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매혹에 대하여,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박준
처음부터 책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시청자 게시판에 많은 분들이 ‘잘 만들었다’, ‘또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갖고 싶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책으로 내보자, 라고 생각했지요.”
2006.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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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바탕에 파란색 줄이 그어진 노트를 잘라낸 듯한 박준 씨의 명함에는 travel writer, film maker라는 자기소개가 씌어져 있었다. 평범한 30대 후반이라면 결혼을 해서 아이가 하나 정도 있을 테고,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것이고, 중형차를 굴리며, 융자를 받아 내 집을 장만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삶 대신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여행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책을 쓰고, 사진을 찍고,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그는 “프리랜서에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좀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 찍히기도 싫어했고, 질문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다변가도 아니었다. 잡담은 좋아하지만 인터뷰는 불편해했다. “사람이 워낙 까칠해서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10년 동안의 여행을 결산한 다큐멘터리를 찍다
여행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여행자의 목소리로 담아낸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2005년에 찍은 동명의 다큐멘터리를 책으로 만든 것이다. 통역도 조연출도 스태프도 없이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카오산 로드에 가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다큐멘터리를 너무 힘들게 만들어서 그런지 책 만들기는 오히려 쉬웠다고 했다.
처음부터 책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시청자 게시판에 많은 분들이 ‘잘 만들었다’, ‘또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갖고 싶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책으로 내보자, 라고 생각했지요.”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가 10년 넘게 여행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결산 작업이었다. 94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열심히 한 것이 여행이었고,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고민했던 것들을 다른 여행자들은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나 그와 인터뷰를 한 사람들을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의 질문들이 거침없는 것도 그 대답이 솔직하고 자세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어떻게 저렇게 다들 말을 잘 하냐’라고 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건 제가 그들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영어가 유창한 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독일 사람, 벨기에 사람, 미국 사람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의 인내 덕분이었다. 친구들은 그의 서툰 영어를 열심히 들어주고,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그가 아직 가지 못한 다른 길들을 보여줬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왔구나, 그래서 버려야 했던 것도 있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누구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심플하다.
“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많은 분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여행의 매혹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여행은 거창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여행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동경하면서도 실제로 떠나지 못한다. 책은 그런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준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떠나지 못한 사람은 배낭을 싸게 한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매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는 평범하고 어떤 면으로는 비범하다. 돌아가야 할 생활인으로의 일상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평범하다. 그러나 그 일상을 떨치고 여행을 떠났다는 점에서 그들은 비범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에서 ‘일탈’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면면히 흘러가는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은 것이지 그들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여행 후’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사람만큼 자신의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4년간 준비하고 세계여행의 노정에 오른 30대 부부, 혼자서 씩씩하게 여행하고 있는 아가씨, 쉰이 넘어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난 부부, 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를 여행 중인 고등학생. 나이도, 국적도 다양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여행 뒤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 인터뷰를 하면서 시니컬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티 없이 웃는다. 짊어지고 다니던 집착과 욕심을 버려서일까? 여행이란 어쩌면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남기는 선별 작업일지도 모른다. 여행자들은 여행을 할수록 걱정이 없어진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어서이다.
첫 여행의 충격, 다른 세계를 만나 눈을 뜨다
그는 94년부터 지금까지 2권의 여권에 2백 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었다.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장기여행도 여러 번 경험했다. 그 중 가장 충격적인 여행은 역시 첫 번째 해외여행이었던 94년 호주 여행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 비행기를 탈 때 무서워서 정말 부들부들 떨었어요. 우습지만, 비행기를 열 시간 타고 내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신기했어요. 공항에서 시내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는데, 순찰차 안에 여자 순경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죠.”
