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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자와 떠난 자의 우정 이야기, 『제사를 부탁해』

『제사를 부탁해』 박서련, 정영롱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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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부탁해』에는 다양한 이야기로 한국 소설 독자들을 사로잡은 박서련 소설가와 발군의 관찰력으로 하이퍼 리얼리즘 일상툰을 그리는 정영롱 만화가가 함께했다. 툭하면 '이거 소설로, 만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말하는 못 말리는 창작자의 마음을 가진 두 작가의 새로운 만남에 귀를 기울여보자! (2023.03.23)


소설가와 만화가가 함께 인물 혹은 세계관을 짜고, 이들이 등장하는 소설과 만화 두 이야기를 각각 쓰고 그리는 시리즈, <보이는 이야기>. 독자들에게 한 권으로 소설과 만화가 주는 재미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독서 경험을, 창작자들에게는 서로의 분야를 이해하고 협업하는 과정에서 시너지를 내는 창작 경험을 선사하고픈 기획 의도를 가진 시리즈다. 이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첫 번째 작품 『제사를 부탁해』에는 다양한 이야기로 한국 소설 독자들을 사로잡은 박서련 소설가와 발군의 관찰력으로 하이퍼 리얼리즘 일상툰을 그리는 정영롱 만화가가 함께했다. 툭하면 '이거 소설로, 만화로 만들면 재밌겠다'고 말하는 못 말리는 창작자의 마음을 가진 두 작가의 새로운 만남에 귀를 기울여보자!



소설과 만화의 만남, 낯선 프로젝트를 함께 하시며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서로 다른 분야가 한 책에 순서대로 실리니 서로의 분야가 의식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우리 책'이 완성되었는데요. 돌이켜봤을 때 공동 작업의 매력을 소개한다면 어떤 점이 있나요? 

정영롱 : 생각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한 것들이 툭툭 튀어나올 때, 그것들을 버무리는 회의 과정이 가장 재밌었습니다. 첫 회의 때 '아니, 회의가 이렇게 재밌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련 작가님이 날카로운 유머가 섞인 아이템들을 던져주시고, 함께 디테일을 추가하고, 편집자님께서 마지막으로 의견을 취합해 교통 정리를 해주실 때 집단 지성의 힘을 느끼며 늘 즐거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로의 분야를 열린 마음으로 마주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박서련 : 한마디로 외롭지 않다는 것? 작품 아이디어를 혼자서만 끙끙 앓으며 떠올릴 필요가 없었고, 기껏 떠올린 아이디어가 혹시 별로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활발한 피드백으로 극복할 수 있었어요. 단점 아닌 단점을 꼽자면, 너무나 짱짱한 작가님과 함께하는 작업이다보니 잘해야겠다는 긴장과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는 점, 제 파트가 앞에 배치되어 있는데 소설이 재미없어서 만화도 안 본다든지, 앞부분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 만화에 대해서도 깊이 있게 접근하지 못하는 등의 경우가 발생할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걱정도 실은 '더 잘하고 싶다', '우리 팀을 위해서 더 잘하고 싶다'라는 의욕에서 나온 것이어서, 공동 작업의 매력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제사를 부탁해』의 권수현은 고인의 취향과 입맛, 가족의 사정에 맞게끔 대신 차려주는 '제사 코디네이터'입니다. 박서련 작가님께서 이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해주셨는데, 이러한 이색직업의 단초가 된 무언가가 있나요?

박서련 : 맨 처음 '제사' 키워드를 던져준 건 김해인 편집자님이었습니다. 그리운 이의 생일상을 차리는 이야기인, 안윤 작가님의 단편 소설 「달밤」에서 단초를 얻어 가까운 사람의 제사상을 차리는 감정을 그려나가 보는 게 어떤지 아이디어를 주셨죠. 우리 책은 여성 소설가, 여성 만화가, 여성 편집자가 만드는 책이니 여성 서사로 나아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성 인물이 제사상을 차리는 이야기라고 했을 때 응당 '이런 이야기겠다'라고 어찌 보면 식상히 생각되는 것이 있잖아요. '제사'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설정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한 결과가 바로 '제사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이었어요. 캐릭터에게 직업적인 이유를 부여해주면 친인척이 아님에도 제사상을 차려야 할 개연성도 챙길 수 있고, 제사는 왜 모시는 걸까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도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죠.

반면, 박정서의 '거짓말쟁이 유령' 캐릭터는 정영롱 작가님께서 만들어주셨죠. 짧은 단편에서 '거짓말쟁이'라는 성격은 그 캐릭터의 성정을 보여주기 좋은 장치라 생각이 들어요. 거짓말쟁이라는 설정을 가져온 이유가 있다면요?

