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 조수미 "내가 서는 무대는 특별합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여자 나이가 서른다섯을 넘어야 비로소 모피와 보석이 어울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다고 『침묵하는 소수』에서 밝힌 바 있다. 사십대의 여자는, 스물의 여자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농익은 관능미와 인생에 대한 넉넉한 관조를 가지고 있다.
200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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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노 나나미는 여자 나이가 서른다섯을 넘어야 비로소 모피와 보석이 어울리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지닐 수 있다고 『침묵하는 소수』에서 밝힌 바 있다. 사십대의 여자는, 스물의 여자는 흉내도 낼 수 없는 농익은 관능미와 인생에 대한 넉넉한 관조를 가지고 있다. 사십대 중반, 어느 때보다 더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의 국제무대 데뷔 20년째를 맞이한 조수미 씨를 만났다. 현재 로마에 있는 조수미 씨와의 인터뷰는 워너뮤직코리아 이혜윤 님의 도움으로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진행되었다.
가장 하고 싶었던 바로크 음반을 내다
‘Journey to Baroque (바로크로의 여행)’은 2004년에 낸 크로스오버 앨범 ‘BE HAPPY’에 이어 2년만에 낸 작품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본격 바로크 음반이다. 이태리 가곡, 프랑스 아리아, 비엔나 왈츠 등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섭렵한 그녀가 항상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바로크 음악이었다. 늘 내고 싶었던 음반을 국제무대 데뷔 20년째에 내게 되어 더욱 기쁘다고 했다. 이 앨범은 클래식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한 달에 만 장 이상 팔리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바로크 레퍼토리는 꼭 도전해보고 싶었던 레퍼토리입니다. 음악적인 경험이 충분히 쌓인 후 좀 더 완벽히 하고 싶어 기다려 왔는데, 이번 국제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이하는 적절한 시간에 훌륭한 레코딩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앨범을 녹음하면서 바로크 레퍼토리에 대한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했고, 바로크 음악에 대해서도 좀더 많이 공부하게 되었다. 앨범의 북클릿에서 그녀는 이번 앨범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내가 만들려고 한 것은 늘 보아온 그런 바로크 음반이 아닙니다. 바로크의 전통이, 오늘 이 시간 새로운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커피처럼 편안한 음악 선물
클래식 음악이라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떠올리는 사람에게 ‘바로크 음악’은 낯설기 그지없다. “바로크 음악은 16, 17세기 음악이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도 잘 맞는 음악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지속적인 영혼의 샘물을 주는, 차가우면서도 정열적이고, 정제되면서도 활발한, 음악적으로는 아카데믹하고 베이직(basic)한 음악이에요.”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바로크 음악에 익숙해져 있다. 앨범에 수록된 바흐의 ‘커피 칸타타’의 아리아나 오페라 리날도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CF나 영화의 배경으로 누구나 음악을 듣는 순간 ‘아, 이 음악!’이라고 할 만큼 친숙한 곡이다.
앨범을 만들면서 헨델, 비발디와 같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곡가들의 곡들과, 쉽게 접하기 힘든 작곡가의 음악을 함께 수록했다. 바로크의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 네 명을 선택해, 대중들에게 친숙한 바로크 작품들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이 적절하게 조합되도록 신경을 썼다고 한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2번 트랙 ‘Agitata da du venti(폭풍이 몰아치고)’이다. “에너지가 다운되었을 때 들으면 한 번에 충전되는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초콜릿이나 커피를 먹었을 때보다 더 샘솟는 활력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성악가로서는 힘든 노래였지만요.(웃음)”
녹음에 얽힌 에피소드가 무척 재미있다. “이전에 크로스오버 앨범(‘BE HAPPY’)를 낼 때에는 목소리를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와인을 하루에 한 병씩 일부러 마시기도 했어요. 이번 앨범 ‘Journey to Baroque’를 녹음할 때는 순수한(pure), 물보다 투명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일부러 조리가 많이 되지 않은 음식을 먹는 등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런 요소들이 음악적인 자세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긴 겨울 끝에 불어오는 봄바람같이 가볍고 따뜻하고 신선하다.
