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 시인과 촌장
진실을 향한 탐색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1980년대 아련한 감성을 전해준 전설적인 듀오 ‘시인과 촌장’은「사랑일기」그리고 2000년 당대 최고인기가수 조성모가 리메이크해 다시 재조명된 명곡「가시나무」하면 떠오르는 그룹이다. 이 2인조의 지휘자로서 이후에는 CCM(현대 기독교음악) 음악의 삶에 천착한 하덕규는 그러한 고민과 갈등의 진지한 뮤지션십에 가장 근접했던 음악작가였다. 그는 ‘시인과 촌장’의 앨범 전곡을 썼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때로 ‘내가 만들어낸 음악과 내 실제가 과연 일치하느냐?’의 고민에 빠지곤 한다. 진정한 자아와 음악적 자신이 얼마만큼 부합하는가, 아니면 둘 사이에 어느 정도 괴리가 존재하는가에 대한 고통스런 갈등이다. 만약 아름다운 노랫말의 곡을 만들어냈는데 자신의 진면목은 추하다고 느꼈을 때, 적어도 양심을 가진 아티스트는 고뇌에 휘둘리게 된다.
‘떠나가지마 비둘기, 그 잿빛 날개는 너무 지쳐 있겠지만 다시 날 수 있잖아 비둘기, 처음 햇살 비추던 그날 아침처럼…’ (2집의 「떠나가지마 비둘기」)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내 속엔 헛된 바램들로 당신의 편할 곳 없네…’ (3집의 「가시나무」) | ||
「가시나무」가 나왔을 때 메시지에 상당히 놀랐습니다. 앨범에도 “마지막 녹음 직전에 「가시나무」와 「나무」를 만들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란 개인노트도 들어가 있구요. 심경변화를 일으킨 것만은 분명해보였습니다.
사실 2집 곡들은 시적 감수성 속에 자유와 쟁취에 대한 신념이 녹아있지요. 하지만 3집을 만들 때는 외부상황이 바뀌었어요. 특히 1987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진영후보(YS, DJ)의 패배와 민주화의 후퇴에 깊이 좌절했습니다. 대선 후 한 카페에서 ‘앞으론 진보성향의 노래를 만들겠다!’고 동료들 앞에서 선언했습니다. 그리곤 강력한 메시지가 들어간 노래를 녹음했어요. 정치권을 조소하고 비판하는 노래들이었던 거죠. 하지만 녹음을 다 마친 후 한 달 새벽기도를 다니면서 상념에 휩싸였습니다. 과연 내가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느냐는 것이었죠.
막판에 들어간 「가시나무」가 그런 갈등의 소산이었겠네요.
그렇죠. ‘네가 그 돌을 들어 누구를 칠 자격이 있느냐. 돌을 내려놓아라.’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깨우친 거지요. 이를테면 ‘나는 누구한테 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자각이었어요. 내 안의 나는 진실하지 않으며, 댄스가수인 김완선, 박남정보다 좋은 음악인이 아니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연예산업의 가면과 가수의 허위의식에 대한 스스로의 질타였습니다. 좋은 노랫말을 전달하는 ‘포장된 나’와 속으로는 영웅이 되고자 하고 세속적 성공을 바라는 ‘진짜 나’의 혼돈을 깊이 반성한 거죠. 「가시나무」는 그런 자기고백을 담은 곡이었습니다. 급조되어 막판에 들어갔고, 그러면서 미리 녹음해놨던 공격적인 노래는 다 빼버렸습니다.
CCM으로 가는 서막이 「가시나무」였던 거군요.
3집은 이전의 비판적인 기조에서 갑작스런 자기성찰로 전환되었지만 전 그 앨범을 끝으로 대중가요를 하지 않는다고 결심했습니다. 치부를 다 드러내고 떠난다는 심경이었지요. 음악 하는데 의기소침했고 실망했던 때였습니다. CCM이 저를 구원해주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나의 세계를 갖고 CCM은 그 세계를 전달하는 통로가 된 거죠.
「가시나무」를 쓸 때 고통스러웠던 만큼 만드는데도 시간도 많이 걸렸겠어요.
아니에요. 피아노로 음 하나 둘을 쳤는데 저절로 멜로디가 이어졌어요. 그냥 나온 멜로디였다는 게 적당할 표현일 겁니다. 피아노로 10분 만에 작곡해서 완성했어요. 만들면서 무지 많이 울었죠. 이틀 후에 ‘들국화’ 멤버로 고인이 된 허성욱에게 들려주고, 그의 피아노연주로 녹음했지요. 성욱이가 녹음하면서 ‘형, 이거 내 얘기 같아!’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지금은 「가시나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비판력이 거세된, 완전히 순화된 메시지라서 강한 메시지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실망했을 테지만, 전 메시지의 솔직성 때문에 맘에 듭니다. 단순하나 탁월한 감성이라는 생각도 들고.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것 아세요? 그런 인정을 받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가장 진실한 것이 남는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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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태그: 시인과 촌장, 가시나무, 하덕규, 오종수, 함춘호, 조동익, 이병우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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