첫 해외여행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여행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게 이곳에 왔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6개월은 일하고 6개월은 여행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호주를 자전거로 횡단하고 있는 일본인도 있었다. 지금은 해외여행이 그리 신기하지 않지만, 그가 처음 여행을 떠났던 94년만 해도 배낭여행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시대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프랑소아라는 프랑스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는 원래 무대디자인을 하는 친군데 오페라하우스의 아트숍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왜 저 사람은 자기 나라를 떠나 이런 데서 어떻게 보면 하찮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걸까, 놀라웠어요.”
그는 점점 한국에서 본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세상은 너무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세상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보면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회사에 출근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삶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런데 한국에 있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의 이데올로기, 삶의 정형적인 모습을 강요당하죠.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꼭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200번이 넘는 여행을 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짐을 잘 싸지 못한다고 했다. “아직도 짐을 쌀 때 많이 머뭇거려요. 왠지 이것이 없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쉽게 버리지 못하죠. 삶의 본질적인 것이 아닌데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뉴욕, 거칠지만 열정과 매력이 가득한 예술의 도시
지금까지 아프리카와 남미를 빼고 세상 대부분을 가 본 그가 다시 찾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은 뉴욕이었다. 2003년 다큐멘터리 <뉴욕 미술의 힘 - 다양성>을 찍을 만큼 그는 뉴욕과 뉴욕이 품고 있는 예술적 힘을 사랑했다. “뉴욕 첼시에서 작품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한국에서는 일 년에 좋은 전시가 한 번 있을 정도면 뉴욕에서는 한 달에 수백 건씩 좋은 전시가 있어요.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뉴욕에서 사는 것, 그게 제 로망이에요.”
어떤 장르에 끌리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르는 상관없고요. 내가 느낄 수 있는 것, 내게 감정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 재미있는 것이면 뭐든지 좋아해요.”
뉴욕은 그에게 예술을 즐기는 법을 보여주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브루클린 아트 페어. “버려진 공장 창고에서 진행된 전시였는데, 지역 주민들이 작업한 그림들을 옥션을 통해 팔기도 해요.” 예술이라는 것이 저 높은 곳에 걸려 있는, ‘일반인 출입금지’의 신전이 아닌 지역 주민과 함께 즐기고 호흡하는 것임을 느끼게 했다.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괴물처럼 뉴욕은 에너지로 넘치는 곳이다. “뉴욕은 거칠죠. 그러나 누구에게나 거칠기 때문에 자유로워요.”
그에게 뉴욕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맥기 갤러리의 아트 딜러 데이빗 맥기, 현재 뉴욕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인 진 실버쓰론,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맥기 갤러리의 아트 딜러 데이빗 맥기를 만났다.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고 무작정 맥기 갤러리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죠. 맥기 갤러리는 공인된 작품만 전시하는, 뉴욕의 여러 클래스의 갤러리 중 최상위에 속하는 곳이에요. 거기에 가서 그곳의 아트 딜러에게 ‘당신이 하는 일이 아트에 가깝다고 생각하냐 비즈니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냐고 질문을 했으니.(웃음)”
좋게 말하면 패기에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무데뽀에 가까운 그의 질문을 데이빗 맥기는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대답을 해 줬다. 데이빗 맥기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난 진 실버쓰론도 그를 환대했다. 작업실로 초대해 인터뷰에 응해줬던 것. 그는 그 모든 만남들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억들을 한 권의 책으로 쓰려고 한다.
여유롭게 낯선 시간과 풍경을 즐긴다
“책에는 장기 여행을 하는 분들 인터뷰가 대부분이지만, 전 장기 여행만이 여행의 참맛을 알게 해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단 며칠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즐기는 것, 그것이 여행의 참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배낭여행을 추천한다. 배낭을 메고, 돈을 적게 쓰는 여행이 배낭여행이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스케줄로,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여행이 배낭여행이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좀더 여유로워지고, 시간을 즐기게 되죠.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요.” 그가 여행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뒷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느긋하게 마시는 순간이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갔는데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 커피나 마시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아요. 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디를 가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지고 그냥 마음 끌리는 대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줬다. “상하이 박물관에 갔을 때 일이에요. 그때 저한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박물관 구경을 하는 것과 그냥 계단에 앉아서 광장에 있는 사람들 구경을 하는 것. 저는 사람 구경하는 것을 선택했어요. 사실 박물관은 언제라도 와서 볼 수 있는 거지만 그 날의 광장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니까요.”
