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00원으로 소장하는 세계 문학, 열린책들 모노에디션
독자들에게 합리적 가격,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고급 문학으로 인식되었으면 합니다.
글ㆍ사진 이참슬
202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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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원이 언제부터 이렇게 소박한 금액이었을까 자주 되새기는 고물가 시대, 8800원으로 소장할 수 있는 세계 문학 시리즈가 나왔다. 열린책들 모노 에디션은 인기 세계 문학 작품을 모던한 흑백 디자인에 무선 제본으로 담아 독자의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기존 발행된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이 양장본에 화려한 디자인을 선보였다면, 모노에디션은 그와는 반대되는 간결함으로 정수를 담았다. 모노에디션을 기획한 열린책들 홍유진 이사와 디자인을 맡은 함지은 팀장을 서면으로 만나 기획 과정의 전반적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1만 원이 채 되지 않는 가격의 세계문학 시리즈가 출간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홍유진: 모노에디션 기획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제가 미메시스를 맡고 있을 당시, 그래픽노블이 미메시스의 주요 출간 분야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꽤 탄탄한 팬층이 있어 판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양장에 본문도 올 컬러라 만화책치고는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었는데 늘 독자들로부터 가격이 부담스럽다는 리뷰를 받고 있었죠. ‘제작 사양을 낮추고 컬러를 흑백으로 인쇄하면 단가를 많이 낮출 수 있지 않을까?’ ‘가격이 낮아지면 독자층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래픽노블의 보급판을 준비했어요. 가제본까지 만들었지만, 저자의 승인을 받지 못했고, 그림을 손댈 수 없었기 때문에 비율대로 판형만 줄이니 말풍선에 대사가 다 들어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포기했습니다. 아쉬운 기획이었죠.


세계문학 시장은 열린책들, 민음사, 문학동네 삼파전이라고 봐야 하는데 경쟁이 꽤 치열해 가격을 쉽게 올리지 못합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만 양장이라 저희 제작단가가 제일 높고요. 그만큼 수익성이 좋지 못한 게 단점이었습니다. 출간 권수는 300권에 가까워지고 있어 전체적인 디자인을 손보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어요. 그래서 예전에 써보지 못해 아쉬웠던 그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가벼운 종이, 검은색 잉크를 사용해 최대한 가격을 내리셨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제작비 절감 과정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홍유진: 처음부터 무선 제본, 종이는 가장 보편적이고 얇은 것으로, 코팅, 박 등 후가공은 없게, 가름끈, 책날개 등 부속물도 배제하자는 것이 기본 디자인 지침이었습니다. 컬러는 꼭 검은색을 고집했던 건 아니에요. CMYK 중 하나를 써야 한다고 생각은 했죠. 검은색 잉크로 결정이 된 건 에디션 이름이 ‘모노’로 결정이 되면서였습니다. (에디션 제목 회의만 10번은 했을 거예요. 에디션 이름은 최소 50개 정도는 나왔을 겁니다.) 본문과 표지가 단일한 색으로 통일이 되었으면 했거든요. 간결하고 모던하게요. 디자인이 밋밋하니 가름끈에 에디션 이름을 인쇄해서 넣을까, 표지에 먹박을 찍을까, 표지의 손상을 우려한 마케팅 본부의 요청으로 표지를 코팅할까 등 여러 유혹(?)이 있었지만 기획의 본령을 지키기 위해 다 배제하고 가기로 했습니다.



가볍고 아름답다, 소장하고 싶다는 독자들의 반응이 많아요. 제목과 저자명이 크게 고딕체로 쓰인 앞표지, 크게 그림이 돋보이는 뒤표지를 보면 모던한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디자인에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함지은: 간결한 타이포그래피와 작품을 상징하는 모노톤의 이미지만으로 구성하여 ‘모두 덜어낸다’는 콘셉트를 강조했습니다. 독자에게 가볍고 부담 없는 독서 경험을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책을 모두 모아두었을 때 하나의 컬렉션처럼 느껴질 수 있도록 만들었어요. 표지에 라미네이팅을 하지 않아 평소보다 조금 더 손때가 묻을 수 있지만 종이의 사각거리고 포근한 질감이 손끝에 그대로 느껴져 자연스럽고, 본문에는 평량이 가벼운 종이를 써 부드럽게 넘어갑니다. 실물을 받아 들고 앞뒤로 살피며 쓸어보고 넘겨보면 더욱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에요. 기존의 열린책들 세계문학판이 오래도록 두고 볼 수 있게 견고하다면, 모노 에디션은 간결하고 세련되게 만들어 독자의 필요와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4월 3일까지 5주 동안 총 열 권의 작품이 모노에디션으로 나왔습니다. 작품 선정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앞으로 추가 출간 계획이 있으신지요?

홍유진: 선정 기준은 오히려 명확하고 쉬웠습니다. 시리즈가 잘 안착하기 위해서는 처음 선보일 책이 잘 팔려야 합니다. 손해가 나지 않아야 꾸준하게 시리즈를 이어갈 수 있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원래도 잘 팔리는 책을 내야겠죠. 매년 꾸준하게 잘 팔리는 책을 판매량 순으로 세웁니다. 저작권이 소멸하였거나, 번역 저작권이 출판사에 있는 책을 다시 선별합니다. 저작권료를 지불하게 되면 8800원에 팔 수가 없기 때문에요. 그리고 최대한 언어권이 겹치지 않게 선정했습니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올해 하반기에 3종을 더 출간할 계획입니다. 아직 작품 선정은 마무리되지 않았어요.


소장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양장본을 떠올리게 되는데 모노에디션은 저렴한 가격으로도 소장 가치 있는 책이라는 경쟁력이 생길 것 같습니다. 독자들에게 어떤 시리즈로 인식되면 좋을까요?

홍유진: 열린책들은 ‘번역과 편집이 믿을 만하고 디자인이 좋은 출판사’로 브랜딩이 잘 된 출판사라고 생각합니다. 세계문학 시리즈는 번역이 핵심인 분야고요. 모노에디션은 열린책들의 장점과 세계문학의 핵심을 잘 살린 시리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열린책들이 초창기부터 고수해 온 ‘고급 문학 읽기의 대중화’를 이어가는 대표적인 시리즈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독자들에게도 합리적 가격,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고급 문학으로 인식되었으면 합니다.


‘읽기’ 자체에 초점을 맞춘 기획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서 인구가 감소하는 고물가 시대에 책을 사서 읽는 것은 어떤 의미라고 생각하시나요?

홍유진: 책이 OTT와 경쟁하는 시대가 된 지 오래입니다. 한 달에 2만 원으로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에서 수만 개의 영상을 볼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한 권에 2만 원인 책은 비싸다는 느낌이 들겠죠. 독자가 오락의 하나로 책을 사는 시대는 갔다고 생각해요. 작가의 팬이라서, 수집하기 위해서, 디자인이 좋아서, 고전이라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세분된 이유와 목적으로 책을 사게 됩니다. 그만큼 출판사에서는 다양한 방식과 형태의 기획을 내놔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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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