취급 못 받았습니다.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우리가 사수해야 될, 내 아이를 사람으로 키우는 데 있어 최소한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 부모들은 극심한 경쟁으로 공황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워낙 내몰려 가다보니 그런 걸 잊게 됩니다. 독일에선 부모가 소홀해도 학교를 통해 보완되는데, 한국은 (부모가) 각별히 사수하지 않으면 어디서든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부모들이 아주 각별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독일 사람들의 상식과 인간적 태도들은 한국에서도 몇 십 년 전 시골이나 동네에서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던 태도입니다. 교육을 왜 받느냐면, 기본 인성에 더 깊이 있고, 사회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지성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 교육은, 사람이 사람으로서 이웃과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인성을 파괴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아이를 키울 때, 그런 문제에 대해 각별하게 하나의 전쟁처럼 사수할 필요가 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제 얘기만 했는데, 박 선생님과 이야길 나눠보겠습니다. 만약 바로 한국에 돌아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여느 한국 엄마와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 한국에 돌아오면 교육을 어떻게 할 것 같으세요.”
박성숙(이하, 성숙): “먹는 것만 해결되면 한국에 돌아오는 것 고민 안 합니다.(웃음) 독일에 산다고 한국 사람이 경쟁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독일에서도 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이들 과외를 시키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내가 한국에 와서 아이를 키운다고 해서 특별히 걱정은 않습니다. 명문대 졸업한다고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 한두 사람 빼고는 다 평범하게 삽니다. 그런 식의 삶을 독일에서 경험했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고 여유 있게 살지 않을까요. 아이들 교육 문제는 걱정 않습니다. 독일에 가서 처음엔 저도 정말 힘들었어요. 고통스럽고 두려웠죠. 아이를 저렇게 놔둬도 될까.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더 지내보면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날이 옵니다.”
사실 독일에서도 한국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거주하고 있는 프랑크푸르트나 뒤셀도르프 등 몇몇 도시에 있는 한국 학생들은 이곳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공부에 치여 한국에서처럼 바쁜 생활을 하고 있다.(p.280)
규항: “가수 루시드 폴의 근래 인터뷰를 봤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선망하는 학벌이나 스펙을 갖고 있는데, 불안정한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더군요. 루시드 폴이 그랬습니다. 친구들을 보면 하루 다섯 시간 자고, 개인 시간도 없고, 경쟁 때문에 저리 사는데, 왜 내가 편하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음악 하는 걸 고생한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보통 경쟁에서 이겼을 때, 우리 아이에게 주어지는 실질적 이점들을 부각해서 생각합니다. 그런 삶이 진짜 좋은 삶인가, 각박하고 시간도 없고 올라갈수록 경쟁 심해집니다. 물론 선망 받고 우쭐해서 사는 맛에 살 수도 있지만, 경제적 안정은 있을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좋지 않은 삶, 아닙니까. 경쟁에서 이기는 삶이 초라하고 아이의 삶에서도 손실이 많다는 것을 우리가 생각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답답한 게, 한국 부모들은 인생을 준비기와 본격기로 나눠 생각합니다. 열아홉 살까지는 준비기, 스무 살부터는 본격기. 열아홉까지는 본격기를 위해 준비하는 인생이라 힘들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인생에선 오늘이 인생이고, 오늘의 연속입니다. 사람이 일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고, 놀고 즐기고 사랑하려고 태어난 건데, 박정희부터 일하고 미래를 준비하라고만 했어요. 이건 정신병입니다. 일을 열심히 하라는 건, 인생을 충만하게 만들기 위함이지, 일 자체를 위함이 아니잖아요.
한국 사람들을 보면, ‘보다 밝은 내일’밖에 없습니다. 계속 내일입니다. 오늘이 없어요. 그 다음 나이 들면, 우리 아이의 미래. 이런 바보 같은 삶이 어디 있습니까. 미래를 어떻게 살고 하는 것도 좋지만, 강박에만 빠져 있어요. 요즘 아이들은 스무 살을 넘으면 남자 친구, 여자 친구를 사귈 때 스펙으로 사귑니다. 진짜 사랑은 중학교 때나 하는 거죠. 결혼할 때 사람 인성을 보나요. 조건이나 스펙을 보는데, 그건 성매매 계약이지, 결혼이 아닙니다.
아, 제가 말이 길어졌는데, 독자 여러분의 질문도 함께 받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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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한국에 들어와도 문제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외국에서 교육을 받고 그쪽 문화에 적응했다가 다른 아이가 자라온 환경과 생각을 이해 못하고 분열적인 모습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성숙: “어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교를 경험해보고 싶어 집 옆의 학교를 찾아갔는데, 선생님이 그러더라고요. 적응 못 할 거라고. 한마디로 오길 원하지 않았고, 이방인이 와서 면학 분위기를 흐리는 게 관심사 같았습니다. 그 학교가 명문 고등학교라 하던데, 집이 가까워 갔을 뿐이었거든요.(웃음) 어쨌든 아이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도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적응하고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독일에도 한국 아이가 와서 적응 못 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규항: “독일에서 상식적인 환경에서 살다가 한국의 야만적이고 체념적인 상황에 처해도, 바른 교육을 받아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불편을 겪기도 하지만, 감화시키는 능력이 있더라고요. 옆에서 보면 근사하고 멋지니까.”
