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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음이 일으키는 놀랍도록 다정한 변화

『브로콜리를 좋아해?』 김지현 작가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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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라는 말이 어딘가 좀 ‘말랑말랑’하고 별 힘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저만의 느낌인가요?), 실은 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요. (2024.07.12)

같은 뮤지션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처음 만난 옆자리의 관객에게 초콜릿을 건네고, 내가 좋아하는 뮤지션이 좋아하는 책을 찾아 읽고, 강아지를 좋아해서 유기견 봉사활동에 나서고, 번식장과 사육장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그러다 고기를 먹지 않게 되고…. 이 모든 일의 시작에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 제20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우리의 정원』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다정한 울타리를 보여 준 김지현 작가가 아삭아삭하고 청량한 사랑을 그린 『브로콜리를 좋아해?』로 돌아왔다. ‘좋아하는 애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브로콜리를 좋아해?』가 던지는 조금 설레고, 유쾌한 질문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한 사람을 말해 준다’는 당연한 진리로 독자를 이끈다. 누구를 좋아할지, 무엇을 먹을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직접 선택하기로 결심한 『브로콜리를 좋아해?』의 인물들을 만나기 전, 작가의 이야기를 청해 보았다.



‘작가의 말’을 보면 첫 장편소설 『우리의 정원』이 출간되기 전부터 구상하신 이야기더군요.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장편소설을 쓸 때는 이미 제 안에 있는 것들을 꺼내서 소재로 삼는 편이에요. 학창 시절 ‘아이돌 덕질’에 몰두하던 경험을 토대로 『우리의 정원』을 썼듯이, 이 이야기를 구상하던 때는 제가 한창 동물권에 관심을 가지고 채식을 시작한 시기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고기를 먹지 않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다만 처음에는 ‘동네 고양이와의 불가사의한 만남을 통해 별안간 고기 알레르기가 생긴 남자애’가 주인공이었고, 배경도 남고를 생각했어요. 고기를 좋아하던 남학생들이 어쩌다 채식 급식을 도모하게 되면서 ‘우당탕’ 코믹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짝사랑 로맨스를 덧붙여 지금의 풋풋한 이야기로 완성이 되었습니다.

청소년과 ‘채식’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성장기에는 다양한 음식과 영양소를 고루 섭취해야 하니 채식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여기는 시선들도 있을 테니까요. 제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도 무조건 채식을 하자는 게 아니라, 이 이야기가 청소년 독자들이 내가 앞으로 무엇을 취하고 또 취하지 않을지 고민하고 직접 선택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으면 했어요. 저는 청소년기가 자기 삶에서의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시기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내가 무엇을 해야 잘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비해, 무엇을, 얼마나, 어떻게 먹으며 살 것인지는 그만큼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 얘기해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학교에 다니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식단이 정해진 학교 급식을 먹게 되는데, 급식에 매일같이 나오는 고기반찬을 먹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궁금했고요.

작가님의 첫 작품 『우리의 정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다정한 사람들’을 떠올리게 돼요. 『브로콜리를 좋아해?』에는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나요?

『우리의 정원』을 쓰는 동안 자주 떠오른 단어는 ‘인연’, ‘이어짐’ 이었는데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는 ‘선택’이라는 단어가 계속 맴돌았어요. 처음에 이야기를 만들 때 생각했던 것은 ‘교실 변두리에 있는 아이들’이었어요. 교실 안의 일정한 분위기나 문화, 유행에 관심이 없고 조금 벗어나 있는 아이들에게 늘 관심이 가고 궁금했거든요. 그런데 주류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따로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성적이나 입시처럼 학교에서 당연하게 가장 강조되는 것들과는 별개로, 자신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고 무엇을 할지 직접 선택하는 아이들을 떠올리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 사이에는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관계도, 상처가 되는 관계도 있지요. 아직 어떤 선택도 하지 않은 유진과 크고 작은 결정을 한 친구들의 관계는 어떤가요?