바쁘게 달려온 20년, 열정적으로 살았기에 후회는 없다
2006년은 조수미 씨에게 뜻 깊은 해이다. “올해는 국제무대 데뷔 2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5월, 6월, 10월, 11월에 데뷔 20주년 기념 투어가 미국과 유럽에서 예정되어 있어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국제무대에 데뷔하고 20년 동안 굉장히 바쁘게 살았어요. 전혀 후회 없이 보람되게 열정적으로 보낸 20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값지고 재미있고 보람된 20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앞의 20년처럼 빨리 지나가지 말고 천천히 지나가면 좋겠네요.”
20년 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 오프닝 시즌에서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처음 데뷔했을 때, 지휘자는 그녀를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노래를 불렀을 때,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소프라노의 첫무대로 기록이 남게 된다. 20년 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우리 시대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칭호를 붙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30세 이전에 뉴욕, 런던, 파리, 비엔나, 밀라노의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으로 데뷔한 기록을 세우기도 한 그녀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순간이 항상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면 음악적인 후회나 자책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20년이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을 즐기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별다른 고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급박한 상황이라고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살면서 항상 승승장구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녀는 뒷걸음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슬럼프나 절망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높이 뛰기 위한 정비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야 더 높이 뛸 수 있잖아요.”
내가 서는 무대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수많은 무대 중에서 그녀가 가장 기억하고 있는 무대는 몇 년 전 북한에서 온 성악가들과 함께 한 무대였다. “무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무대든 ‘내가 서는 무대’이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KBS에서 북한에서 온 성악가들과 함께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어요.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어요. 진한 동포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무대가 가장 기억이 남아요.”
음악을 하게 된 것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이고 축복이다. 그렇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음악은 어렵게 느껴진단다. 해가 지날수록 그녀는 음악적으로 스스로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욕심’ 많은 성악가이다. “그렇게 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긴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많이 칭찬해줘요. 즐기는 법을 20년 동안 배운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실수보다는 큰 그림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20년 전의 조수미와 지금의 조수미 사이에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죠.”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온 조수미 씨는 앞으로도 개척하고 싶은 영역이 여전히 많다. “러시아 음악, 스페인 음악,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파두 등도 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크로스 오버도 해보고 싶고요. 음악적인 샘물은 항상 샘솟고 있습니다.” 그녀는 음악을 장르에 가두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전 음악, 대중음악 이런 식으로 음악을 나누기 보다는 무대에서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음악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녀는 정통 클래식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도 포괄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사랑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제가 최고라고 생각되어진다면 그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 덕분입니다. 음악이라는 분야는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분야입니다.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작곡가와 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최고의 음악가가 되고 싶지, 최고의 ‘위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특별하게 생각해주시는 느낌, 부모님, 그리고 나 자신의 의지, 끊임없는 도전정신, 사랑하는 팬 여러분, 매니저들과 친구들, 나의 애견들 덕분입니다. 이들의 나의 원동력입니다.”
