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복,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 정수복 저자와의 만남
지난해 『책인시공: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지난 펴낸 정수복은 ‘책에 대한 책’의 연작으로 최근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을 냈다. 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해 일곱 가지 물음과 의견을 담았다. 지난 4월 10일,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열린 ‘북촌 인문학스터디’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스마트폰에 몰입하느라, 영상과 게임에 중독돼서, 다양한 이유로 책은 우리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느리게 읽기』의 저자 데이비드 미킥스는 그것에 대해 영국의 문학비평가 헤럴드 블룸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제대로 된 독서를 하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과 운명, 행복과 비애를 훨씬 더 강렬하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위대한 작가들이 창조해 낸 우주는 통렬한 변주, 아름다움과 암흑, 찬탄할 만한 진기함을 추구하며, 글의 무한한 에너지를 통해 가장 귀한 선물인 놀라움을 우리에게 안겨 준다. 그리고 그 우주는 매 순간 우리 앞에 열려 있다. 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책이라면 사회학자인 정수복 작가도 빠질 수 없다. 지난해 『책인시공: 책 읽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을 지난 펴낸 그는 ‘책에 대한 책’의 연작으로 최근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을 냈다. 이 책은 책과 독서에 대해 일곱 가지 물음과 의견을 담았다. 그 질문들은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그래도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책 읽는 습관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책, 어떻게 읽을 것인가? △평생 얼마큼의 책을 읽을 것인가? △책은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등이다. 정 교수는 이에 지난 4월 10일, 서울 정독도서관에서 열린 ‘북촌 인문학스터디’를 통해 독자들과 만났다.
“나는 오늘도 세상의 모든 독자가 자기가 원하는 책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읽으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살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다린다.”(『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10쪽)
책, 왜 읽는가!
『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은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부터 시작한다. 정 작가는 이 질문부터 재미있게 시작하고 싶었다. 많은 이들이 책을 읽지 말아야 할 이유와 관련, “건강을 해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18세기 의사들이 그랬다. 정 작가에 의하면 18세기의 서양은 책이 독자층을 넓히던 시기다. 귀족이나 성직자뿐 아니라 평민들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당시 공중보건의는 책을 읽으면 건강에 좋지 않은 이유를 제시했다.
“책을 읽다가 정신병원에 간 사람도 많은데, 내 생각엔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사람이 책 읽는 시늉을 해서 그런 것이지, 책 때문에 정신적인 문제가 생긴 건 아닌 것 같다. 둘째, 우리가 몸으로 감각하는 것이 중요하지, 글을 보고 상상하는 것은 2차적이라고 말한다. 직접 체험과 경험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책에 대해 반론을 펴는 사람들이다. 셋째, 공간이나 집이 복잡해진다고 말한다. 넷째, 설익은 지식인을 많이 배출하기도 한다. 조금 아는 것을 많이 이해한 것처럼 말한다. 깊이 있게 폭넓게 사실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지적 권위를 누리기 위해 책을 어설프게 읽는다. 섣부른 독서가 불러온 폐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정 작가는 반대로 생각하면 된단다. 지금 우리는 할 일이 너무 많다. 따라서 시간과 돈, 자유가 없어서 직접 체험은 한계가 따른다. 직접 체험할 수 없는 것이 많아서 책이라는 간접 체험을 통해 사고의 폭과 인식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것.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향이나 취미생활이 달라서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개인의 문제로 남겼다.
책을 읽어야 한다면 독서 습관을 어떻게 하면 키울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따른다. 그는 독서는 눈이 아닌 귀로 듣는 거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책 읽어준 것을 들으면서 책과 가까워진 경우가 많았다. 이어령, 김열규, 박완서 등이 그런 경험을 말한 바 있다. 눈으로 시작하기 전, 귀로 들었다. 보르헤스는 나중에 눈이 멀었는데, 사람을 고용해 하루 2시간씩 책을 읽게 했다. 독서라는 것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낭독하고 귀로 듣는 것이다. 책(글) 이전에 말로 소통한 것이다. 낭독이 중요하다. 우리 조상들은 소리 내서 글을 읽는 것이라고도 했다.”
