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숙의 노상비평] 강감찬 공해에 부쳐
모든 민족적, 국가적 전통이 발명된 전통인 것처럼 지역적 정체성 역시 ‘지역 홍보’라는 정책적 목표 아래서 얼마든지 새롭게 설정되고, 또한 포장될 수 있다.
글ㆍ사진 이연숙(리타)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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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의 마스코트 강감찬이 그려져 있는 액자 조명. 

왜 설치했는지는 파악할 수 없다. 
(2023년 11월 3일 촬영)


지난 겨울 나는 <고려거란전쟁>에 푹 빠져 있었다.1 KBS 창사 50주년 특별 기획으로 제작된 이 드라마는 26년간 이어진 고려와 거란의 전쟁을 다룬다. 약 270억 원이라는, 역대 KBS 사극 중 가장 큰 규모의 제작비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제작비의 대부분은 드라마의 피날레에 해당하는 ‘귀주대첩’ 장면에 쓰였다고 한다. 알다시피 ‘귀주대첩’에서 고려를 승리로 이끈 것은 최수종, 아니 강감찬이다. 문헌 기록에 따르면 강감찬은 키가 작고 마마를 앓아 곰보 자국이 무성해 천하의 박색이었다는데, 실은 대장부로서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미남으로 태어난 얼굴을 스스로 망친 거라고 한다.2 반면 구전 설화에서 그는 여우와 인간의 자손으로 여우를 닮았다고 전해지는데, 비범한 이인(異人)으로서의 그의 출생을 강조하기 위한 묘사가 와전되어 이후 문헌 기록에 그의 얼굴이 ‘얽었다’고 기록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3


그러거나 말거나, <고려거란전쟁>에서 ‘아저씨’ 최수종이 연기한 강감찬은 어딘가 ‘여고생’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고려를 향한 갸륵한 충심으로 가득 찬 명실상부 미인이다. 이와 같은 사실이 내게 어색한 걸 넘어 인지부조화를 일으키는 까닭은 실제 기록에서 강감찬이 작고, 추하고, 거지꼴을 한 어딘가 모자라는-그래서 더 영웅적일 수 있는-평균 미만의 일개 인간으로 서술된 탓이 아니다. 그저, 가능하다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싸그리 박멸하고 싶을 정도로 못생긴, 어떻게든 괜찮은 부분을 찾아보려 애써도 결국 가학적인 상상으로 치닫게 만드는 그런 흉한 버전의 강감찬을 내가 매일, 일상적으로,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마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지금 내가 만 14년째 거주하고 있는 서울시 관악구의 마스코트 ‘강감찬’에 대해 말하고 있다. 마스코트라니! 아무리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역사적 인물이라고는 하나 죽은 사람, 그것도 한참 전에 죽은 털이 부숭하게 난 ‘아저씨’가 마스코트가 된 건, 최소한 서울시에서는 관악구가 유일하다.4 일단 나는 이 마스코트의 조형을 도저히 참아 주기가 어렵다. 그는 괴이하게도 매해 점진적으로 코가 커지고 있는 데다(정말이다),5 머리를 소실점에 둔 세모(△) 형태를 취하고 있어 마치 관악구민들을 굽어보시고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 도시를 홍보하는 마스코트로서 귀여워질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강감찬이 아니어도 ‘가오’ 잡는 아저씨들은 이미 현실에 너무 많다. 게다가 일관된 컨셉의 부재 탓인지, 그는 어떤 삽화에서는 아이들을 등 뒤에 매달고 양손 V자를 그리며 정치인처럼 치아를 드러내며 웃다가, 또 다른 삽화에서는 뭔가를 베어 버릴 생각인지 한껏 들뜬 표정으로 목검 아닌 진검을 휘두르며 흥분해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인다.6 아니, 이런 건 좀 무섭지 않나?


이러한 이슈에도 불구하고 강감찬은 양심도 없이 정말이지 온 동네를 뒤덮고 있다. 공사장 가림막, 신호등 앞 무더위 대피소나 버스 정류장, 길거리에 설치된 온갖 경고문과 안내문에 맥락도 없이 등장하는 건 물론이고, 때론 아무런 문구도 없이 삽화만 덜렁 마치 작품처럼 ‘액자’로 걸려 있는 데다, 최근에는 심지어 유동 인구가 많은 길목에 가로수 크기의 3D 홀로그램 조형물로 설치되어 밤만 되면 사이키델릭한 애니메이션을 선보이기까지 한다. 그래, 이게 다 박준희 구청장의 ‘빅 픽처’, 즉 관악구를 “강감찬 도시”로 만들겠다는 도시 브랜딩 계획의 일부라는 건 잘 알고 있다.7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정말  ‘시각 공해’, 아니 ‘강감찬 공해’ 수준이다.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한 걸음 떼기가 무섭게 강감찬과 아이컨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말이다. 


길거리 어디에나 강감찬을 발견할 수 있다. 