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24년째 외국 생활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고국에 대한 애정도 더 각별하다. 음악가로서 경력에 도움이 되는 무대뿐 아니라 고국에 도움이 되는 무대라면 사양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기꺼이 노래를 불렀다. 평창 동계 올림픽과 여수 국제 박람회의 홍보대사 등 꾸준히 한국을 위한 활동에도 열심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잘 되어야 우리 모두가 잘 된다는 이야기, 두말하면 잔소리죠. 개인적으로 공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큰 행사가 열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저에겐 중요해요. 그런 큰 행사들을 통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성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올림픽 때도 그랬고, 월드컵 때도 그랬고…. 열심히 하고 있고,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것은 한국인들이 음악과 친해질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가 그런 일에 열심인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길이 ‘음악으로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통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꾸준히 들려주고 싶단다. 올해 8월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을 위한 무료 아카데미 음악회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으로 맺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계 최고 소프라노의 하루는 연습으로 시작해 연습으로 끝난다
성악가의 하루 일과는 단조롭다. ‘연습’이라는 두 글자가 있을 뿐이다. 공연이 있을 때에는 오전 여덟 시쯤 일어나 10시부터 리허설을 시작해 하루종일 연습을 한 후 저녁 일곱 시나 여덟 시가 되어야 숙소로 돌아오는 강행군이 계속된다. 공연을 할 때에는 개인적으로 보낼 시간이 거의 없다. “바빠서 집에서 ‘내 것’들과 지내는 시간들이 없어요. 공연이 없을 때는 집에서 푹 쉬어요. 집 앞 슈퍼마켓에 들러 이것저것 사기도 하고, 집에서 요리도 하면서 재충전을 합니다.”
항상 씩씩한 모습으로 무대 위와 무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그녀지만 우울하고 힘든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기분을 전환한다고 한다.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은 목에 안 좋기 때문에 성악가들에게는 금기시되는 음식이에요. 그런데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공연이 없는 날 초콜릿을 먹어 준답니다. 금기시되는 것을 하루쯤 먹어주는 것도 릴렉스에 도움이 돼요.”
원래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도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았다는 그녀지만 어디를 가든 한국 음식만큼은 생각이 많이 난단다. “아, 그리고 얼마 전에 찜질방을 처음으로 가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 것도 많이 생각나요. 한국이 역시 살기가 가장 편한 곳이에요.”
개인적인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드는 취미생활은 불가능하다. 좀 더 시간이 나면 좋아하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수영도 꼭 배우고 싶어요. 예쁜 접시나 컵, 촛대, 초 등을 모으는 것을 좋아해서 짬이 날 때마다 하나씩 사서 모으고 있어요. 애견들이랑 산책 가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 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닉 카사베츠 감독의 <노트북(Notebook)>.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영화예요.”
다시 태어나면 수의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
인터뷰을 마치면서 그녀에게 ‘가지 않은 길’이 있었는지, 그 길에 대해 미련이 있는지를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동물들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아파도 말을 못하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내가 고쳐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도 수의사 분들을 보면 생각이 나요. 다시 태어난다면 물론 음악도 포기 안 하겠지만 수의학 공부도 해보고 싶어요.”
가장 하고 싶었던 바로크 음반을 내다
‘Journey to Baroque (바로크로의 여행)’은 2004년에 낸 크로스오버 앨범 ‘BE HAPPY’에 이어 2년만에 낸 작품으로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본격 바로크 음반이다. 이태리 가곡, 프랑스 아리아, 비엔나 왈츠 등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섭렵한 그녀가 항상 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바로크 음악이었다. 늘 내고 싶었던 음반을 국제무대 데뷔 20년째에 내게 되어 더욱 기쁘다고 했다. 이 앨범은 클래식 음반으로는 이례적으로 한 달에 만 장 이상 팔리며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초콜릿처럼 달콤하고 커피처럼 편안한 음악 선물
클래식 음악이라면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떠올리는 사람에게 ‘바로크 음악’은 낯설기 그지없다. “바로크 음악은 16, 17세기 음악이지만 시대를 초월하여 현대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에도 잘 맞는 음악입니다. 우리 인간에게 지속적인 영혼의 샘물을 주는, 차가우면서도 정열적이고, 정제되면서도 활발한, 음악적으로는 아카데믹하고 베이직(basic)한 음악이에요.”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바로크 음악에 익숙해져 있다. 앨범에 수록된 바흐의 ‘커피 칸타타’의 아리아나 오페라 리날도의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CF나 영화의 배경으로 누구나 음악을 듣는 순간 ‘아, 이 음악!’이라고 할 만큼 친숙한 곡이다.