여행은 그에게 충만함을 느끼게 하고, 평화롭게 하며, 행복하게 한다. “여행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어디를 관광했던 것보다 사소한 것이 더 많이 기억나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순간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여행에 많은 의미를 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여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나는 구도의 길이 아니다. 그런 것은 여행의 부산물일 따름이다. 그런 거창한 의미 부여가 어쩌면 여행을 떠나려 하는 우리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떠난다, 그리고 무엇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자기 식으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가이드북은 잠시 덮어두어도 좋다. 수천, 수만 명이 본 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는 그러한 것을 ‘경험의 카피’라고 불렀다.
불안하기 때문에 오히려 편한 나의 삶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는 영화를 공부했다. 회사원 생활을 한 적도 있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생산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것이 좋아서’ 자기 앞에 놓여진, 그리고 그의 동년배 대부분이 걸어간, 평균적인 삶의 길을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계단이라도 오르듯 살고 있지만 그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저는 낙관주의보다는 비관주의에 더 가까워요. 그리고 80년대 학번답게 막스주의의 세례를 받아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고요. 그람시의 말 중에서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라는 말이 있어요.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해요.”
지금 그의 삶은 확실히 불안하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불안해서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을 걸어가는 거니까요.” 길은 구속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직업을 묻는 질문에 그는 “프리랜서에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좀더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사진 찍히기도 싫어했고, 질문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다변가도 아니었다. 잡담은 좋아하지만 인터뷰는 불편해했다. “사람이 워낙 까칠해서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10년 동안의 여행을 결산한 다큐멘터리를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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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책을 만들 생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시청자 게시판에 많은 분들이 ‘잘 만들었다’, ‘또 보고 싶다’라고 말하면서 ‘갖고 싶다’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책으로 내보자, 라고 생각했지요.”
다큐멘터리 <길 위에서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가 10년 넘게 여행한 것에 대한 개인적인 결산 작업이었다. 94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열심히 한 것이 여행이었고,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고민했던 것들을 다른 여행자들은 어떻게 고민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나 그와 인터뷰를 한 사람들을 그를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의 질문들이 거침없는 것도 그 대답이 솔직하고 자세한 것도 모두 그 때문이다. “다큐멘터리를 보고 ‘어떻게 저렇게 다들 말을 잘 하냐’라고 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건 제가 그들과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영어가 유창한 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럼에도 독일 사람, 벨기에 사람, 미국 사람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친구들의 인내 덕분이었다. 친구들은 그의 서툰 영어를 열심히 들어주고,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친구들은 그에게 그가 아직 가지 못한 다른 길들을 보여줬다.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지금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왔구나, 그래서 버려야 했던 것도 있었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누구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심플하다.
“여행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인데, 많은 분들이 두려움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그런 분들에게 여행의 매혹에 대해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여행은 거창한 것도 대단한 것도 아니다. 여행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동경하면서도 실제로 떠나지 못한다. 책은 그런 사람들의 등을 떠밀어 준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떠나지 못한 사람은 배낭을 싸게 한다.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의 매력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면으로는 평범하고 어떤 면으로는 비범하다. 돌아가야 할 생활인으로의 일상이 있다는 점에서 그들은 모두 평범하다. 그러나 그 일상을 떨치고 여행을 떠났다는 점에서 그들은 비범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세상에서 ‘일탈’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면면히 흘러가는 일상에 작은 쉼표를 찍은 것이지 그들이 몸담고 있는 세상에서 튕겨져 나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여행 후’의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여행을 하는 사람만큼 자신의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4년간 준비하고 세계여행의 노정에 오른 30대 부부, 혼자서 씩씩하게 여행하고 있는 아가씨, 쉰이 넘어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난 부부, 학교를 자퇴하고 인도를 여행 중인 고등학생. 나이도, 국적도 다양하지만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여행 뒤 불안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 인터뷰를 하면서 시니컬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티 없이 웃는다. 짊어지고 다니던 집착과 욕심을 버려서일까? 여행이란 어쩌면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만을 남기는 선별 작업일지도 모른다. 여행자들은 여행을 할수록 걱정이 없어진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어서이다.
