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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X뮤지컬] 당신은 다윈 영의 편인가?

채널예스X더뮤지컬 합동 기획 ‘한국 문학과 창작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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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서 등장하는 여러 구절 중, 다윈 영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한 줄은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다. (2024.04.16)

독자들이 사랑하는 한국문학이 뮤지컬 무대 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됩니다. 문학성과 재미를 겸비한 뮤지컬의 세계에서 독자와 관객이 교감하며 한층 더 풍부해질 이야기. 채널예스와 더뮤지컬이 함께 들여다 보았습니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 포스터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나의 국가를 상위 1지구에서부터 하위 9지구라는 세분화된 계급으로 나눈 뒤, 1지구에서 살아가고 있는 다윈 영과 그의 가족 및 주변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이 이야기 안에서 다윈은 최고의 엘리트 학교인 프라임스쿨에 재학 중이며 누구보다 부유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문교부 장관인 아버지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다윈은 이 사실을 숨기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한편에서는 다윈의 친구, 루미 헌터라는 소녀가 그들이 숨기려는 진실이 무엇인지, 애초에 ‘그들’이 누구인지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불의와 부정으로 가득 찬 어른의 세계와 마주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루미의 추리에는 경찰 발표엔 없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살인은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행위이다. (중략) 그 사이엔 필연적으로 그들을 연결하는 이야기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 『다윈 영의 악의 기원』, 377쪽


다윈 영은 오래전 벌어진 살인사건을 파헤치려 드는 친구 루미 헌터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하려 살을 붙여나간다. 똑똑하게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애쓰지만, 그리고 일견 논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사실 논리적 사고의 결과물이 아니라 애정을 기반으로 한 믿음의 형태에 가깝다. 사실 지금 다윈은 루미에 대한 이성애적 감정을 느끼면서 루미가 이끄는 과감한 일탈 행위에 가담하는 중이다. 자신의 일상을 과격하게 흔드는 흥미로운 일들이 다가오는 가운데, 다윈은 속수무책으로 휩쓸린다. 이 모습은 마치 10대 아이의 수줍고 서툰 감정의 파도 같아 내심 귀엽기도 하다.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우리가 다윈이라는 아이의 편임을 자신할 때 내세울 수 있는 여러 근거를 제시한다. 뮤지컬에서는 그러한 지점들이 더욱 생동감 있게 구현된다. 날카로운 문장들로 직조돼 있던 세상이 무대 위 세상으로 옮겨지면서, 매우 명랑하고 현명한 면모를 지닌 다윈은 답답한 프라임스쿨 내에서 누구보다 반짝인다. 하지만 다윈이 반짝이면 반짝일수록, 우리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힌다. 어느새 다윈은 혼란과 불안, 잔혹함 속에서 끝끝내 자신과 가족의 안위를 관철하는 강하고 잔인한 존재가 되어있다. 할아버지 러너 영과 아버지 니스 영이 저질렀던 잘못을 인지하게 되는 순간에 다윈이 겪는 혼란의 감정은 정의를 향하는 대신 같은 불의를 향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두 번은 마주했던 그 질문, “너는 네 가족이/가장 친한 친구가 살인을 저지르고 너에게 온다면 어떻게 할 거야? 경찰에 신고할 거야, 아니면 모른 척 할 거야?”에 대한 대답을 눈 깜짝할 새에 뱉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다윈의 선택은 사실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는 행위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하기 어려워진 자신의 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자가 있다. 그런 자를 불쾌한 종자로 간주해 단숨에 처단해버리는데, 이는 깊은 곳에서 자라난 악을 마주한 아이의 본능적 방어 기제가 도리어 극단으로 치달은 공격에 가깝다. 이 모습은 전혀 귀엽지 않다.