앨범을 만들면서 헨델, 비발디와 같이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곡가들의 곡들과, 쉽게 접하기 힘든 작곡가의 음악을 함께 수록했다. 바로크의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 네 명을 선택해, 대중들에게 친숙한 바로크 작품들과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이 적절하게 조합되도록 신경을 썼다고 한다.
이번 앨범에서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2번 트랙 ‘Agitata da du venti(폭풍이 몰아치고)’이다. “에너지가 다운되었을 때 들으면 한 번에 충전되는 느낌을 받으실 거예요. 초콜릿이나 커피를 먹었을 때보다 더 샘솟는 활력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성악가로서는 힘든 노래였지만요.(웃음)”
녹음에 얽힌 에피소드가 무척 재미있다. “이전에 크로스오버 앨범(‘BE HAPPY’)를 낼 때에는 목소리를 걸쭉하게 만들기 위해 와인을 하루에 한 병씩 일부러 마시기도 했어요. 이번 앨범 ‘Journey to Baroque’를 녹음할 때는 순수한(pure), 물보다 투명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일부러 조리가 많이 되지 않은 음식을 먹는 등 신경을 많이 썼어요. 이런 요소들이 음악적인 자세에도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이번 앨범을 들어보면 긴 겨울 끝에 불어오는 봄바람같이 가볍고 따뜻하고 신선하다.
바쁘게 달려온 20년, 열정적으로 살았기에 후회는 없다
20년 전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 오프닝 시즌에서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처음 데뷔했을 때, 지휘자는 그녀를 심드렁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노래를 불렀을 때, 트리에스테 베르디 극장은 한 시대를 대표하는 소프라노의 첫무대로 기록이 남게 된다. 20년 후,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녀에게 우리 시대 최고의 소프라노라는 칭호를 붙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30세 이전에 뉴욕, 런던, 파리, 비엔나, 밀라노의 오페라 극장에서 주역으로 데뷔한 기록을 세우기도 한 그녀는 무대에서 노래하는 순간이 항상 ‘최고의 순간’이었다고 이야기한다.
“항상 최선을 다했지만, 공연이 끝나고 돌아오면 음악적인 후회나 자책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20년이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을 즐기면서 하게 되었습니다. 20년 동안 별다른 고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설사 있었다 하더라도 급박한 상황이라고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살면서 항상 승승장구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그녀는 뒷걸음질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것을 슬럼프나 절망으로 여기지 않았다. “지금보다 더 높이 뛰기 위한 정비의 시간이라고 생각했어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나야 더 높이 뛸 수 있잖아요.”
내가 서는 무대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수많은 무대 중에서 그녀가 가장 기억하고 있는 무대는 몇 년 전 북한에서 온 성악가들과 함께 한 무대였다. “무대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무대든 ‘내가 서는 무대’이기 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KBS에서 북한에서 온 성악가들과 함께 한 무대에서 노래를 부른 적이 있었어요.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마음이 아팠어요. 진한 동포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 무대가 가장 기억이 남아요.”
음악을 하게 된 것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행복이고 축복이다. 그렇지만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음악은 어렵게 느껴진단다. 해가 지날수록 그녀는 음악적으로 스스로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욕심’ 많은 성악가이다. “그렇게 내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이 많긴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많이 칭찬해줘요. 즐기는 법을 20년 동안 배운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작은 실수보다는 큰 그림을 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점이 20년 전의 조수미와 지금의 조수미 사이에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죠.”