독일에서 경쟁이 별로 없고 대학을 안 가도 원하는 직업을 찾아 행복한 삶을 사는지요.
성숙: “그게 가능합니다. 우리나라 대학 진학률이 제가 알기로 83%인가 그렇고, 핀란드가 92%라고 알고 있어요. 독일은 대학 진학률이 39%입니다. 그중에 졸업하는 게 50%니까, 20% 정도가 대학을 나왔다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독일 사람들은 대학을 나왔다고 하면 우리보다 훨씬 대단하게 봅니다. 중요한 건, 독일엔 명문대학이 없습니다. 20%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대학이고, 서열이 아닌 평등한 관계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면 대학에 갈 수 있고, 대신 많이 놀면 졸업을 못 하죠.
경쟁을 없앨 수 없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명문대를 없애면 됩니다. 그래서 불가능하죠. 먼 길을 돌아서 가야 하죠. 그러나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부모들이 많이 바뀌어서 대안학교도 가고…….”
우리도 이제는 사교육을 잠재우겠다고 입시 제도만 가지고 흔들어댈 것이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을 제공하는 명문대학의 존폐를 고려야 보아야 한다. 아주 극단적인 방법이겠지만 전국에 있는 특목고를 모두 폐지하는 것보다 몇몇 명문 대학이 사라지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p.287)
규항: “대학을 꼭 가야 한다는 생각이 합리적이진 않습니다. 저나 박성숙 선생님이 대학 갈 때 진학률이 20%였는데, 지금은 90%에 가깝습니다. 독일의 대학 진학률이 40% 정도 안 되는데, 한국이 독일보다 고학력을 필요로 하는 산업구조는 아니거든요. 공포나 강박 때문에 대학 장사꾼들이 대학 문을 열어놓은 거지, 진짜 경제적 안정성을 위해서라면 대부분의 대학 가는 아이들이 헛일을 하는 상황이죠. 대학을 가지 않고 소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나 방법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공부도 적성입니다.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애들이 있습니다.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운동에 적성이 없다고 하면 편하게 인정하는데, 공부에 적성이 없다고는 쉽게 인정을 못합니다. 머리는 좋은데 노력 안 한다고 생각하죠. 그게 머리가 나쁜 겁니다. 공부가 사람의 절대적인 가치가 되니까, 공포가 있는 겁니다. 한국에는 머리가 좋은데 노력 안 하는 애들이 너무 많은 거죠.(웃음)”
아이가 지금 31개월 됐고, 직장 때문에 강남에 살게 됐는데, 요즘 공포심을 느끼게 됐습니다. 지금 동네에서 보면, 밤 10시에 초등학생 때부터 학원차가 늘어서 있어요. 이 동네에 계속 살게 된다면, 아이에게 사교육을 안 시켜서 아이가 행복하고 원하는 삶을 살게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습니다. 탈출해야 하나, 나 혼자 끌고 가야 하나,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성숙: “그런 사회에 들어가면 나 혼자 초연할 수 있을까, 자신 있게 얘기를 못하겠네요. 그런데 엄마가 잘 생각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규항: “그 동네가 어떤 엄마한테는 위장전입이라도 하고픈 가치가 있을 테고, 그 동네에 살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교육이 뭔가, 하는 가치 기준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질문하신 분은 후자에 가까운 사고 같은데, 생각대로 결단하는 것이 자기 존중을 할 수 있는 길이고, 아이에게도 떳떳한 길이 아닐까요. 학원에 가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학원도 분명 보조적인 기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학원을 금지해야 하나요. 학원은 그런 기능이 있는데, 그게 전도돼서 학원의 기능적인 학과 교육이 실제 인성교육을 포함한 교육을 뒤집어 버리는 그 풍경이 끔찍한 거죠.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는 누구든 강요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공립 고등학교 교사인데, 한 부류는 대학을 가고자 하고, 다른 부류는 이미 대학을 포기한 상태입니다. 고민은, 아이들이 대학을 가겠다? 성심껏 지원해줄 수 있지만, 안 가겠다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조언해줘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성숙: “한국 교육 현장의 문제라 어려운데, 독일은 그럴 때 고민이 안 됩니다. 대학은 성적이 돼도 안 가는 애들이 많고, 마이스터라는 길이 있기 때문이죠. 독일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대학과 직업의 두 가지 길을 결정합니다. 우리는 대학에 가야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거라고 얘기하지만, 독일에선 이 길도 저 길도 좋아서, 위험한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음,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아이들에게 독일 교육 이야길 들려주는 건 어떨까요.(웃음)”
규항: “지금 당장 묘안이 있을 수 있다면 한국 교육에 문제는 없겠죠.(웃음)”
두 아이 아빠로 아내가 초등 교사입니다. 아내가 학교를 울산부터 대구, 서울로 옮겨오면서 보니, 사교육을 받고 안 받은 차이가 심하다고 하더군요. 오늘 이 자리가 행복한 교육으로 갈 수 있겠다, 해서 왔는데, 대안이 없는 느낌도 듭니다.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큰 틀에서 우리 교육의 숙제나 앞으로 우리 교육을 위해 쓴소리를 해주신다면요.
