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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사람들 속에 다글거리는 걸 꺼내는 게 소설가의 역할” (G. 김이설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9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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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현장에 있는 작가, 계속 쓸 수 있는 작가이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쓰신 김이설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4.06.07)


강릉에 가자고 한 건 난주였다. 매년 가을만 되면 나오는 말이었다. 어느 해는 설악산이었다가, 어느 해는 제주도, 어느 해는 서울 복판의 호캉스였다가, 남해이기도 했고, 군산이기도 했던 여행지였지만 한 번도 이뤄진 적이 없었다. 20여 년 동안 셋 다 같이 여행 한번 가자는 말만 할 뿐 정말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난주와 정은이 차례대로 결혼과 출산, 육아에 전념하는 시기가 있었고, 셋이 제 각각 다른 도시에 사는 탓도 있었다. 그래도 가을만 되면 누군가는 꼭 여행 가자는 말을 꺼냈다. 올해는 난주였다. 

강릉 어때? 

가을 강릉 좋지, 라고 말한 건 미경이었다. 미경은 혼자 노모를 모시고 있었다. 연년생 언니는 연을 끊은 지 오래였다. 사정을 다 아는데, 그래서 못 갈 것이 뻔한데도 난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떠들었다. 

그래? 그럼 올해는 강릉으로 고고. 

마치 매년 진짜 여행이라도 다녔던 것처럼 말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이설 작가님의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마흔아홉 살의 세 친구, 난주와 정은, 그리고 미경은 미루고 미루던 셋만의 여행을 드디어, 떠나게 됩니다. 가을의 강릉에서, 세 사람은 먹고, 마시고, 떠들며 3박 4일의 시간을 보내는데요. 마음껏 웃으면서 방황하고 뜨거웠던 우리의 스무 살 시절을 추억하면서도 서로가 어느덧 중년이 되어 저마다의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장편소설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를 쓰신 김이설 작가님을 모시고,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김이설 편

오은: 작가님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항상 원고 쓰는 현장이에요. 원고를 쓴 흔적, 원고를 쓰기 직전의 마음 가짐 같은 것이 드러나는 피드가 많거든요. 외부인으로서 바라보면 작가란 매일 이렇게 쓰는 사람들이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 될 텐데요. 매일의 일기 같기도 하고요. 일종의 업무 일지를 쓰시는 느낌도 받았어요. 어떤 마음으로 이 기록을 이어 가시는지 궁금했습니다.

김이설: 말씀하신 것처럼 작업 일지이기도 하고, 일기이기도 해요. 또 생존 신고서이기도 한데요. 작가는 오늘도 쓰는 사람이라는 신념의 표현이기도 해요. 사실 이 기록을 시작한 이유가 있어요. 제가 글을 못 쓰던 시절이 2-3년 있었는데요. 그 시절을 겪은 뒤 다시 쓰게 됐을 때 쓰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지 알게 됐거든요. 그에 대한 기념으로 시작했던 일인데 이렇게 많이 쌓이게 됐어요. 한편으로는, 매일 조금씩이라도 쓰는 일이 소설이 완성되는 일이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작가의 하루 시작을 기록하는 것으로 그런 다짐을 하기도 해요.


오은: 김이설 작가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소설집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 『오늘처럼 고요히』 『누구도 울지 않는 밤』, 연작소설집 『잃어버린 이름에게』, 경장편소설 『나쁜 피』 『환영』 『선화』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을 펴냈다. 제1회 황순원신진문학상, 제3회 젊은작가상, 제9회 김현문학패를 수상했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웃음) 초등학교 고학년 때는 방학 중에만 100여 권의 책을 읽었고, 중학교 시절엔 범우사 문고를, 입시 공부에 전념해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엔 소설책을 끼고 살았다고 합니다. 확실히 읽는 사람이 결국 쓰는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언제 처음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그 여정이 또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도 같거든요.

김이설: 소설이라는 장르의 길을 가고 싶다고 결정했던 건 20살 겨울이었고요. 고등학교 때는 막연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자든 영화 평론가든 작사가든,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갖고 있다가 20살이 돼서 제가 운문 쪽 사람은 아니라는 걸 확신했고, 그러고 나서야 소설을 써야 되는 사람이겠다고 생각했죠.

그 동기는, 안에서 끌어오는 어떤 다글다글한 것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다글다글한 것들을 꺼내는 방법에 있어, 시는 제 능력이 안 됐고요. 소설로는 해볼 수 있겠다 싶은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소설을 쓰기 시작을 했어요. 처음 소설 쓴 게 스무 살 겨울이었고요.


