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속을 헤매던 여성의 ‘셀프 구원’ 경험담
『부끄럽지 않은 우울증 극복기』 전이레 작가 서면 인터뷰
이 책을 추천하는 대상은 절망 가운데서 빛을 더듬거리는 사람들입니다. (2024.02.05)
『부끄럽지 않은 우울증 극복기』는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띠는 책이다. 전이레 작가의 처절한 우울증 경험담을 드러낸 자전적 에세이이자, 확실한 우울증 극복법을 제시하는 방법서이다.
먼저, 작가님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작가 전이레입니다. 어릴 적부터 공부만 하다가 대학생 때부터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그 계기는 가정폭력으로 인한 우울증이었습니다. 중증으로 접어든 건 대학교 2-3학년 무렵이었습니다. 이때는 정말 ‘병적이다’ 싶은 상황으로 접어들어 두려웠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작가가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 것도 우울증을 겪으면서였습니다. 우울감을 극복하기 위해 살아내는 과정에서 글로 써보면 좋을 만한 생각들이 모였습니다. 자꾸만 꿈 주위를 기웃대니까, 필요한 방법 같은 것들이 차곡차곡 모였다고나 할까요. 그렇게 생명공학도 출신의 이공계생에서 인문계 직업으로 자연스럽게 넘어온 사람, 이레입니다.
『부끄럽지 않은 우울증 극복기』는 어떤 책인가요?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나요?
‘이래도 되나?’ 싶은 솔직한 일화와 ‘이렇게까지?’ 싶은 구체적인 극복 방안을 담은 에세이입니다. 우울증 극복에 대한 여러 가지 담론을 다루어 보았습니다. 우울증을 겪는 누구나가 했을 법한 생각을 다루고, 누구에게나 효과적인 방법을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또, 이 책의 재미 포인트가 있는데요. 바로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처럼 시간 순으로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되는 점입니다.
이 책을 추천하는 대상은 절망 가운데서 빛을 더듬거리는 사람들입니다. 너무 오래 어둠 속에 있어서 빛이 무엇이었는지, 삶이란 무엇인지, 뭘 위해 사는지 전혀 모르는 분들, 돌파구를 찾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합니다. 앞날이 기대되지 않는 분들께도 이 책을 권하고 싶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한탄하던 마음이 주체적인 실천과 선택을 통해 ‘오늘은 어떨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탈바꿈하기를 바랍니다. 부디, 꼭! 도움이 된다면 좋겠습니다.
우울증 완치에 이르기까지 작가님이 행한 방법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그렇게 노력하던 때의 감정과 생각도 궁금해요.
책에 제가 우울증 완치에 이르기까지 행했던 대부분의 방법을 담았는데요.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 건 하루를 시작할 때 휴대폰 대신 노트를 펼쳐 ‘모닝페이지’를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닝페이지에는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이나 행동의 순서를 적어내립니다. 하루를 비관하는 마음이 들 때는 좋은 하루를 보내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계획을 적어보기도 했습니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건 ‘안 되는 걸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중증 우울증일 때 오늘 할 일을 머릿속으로만 떠올리면 잘 정리가 되지 않더라고요. 직접 손글씨를 쓰며 의욕을 고취시켰습니다.
사실 노력하는 제 모습은 정말 처절했습니다. ‘죽도록 하기 싫었다’라고 표현하는 게 가장 적합하겠네요. 노력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괴로워서 차라리 우울증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마저 했습니다. 우울증이면 아무것도 안 하고 침대 위에서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 있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생각을 배제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신기한 건 한 두 달 정도 지나니까 행동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아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귀찮지만, 할 만한 일이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즐겁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서 살아가는 이유와 방법을 배운 것 같습니다.
대중을 상대로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생각이 작가님으로 하여금 이러한 이야기들을 꺼내 보이게 만들었나요?
피학적이었던 저의 과거 가정사를 드러낸 이유는, 저의 슬픔과 절망의 바닥이 타인의 바닥보다도 더 깊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정서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루트를 보여주기 위해 말입니다. 자랑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세상에 꺼내 보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결심을 했습니다.
