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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의 일상이 일러주는 말을 나는 받아 적었다. 시였다.”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 김용택 시인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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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를 다시 읽으면서 옛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라 같이 살던 그때를 생각하며 울먹였습니다. 서러워서가 아니고, 그리워서도 아니었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2024.06.20)


자연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한국 서정시의 한 축을 담당해온 김용택 시인, 특유의 친근한 언어로 등단 이후 42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아온 시인이기도 하다.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시 「섬진강」 연작을 썼고, 변화하는 농촌공동체와 도도하게 흐르는 섬진강의 강인한 이미지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후 ‘섬진강 시인’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그는 시집과 산문집, 동시집을 꾸준히 펴내며 독보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김용택 문학의 바탕에는 항상 섬진강과 고향 마을이 자리했으며 시인 역시 그 사실을 늘 잊지 않았다. 시인은 모두가 가난했지만 함께 일하고 어울려 놀았던 ‘그때’의 마을 사람들을 기억한다. 이에 고향과 사람들에 대한 시를 묶고, 마르지 않는 영감으로 써 내려간 신작시들을 모아 새로운 시집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을 펴냈다.




이번 시집에서는 마을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게 묻어납니다. 시집에 실릴 시들을 고르면서 가장 염두에 두신 점은 무엇인가요?

어느 날 오래된 유에스비를 검색하다가 우리 마을 사람들 이야기와 마을 이야기를 써놓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어? 이런 시들이 있었네, 놀랐습니다. 찾은 시들로 한 권의 시집에 모자라 이곳저곳을 뒤져 발표되지 않은 마을 시들을 모았습니다. 한 권의 시집이 되었지요. 시집을 만들 때는 잘 몰랐었는데, 막상 시집이 출간되어 내 손에 도착했을 때, 나는 놀랐습니다. 놀랍게도 어느 한 옛 마을이 한 권의 시집 속에 고스란히 들어와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마을이 나타났다!’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마을 사람들은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놀았습니다. 그 마을은 사람을 섬기는 ‘고귀한 가난’이 살아 있던 마을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시를 다시 읽으면서 옛사람들의 표정이 떠올라 같이 살던 그때를 생각하며 울먹였습니다. 서러워서가 아니고, 그리워서도 아니었고,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입니다. 그동안 써왔던 시와 글, 그리고 이 시집으로 나는 우리가 살았던 한 마을을 완성하였다는 어떤 안도감을 얻었습니다. 밝은 햇살과 고운 바람이 가득하였던 그 어떤 마을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받아 적었다. 시였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삶 속에서 문학을 포착하는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여기 모아놓은 시들은 시를 억지로 이해하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마을 사람들이 그날그날 살아가는 어떤 일 중의 어떤 한 가지이고, 하루하루 마을에서 살아가는 어떤 마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시를 쓰려고 애쓰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그들의 몸짓을, 그들이 하는 일을, 그냥 본 그대로, 있는 그대로 받아 적었습니다. 내 말이 아니고 자연이 하는 말, 일하는 사람들의 몸짓과 그 이들의 말을 지금도 나는 받아 적습니다.

지금도 나는 시를 쓰며 힘들거나 괴롭지 않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자연이 날마다 새로운 말을 해줍니다. 나는 그 말을 받아 적으니까요. 즐겁고 재미있고 슬프고 또 좋습니다. 자연은 매 순간 우리에게 수많은 말을 해줍니다.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갑니까. 그 말은 삶 속에서 나온 말들입니다. 시는 삶의 이야기지요. 마을의 구름과 산과 나무들과 바람과 비와 눈과 작은 새들과 농부들의 움직이는 몸짓은 내게 막히지 않는 영감을 줍니다. 마을의 모든 것이 다 내 책입니다. 나의 공부는 마을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을로 끊임없이 돌아와 마을에 닿는 것이었습니다.

시집 제목인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은 마지막에 실린 글의 제목이기도 한데요. 안타까움과 더불어 사랑이 느껴집니다. 제목의 의미를 좀 더 알려주세요.

가난하다고 잘못 산 것은 아닙니다. 그때는 가난을 무시하지 않았고, 외면하지 않고 남몰래 돌보았습니다.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남의 일 같지 않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사람이 마음을 곱게 써야 한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모두 ‘사람’을 섬기고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배가 고팠지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편입니다. 이 풍요로운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때처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나와 이웃을 생각하는 착하고 선한 인정이 넘치는 세상이었으면, 얼마나 지금이 좋을까, 하는 말일 것입니다. 어른들이 이따금 옛이야기를 하다가 ‘그때가 좋았지’ 하는 말을 합니다. 그때란 다름 아닌. 울타리 넘어 이웃으로 새로 만든 음식을 넘겨주고 받을 때였을 것입니다.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서 살고 계시고, 평생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가 정년퇴임하셨어요. 섬진강 진메 마을에서 일생을 보내신 선생님은 고향에 대한 감정도 특별할 것 같습니다. 어떠신가요?

죄송한 말 같은데 나는 고향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합니다. 고향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에 나는 그곳을 나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디서 사는가는 중요하지만, 제게는 그것이 나의 삶을 잘못 살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디서 살든 나는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운이 좋아서 선생이 되어 시골에서 안정된 생활을 하며 살고, 또 글을 읽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는, 되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이고 인생에 계획을 세워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데, 어떤 분들이 내 책을 사주고 나를 좋아해줍니다. 그러한 일들이 나를 놀라게 합니다. 나는 세상을 바꿀 만한 글을 쓰거나, 그럴 힘이 없습니다.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그런데 저를 좋아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잘 사는 것은 다 여러분들의 과분한 사랑 덕이지요.