(위: 2024년 1월 31일 촬영, 아래: 2024년 7월 12일 촬영)


대부분의 지자체가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마스코트를 제작한다. 예컨대 서울시 종로구의 보신각종을 상징하는 ‘종돌이’(미묘하게 콘돔 모양처럼 보여, 이곳이 본래 게이들의 게토라는 역사적 사실을 상기시킨다), 부산시 중구의 묘하게 섹시한 외형을 한 ‘자갈치아지매’, 1993년 엑스포 이후 널리 알려진 대전시의 아이코닉한 ‘꿈돌이’, 비교적 최근 남강에서 목격된 수달을 계기로 만들어져 전국적 인기를 끌고 있는 진주시의 ‘하모’, 마찬가지로 ‘굿즈’로서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는 용인시의 ‘조아용’과 같은 마스코트들이 그렇다. 모든 민족적, 국가적 전통이 발명된 전통인 것처럼 지역적 정체성 역시 ‘지역 홍보’라는 정책적 목표 아래서 얼마든지 새롭게 설정되고, 또한 포장될 수 있다. 마스코트는 이러한 도시 브랜딩의 일부로, ‘실제’ 주민들의 삶이나 역사적/문화적/정치적 배경과는 별개로 지자체가 ‘바깥’에 내세우려 하는 해당 지역의 ‘얼굴’과도 같다. 낙성대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주로 현재의 북한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낸 강감찬이 관악구의 마스코트가 된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서 수사적 질문. 그렇다면 관악구가 강감찬을 통해 연출하려는 ‘얼굴’이란 과연 무엇일까. 관악문화재단이 2021년 배포한 ‘강감찬 게임’8과는 달리,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어부지리로 성공한 바이럴인 <고려거란전쟁> 덕에 박준희 구청장은 올해 ‘관악강감찬축제’9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축제” 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작년 이 축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구국의 영웅 을지문덕, 이순신, 강감찬 장군이 들려주는 평화의 가치”를 주제로 한 공연이었다.10 강감찬에 대한 사보타주나 다를 바 없는 ‘강감찬 공해’를 통해 죽은 구국 영웅의 도시로 거듭나고자 하는 관악구의 야심을 응원할 수는 없겠지만, 납득하지 못할 건 또 없다. 하지만 불어나는 서울시의 도시 빈민을 수용하기 위해 혹은 ‘게워내기’ 위해 1973년 영등포구로부터 분리되어 신설된 관악구, 또한 오늘날 서울시에서 가장 높은 청년 주거 비율(41%)11 과 최저주거기준미달가구 비율(21.9%)12  을 자랑하는 관악구의 ‘역사’와 ‘문화’는, ‘강감찬 공해’로 쉽게 덮어 쓰여지지 않을 것이다. 



1  <고려거란전쟁>과 남성성에 대해서 다른 지면에서 다룬 바 있다. “'좋은' 가부장제? 가부장제를 바라보는 모순된 욕망”, 코스모폴리탄, 2024.02.04, https://www.cosmopolitan.co.kr/article/83741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강감찬 설화 (姜邯贊 說話)”,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0955

3  윤준섭(2021), 「볼품없는 용모를 지닌 영웅, 강감찬의 출생 이야기 연구」, 한국중세사연구, 64, 93-121.

4  남양주시의 ‘정약용’, 포천시의 ‘세종대왕’이 관악구의 ‘강감찬’과 비슷한 경우다. 포천시의 ‘오성과 한음’처럼 귀엽기만 한 경우도 있다. 

5  2016년 처음 공개된 강감찬의 디자인은 아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확실히 코가 더 작고 눈썹이 더 짙어 지금보다는 더 앙증맞게 느껴지는 모습이다. 

“[특집기사] 강감찬 축제를 마치며”, 2016 관악 강감찬 축제, 2016.05.10, https://blog.naver.com/gamchan2016/220706130353

6  관악구청 홈페이지, “캐릭터”, https://www.gwanak.go.kr/site/gwanak/01/10102070000002021111701.jsp

7  "관악구, ‘강감찬 장군’ 도시 브랜드화 본격 추진", 문화일보, 2019.09.02, https://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902MW143942866990

8  “[강감찬 게임] ??게임 링크는 더보기란을 꼭 확인하세요! (feat. 빵신)”, 2021.12.13, https://www.youtube.com/watch?v=PydF3E4lAHQ

(게임 링크: http://210.104.141.17:9000/)

9  "관악강감찬축제, 서울시 유일 예비문화관광축제로 선정", 연합뉴스, 2024.02.01, https://www.yna.co.kr/view/RPR20240201000300353

10  관악강감찬축제 공식홈페이지, https://www.ggcfest.com/

11  “관악구, '신림동쓰리룸'서 '청년청'까지…다양한 청년정책”, 조선일보, 2024.03.11, https://www.chosun.com/special/special_section/2024/03/11/KORLZM34LZDVLAG7WKRODTX7QA/

12  “[쪽방촌을 바꿔라⑦]서울, 최저주거기준미달가구 전국 최다”, 뉴시스, 2018.01.24, https://www.newsis.com/view/NISX20180122_0000209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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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숙(리타)

대중문화와 시각예술에 대한 글을 쓴다. 소수(자)적인 것들의 존재 양식에 관심 있다. 기획/출판 콜렉티브 ‘아그라파 소사이어티’의 일원으로서 웹진 ‘세미나’를 발간했다. 프로젝트 ‘OFF’라는 이름으로 페미니즘 강연과 비평을 공동 기획했다. 블로그 http://blog.naver.com/hotleve 를 운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