사실 원고를 집필할 때는 대중에게 어두운 과거 이야기를 꺼내 보이는 데 대한 두려움이 들지 않았는데요. 예약 판매가 시작되니 두려움이 둥둥 떠올랐습니다. 내게 이런 과거가 있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면?(가감했느냐고 물을 수 있는데, 책에 담은 사연은 제가 겪은 일의 일부입니다.) 타인이 내게 손가락질을 한다면? 나의 용기와 솔직함이 누군가에게 누가 된다면? 이런 생각들로 앞으로의 파장이 두려웠습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요. 이런 솔직한 마음을 남편에게 털어놓았더니, 남편이 대답하더라고요. 제가 이런 주제를 말하지 않으면 아직도 가정에서 곪아가는 사람들이나 중증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더욱 길을 헤매게 될 거라고요.
누군가는 비난하고, 누군가는 믿지 않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와 비슷한 일들을 겪은 사람들은 분명히 공명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이 꼭 필요한 분들께 가닿기 바랍니다.
남보다 내가 유독 불행하다고 느끼면 자기 연민이 커질 수도 있는데요. 글에서는 자기연민이 크게 느껴지지 않아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실제로 자기 연민의 마음이 적었나요?
사실 저는 중학생 때부터 자기 연민이 극심했습니다. 고등학교 때와 대학교 초반에 가장 심각해졌고요. 침대에서 자기 연민으로 눈물 흘리면서 2~3시간을 보낸 적도 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팠습니다. 내가 나를 불쌍히 여겨야 아무도 가엽게 여기지 않는 나를 위로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게 저의 아픔과 슬픔, 답답함을 풀 수 있는 방법이라고 잘못 판단했던 것입니다.
자기연민을 지속하다가 어느 시점부터 깨달았습니다. 자기 연민을 품는 잠깐의 시간은 위로가 될 수 있으나, 결국 나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어 같은 상황에 머물게 할 뿐이라는 것을 말이죠. 마찬가지로 우울증 심화의 지름길이자, 뇌를 혹사하는 과정이라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이후 우울증 극복을 마음 먹으면서 자기 연민을 멈추고자 했습니다. 자기 연민은 나에 대한 학대 행위일 뿐이라고, 매일 되새겼습니다. 이제 저는 누구보다 행복합니다. 과거는 힘들었을지언정 현재는 만족스럽습니다. 원하던 직업과 나만의 취미, 하루의 작은 성취들로 기뻐하며 살아갑니다.
지금은 원가정에서 나오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어 살고 계시죠. 요즘은 어떤 날들을 보내고 있나요?
작년에 남편과 혼인신고를 하고 함께 거주하고 있는데요. 새 가정을 꾸리면서 ‘가정의 순기능’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가 아닌, 그저 존재함으로써 받는 사랑입니다. 앞으로도 사랑이 많은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어요.
요즘은 직접 요리를 해서 매일 밥을 차려 먹고 있어요. 생각보다 제가 요리를 좋아하더라고요. 뜨개질도 종종 하고, 평일엔 조금 지루하더라도 제 일을 꾸준히 하려고 노력합니다. 평일이 지루한 건 주말이 즐겁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되었네요(웃음). 우울증이 심할 땐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모두 다 우울한 날들이었는데 말이죠.
물론 모든 것이 꿈동산처럼 행복하고 안락하지는 않아요. 마땅한 삶의 고통들도 겪고 있습니다. 아침 기상이 힘들고 때로는 상처받고 실수합니다.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해보자!’ 생각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책에서도 말했듯,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중증 우울증이든, 우울질의 성향이든 분명 어떻게든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늘 선택과 방법의 문제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능한 좋은 미래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아 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쪼록 잘 지내주세요! 능력을 계발하거나 가치 있는 사람이 되거나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는 것보다 우선순위로 두어야 할 것은 오늘 하루를 잘 지내는 일입니다. 될 수 있으면 춤을 추듯이 살아가자고 말하고 싶어요. 살아내는 하루가 쌓여 좋은 미래가 올 것을 믿습니다.
*전이레 원치 않는 공부를 강제로 하며 자란 분당 키즈. 결국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에 진학했으나 찬란한 대학 시절 심각한 우울증을 맞닥뜨린다. 이후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사는 대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선택하기로 마음먹는다. ‘진짜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우울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과는 완전히 다른, 새롭고 즐거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노력과 분투 끝에 우울증 완치라는 성과를 이뤘다. 살아가는 방법까지 배웠으니 우울증 수석 졸업자라고 자부한다. 대학교 졸업 후에는 살아내는 이야기와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또한 유튜브 채널 ‘전이레’에 우울증 극복을 위한 나름의 노하우를 공유하며 어두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들을 돕고 있다. 인스타그램 : @jeonire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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