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면서도 자욱한 문장들, 『거침없이 내성적인』
『거침없이 내성적인』 이자켓 시인 인터뷰
"단순하면서도 자욱한 문장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시 속의 일원이 되어버린다"는 심사평과 함께 등장한 이자켓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으로 시의 세계를 비틀지 않고 정면으로 직진한다. (2023.03.24)
2019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자켓의 첫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단순하면서도 자욱한 문장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시 속의 일원이 되어버린다"는 심사평과 함께 등장한 이자켓은 특유의 군더더기 없는 담백함으로 시의 세계를 비틀지 않고 정면으로 직진한다. 축구장, 영화관, 이발소와 같은 생활의 공간에서 불쑥 튀어나온 화자 역시 어떠한 설명도 덧붙이지 않고 자신이 하던 일을 이어가는 데만 집중한다. 그래서일까? 일상 언어로 이루어진 시 세계는 눈으로 따라 읽는 데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자꾸만 읽는 이를 긴장하게 만든다.
2019년 대산대학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첫 시집인데요. 그 남다른 소회가 궁금합니다. 이제 막 책이 나온 시점에서 어떤 기분으로 생활하고 계시나요?
책으로 묶은 원고를 오래 곁에 두었기 때문인지 담담한 기분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래도록 기다린 택배가 문 앞에 놓인 느낌이네요. 다만, 그 상자를 여전히 문 앞에 놓아둔 것 같고 안에 무엇이 담겨 있을지 그려지지 않기도 합니다.
『거침없이 내성적인』이라는 제목도 강렬하지만, 시집 뒤표지에 있는 삽화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어떤 의도인지 궁금합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책을 출간하게 되었을 때부터 앞면의 컷과 호응할 수 있는 뒤표지를 구상해왔습니다. 겉가죽이 진중하다면 이면은 엉성하고 유쾌한 것이어야 한다고 여겼어요. 시집을 묶는 일은 개별적인 시를 한 권으로 동작시키는 일이기도 하기에, 오직 이 책을 위한 설명서가 필요했어요.
활동명을 '이재킷'이 아닌 '이자켓'으로 했을 만큼 작가님은 시집 전반적으로 일상적으로 쓰이는 언어들이 투박하지만, 그 모양이 가지런하단 인상을 받았습니다. 시를 쓸 때 중요시하는 부분이라 봐도 될까요? 시를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점들이 궁금합니다.
시에 쓰인 언어가 투박하거나 가지런한지는 모르겠지만, 문장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짧은 답에 나머지 이야기까지 담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성급하게 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통념적으로 손쉽게 판단된 것을 오래 품고 고민해보며 쓰는 일도 그 과정 중 하나입니다.
시에서 물을 끓이고, 담배를 태우고 이런 일련의 과정들 역시 일상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요. 시인이 글을 쓰기 전에 어떤 루틴으로 움직이곤 하는지 궁금해요.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글을 쓰는 환경에서 빼놓지 않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사용하는 랩톱이나 노트가 있다면 쉽게 접할 수 있는 어떤 환경에서도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여서 그런 것 같습니다. 특정하게 무언가 자꾸 필요해진다면 시에 집중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음악을 좋아하는데 노래를 들으면 시에 몰입되지 않는 편이라 음악을 듣지 않고 이따금 나가 담배를 태우는 것이 꾸준히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외부적인 환경보다는 시를 쓰기 위해 행하는 습관이라면,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시간에 제가 그리려고 하는 세계를 자주 불러와 구체적으로 상상합니다. 쓰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빠르게 써 내려가기 때문에 그 전에 예열을 긴 시간 해두는 편입니다.
시집 해설을 쓴 이희우 평론가는 이자켓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정서로 "관계의 불안정함과 찰나성, 어긋남에서 비롯되는 어떤 동시대적 외로움"이라 했는데요. 실로 시집에서 화자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만남보단 이별이 연결보단 단절이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은 어떤 관계에서 힘을 얻고 또 잃곤 하는지 궁금합니다.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해서 만남이 잦은 편은 아니지만 마주하면 편하고 이완된 관계를 오래 이어가길 희망합니다. 물론 제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매번 그럴 수는 없고 이러한 분절과 분리 속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만남이 없다면 분절도 없기에 이 둘은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감각이 혼합되고 시간의 축적 속에서 다른 의미를 야기할 때 비추어지는 이미지나 정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분리'는 '이별'이기도 하나, '분류'와 같은 구분일 수 있고 이것은 자세히 보는 힘에서 비롯되지 않나 싶네요.
시집 제목 『거침없이 내성적인』은 이중적인 이미지를 담고 있는 동시에 또 우리가 사는 모양새가 하나의 모습만을 담을 수는 없단 인상도 주는데요. 시인이 살면서 가장 거침없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돌이켜보니 무모할 정도로 앞만 보았던 순간이요.
시간이 시기가 되어가는 동안 지지부진한 상태가 주위를 메우며 지배적인 인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전 반복되거나 변하지 않는 것을 애정해서 불만은 없습니다. 고루하게 보이는 것에 생기를 주는 것이 즐겁게 지내는 방법이라 여겨서 무모했던 적도 잘 없고요. 그렇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쓰고 있는 세계만 바라보며 머뭇거리지 않고 거침없으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자유'나 '거침없음'은 무책임하거나 무작정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아니라 말끔히 베어낸 단면처럼 충실한 것입니다.
『거침없이 내성적인』을 통해 이자켓이란 작가를 처음 만날 독자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시집을 읽는 자기만의 방법이 있다면 그 역시 공유 부탁드릴게요.
시집마다 독서하는 방식이 바뀌긴 하지만 목차의 순서대로 읽어나가는 편입니다. 한 편을 두 번 반복하여서 읽고 좋다면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합니다. 이후에는 생각날 때 곁에 두고 무작위로 페이지를 펼쳐 읽습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 작품으로 만나 기다려주신 분들과 이번 시집으로 새로이 마주하게 된 독자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우선 전하고 싶습니다. 읽는 시간만큼은 느슨하게 육체를 풀고 언어의 흐름을 그대로 느껴보시면 멋질 겁니다.
*이자켓 시인 이자켓은 2019년 대산대학문학상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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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는 극명해지고 그 쓸쓸한 거리를 걸을 테니까” 여기에는 관계의 변화, 대립, 이별, 갈등 해소가 없다 교훈이나 주장도 없다 단순하면서도 자욱한 문장들, 이자켓 첫 시집 출간 유별나지 않아도 괜찮다.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그냥 걷자. 거리가 길어서 오랜 시간 걸을 수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