ⓒ 서울예술단


뮤지컬에서 등장하는 여러 구절 중, 다윈 영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한 줄은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다. 일곱 번째 넘버인 ‘두렵지 않다’에서 어린 러너는 “역사가 나를 원한다 했잖아 / 난 뜨겁게 울었어 / 그렇게 속았어”라고 분노한다. 그 분노로 인해 범죄를 저지른 소년은 누군가의 호의로 인해 무사히 자라서 아이를 낳는다. 그렇게 태어난 니스는 안온함 속에서 아버지의 과거를 발견하고 분노하지만, 그 분노의 결과는 아버지에 대한 추궁과 원망이 아니라 “네 가족이 살인을 저지르고 너에게 온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진 이를 처단하는 선택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윈의 이야기에서 또 한 차례 강렬한 처단이 이루어진 뒤, 다윈과 니스가 “나의 과거는 끝났다 / 다시 떠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것은 본의 아니게 악의 수호자가 돼 버린 자신들을 기꺼이 변명하는 말이며, “나는 나의 세계와 결별한다”며 악을 품어버린 다윈이 교묘하게 자신의 악랄함을 ‘성장’이라는 단어로 포장하는 순간이다.

학교에서 주입한 불평등의 논리에 손을 들어 반대 의견을 피력하고, 선의의 탈을 쓴 불의와 악의에 대적하던 다윈과 같은 아이들은 시대 속에 늘 존재했다. 숫자가 많지 않아도, 그런 아이들이 존재했다는 것만큼은 명확하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조차도 책상에서 일어나 학교 밖을 나왔을 때, 도덕과 윤리의 한계를 시험하는 순간들을 다윈처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이 끊임없이 실망하고 실패한다는 뜻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조차 그 순간들이 끝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궁극적으로 실망과 실패의 순간들을 거쳐 세상의 도덕과 나만의 윤리를 확립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것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다는 뜻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그리고 많은 아이가 그 단계를 마주할 만큼 올곧게 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단계에서 다윈은 도덕과 윤리, 정의, 진실 등의 단어를 모두 부정했고, 고로 이 아이의 성장은 사실상 인간의 퇴보에 불과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뮤지컬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은 그래서 더 예리한 작품이다. 다윈 영의 가족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캐릭터가 오만하거나, 균열을 즐기거나, 보수적이거나, 약육강식 논리의 옹호자인 상황에서,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는 다윈 가족이 가장 잔혹한 범죄의 주체가 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뮤지컬은 다윈 영이 아닌 루미 헌터라는 캐릭터에게 미래를 기댄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기성세대 여성들의 존재를 거의 지우다시피 한 이 작품에서, 루미라는 소녀는 엄마가 아니라 스스로의 삶에 적극적으로 의미를 부여한 삶을 선택한 인물이다. 즉, 완전히 트렌드를 반영한 인물이다. 원작에서는 루미 또한 오만하며 비뚤어진 구석이 많은 인물이지만, 뮤지컬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제거하고 루미를 정의를 향한 최후의 구원자로 설정한다. 다윈이 죽인 레오 마샬의 장례식에서 러너, 니스, 다윈이 백합 한 송이를 서로 이어받으며 악의 전이를 말할 때, 자신이 좇던 진실을 끝까지 파헤치겠다고 다짐하는 루미로 끝을 맺는 이 작품은 한 번쯤은 ‘정의로운 나’를 꿈꿔봤을 이들에게 여전히 그 마음이 유효한지 묻고 있다. 매사 정의로울 수는 없어도, 강건한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냐고. 이는 다윈의 시각에서 전개되는 이 이야기에서 그를 애처롭게 여기는 함정에 빠지지 않았는지 묻는 것이기도 하다. 똑똑한 논리로만 해결되지 않는 세상에서, 이토록 우리는 종종 난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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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박희아

전 웹진 IZE 취재팀장.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전문 저널리스트로, 각종 매거진, 네이버 VIBE, NOW 등에서 글을 쓰고 있다. KBS, TBS 등에서 한국의 음악, 드라마, 예능에 관해 설명하는 일을 했고, 아이돌 전문 기자로서 <아이돌 메이커(IDOL MAKER)>(미디어샘, 2017), <아이돌의 작업실(IDOL'S STUDIO)>(위즈덤하우스, 2018), <내 얼굴을 만져도 괜찮은 너에게 - 방용국 포토 에세이>(위즈덤하우스, 2019), <우리의 무대는 계속될 거야>(우주북스, 2020) 등을 출간했다. 사람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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