성숙: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명문대를 없애면, 바로 모레 변합니다. 그건 불가능하니까, 부모들이 의식을 개혁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의 문제는 아닙니다. 학부모들의 문제가 가장 크고, 기득권 욕심에서 오는 문제들이죠. 의식을 바꾸는 길밖에 없습니다. 천천히 가겠지만, 의식 속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 알고 모르고는 천지 차이거든요. 이 세계가 전부다, 우리가 사는 방법이 전부다, 라고 생각 말고요. 저도 독일에 처음 갔을 땐, 독일 사람들이 다 바보처럼 보이더라고요. 머리에 든 것도 없이.(웃음) 우리는 머리에 든 게 지식밖에 없잖아요. 제가 대표적인 예인데, 저도 12년 동안 조금씩 바뀐 겁니다.”
독일 교육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경쟁에서 벗어나면 학교 교육은 깊이를 가질 수 있으며 청소년들의 삶의 질은 더불어 향상된다’는 진실을 알 수 있다. 명문 대학이 바로 우리 청소년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는 경쟁의 원인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p.288)
진보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대학을 안 가도 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자식에 대해서만은 그런 말을 못하기도 하더라구요. 그런 사람들에게 희망이 있을까요.
성숙: “대학을 무조건 안 보내자고 하는 운동은 아닐 겁니다. 가는 사람을 막을 순 없잖아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기에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고도 보는데요. 공부하고 싶은 아이가 대학을 가겠다는 것을 부모라고 막을 수 있겠어요.”
규항: “전적으로 그렇진 않으나, 제가 알고 있는 얘기를 들려드리죠. 이번에 서울대에 들어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회 저명인사의 아들이 있습니다. 외고를 나왔는데, 아빠가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들씌워 비난해선 안 되나 과정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경쟁 교육 비판하는 사람이 자기 아이의 경쟁력 앞에선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인 거죠. 그 아들의 담임이 보기에도 흉했던 모양입니다. 교사가 실망했다고 그 저명인사에게 얘기했더니,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며 부끄러워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말하길, 그게 부끄러워하는 거냐, 부끄럼을 감수하겠다는 거지.(웃음)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그런 부분들에서도 많이 있는 거죠. 성명서나 토론 등에선 그렇게 말하면서, 내 아이의 경쟁력에서 별개로.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싶진 않고, 어리석은 것 같습니다. 아이의 부모에 대한 존경이 파괴되는 것 아닙니까. 사회적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세상에 그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있습니까. 위선적이라기보다 어리석은 거죠. 왜 그렇게 부모와 자식 간의 존경과 존중심을 깨트릴까. 굳이 진보 교육 운동 안 하면 되는데. 편하게 살면 되는데. 스스로도 괴롭고 자식의 존경심도 파괴하고.”
역시 교육 문제라 열기가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시간을 넘어 후끈 달아오른 현장, 그렇게 슬슬 마무리가 됐지만, 교육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떤 사회적인 문제건, 그 근원에는 교육이 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행해지는 교육이라는 이름의 집착과 사육이 불러올 파행은 다른 모든 분야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부동산 거품의 기저에 자리한 그 맹목적인 교육열을 보세요.
솔직히, 지금 비혼에, 무자식이기에 다행이라고 자위할 따름입니다. 혹 아이가 있는 상상을 하면 괴로워집니다. 한국을 떠나지 않는 한, 이 제도권 사육에 주파수를 맞추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가장 보통의 존재인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일까. 제도권 학교엔 보내지 않을 생각입니다, 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여전히 모를 문제지요.
남을 이길 재간이 없으니 루저로 버티고 견디는 자의 어설픈 교육론이지만, 아이는 무조건 놀아야 하고, 때론 아이가 끼워준다면 함께 노는 어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강연장을 빠져나왔지요. 아울러 지금은 고래동무지만, 아이가 생긴다면, 『고래가 그랬어』를 구독해서 아이와 함께 볼 거라는 생각을 하며. 자, 함께 다시 고민합시다. 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은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펼칠 수 있고 문제가 발생하면 스스로 해결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을 키워내는 일입니다. 그러니 문제를 지식에만 의존하지 않고 학문적이고 인간적으로 조화를 이루어 풀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지요. 교육이란 이 둘 중 어느 하나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간이 자립적이고 창의적으로 또한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어야겠지요.(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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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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