그는 책 읽는 습관은 하루에 정해진 시간을 정해놓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정 작가의 경우,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잠자기 전 무조건 30분씩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 오전에 글을 쓰고, 오후에 책을 읽는다. 각자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독서 습관을 들일 것을 권했다.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까
“세상의 모든 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책을 어디서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읽을 권리가 있고 자기만의 생각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 권리를 누린다. 자기만의 생각을 갖기 원한다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어떤 삶인가를 알고 싶다면, 우선 읽고 싶은 책을 찾아 읽어야 한다.”(『책에 대해 던지는 7가지 질문』10쪽)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소설을 많이 읽는 것이 좋다. 소설은 인간의 삶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세상을 알고 싶으면 소설을 읽어라. 인생의 다양한 경험을 구체적인 인물과 시간을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서적?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문학작품이 그렇다. 그런데 많은 독서가들은 소설을 넘어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역사, 철학, 사회과학, 종교,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분석적인 독서를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그는 고전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가치가 인정돼서 여러 세대와 세기에 걸쳐 읽는 고전. 세월을 거쳐서 여러 사람에 의해 검증이 된 책이 고전이라는 것. 그의 입장은 모든 책이 다 좋지만, 더 좋고 덜 좋은 책이 있기에 그것을 선별할 필요가 있다.
“고전은 다른 시대에 쓰여서 여러 배경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접근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마크 트웨인은 누구나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고전이라고 했다(웃음). 고전은 거인이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면 멀리 널리 볼 수 있다. 고전이 히말라야라면 현대서는 언덕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가능하면 ‘고3 현7’ 정도면 좋겠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은 책일까. 한비야에 의면, 덜 좋은 책은 바닷물 같아서 갈수록 갈증이 나는 책이고, 좋은 책은 샘물 같아서 마시고 나면 갈증이 사라지는 책이다. 좋은 책 감별, 서평가들이 생겨난 이유다. 정 작가는 서평을 읽고 자기 기호와 관심, 수준에 맞는 책을 읽으라고 권했다.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주위에 책 읽는 친구나 선후배, 멘토 등과 책 이야기를 하는 거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자기가 읽은 좋은 책을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을 주위에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독서가들은 그런 지인을 주변에 두고 있다. 책을 읽고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생하게 인간적인 관계 속에서 맺어지는 독서, 참 중요하다. 똑같은 책을 읽고 공감해서 만난 친구들이 오래 간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도 따른다. 다독과 속독, 탐독과 난독 등을 말하기도 한다. 정 작가는 저자를 보고 목차를 본다. 책의 구성을 보면서 뒤표지도 살핀다.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첫인상이 중요하듯, 책도 마찬가지다. 책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목차를 보는 능력이필요하다. 단어의 뜻 하나하나를 음미해볼 필요도 있다. 무조건 베스트셀러를 꼽는 것보다 목차를 보면서 책의 분위기가 자신에게 서서히 스며들도록 할 것. 책을 고르는 방법이다.
“중요한 책을 발견해서 반복해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신경숙 작가는 카뮈의 『이방인』을 1년에 한 번씩 읽는다더라.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집에 가보면 가장 잘 알 수 있다. 책의 유무부터, 어떤 책이 있고, 어떤 책을 즐겨 읽는지 알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옛날에는 연애할 때 책을 선물로 많이 주고받았다. 요즘도 프랑스에서는 책을 사면 포장할 것인지 아닌지를 꼭 묻는다. 인간은 육체적으로는 성장하다가 멈추나 정신은 계속 자랄 수 있다.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은 독서에서 온다. 관심 분야를 넓게 가지고 여러 분야의 책을 교차해서 읽는 것, 나는 그것을 맥락의 독서라고 부른다. 중국 관련 책을 읽었다고 하면, 중국 역사, 철학, 중국 사람이 쓴 책도 읽고, 중국 경제와 국제 관계 등을 읽는 것이다. 하나하나 뚝뚝 떨어져서 천 권을 읽느니 관련 있는 책들을 읽으면 자기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한 작가의 책을 읽는 것도 좋겠다.”
그렇다면 평생 얼마큼의 책을 읽을 것인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만 권 넘게 읽었다. 그 책은 김대중도서관에 옮겨놓았다. 우리가 아는 만델라나 링컨도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은 위인이다. 빌 게이츠는 이런 말도 남겼다. “날 만든 것은 하버드대가 아니라 동네도서관이다.” 정 작가는 성인이 돼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 1000~2000권 읽고, 반복해서 읽을 100권정도 만들 때까지 독서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책은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제 아무리 많은 책을 읽는다손 그것이 인간적인 성숙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책을 제대로 읽고 실천을 해야 한다. 정 작가는 책은 자신을 발견하고 발명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대개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가기 때문에 나를 발견하는 것은 물론 더 나은 나를 발견하는 것은 책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또한 책을 통해 수많은 친구와 스승을 만날 수 있다. 아울러 타자를 발견하는 장소가 책이다.