시집에는 직접 찍은 풍경 사진들도 실려 있어요. 언제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나요? 선생님께서 주로 찍고 싶어 하시는 사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진을 찍으려고 노력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내가 사는 곳이 강과 산이 있어서, 봄여름가을겨울 풍경이 아름답지요. 늘 강가를 돌아다니며 사는데, 그 순간들이 아까워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저는 이것을 찍어야겠다. 저것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나는 자연과 삶의 경이를 담지요. 어떤 계절에는 거미집을 몇 날 며칠 찍고, 거미집을 찍다가 보면 작은 벌레들을 찍습니다. 그러면 그 작은 벌레들을 봄 내내 찍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작은 풀꽃들, 휘어진 풀잎들, 아침노을과 저녁노을, 초승달과 그믐달, 바위들, 달빛, 비바람과 눈보라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진은 딱 그때, 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음은 없지요. 요즘은 꾀꼬리와 박새와 할미새 들이 새끼들을 데리고 나는 연습을 하고, 참새들이 새끼들과 장난하며 놉니다. 박새가 전봇대에 집을 짓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 이끼를 따서 물고 가지요. 그런 것들을 찍지요. 사진이 예술이 되어 벽에 걸린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예술적인 노력이 필요하지요. 수천 장의 내 사진 중에 열 장만 벽에 걸 수 있다면 그것은 성공이겠지요. 제 사진은 아직 한 장도 벽에 걸어두고 오래 볼 사진이 없습니다. 내 사진은 마침 우리 마을 풍경이어서 시와 같이 모았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이 시집이 나온 후 괴로운 마음이 없고 무척 좋았다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좋으셨는지요?

정말 좋았습니다. 시집을 내고 나면 늘 자괴감에 시달립니다. 부끄럽고 죄송한데 또 그런 잘못을 저지르고는 하지요. 시집을 낼 때는 이 시집을 출판하고 싶었는데, 막상 시집을 내놓고 나면 또 괴롭지요. 그래서 시인들이 또 시를 쓰지 않을까, 하는 생각합니다.

이번 시집은 의외였습니다. 놀랐습니다. 시를 잘 썼다는, 좋은 시집이라는 생각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내가 선물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시집을 생각하면 어쩐지 내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 같아 좋습니다. 세상과 대결하지도 않았고 세상을 그 어떤 것도 비웃지도 탓하지도 않았고, 어설프게 누구를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았고, 세상이 불행하다느니 행복하다느니, 이래봐라 저래봐라 하는 설익은 훈계나 객기도, 원망이나 투정이나 아첨이나 비굴함도 없어 보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불편함도 주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의 삶보다 우위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 누구의 삶과 견줄 삶을 살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살다 죽고 그때도 바람은 불고 나뭇가지들은 저녁노을로 시를 쓸 텐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사랑하게 될까요.’ 제 다른 시집 시의 한 구절입니다.

마지막으로 시집을 읽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그냥 읽으시면 됩니다

그리고 읽으시면서 우리들이 두고 온 어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런 마을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 마을로 돌아가자는 말은 아닙니다.

햇살이 곱고 맑은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대는 그런 날들이 많은, 일하면서 웃어대는 웃음소리가 마을에 가득했던 마을이 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시면서 집 앞에 있는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며, 저렇게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데 우리가 어찌 이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언제 또 사랑할까, 하는 생각을 한번 해보았으면 합니다. 한번 그래보게요. 나는 여러분을 우리가 두고 온 저기 저 어떤 작은 마을로 잠시 초대하고 싶습니다. 사람의 마을입니다. 마을 앞에는 사시사철 강물이 흐르거든요. 달이 떠요. 달을 같이 바라보게요. 달빛이 부서지는 강물에서 우리들의 옛사랑을 건져보게요.



*김용택

1948년 전라북도 임실에서 태어났다. 순창농고를 졸업하고 임실 덕치초등학교 교사가 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썼더니,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다. 1982년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의 글 속에는 언제나 아이들과 자연이 등장하고 있으며 어김없이 그들은 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년퇴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풍요로운 자연 속에서 시골 마을과 자연을 소재로 소박한 감동이 묻어나는 시와 산문들을 쓰고 있다. 윤동주문학대상,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섬진강』, 『맑은 날』, 『꽃산 가는 길』, 『강 같은 세월』, 『그 여자네 집』, 『나무』, 『키스를 원하지 않는 입술』, 『울고 들어온 너에게』 등이 있고, 『김용택의 섬진강 이야기』(전8권), 『심심한 날의 오후 다섯 시』,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면, 좋겠어요』 등 산문집 다수와 부부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집 『내 곁에 모로 누운 사람』이 있다. 그 외 『콩, 너는 죽었다』 등 여러 동시집과 시 모음집 『시가 내게로 왔다』(전5권),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그림책 『할머니 집에 가는 길』, 『나는 애벌레랑 잤습니다』, 『사랑』 등 많은 저서가 있다.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평생 살았으면, 했는데 용케 그렇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과분하게 사랑받았다고 생각하여 고맙고 부끄럽고, 또 잘 살려고 애쓴다.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
그때가 배고프지 않은 지금이었으면
김용택 저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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