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후의 한반도는 확실히 유학에 근거한 나라가 지배해 왔습니다. 고려 왕조의 패망 이후 들어선 새로운 집권 세력은 통치 이념으로서 성리학을 세웠습니다. 초기의 유학이 주로 체제와 행위를 다루었다면, 성리학은 보다 철학적, 내면적인 면에 집중하면서 사물의 탄생과 존재와 같은 존재론적인 영역으로의 발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 유학의 기초 위에 세워진 조선왕조 500년은 한반도를 유교 문화권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유학의 시초는 바로 춘추전국시대의 학자였던 공자입니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당시에 이미 동경해야 할 대상으로서 존재했던 주나라 황실의 예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대가 끊어질 듯했던 주나라 시절의 시와 노래를 복원해 기록했고, 각종 문서와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사상이 어떠했는지를 직접 정리한 바는 없습니다.
그런 공자의 행적과 이야기를 후대 제자들이 정리한 책이 오늘날의 『논어』입니다. 공자가 직접 쓰지 않았지만 공자의 말과 행동을 통해 오히려 유학이 말하는 정수를 직관할 수 있다는 면에서, 『논어』는 크리스트교의 『성경』이나 불교의 『숫타니파타』와 같은 힘을 갖습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들에게 『논어』를 읽는 것은 어쩌면 우리 문화 전반에 깔려 있는 유학적인 기초를 이해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을 줍니다. 특히나 『논어』가 많이 다룬 주제인 자기관리, 거시정치, 대인관계 등에서 얻을 수 있는 통찰과 지혜는 『논어』 읽기가 따분한 고전 읽기가 아닌 매우 실용적인 독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修身齊家 治國 平天下
윤리 교과서에서 유학을 이야기할 때는 보통 ‘仁인’을 첫손으로 꼽지만, 『논어』라는 책이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 있어 기초로 깔리는 개념은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입니다. 이 구절의 출전은 『논어』가 아닌 『대학』이지만, 사실 『논어』 또한 이 개념은 모든 이야기에 전제되어 있는 유학적 사고의 핵심입니다.
유학에서 첫 번째 관심은 바로 사회가 어떻게 하면 안정되고 풍요로울 수 있겠느냐는 질문입니다. 당장 우리가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이 관계를 개선하고자 했던 고민이 유학이었고, 유학은 그에 대한 답으로 집단을 이루는 구성원인 개인의 문제를 꺼내 듭니다. 천하가 잘되기 위해서는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야 하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집안들이 모두 화목해야 하며, 집안이 평온하려면 개개인들의 수양이 절실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에 『논어』는 정치를 다루면서도 정치의 주체인 사람을 버리지 않습니다. 『논어』는 정치가 잘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물음에 사람으로 답합니다. 사람이 우선 기본이 되어야만 그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세상 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君子
그렇기에 『논어』는 ‘군자’라는 개념을 꺼내 듭니다. 군자란 정치의 주체이자, 완성된 개인의 표본입니다. 천하에 평안을 가져올 주인공으로서의 위정자로 군자를 꼽는 것은 그만큼 위정자의 올바름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된다는 주장을 담습니다. 『논어』의 많은 구절은 그래서 군자와 소인을 비교하거나, 군자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를 설명하는 데 쓰이고 있습니다.
子曰 ?子 不器
군자는 그릇처럼 그 모양이나 용도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운신의 폭이 탁월하고 남다른 사람을 일컫는다. - 『논어』 위정편
子曰 君子 周而不比 小人 比以不周
군자는 두루 통하면서도 치우치지 아니하고, 소인은 치우치며 두루 통하지 아니한다. - 『논어』 위정편
유학은 만인을 편안코자 하는 의지, 곧 정치를 핵심 의제로 다룹니다. 그래서 특히 그 정치를 담당해야 하는 계급, 다시 말해 선비, 사대부 등의 식자, 귀족 계급이 갖추어야 할 책임과 의무에 대해 집중하고 있습니다. 군자란, 그런 위정자 계급이 도달해야 할 목표로서 존재하며,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많은 덕목들을 꺼내 듭니다.
仁
그중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것이 仁인입니다. ‘어질 인’으로 훈독하는 이 글자는, 단순히 어질다는 표현에 그치지 않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초적인 덕목이자 중요한 덕목입니다.