“인간적인 성숙과 자기를 발견하고 타자를 발견하면서 세상의 이치를 알게 되면 세상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것, 이것이 시민이다. 서양에서 18세기 독서층이 생겼다. 이는 민주주의의 형성과 같이 갔다. 독자층과 민주주의 공론장의 형성, 민주주의의 심화는 같이 간다. 참여하는 시민의 주체가 독서를 통해 형성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독서하는 시민이 아닌 점수 관리하는 시민을 만들고 있다. 인간적인 깊이와 두께를 갖는 시민이 없다. 독서가 제대로 이뤄지면 삶이 달라지고 상호 존중하는 관계가 발현될 수 있다. 타자를 발견하면 진실한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 함몰된 시간을 줄이고 책을 통해 더 나은 인간,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세상 만물은 연결돼 있는데, 책이 그것을 느끼게 해준다.”
책에 대한 어떤 질문과 답
기억의 용량이란 게 있어서 읽었는데도 제목이나 내용이 생각 안 나기도 한다. 자기만의 독서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책을 보고 기록하고 간직해서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 같다. 일단 책에 표시를 많이 해야 한다. 가능하면 접지 말아 달라고 나는 말한다. 책이 아프다. 책은 지저분하게 봐야 한다. 유년기에는 책을 보고 독후감을 쓰는 것이 좋다. 그러나 성인이 돼서는 독후감보다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로 파일이나 폴더를 여러 개 만들어서 자신이 읽은 책의 내용을 집어넣으면 좋겠다. 주제별로 파일을 만들어서 자기 생각을 만들어가는 거지. 그런 과정에서 사고가 종합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의 독서기록이 풍부해질 수 있다. 자신의 관심사로 여러 책을 재료로 집을 짓는 것이다. 책을 효과적으로 읽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의 의도와는 달라도 된다. 내 생각을 엮다 보면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독서가 가능하다.
고전을 잘 읽지 않아서 해설본, 다이제스트 등 여러 판본이 있다. 뭣부터 읽는 게 좋을까?
고전의 저자와 책 제목은 많이 알고 있으나, 실제로 읽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도 있다(웃음). 다이제스트본이나 해설본, 발췌본 등 고전의 여러 판본이 있으나 원전을 읽는 것이 정석이라고 본다. 그런데 그 원전은 쉽고 정확하게 번역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번역문화가 조야했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최근 일을 그만뒀다.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프로젝트를 보니 노숙인들이 책을 통해 새로운 삶을 꿈꾸더라. 책 읽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혼자 있으면서 스마트폰에 빠져서 미쳐가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추천해줄 수 있는 독서클럽이나 모임이 있는지?
도서관은 도심에 있어서 누구나 쉽게 접근해야 한다. 책을 읽을 때 혼자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 18세기 책을 읽는 독자층이 형성되면서 집안 내부 구조가 달라진다. 방이 쪼개지고, 개인이라는 의식이 생겨났다. 대신 거실이 있어서 낭독회도 하고 음악회, 파티 등도 했다.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면서 남과 함께 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나의 제한적인 경험이 타인의 경험과 함께 섞이는 것이 중요하다. 도서관이 해야 할 일은 책을 저장하고 빌려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토론하며 대화하는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5~10분 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이 있어야 하고, 책을 빌려주는 것뿐 아니라 지역공동체와 섞이는 문화공간으로 작용해야 한다.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독서해설가, 독서촉진자 등이 도서관에 있어야 한다. 독서모임도 활성화돼야 하고. 개인적 독서가 아닌 사회적 독서가 돼야 한다. 마음에 드는 선후배, 동네사람 등으로 3명 정도에서 독서클럽을 만들면 좋겠다. 10명 이상 넘어가면 좋지 않고. 지금 너무 어려운 시절이다.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투성이다.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요구할 것은 요구하는 시민이 돼야 한다. 도정일 교수가 말씀했는데 의미가 없는 곳에 의미를 세우고, 희망이 없는 곳에 희망을 세우고, 정의가 없는 곳에 정의를 세워야 한다. 그것의 출발점이 독서이고 사회적 독서이다. 독서하는 사회가 민주주의를 할 수 있는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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