처음에 주인공 유진이는 주변 친구들과 자기의 다른 점을 계속 발견하는데요. 학교를 불쑥 자퇴한 절친 은오나, 아이들의 눈총에도 교실 에어컨을 끄고 온 학교에 고양이 전단지를 붙이는 수현을 보면서 ‘그게 잘못은 아니지만, 나라면 굳이 하지 않을 행동을 왜 하지?’ 하는 의문을 가져요. 나와 다른 길을 선택한 은오에게 서운함도 느끼고, 아이들의 이목을 끄는 수현과 함께 다니기를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두 사람을 이해하게 되죠. 그렇게 당장은 이해되지 않는,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서 ‘저건 틀렸어.’ 하고 배척한다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관계가 되겠지만, 판단을 보류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작에서는 주인공과 친구들이 같은 대상을 좋아하면서 관계를 맺었다면, 이번에는 조금씩 다른 선택을 한 친구들이 우정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려고 했어요.

유진이는 좋아하는 아이를 혼자 두기 싫어서, 채식 도시락을 싸기 시작해요. 『우리의 정원』은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연결되는 이야기죠. ‘좋아하는 마음’이 동력이 되어서 일어나는 변화에 주목하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아무래도,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좋아하는 마음’이라 그런 것 같아요. 『우리의 정원』이 나오고 나서 청소년 독자들을 만나면, 특기나 적성을 찾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온 마음을 쏟아 가며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는 말을 꼭 하거든요. 제 인생 첫 번째 ‘덕질’ 대상인 해리 포터 시리즈를 비롯해서, 제가 좋아한 것들이 삶의 한 시기마다 어떻게 방향을 제시했는지 들려주면서요. 소설을 쓰고 있는 지금도 그래요. 제가 원래는 아주 수줍음이 많고, 저를 드러내기보다는 조용히, 잘 묻혀서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인데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더 많은 독자분들이 제 소설을 찾아 읽고, 작가인 저를 기억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만큼 용기를 내서 계속 글을 쓰고 저를 드러내는 말을 할 수 있는 것도, 소설을 쓰는 것이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 그런 것 같아요. ‘좋아한다’라는 말이 어딘가 좀 ‘말랑말랑’하고 별 힘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데(저만의 느낌인가요?), 실은 한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어요.


‘한 끼라도 정성껏 지어 먹는 어른’이 되겠다는 희원이나 ‘고양이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유진. 이 책 속 청소년이 꿈꾸는 자신의 미래가, 평범하지만 다행스럽습니다.

제가 쓰는 청소년소설에는 ‘나는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될지’ 궁금해하는 청소년 인물들이 매번 나와요. 청소년기는 불완전한 과도기이고 어른이 되어야만 ‘완전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저는 적어도 이 사회가 모든 아이들이 별 탈 없이, 무사히 그 시기를 지나 당연하게 어른이 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요. 그렇게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사회 안에서, 아이들이 각자가 원하는 어른의 모습을 마음껏 그려 보고 기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바람을 품고 ‘어른이 되는 일’을 기대하고 이야기하는 청소년 인물의 모습을 계속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다만 그게 꼭 거창하고 대단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뜻은 아니에요. 유진이와 희원이가 말하는 어른의 모습이 얼핏 소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것도 그래서고요.

작가님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나요? 지금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가요?

청소년기에 거창한 목표를 세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지만, 저 역시 어릴 때는 저의 미래를 ‘원하는 직업을 가진 모습’으로만 그려 봤던 것 같아요. 원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고3 여름방학 때 갑자기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물론 이것도 제가 수험생인 상황에서 드라마 본방사수를 포기하지 못하던 ‘드덕’이라, 제가 ‘좋아하는 것’이 삶에 영향을 미친 일화 중 하나예요. 그런데 어느 학교 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들은 학생 한 명이 저에게 지금은 ‘드라마가 아니라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어떤지’ 질문한 적 있어요. 그때 조금의 거짓도 없이, 소설을 쓰는 지금에 만족한다고 답하게 되더라고요. 아마 제가 궁극적으로 되고 싶었던 것은 ‘글을 쓰는 사람’이어서 그런 건지도 몰라요.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맞아, 인간은 원래 선하고 세상은 따뜻한 곳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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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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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를 좋아해?

<김지현> 저11,700원(10% + 5%)

“좋아하는 애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사실이 나에게 미치는 영향은?” 책표지에 적힌 질문은 흥미롭기도, 낭만적이기도 하다. 좋아하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그럼 그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져 보자. 치킨이 영혼의 동반자라 아무래도 사귀기엔 무리인가? 내가 먹는 걸 반대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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