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20년간 이어진 <빨래>의 위로
SPECIAL① 뮤지컬 <빨래>가 20년간 걸어온 길
글: 이솔희 사진: 씨에이치수박
202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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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0차 프로덕션 공연 장면



‘대한민국 대표 창작 뮤지컬’. 다소 거창한 이 수식어에 걸맞은 작품을 떠올릴 때, 뮤지컬 <빨래>를 빼놓는 이는 몇 없을 것이다.

 

뮤지컬 <빨래>는 고향을 떠나 꿈을 찾아 서울에 온 주인공 나영과 솔롱고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울살이를 하는 소시민들의 고단한 삶, 그 안에서도 피어나는 희망과 정을 무대에 펼쳐낸다. 작가의 꿈을 품고 강원도에서 상경했지만 서점 직원으로 일하면서 꿈꾸는 것은 사치가 되어버린 나영, 몽골에서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다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공장에서 일하는 솔롱고. 서울살이 5년 차인 두 사람에게 세상은 눈물지을 일로 가득하다. 빨랫줄에 널린 빨래처럼 푹 젖어 눈물을 뚝뚝 흘리는 두 사람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는 것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나눠주는 정이다. 단칸방 주인할매가 내어주는 뜨끈한 아랫목, 옆방 희정엄마의 온기 어린 오지랖 같은. 그 따뜻함은 나영, 솔롱고를 거쳐 그들을 바라보는 관객의 마음에도 스며든다. 2005년 초연되어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빨래>가 현 시대에도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는 여기에 있을 테다. 상처와 고민을 어루만져주는 위로와 공감의 이야기는 어느 시대에든, 누구에게든 꼭 필요하니까.


2005년 1차 프로덕션 공연 장면


<빨래>는 대본을 쓴 추민주 연출이 지하 단칸방에 세를 들어 살던 대학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됐다. 2003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공연으로 세상의 빛을 본 <빨래>는 2005년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정식 초연됐다. 현재는 2시간 30분 분량의 2막 구조 뮤지컬이지만, 당시에는 넘버 7곡으로 구성된 85분 분량의 공연이었다. 그럼에도 작품성을 인정받아 제11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작사/극본상을 받았다. 이후 2006년에는 상명아트홀 1관에서, 2008년에는 원더스페이스 네모극장, 알과 핵 소극장에서 공연을 올렸다. 이즈음 새로운 넘버를 추가하고,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작품의 형태를 확장했다. 2009년에는 규모를 한층 키워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했는데, 이때 임창정, 홍광호가 출연하면서 <빨래>라는 작품을 대중에 확실히 알렸다.


2009년 5차 프로덕션 공연 장면


이후 다시 소극장으로 돌아와, 2009년 6차 프로덕션부터 2012년 12차 프로덕션까지 학전 그린 소극장에서 관객을 만났다. 누적 공연 1,000회와 2,000회를 돌파하는 기록도 이곳에서 세웠다. 처음으로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을 진행한 것도 이때다. 2013년에는 아트원씨어터 2관에서 공연됐고, 2014년 15차 프로덕션은 아트센터K 네모극장에서, 16차 프로덕션부터는 아트센터K가 이름을 바꾼 동양예술극장 1관에서 공연을 진행했다. 이후 2020년 24차 프로덕션까지 오랜 시간 동양예술극장 1관을 지키던 <빨래>는 2021년 25차 프로덕션부터 유니플렉스 2관으로 자리를 옮겨 현재까지 같은 곳에서 공연 중이다. 서울 공연을 진행하는 동시에, 매년 적게는 3개, 많게는 15개 지역에서 투어 공연을 진행하면서 누적 관객 수와 누적 공연 수도 빠른 속도로 늘었다. 현재 공연 중인 31차 프로덕션 기준, 누적 관객 수는 약 130만 명을 넘어섰고, 곧 6,600번째 공연을 앞두고 있다. 31차 프로덕션의 공연은 오는 2026년 5월 31일까지 이어진다.


2017년 19차 프로덕션 공연 장면


진정성 있게 차곡차곡 쌓아온 20년의 세월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공연도 오는 11월 열린다. 11월 8일, 9일 양일간 올림픽공원 우리금융아트홀에서 <빨래> 20주년 기념 콘서트가 개최되는 것. 이정은, 김희원, 정문성, 곽선영, 이규형 등 작품의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간 배우들은 물론, 이희준, 김남길 등 <빨래>를 사랑한 이들이 모여 <빨래>에 얽힌 추억을 꺼내놓을 예정이다.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넘버 ‘빨래’ 중) 삶에 얼룩이 생겨도, 먼지가 잔뜩 붙어도 두렵지 않다. 잘 다려진 내일이 다가올 거라고 노래하는 <빨래>가 언제나 우리의 곁에서 위로를 전해줄 테니 말이다. 지난 20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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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솔희

뮤지컬 전문 매체 <더뮤지컬> 기자. 좋아하는 건 무대 위의 작고 완벽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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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에이치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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