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로마인 이야기』, 나는 이렇게 읽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마지막 제15권이 일본에서 출간되자 그 소식이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여러 신문에서 대서특필하였다. 그 책이 200만 부 넘게 팔려서였을까. 우리에게는 우리 작가가 쓴 대하소설이 있다.
글ㆍ사진 채널예스
2007.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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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의 마지막 제15권이 일본에서 출간되자 그 소식이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여러 신문에서 대서특필하였다. 그 책이 200만 부 넘게 팔려서였을까. 우리에게는 우리 작가가 쓴 대하소설이 있다. 그러나 『토지』를 제외하면 『로마인 이야기』만큼 ‘대접’을 크게 받은 작품을 우리는 모른다. 서양 먼 옛날의 낯선 곳에서 낯선 인물들이 펼친 이야기, 그것도 일본의 한 작가에 한 해 한 권씩 15년에 걸쳐 쓴 책이, 마치 국민문학처럼 남녀노소 구별 없이 베스트-롱셀러로 애독된 비밀이 과연 무엇일까.

우선 들 수 있는 점은 흥미진진한 역사로망이라는 사실이다. 세계 최대의 로마 제국 1천 년의 역사를 무대로 황제와 정치가, 무장과 현자(賢者), 민중이 차례로 드라마틱하게 펼쳐보이는 웅대하고 장려한 그림 두루마리. 저자의 폭넓은 교양과 격조 높은 문장으로 수놓은 역사로망은 독자를 일상의 현실에서 해방하고 상상의 세계로 날게 한다. 일손을 번번이 뺏은 『로마인 이야기』의 재미를 『삼국지연의』와 견주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전해지는 진실, 메시지는 삼국지나 어느 대하소설과는 딴판이다.

역사는 현재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도 하고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고도 한다. 이 점에서 로마사는 단연 유별나다. 로마의 정치가 카토가 쓴 『로마사』 이래 로마의 역사는 유럽의 거의 모든 세기에 걸쳐 쓰였다. 지금도 고전으로 애독되는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1531),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1776~98), 미슐레의 『로마사』(1843)가 말해주듯이 근대사의 전환기마다 유럽은 로마를 돌이켜보고 그로부터 ‘메시지’를 받고자 했다.

이 ‘영원한 메트로폴리스’가 바티칸의 존재와 관계없이 중세 이래 오늘날까지도 모든 유럽인에게 순례의 땅이 되었다. 17세기 프랑스 시인 라퐁텐이 말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진실은 유럽의 역사가 바로 로마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역사가 랑케는 “(유럽의) 모든 고대사는 하나의 호수에 흘러 들어가는 흐름이 되어 로마사 속에 흐르고 모든 근세사는 로마사로부터 다시 흘러나왔다”라고 하였던가. 그는 이어 로마의 세계사적 의미를 보편적인 세계문학, 보편적 법으로서의 로마법, 세계종교인 그리스도교의 확립 속에서 찾는다.

로마는 무력으로 유럽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은 각 민족이 지닌 종교, 풍속, 언어, 즉 문화전통을 존중하면서 이른바 ‘팍스 로마나’, 질서가 지배하는 평화의 시대를 200년 구가하였다. 그것을 뒷받침한 것은 바로 로마적인 인간 중심의 보편성 이념과 관용이었다. 이 보편성과 관용이야말로 오늘날 글로벌 시대에 로마가 우리에게 고하는 메시지가 아니던가.

『로마인 이야기』에서 정치가와 군인, 기업가나 시민(민중) 운동가는 저마다 경영전략과 리더십을 배운다고 한다. 그러나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는 로마에서 보편적 사고와 관용의 미덕을 배워야 할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는 로마와 로마인을 무척 사랑한다. 그가 지닌 로망의 대주역인 카이사르는 그에게 연인이자 이상적 인간이다. 그러나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인에게 더욱 끌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15년 세월을 바친 까닭을 깊이 생각해보자. 오늘날 우리는 국경과 종교, 성별과 세대의 구별이 무의미해진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 종파나 민족, 이데올로기와 정파의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체력에서는 게르만 민족보다,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도 뒤떨어지는 로마인이 어떻게 유럽 전체를 지배하고 팍스 로마나를 누릴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해답을 로마인의 리얼리즘, 즉 어떠한 도그마로부터도 자유로웠던, 그래서 남의 신, 남의 존재를 인정한 그들의 실사구시의 현실주의에서 찾는다. 현실주의로 말하면 중국 한족(漢族)과 앵글로색슨족도 공유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중화(中華)사상이나 패권주의, 즉 유아독존의 헤게모니를 선택하였다.


로마의 현실주의는 가는 곳마다 길과 다리, 수도와 극장, 병원과 학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보편적 인간성-인권에 근거한 만민법을 보급함으로써 유럽 전체를 문명화하였다. “나는 어느 나라의 역사가 아니라 문명의 역사를 썼다.” 저자의 말이다. 그렇듯 로마화란 바로 문명화, 세계화를 의미하였다. 그리고 그 원동력이 된 것은 관용의 미덕이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는 이탈리아에 40년이 넘게 살면서도 비가톨릭교도라고 한다. 자유인으로 생각하고 자유인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나는 모든 인종이 같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시대가 있다는 사실을 쓰고 싶었다.”
참으로 자유로운 세계시민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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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로마인 이야기 #글로벌 시대 #글로벌
6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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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h7280

2020.02.03

동심세계를 느끼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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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sm

2020.02.02

덕혜공주는 책도 영화도 참 감동이었습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책을통해 이번 이벤트로 또한번 감동을
느끼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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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yhyesuk

2020.01.31

덕혜옹주는 가족 전체가 다 감명있게 읽어본 책입니다. 덕혜옹주의 작가님이 동화는 또 얼마나 따뜻하게 담아 내셨을지 무척이나 기대가 됩니다.꼭 당첨됐으면 좋겠어요^^4명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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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을 파괴하는 도전적 역사 해석으로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1970년 『체사레 보르자 또는 우아한 냉혹』을 발표하여 크게 명성을 얻었고, 이 저서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1982년 『바다의 도시 이야기』로 ‘산토리 학예상’과 1983년에 ‘키쿠치 칸 상’을 수상했다. 1992년부터 로마제국 흥망사를 그린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1년에 한 권씩 15년간 집필했으며 1993년 『로마인 이야기 1』로 ‘신초 학예상’, 1999년 ‘시바 료타로 상’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 저작집』(전 7권)을 출간했다. 2001년 이탈리아 국가공로훈장 수훈, 2007년 일본 문화공로자로 선정되었다. 2008~2009년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전 2권)를 출간했고, 2010년부터 『십자군 이야기』 시리즈를 펴냈다. 그 외에도 『사는 방법의 연습』 등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심상을 전하는 많은 수필과 단상집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