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의자의 수염
2008.11.13

나는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면도용 제품에 관심이 많다. 특히, 칼 면도하는 모습은 언제 봐도 흥미진진하다. 새하얀 면도용 크림 위로 얼굴에 길을 내듯, 마치 갈대 덤불을 밀어내고 포장도로가 만들어지듯, 불도저 같은 면도기가 지나가는 모습이란! 물로 씻고 난 뒤 그 푸르스름한 말끔함도 개운하다. 자연을 정복해낸 인간 문명의 경이로움과 맞먹을 정도다. 면도는 남자에게 최고의 순간이며, 특별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질레트 면도기 광고에는 이런 카피가 뜬다. “For the best at man.”
남자에게 있어 수염을 기르는 것은 면도의 상징성에서 벗어나는 행위, 즉 ‘문명적인 삶’을 따르지 않는 일탈을 의미한다. 오래도록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평균적인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 유교적 풍습에서 효자들은 부모님의 상을 치른 후 3년 동안 수염은 물론 머리도 산발하고 지낸다. 스스로를 폐인처럼 방치해두는 것이 죽은 이를 애도하는 진한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염이 혁명가의 상징이 된 것은 프랑스에서 일어난 1848년 혁명 무렵이었다. 젊은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바리케이드를 치고 싸움을 벌일 때, 그들 모두는 다듬지 않은 자신들의 수염을 과시했다. 그것은 오랜 시간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한 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노출시키는 무언의 시위 같은 것이었다. 이 무렵부터 수염을 기르는 유행은 구체제에 대한 저항의 의지를 공공연히 나타내기 시작했고, 국가에서는 관료 및 군인들은 물론 중도의 입장을 취하는 대학교수들에게조차 수염 금지령을 내렸다.
수염은 그 의미와 상관없이 일단은 깨끗이 면도하는 문명 생활을 하지 않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히피들의 경우는 물질문명에 젖은 기성세대의 권위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역시 수염과 머리를 기른다. 로마가 고도 문명의 중심지였던 시절, 로마인들이 ‘야만인’이라고 취급했던 바바리안(barbarian)도 털북숭이였다. 바바리안의 어원을 캐보면 ‘수염’을 뜻하는 라틴어 ‘bart’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만 보더라도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별 짓는 독보적인 기준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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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들어서 오히려 문명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비문명적인 성격을 띤 단순 생활로 돌아가자는 의지가 영국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와츠(George Frederic Watts, 1817~1904)가 그린 초상화 속 주인공,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도 그런 신념을 가진 지식인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림 속 그는 역시 수염이 사자처럼 푸짐한 모습을 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내버려 둔 듯하다. 모리스에게 있어 수염이란 자연의 생리대로 사는 인생을 의미한다. 오래된 나무는 잎사귀가 무성해지듯, 생의 연륜이 쌓인 사람은 점점 수염이 무성해지는 것이다.
재주가 많던 모리스는 글도 잘 썼고 취미 삼아 그림도 그렸으며 1861년에는 디자인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생명력 없는 물질들에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연밖에 없다고 확신했던 그는 포도 넝쿨이 살아 움직이는 카펫,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려 있는 벽지, 작은 새들이 나무에 앉아 재잘거리는 모습을 담은 커튼을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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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벽지와 메탈 느낌의 전자제품, 직각을 이루는 가구의 틀 속에 살면서 가끔은 숨 막히는 건조함을 느낄 때가 있다. 적어도 내 공부방 하나 정도는 윌리엄 모리스 풍으로 정감 있는 벽지를 바르고 벽돌과 나무로 직접 책장을 만들어 세워 놓으며, 창에는 싱그러운 패턴이 있는 커튼을 드리워보면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리고는 앨버트 무어(Albert J. Moore, 1841~93)가 그린 「붉은 열매Red Berries」 속의 여인처럼 책 속에 푹 파묻힐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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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는 모리스와 같은 시기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화가로, 모리스의 디자인처럼 종종 자연의 패턴을 그림의 모티프로 끌어오곤 했다. 「붉은 열매」 속 여인은 지금 꽃과 나뭇잎 패턴으로 장식된 자기만의 공간에서 마치 자연에 누워 책을 읽는 것 같은 풍요로운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펼쳤던 모리스는 안타깝게도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모순들과 마주치게 된다. 자본주의의 섭리에 따라 경쟁하고 또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그는 온 사원이 수작업을 하면서 예술가로서 공동생활을 즐기는 가족적인 조직을 꿈꾸었던 것이다. 사원들이 직접 만들어낸 수공예품이 질적으로는 최고였을지 모르지만, 시중에 있는 기계로 찍어낸 다수의 제품과 가격으로는 경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나 보다. 결국 모리스의 디자인 회사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닫고 말았다.
이상과 현실의 간극은 예외 없이 너무나 멀다. 그것이 바로 세상의 크고 작은 혁명들을 도모하려고 했던 이상주의자들의 비극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현실에 무작정 굴복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보고자 했다는 시도 자체로 혁명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른다. 어떤 시도도 없이 순응에 몸을 던지는 것이 과연 나의 삶을 대하는 태도 중의 하나였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남자로 태어났다면 나도 한번쯤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러봤을 것 같다. 말쑥하게 면도한 얼굴을 가지고 문명에 순응적으로 사는 게 편하겠지만, 털북숭이가 되어 세상 속에 자유롭게 존재하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할 필요는 있지 않을까. 고민이 어떤 해결점을 제시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의 마음과 일상에 작은 혁명을 일으키는데 늘 시발점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내가 수염을 기른다면 까마득한 후배는 내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뒤늦게 혁명가라도 되신 거예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럼, 내 삶에 혁명을 일으키는 중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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