정영롱 :  제사상 코디네이터가 파악하기 힘든 인물 중 하나가 거짓말쟁이가 아닐까요. '제사'란 것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이 고인을 추념하며 서로의 기억을 나누고, 그 대상이 살아생전 좋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들을 포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는데, 고인이라는 사람이 가족에게 했던 말, 친구에게 했던 말, 지인에게 했던 말이 전부 다르다면, 그 과정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거슬러 올라가야 할까? 이런 점이 재밌을 것 같아 박정서 씨를 거짓말쟁이로 설정했지만, 사실 저도 정서 씨가 거짓말을 너무 남발해서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잘 모르겠어요. 거짓말쟁이의 말을 들을 때엔 그냥 믿고 싶은 만큼 믿으면 되는 것 같아요. 수현은 알면서도 믿어줄 것 같았고요.

타인의 죽음을 기리는 자리, 남에게 제사를 맡겨야 하는 사정이 있는 집안을 상상해보면 확실히 불편하기 그지없죠. 소설에 나온 것처럼 '마음이 닳고 닳아 없어'질 것인데 그래서일까, 수현은 매사 덤덤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 묘사된 수현의 속내는 또 다양한 결을 갖고 있어요. 수현의 마음을 쓸 때,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궁금합니다.

박서련 : '직업의식'이라는 건 어떤 걸까요? 노하우가 쌓여서 능숙한 태도와 타성에 젖어 늘 같은 방식을 반복하는 태도는 이따금 크게 구분되지 않는 것 같아요. 수현은 그 종이 한 장의 양면 같은 상태에 놓여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미묘한 정서와 더욱 미묘한 균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친구 정서의 제사상을 차리면서도 직업이라서, 정서 생전에 약속한 것이어서 차리는 거라고 본인도 모르게 스스로를 속이고 있던 수현이 자기의 진짜 마음을 알아차리는 부분이 독자님들께도 깊숙이 느껴지기를 바랐습니다.



반면, 거짓말쟁이 박정서는 다소 경박한 면도 있고 유쾌한 인물입니다. 정영롱 작가님이 가장 잘 쓸 법한 캐릭터죠. 하지만 '죽은 자'의 마음을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아무도 죽어본 적은 없으니, 그 마음을 독자들에게 그럴듯하게 공감시키는 것도 쉽지 않았을 거고요. 정서를 그릴 땐 어떤 것을 고민하고 중시했나요?

정영롱 :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그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정서의 독백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처음엔 살아있을 때부터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뒤로 갈수록 독자들이 그것들을 읽으며 '아, 지금 이 친구는 죽은 상태였구나. 맞다' 하는 느낌을 자연스레 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자 했습니다. 처음엔 정서가 죽은 걸 작가인 나조차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 아무렇지 않게 쓴 초안을 박서련 작가님과 편집자님께 드렸는데, 두 분이 초안을 읽으시는 동안 기다리는 중에 갑자기 '아, 캐릭터가 가볍다고 그 캐릭터의 죽음까지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어요. 그때 두 분께 너무 묘사가 덜 들어가지 않았나 여쭤보았고, 동의하는 의견들을 받았습니다.(집단 지성의 힘을 다시 한번 느꼈죠) 수현과 딸의 옆에서 계속 조잘대지만 보이지 않는 정서처럼, 가까이 있지만 그렇게 무섭지만은 않은 죽음을 상상한 것 같기도 합니다. 

두 분이 가장 힘을 주어서 쓰고 그린 부분이 궁금해요. '이 부분에서 다 감동받아버려라!'하고 쓴 부분이 있다면요? 또, 부끄러우니까 서로가 서로의 파트에서 명문장을 꼽아보자면요?

박서련 : 첫 장면에 힘을 많이 줬어요. '감동받아버려!'는 잘 모르겠지만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제사라는 소재와, 주인공 수현이 직업인으로서 지니고 있는 태도가 압축적으로 보였으면 했거든요. 고등학교 시절, 진로 문제로 우는 수현에게 영란이가 거짓말을 해주는 장면도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다 열심히 썼지만, 특별히 더 기억에 남을 만큼 열심히 쓴 부분들이에요. 