지금까지 꾸준히 자신의 영역을 넓혀온 조수미 씨는 앞으로도 개척하고 싶은 영역이 여전히 많다. “러시아 음악, 스페인 음악,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파두 등도 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크로스 오버도 해보고 싶고요. 음악적인 샘물은 항상 샘솟고 있습니다.” 그녀는 음악을 장르에 가두는 것을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고전 음악, 대중음악 이런 식으로 음악을 나누기 보다는 무대에서 ‘좋은 음악’을 들려드리도록 노력하는 것이 음악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녀는 정통 클래식만을 고집하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도 포괄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와 사랑에 대해서도 겸손하게 이야기했다. “제가 최고라고 생각되어진다면 그것은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저를 사랑해주시는 팬들 덕분입니다. 음악이라는 분야는 끊임없이 완벽을 추구하는 분야입니다. 작곡가가 만든 음악을 작곡가와 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최고의 음악가가 되고 싶지, 최고의 ‘위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특별하게 생각해주시는 느낌, 부모님, 그리고 나 자신의 의지, 끊임없는 도전정신, 사랑하는 팬 여러분, 매니저들과 친구들, 나의 애견들 덕분입니다. 이들의 나의 원동력입니다.”
내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노래를 부른다
그녀는 24년째 외국 생활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고국에 대한 애정도 더 각별하다. 음악가로서 경력에 도움이 되는 무대뿐 아니라 고국에 도움이 되는 무대라면 사양하지 않고 나라를 위해 기꺼이 노래를 불렀다. 평창 동계 올림픽과 여수 국제 박람회의 홍보대사 등 꾸준히 한국을 위한 활동에도 열심이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에 대한 그리움이 더 깊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잘 되어야 우리 모두가 잘 된다는 이야기, 두말하면 잔소리죠. 개인적으로 공연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죠.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큰 행사가 열릴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도 저에겐 중요해요. 그런 큰 행사들을 통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성장을 할 수 있으니까요. 올림픽 때도 그랬고, 월드컵 때도 그랬고…. 열심히 하고 있고,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것은 한국인들이 음악과 친해질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가 그런 일에 열심인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가장 좋은 길이 ‘음악으로 보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통 클래식뿐만 아니라 대중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사람들에게 꾸준히 들려주고 싶단다. 올해 8월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을 위한 무료 아카데미 음악회도 준비하고 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으로 맺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세계 최고 소프라노의 하루는 연습으로 시작해 연습으로 끝난다
항상 씩씩한 모습으로 무대 위와 무대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그녀지만 우울하고 힘든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럴 때에는 맛있는 것을 먹으면서 기분을 전환한다고 한다.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은 목에 안 좋기 때문에 성악가들에게는 금기시되는 음식이에요. 그런데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공연이 없는 날 초콜릿을 먹어 준답니다. 금기시되는 것을 하루쯤 먹어주는 것도 릴렉스에 도움이 돼요.”
원래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 세계 어디를 돌아다녀도 불편하거나 낯설지 않았다는 그녀지만 어디를 가든 한국 음식만큼은 생각이 많이 난단다. “아, 그리고 얼마 전에 찜질방을 처음으로 가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 것도 많이 생각나요. 한국이 역시 살기가 가장 편한 곳이에요.”
개인적인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시간이 드는 취미생활은 불가능하다. 좀 더 시간이 나면 좋아하는 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수영도 꼭 배우고 싶어요. 예쁜 접시나 컵, 촛대, 초 등을 모으는 것을 좋아해서 짬이 날 때마다 하나씩 사서 모으고 있어요. 애견들이랑 산책 가는 것도 좋아하고,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요.” 가장 최근에 본 영화 중 추천하고 싶은 것은 닉 카사베츠 감독의 <노트북(Notebook)>.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영화예요.”
다시 태어나면 수의학 공부를 해보고 싶다
인터뷰을 마치면서 그녀에게 ‘가지 않은 길’이 있었는지, 그 길에 대해 미련이 있는지를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워낙 동물들을 좋아해서 수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어요. 아파도 말을 못하는 동물들을 볼 때마다 ‘내가 고쳐줘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도 수의사 분들을 보면 생각이 나요. 다시 태어난다면 물론 음악도 포기 안 하겠지만 수의학 공부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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