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전 - 지구를 거꾸로 돌려줄 슈퍼맨이 그립다
시간이란 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지나간다. 우리는 모두 ‘은행 문 닫기 전에 처리해야지’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시간을 보면 오후 4시 30분이 지나가 있고, 굉장히 멀리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어머니 칠순이나 둘째 돌잔치가 바로 다음주였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200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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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지나간다. 우리는 모두 ‘은행 문 닫기 전에 처리해야지’하고 다른 일에 몰두하다가 시간을 보면 오후 4시 30분이 지나가 있고, 굉장히 멀리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어머니 칠순이나 둘째 돌잔치가 바로 다음주였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시간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빠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두 돌을 막 지난 아이들에게는 1년이 일생의 절반이나 되는 시간이라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10세 어린이에게 1년은 자기가 살아온 생의 1/10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라 훨씬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30대에는 그보다 빠르게, 40대에는 더 빠르게 지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애초에 시간은 무지하게 빨리 지나가는 것인데,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무척이나 느리게 느껴지는 반면, 노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정말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나간 시간을 따져보면 무척 빠르게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휴전을 맺으며 일단 끝이 났다. 내가 태어난 게 1972년 5월이니, 나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불과 19년 만에 태어난 셈이다. 19년이란 세월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긴가? 짧은가? 나에게는 고작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일 뿐이다. 한국전쟁이 불과 얼마 전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동안 빠른 속도에 얼마나 열광해 왔는가? ‘남보다 빨리’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고, 우리는 모두 속도전 속에 뛰어들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떼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며,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토익과 토플 성적표를 받아놓는다.
남들보다 빨리 군대에 갔다 오고, 남들보다 빨리 돈을 모았고, 남들보다 빨리 성공해, 결국 남들보다 빨리 은퇴하길 바라고 있다. 아니 그럼 뭔가? 결국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고작 안정적인 노후였던 셈인가? 그걸 얻으려고 이렇게 빠르게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인가?
가끔 ‘이 많은 일들을 내가 어떻게 해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 시간 안에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그건 개인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속도전이 빛을 발한 것이다.
나도 하룻밤 사이에 원고지 분량으로 200매 기사를 탈고한 적이 있다. 잡지 6꼭지가 완성된 것이고, 원고료로 따지면 2백만 원 정도의 일을 해낸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하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남자들은 이렇게 직업에서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한번 일요일을 떠올려보라. 실컷 낮잠이나 자면 될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번 꼼꼼하게 체크해보시라.
우선 발코니 전구 세 개를 교체해야 한다. 벌써 몇 달째 방치해놔서 아내의 원성이 대단하다. 그 다음에 각종 건전지를 사다가 시계와, 리모컨, 아이 장난감에 꽂아주어야 한다. 이 약속도 지키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 다음 서재에 있는 책을 정리해야 한다. 보지 않는 책은 싹 정리한다고 말한 지도 벌써 두 달째다. 이 세 가지만 해도 한나절이 그냥 지나간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다녀와야 하고, 간 김에 자동차 오일도 갈아야 하며, 안경도 새로 맞춰야 한다. 이 모든 걸 하루에 해치워야 아내의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차라리 욕을 들어먹더라도 죽은 척 잠을 자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러면 되는 것이고. 어쩌다 인생살이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고, 시간은 없고,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이거 슈퍼맨이라도 불러서 지구를 세우던지, 거꾸로 돌리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프리카 버팔로가 생각난다. 아프리카 버팔로들은 건기가 시작되면 풀을 찾아 대이동을 시작한다. 수백 마리의 버팔로들이 풀이 많은 초기에는 여유롭게 이동을 시작하지만, 건기가 본격화되면 풀이 줄어드는 만큼 발걸음도 빨라진다. 뒤에 처진 버팔로들이 풀을 찾아 속도를 내면 이에 질세라 앞에서 더 속도를 내고, 이들은 풀을 찾아 이동 중이라는 본래 사실을 망각한 채 달리는 데에만 몰두한다.(영화 <라이온 킹>에서 사악한 숙부 스카가 바로 달리는 버팔로 때 속에 삼바의 아버지를 집어넣어 죽였다.)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리다 벼랑을 만나게 되고,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상당수 버팔로들이 낭떨어지로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이 버팔로들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속도전만 남아서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죽어라고 달리다가 결국에는 벽에 부딪히거나 벼랑으로 떨어지는 버팔로가 바로 현대인의 모습은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두 돌을 막 지난 아이들에게는 1년이 일생의 절반이나 되는 시간이라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10세 어린이에게 1년은 자기가 살아온 생의 1/10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라 훨씬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30대에는 그보다 빠르게, 40대에는 더 빠르게 지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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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다. 애초에 시간은 무지하게 빨리 지나가는 것인데, 살아야 할 날이 많이 남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무척이나 느리게 느껴지는 반면, 노인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정말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나간 시간을 따져보면 무척 빠르게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휴전을 맺으며 일단 끝이 났다. 내가 태어난 게 1972년 5월이니, 나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불과 19년 만에 태어난 셈이다. 19년이란 세월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긴가? 짧은가? 나에게는 고작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일 뿐이다. 한국전쟁이 불과 얼마 전 일인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동안 빠른 속도에 얼마나 열광해 왔는가? ‘남보다 빨리’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었고, 우리는 모두 속도전 속에 뛰어들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떼고, 초등학교 다니면서 중학교 과정을 마치며,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토익과 토플 성적표를 받아놓는다.