첫 여행의 충격, 다른 세계를 만나 눈을 뜨다
“처음 비행기를 탈 때 무서워서 정말 부들부들 떨었어요. 우습지만, 비행기를 열 시간 타고 내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신기했어요. 공항에서 시내까지 차를 타고 들어가는데, 순찰차 안에 여자 순경이 타고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죠.”
첫 해외여행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여행을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힘들게 이곳에 왔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어요.”6개월은 일하고 6개월은 여행을 한다는 사람도 있었다. 호주를 자전거로 횡단하고 있는 일본인도 있었다. 지금은 해외여행이 그리 신기하지 않지만, 그가 처음 여행을 떠났던 94년만 해도 배낭여행이라는 단어가 생소했던 시대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프랑소아라는 프랑스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는 원래 무대디자인을 하는 친군데 오페라하우스의 아트숍에서 일하고 있었어요. 왜 저 사람은 자기 나라를 떠나 이런 데서 어떻게 보면 하찮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걸까, 놀라웠어요.”
그는 점점 한국에서 본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말 세상은 너무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세상과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 보면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고, 회사에 출근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삶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돼요. 그런데 한국에 있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의 이데올로기, 삶의 정형적인 모습을 강요당하죠. 우리는 열심히 사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꼭 열심히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200번이 넘는 여행을 하면서도 그는 여전히 짐을 잘 싸지 못한다고 했다. “아직도 짐을 쌀 때 많이 머뭇거려요. 왠지 이것이 없으면 불편할 것 같아서 쉽게 버리지 못하죠. 삶의 본질적인 것이 아닌데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아요.”
뉴욕, 거칠지만 열정과 매력이 가득한 예술의 도시
지금까지 아프리카와 남미를 빼고 세상 대부분을 가 본 그가 다시 찾고 싶다고 생각하는 곳은 뉴욕이었다. 2003년 다큐멘터리 <뉴욕 미술의 힘 - 다양성>을 찍을 만큼 그는 뉴욕과 뉴욕이 품고 있는 예술적 힘을 사랑했다. “뉴욕 첼시에서 작품을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해요. 한국에서는 일 년에 좋은 전시가 한 번 있을 정도면 뉴욕에서는 한 달에 수백 건씩 좋은 전시가 있어요.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뉴욕에서 사는 것, 그게 제 로망이에요.”
어떤 장르에 끌리는가, 라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르는 상관없고요. 내가 느낄 수 있는 것, 내게 감정적인 임팩트를 줄 수 있는 것, 재미있는 것이면 뭐든지 좋아해요.”
뉴욕은 그에게 예술을 즐기는 법을 보여주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브루클린 아트 페어. “버려진 공장 창고에서 진행된 전시였는데, 지역 주민들이 작업한 그림들을 옥션을 통해 팔기도 해요.” 예술이라는 것이 저 높은 곳에 걸려 있는, ‘일반인 출입금지’의 신전이 아닌 지역 주민과 함께 즐기고 호흡하는 것임을 느끼게 했다.
마치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탐욕스러운 괴물처럼 뉴욕은 에너지로 넘치는 곳이다. “뉴욕은 거칠죠. 그러나 누구에게나 거칠기 때문에 자유로워요.”
