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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의 시절 리뷰] 이 많은 혐오와 조롱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슬기 칼럼 9화 – 『인싸를 죽여라』
미국의 온라인 극우는 ‘사디즘’의 어원이 된 18세기 마르키 드 사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위반’의 전통을 따른다. 늘 진보의 것으로 여겨지던 ‘반문화’는 기실 형식이었을 뿐, 좌파도 우파도 전유할 수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2024.07.11)
세상의 행간을 읽는 이슬기 기자의 콘텐츠 리뷰. 격주 목요일 연재됩니다. |
‘토마토 주스가 돼버린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서울시청 역주행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에 20대 남성이 두고 간 쪽지의 내용이다. 한편으론 희생자들을 볼링핀에 비유하거나, 피해자 모두 남성이라 즐겁다는 게시물이 여초 커뮤니티에 올라와 공분을 사기도 했다. 비극적 참사를 둘러싼 조롱의 언어는 어느덧 우리에게 익숙한 일이 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에는 희생자를 어묵에 빗대 비하하거나, 유가족들의 단식 농성장 앞에서 폭식 투쟁을 벌이던 일간베스트 저장소 회원들이 있었다. 이태원 참사와 화성 리튬전지 공장 화재를 두고도 혐오표현은 이어졌다. 언제 봐도 뜨악한 사회의 한 단면인데, 그 때마다 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문화연구자인 앤절라 네이글의 책 『인싸를 죽여라』는 2010년대부터 미국에서 터져 나온 혐오와 조롱의 ‘온라인 극우주의’를 추적한 저작이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의 취임으로 수많은 인터넷 리버럴들이 새 시대를 염원했지만 이어진 결과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탄생이 아닌 극우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었다. 책은 바로 그 시기, 주류 미디어에 대항해 ‘밈’으로 무장한 온라인 하위문화의 전쟁을 그린다. 미국의 이야기일진대, 한국 극우 커뮤니티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시기 미국의 온라인 문화전쟁은 트럼프의 당선, 오늘날 ‘대안 우파’라고 불리는 집단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책에 따르면 대안 우파의 발흥에는 리버럴 성향의 대학생들이 활동한 플랫폼인 ‘텀블러’ 발 엄숙주의도 영향을 끼쳤다. 인종 및 젠더 감수성에 민감한 텀블러 유저들은 정치적 올바름과 정체성 정치에 몰두했고 그 여파로 ‘취소문화’가 절정에 달했다. 지극히 일상적인 행위조차 ‘여성 혐오적’ 혹은 ‘백인우월주의적’이라는 비난에 노출돼 해당 인물을 ‘보이콧’하는 문화가 발동된 것이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반 PC와 상스러운 조롱으로 점철된 온라인 백래시 세력인 ‘대안 우파’가 나타났다. 주류 미디어와 텀블러에 대항하는 이들은 조롱의 ‘밈’을 통해 여성혐오, 인종주의, 장애인 차별 등 낙인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책 제목인 ‘인싸를 죽여라’의 ‘인싸’(normies)는 미국 극우 남성 커뮤니티가 공격하는 주 대상이자 “주류 감성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멸시와 증오의 표현이다. 미국의 온라인 극우는 ‘사디즘’의 어원이 된 18세기 마르키 드 사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위반’의 전통을 따른다. 늘 진보의 것으로 여겨지던 ‘반문화’는 기실 형식이었을 뿐, 좌파도 우파도 전유할 수 있음이 여기서 드러난다.
“반문화적 위반이라는 것은 지극히 공허하고 기만적인 개념이다. 이는 주류의 가치와 취향을 무시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공백을 만든다. 모든 끔찍한 것들 앞에 취약해져 버린 문화를 진보파가 저항 헤게모니적 힘으로 낭만화하게 만든 것도 바로 이 공백이었다.” (205쪽)
저자가 말하는 극우로 돌아선 젊은 남성들의 내재적 동기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 볼 만하다. 책에 따르면 현대의 남성과 여성들은 모두 결혼과 가족의 족쇄로부터 일정 부분 전보다 자유로운 성생활을 누리는 가운데 엘리트 남성은 한층 더 넓은 성적 선택권을 쥔다. 반면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남성 인구는 점점 더 독신주의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처럼 자신의 낮은 지위에 대한 불안과 분노는 여성과 인종 문제를 향한 철저한 위계질서의 주장으로 이어졌다”(189쪽)는 것이 저자의 지적이다. 알파 메일(Alpha Male)과 베타 메일(Beta Male)로 남성 집단을 구별하는 것 또한 대다수 남초 커뮤니티를 관통하는 정서다. 스스로를 ‘베타 메일’로 정체화하는 극우 커뮤니티 주 이용층은 인간의 모든 상호작용을 이러한 사회적 위계질서에 기반해 해석하고자 시도한다.
『인싸를 죽여라』의 분석은, 오늘날 한국의 정치·사회 지형에도 많은 함의를 제공한다. 미국에서는 대안 우파를 등에 업고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면, 한국에서는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남초 커뮤니티의 구호를 적극 외쳤던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조롱의 언어, 반페미니즘에 기반한 혐오의 언어들은 상당수 이들 남초 커뮤니티에서 왔다. 거주 지역을 계급화하는 ‘부동산 계급표’의 등장이나 더욱 강고해지는 대학 서열화, 심화되는 능력주의 등은 알파·베타메일을 가르듯 사회적 위계를 가르는 커뮤니티의 언어가 확장된 사례다. 여기에 더해 시청역 사고를 ‘볼링절’이라 부르는 여초 커뮤니티의 언어는, 조롱이 조롱을 낳은 또 다른 실례를 보여준다.
책은 250쪽 남짓으로 두껍지 않으나, 다 읽기가 만만치는 않다. 책 전반에 걸쳐 수많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와 대표 유저들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배경지식이 없는 한국의 독자로서는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하나하나 이름을 짚는 데 의의를 두기보다, 한국의 현실과 열심히 대조해 가며 읽는 것이 책을 적극적으로 독파하는 방법이다. 역자이자 『프로보커터』의 저자인 김내훈이 쓴 ‘옮긴이의 말’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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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말하며 사는 기자, 칼럼니스트. 1988년 대구 출생, 창원 출신. 한양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서울신문》에서 9년간 사회부, 문화부, 젠더연구소 기자로 일했다. 현재는 프리랜서 기자로 《오마이뉴스》에 〈이슬기의 뉴스 비틀기〉를 연재 중이다. 여성의 눈으로 세상의 행간을 읽는 일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