남들보다 빨리 군대에 갔다 오고, 남들보다 빨리 돈을 모았고, 남들보다 빨리 성공해, 결국 남들보다 빨리 은퇴하길 바라고 있다. 아니 그럼 뭔가? 결국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는 고작 안정적인 노후였던 셈인가? 그걸 얻으려고 이렇게 빠르게 뛰어다니고 있다는 것인가?
가끔 ‘이 많은 일들을 내가 어떻게 해냈지?’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 시간 안에 할 수 없는 일을 해낸 것이다. 그건 개인의 능력이 탁월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몸에 익은 속도전이 빛을 발한 것이다.
나도 하룻밤 사이에 원고지 분량으로 200매 기사를 탈고한 적이 있다. 잡지 6꼭지가 완성된 것이고, 원고료로 따지면 2백만 원 정도의 일을 해낸 것이다.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하기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는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남자들은 이렇게 직업에서만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게 아니다. 한번 일요일을 떠올려보라. 실컷 낮잠이나 자면 될 것 같다고? 천만의 말씀. 오늘 해야 할 일을 한번 꼼꼼하게 체크해보시라.
우선 발코니 전구 세 개를 교체해야 한다. 벌써 몇 달째 방치해놔서 아내의 원성이 대단하다. 그 다음에 각종 건전지를 사다가 시계와, 리모컨, 아이 장난감에 꽂아주어야 한다. 이 약속도 지키지 않은 지 오래됐다. 그 다음 서재에 있는 책을 정리해야 한다. 보지 않는 책은 싹 정리한다고 말한 지도 벌써 두 달째다. 이 세 가지만 해도 한나절이 그냥 지나간다.
이게 끝이 아니다. 식료품을 사러 마트에 다녀와야 하고, 간 김에 자동차 오일도 갈아야 하며, 안경도 새로 맞춰야 한다. 이 모든 걸 하루에 해치워야 아내의 원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차라리 욕을 들어먹더라도 죽은 척 잠을 자겠다고 하는 사람은 그러면 되는 것이고. 어쩌다 인생살이가 이렇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해야 할 일은 엄청나게 많고, 시간은 없고,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 이거 슈퍼맨이라도 불러서 지구를 세우던지, 거꾸로 돌리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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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버팔로가 생각난다. 아프리카 버팔로들은 건기가 시작되면 풀을 찾아 대이동을 시작한다. 수백 마리의 버팔로들이 풀이 많은 초기에는 여유롭게 이동을 시작하지만, 건기가 본격화되면 풀이 줄어드는 만큼 발걸음도 빨라진다. 뒤에 처진 버팔로들이 풀을 찾아 속도를 내면 이에 질세라 앞에서 더 속도를 내고, 이들은 풀을 찾아 이동 중이라는 본래 사실을 망각한 채 달리는 데에만 몰두한다.(영화 <라이온 킹>에서 사악한 숙부 스카가 바로 달리는 버팔로 때 속에 삼바의 아버지를 집어넣어 죽였다.) 이렇게 사력을 다해 달리다 벼랑을 만나게 되고,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 상당수 버팔로들이 낭떨어지로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이 버팔로들이 우리의 모습은 아닐까? 속도전만 남아서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죽어라고 달리다가 결국에는 벽에 부딪히거나 벼랑으로 떨어지는 버팔로가 바로 현대인의 모습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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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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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이
2009.03.22
아리까리
2009.03.22
siegfrid37
2009.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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