그에게 뉴욕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맥기 갤러리의 아트 딜러 데이빗 맥기, 현재 뉴욕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티스트인 진 실버쓰론, 그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맥기 갤러리의 아트 딜러 데이빗 맥기를 만났다.
“사전에 약속도 하지 않고 무작정 맥기 갤러리를 찾아가 인터뷰를 요청했죠. 맥기 갤러리는 공인된 작품만 전시하는, 뉴욕의 여러 클래스의 갤러리 중 최상위에 속하는 곳이에요. 거기에 가서 그곳의 아트 딜러에게 ‘당신이 하는 일이 아트에 가깝다고 생각하냐 비즈니스에 가깝다고 생각하냐고 질문을 했으니.(웃음)”
좋게 말하면 패기에 넘치고, 나쁘게 말하면 무데뽀에 가까운 그의 질문을 데이빗 맥기는 아무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대답을 해 줬다. 데이빗 맥기의 사무실에서 우연히 만난 진 실버쓰론도 그를 환대했다. 작업실로 초대해 인터뷰에 응해줬던 것. 그는 그 모든 만남들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 기억들을 한 권의 책으로 쓰려고 한다.
여유롭게 낯선 시간과 풍경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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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면 할수록 여행을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좀더 여유로워지고, 시간을 즐기게 되죠.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요.” 그가 여행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뒷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맛있는 에스프레소를 느긋하게 마시는 순간이다. “어떤 사람은 여행을 갔는데 한가하게 카페에 앉아 커피나 마시냐,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그 시간이 제일 좋아요. 여행을 하면 할수록 어디를 가야 한다는 강박은 없어지고 그냥 마음 끌리는 대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줬다. “상하이 박물관에 갔을 때 일이에요. 그때 저한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박물관 구경을 하는 것과 그냥 계단에 앉아서 광장에 있는 사람들 구경을 하는 것. 저는 사람 구경하는 것을 선택했어요. 사실 박물관은 언제라도 와서 볼 수 있는 거지만 그 날의 광장은 다시 볼 수 없는 것이니까요.”
여행은 그에게 충만함을 느끼게 하고, 평화롭게 하며, 행복하게 한다. “여행을 하고 나면 이상하게 어디를 관광했던 것보다 사소한 것이 더 많이 기억나요.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고 즐거운 순간이었기 때문이죠.”
그는 여행에 많은 의미를 두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여행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떠나는 구도의 길이 아니다. 그런 것은 여행의 부산물일 따름이다. 그런 거창한 의미 부여가 어쩌면 여행을 떠나려 하는 우리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떠난다, 그리고 무엇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자기 식으로 즐기면 되는 것이다. 가이드북은 잠시 덮어두어도 좋다. 수천, 수만 명이 본 것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는 그러한 것을 ‘경험의 카피’라고 불렀다.
불안하기 때문에 오히려 편한 나의 삶
법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는 영화를 공부했다. 회사원 생활을 한 적도 있고,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본 적도 있다. 그렇지만 ‘생산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것이 좋아서’ 자기 앞에 놓여진, 그리고 그의 동년배 대부분이 걸어간, 평균적인 삶의 길을 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계단이라도 오르듯 살고 있지만 그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여전히 길 위에 서 있다.
“저는 낙관주의보다는 비관주의에 더 가까워요. 그리고 80년대 학번답게 막스주의의 세례를 받아서 리얼리스트이기도 하고요. 그람시의 말 중에서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라는 말이 있어요. 좌우명으로 삼을 만큼 좋아해요.”
지금 그의 삶은 확실히 불안하다. 보장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그는 불안해서 오히려 편하다고 했다.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남들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길을 걸어가는 거니까요.” 길은 구속이 아니다. 가능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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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ㅋ
2012.03.23
bookjoa
2006.08.05
첫 여행을 막 끝내고 돌아왔는데 정말 갔다오고 안갔다오고의 차이가 너무 큰거 같애요~ 현실속의 내 삶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더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다른분들도 여행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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