인이란, 공자 스스로도 논어를 통해 여러 차례 다양하게 정의하는 개념입니다. 아니, 정의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인은 매 상황마다, 매 사람마다 달라지며, 어찌 보면 ‘그때그때 사람을 위하는 가장 적합한 길’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올바를 수도 있겠습니다. ‘仁’이라는 한자어 자체가 두 사람이 기대고 서 있는 모습에서 온 것으로, 사람이 사람을 대함에 있어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체를 인이라고 해도 무방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인을 가진 자만이 감히 군자라 할 수 있으며, 그런 군자에 의한 정치만이 세상을 바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이 『논어』를 가로지르는 중심 주제입니다.
子曰 唯仁者 能好人 能惡人
오직 인자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도 있고, 미워할 수도 있다. - 『논어』 이인편
子曰 志士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以成仁
뜻있는 선비와 인한 사람은 살고자 하여 인을 해치지 아니하며, 오히려 제 한 몸을 던져 인을 이루는 경우가 있다. - 『논어』 위영공편
『논어』는 그 텍스트와 주석을 포함한 분량이 실로 방대한 고전입니다. 그러나 그 기저에 흐르는 한 줄기는 위에서 몇 개의 문단으로 간추릴 만큼 단순합니다. 결국 정리하자면, 천하를 바르게 세우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정자가 군자여야 하며, 그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스스로를 인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논어』의 모든 텍스트는 이 논리를 세우고 다듬고 보강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각각의 텍스트는 후대 2천 년의 끊임없는 연구 덕택에 이제 무척 풍부한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논어』라는 텍스트는 하나지만, 그 『논어』에 당대의 학자들이 자신의 해석과 첨언으로 주석을 단 주석본은 수백여 가지가 넘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유학의 수많은 학파들이 시작되었고, 특히 조선왕조와 같이 아예 성리학을 건국이념으로 들고 온 경우에는 나라 전체가 유학을 위한 세트로 구성되기도 했습니다.
‘성리학국가’ ‘유교국가’로 불려도 손색이 없는 조선왕조의 통치 구조는 그래서 마치 공산주의의 재현을 위해 성립했던 소비에트를 연구하는 것과 같은 개념으로 유학에서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왕이 공부하는 시간, 경연 시간을 법전에 명시하고, 왕의 무한한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언론 기구의 설치, 모든 내용을 기록해서 후대에 남기는 사관 제도와 실록의 제정 등은 군자에 의한 통치를 제도적으로 만들기 위한 조선 초기 유학자들의 구상이었습니다.
그런 유학에 의해 세워진 제도국가에서 500년을 지낸 문화는 지금까지도 한반도에 남아 있습니다.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꿔도 그래서 수많은 선비들이 단발령에 저항했고, 일제의 탄압에 저항했습니다. 그리고 유독 우리는 정치인의 도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구 정치와는 달리 정치인 개개인의 사생활과 인간성을 가리키며 ‘인간이 덜됐다.’라고 표현합니다.
유학 자체는 여러모로 폐단 또한 많은 지적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애초에 인이라는 테두리를 딱 잡아 정의하지 않은 이유는 시대마다, 역사마다 각기 나름의 인을 가지기 때문임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은 듯합니다. 폐단은 폐단대로 걷어내고 공자가 말했던 세상을 편안케 하는 진리, 군자에 의한 정치라는 핵심만을 생각해 본다면 『논어』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헌법 민주주의 국가의 주권자인 여러분에게 새삼 삶과 정치의 의미를 다시금 새겨줄 수 있는 좋은 선생님일 수도 있겠습니다.
德不孤 必有隣
덕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아서, 늘 항상 이웃이 그 덕과 함께 한다는 논어의 구절입니다. 삼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며 『논어』 함께 읽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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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우아하고 고고한 이미지가 되어버린 책 읽기가 어느 날부터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그 뒤로는 어디 가서 취미가 책 읽기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책보다 좋은 것은 먼지 날리는 시골 비포장도로에서 하루 두 번 오는 버스 기다리며 담배 한 대 피우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그는 나이가 좀 더 들고 감성과 지성이 경륜으로 불릴 쯤이 되면 포크 가수로 전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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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eeys
2010.04.13
갈꽃
2009.06.10
좋은 글귀들이 많습니다. 배우고 익히니 즐겁습니다.
아름다운여자
2009.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