만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는 모두 액자가 나오는 것 같아요. 정서가 영정 프레임을 들고 활짝 웃는 장면, 또 제사상에 놓인 자기 영정과 마주보고 있는 장면. 액자에 들어가 있는 것이 완전히 거짓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진짜 마음'은 항상 액자 바깥에 있구나 생각하게 되는 장면들이었어요. 마음은 흐르고 변하며 살아있는 것이라서 그런 걸까요. 후반에서 터져나오는 정서의 감정 표출 역시 매번 감탄하며 보게 되어요. '보고 싶다'라는 흔하고 쉬운 말을 그토록 귀하고 뭉클하게 만들어주시다니... 영롱 작가님은 연출 천재예요.

정영롱 : 힘을 주어 쓰고 그린 부분은 정서의 감정이 점점 증폭되면서 그 감정으로 제사상의 촛불을 꺼트린 장면입니다. 촛불이 꺼진 페이지에는 일부러 어느 컷에도 정서를 그리지 않았는데, 이런 연출로 정서는 정말로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박서련 작가님의 파트의 명문장으로는, 책 뒷날개에도 적혀있는 문장, '남들의 마음을 대신해 내 마음을 바치곤 해서 내 진짜 마음은 한참 전에 닳아 없어진 줄 알았다. 아니야, 착각이었지. 마음이란 것을 어떻게 정말 다 갈아 없애겠어. 꼭꼭 잘 숨겨두고는 없어졌다고 스스로 거짓말을 했던 거지'를 꼽고 싶습니다. 거짓말이라고는 몰랐을 것 같은 수현이 자신을 평생 속여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어요. 동시에 거짓말쟁이 정서에 바통을 넘겨주기 위해 뛰기 시작하는 느낌도 들었고요. 정말 최고의 마무리라고 할 수 있죠. 작가님께서 첫 파트를 맡아 주셔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서처럼 죽어서 1년 정도 유령의 모습으로 속세를 떠돌게 되었다고 쳐볼까요. 타인에게 보이지도 않고, 어디든 갈 수 있다면 누구를 찾아가고 싶으세요? 혹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으신지요. 유령과 투명 인간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라서요. 

박서련 : 저는 서점의 지박령이 될까 해요. 저에게 그립고 아쉬운 사람들을 찾아가고 싶은 충동도 물론 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 저를 잊어가는 모습을 보는 건 죽어서도 맘 아픈 일일 것 같고요. 제가 썼거나 참여한 책들이 여전히 읽히는지 지켜보고 싶어서요. 제 책을 고른 분의 뒤를 졸졸 따라가 흥미롭게 읽는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정영롱 : 저의 반려견 허니에게 찾아가고 싶습니다. 강아지에게 유령이 보인다는 속설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고, 그냥 무척이나 보고 싶을 것 같아요. 1년이라는 시간이 있다면 유령의 몸으로 여행이 가능한지도 궁금해서 비행기를 타보고 싶기도 하고요. 외국인 유령이랑은 죽었어도 여전히 말이 안 통하려나요?

정영롱 작가님은 이번 책 출간으로 북토크를 처음 경험해보셨고, 박서련 작가님은 만화가가 꿈이셨던 것으로 아는데요. 『제사를 부탁해』라는 책을 통해 두 분이 함께 하신 소회에 더불어 이 책을 읽고 계신, 읽어주실 독자 분들께 전하고픈 말씀 부탁드립니다.

정영롱 : 북토크는 정말로 긴장을 많이 했는데, 책을 깊게 읽고 와주신 분들과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치다보니 문득 진심으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작가로서 너무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리고 늘 하는 생각이지만 박서련 작가님과 김해인 편집자님과 함께 이 시리즈를 해서 정말 즐거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쓰고 그린 이야기가 <보이는 이야기>라는 시리즈 이름을 갖고 있는데, 타이틀 그대로 서로를 마주보기 시작하며 작업도 함께 시작된 것 같아요. 다른 작가님들과 계속 이어갔으면 하고 바랍니다. 권수현이 마구 뛰며 바통을 넘겨주기를요.

박서련 : 좋아하는 작가님과 함께하면서 사심도 많이 채웠고, 작업하면서 배운 것도 많습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을 담아낸 책이어서 독자님들께 너무 무겁게 다가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은 있었어요. 누구나 언젠가는 소중한 존재와 돌이킬 수 없는 이별을 겪게 되는데, 그런 경험을 갖고 계신 독자님들에게 우리 책이 작은 공감과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정말 보람될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박서련

1989년 음력 칠석에 철원에서 태어났다. 2015년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정영롱


만화가, 일러스트레이터. 2015년 웹툰 <알아집니다>로 데뷔, 『남남』으로 <2020 오늘의 우리만화상>을 수상했다.




제사를 부탁해
제사를 부탁해
박서련 저 | 정영롱 글그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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