오은: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가 어떤 책인지 시인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김이설: 스무 살 적 친구들이 25년 만에 함께 강릉으로 3박 4일 여행을 떠나는데요. 주인공인 난주, 정은, 미경이라는 세 친구가 중년 여성들의 인생과 비밀, 나이듦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지에서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오은: 여러분, 작가님이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을 하시지만 소설은 학창 시절에 우리가 서로에게 느꼈던 감정과 오해, 그때의 상처들을 드러내고요. 위로 받고, 다음으로 나아가자며 연대하는 자매애가 많이 느껴지는 책이기도 합니다.

표지를 보면 거위가 옹기종기 모여 있잖아요. 처음 봤을 때는 오리라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나중에 알고 보니 거위라고 하더라고요. 이 거위가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김이설: 출판사를 통해서 표지 디자인을 하신 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거위가 우악스럽잖아요. 또 거칠고요. 우리에게 있는 거위의 이미지가 의인화되었을 때는 무언가에 참견도 많이 하고, 쫓기기도 하고, 그래서 미움 받는 식이죠. 말하자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사정을 잘 알 수 없는 동물의 이미지가 있는데요. 그것이 50대 중년 여성들, 아줌마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이미지와 흡사한 것 같아요. 디자이너 분이 거위와 그런 여성들이 시끌시끌하고, 그래서 천대받는 이미지가 닮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작업하셨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듣고 보니까 표지에 마음이 훅 가더라고요.

오은: 소설의 원제가 ‘강릉에 가자’였다고 해요. 저는 그 제목도 너무 좋거든요. 직접적이라 강릉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고 인식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아마도 강릉에 한 번쯤 가본 사람이라면 그 도시에 품고 있는 각기 다른 감정들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작가님께 강릉이란 어떤 도시인지도 궁금했어요.

김이설: 경춘선 라인의 끝이 강원도의 동해 바다잖아요. 그러니까 청춘과 맞물려 있는 공간이기도 할 거고요. 특히나 강릉은 제 경우, 처음으로 부모님을 속이고 남자친구와 여행을 갔던 곳이기도 했어요.(웃음) MT나 가족 여행이 아닌, 독립적이고 자발적으로 떠났던 첫 여행지였다는 것이 저한테 인상적인 곳이에요.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가 25년 만에 친구들이 여행을 가는 이야기인데요. 실제로 제가 저와 아주 돈독한 친구들과 10여 년 만에 강릉으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어요. 그 기억들에 대해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래서 강릉으로 정했습니다.

오은: 세 친구들의 현재 나이가 49살입니다. 그리고 소설은 이들에게 분명히 과거에 있었던 20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중년 여성이 지금 갖고 있는 솔직한 마음도 곳곳에서 보여주거든요. 가령 이런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그들과 똑 닮아버린 자신이 새삼스럽게 혐오스러웠다. 쪽팔렸고 울적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시끄럽다며 외면했던 아줌마들의 쓸쓸한 목소리를 담고 싶었다”고 밝히시기도 했어요. 어떤 마음이었던 건가요?

김이설: 제가 1975년생이기도 해요. 40대 아줌마와 50대 아줌마의 차이가 있다면요. 50대 아줌마는 쓸모라는 영역에서 다소 밀려나는 느낌이에요. 40대 아줌마들은 한참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느낌이 있어서 비교적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에너지가 좀 더 있는 느낌이고요. 50대 아줌마들의 느낌은 잉여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요? 힘은 있는데 그 힘을 쓸 데가 없는 사람들 같은 느낌도 조금은 있어요. 그런데 분명히 그들에게도 20살이 있었고, 30살이 있었던 거잖아요.

늙었다고 말하기는 애매하고, 젊지도 않은 아주 이상한 시기가 50대라는 느낌이 들고요. 사회에서는 그 나이가 결정을 내리는 역할을 하는 나이인지 모르지만 사실 그런 위치나 역할이 주어지는 것은 소수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통의 50대 아줌마들은 누구도 잘 안 끼워주잖아요. 그런 애매하고 모호한 느낌이 있어요. 목소리는 큰데 그 목소리를 아무도 안 들어주니까 뒤돌아보면 쓸쓸한 거죠.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김이설: 정은정 작가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말』을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한티재의 출판사에서 나왔고요. 2021년도에 출간된 책입니다. 『대한민국 치킨전』이라는 글을 쓴 작가고요.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밥과 노동, 우리 시대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어요. 말 그대로 농촌 사회학자인 정은정 씨가 먹거리와 우리의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추상적이지 않고 아주 생활에 가까이서 하고 있어요. 밥상 이야기, 교복 입고 다니는 자식 이야기 같은 얘기들이 담겨 있어서 굉장히 읽기가 수월하고요. 동시에 생각할 거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어려운 책이 아닌데도 깊게 읽을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 지점들이 많은 책이어서 많이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  


*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우리가 안도하는 사이
김이설 저
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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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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