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윤순례 "반갑지 않은 손님에 관한 이야기"
『여름 손님』 윤순례 저자 인터뷰
태어난 곳을 떠나 타지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려는 이들의 역사는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다. 탈북의 기억은 각자에게 다르게 기억되며, 그들이 겪는 지금 역시 서로 다르다. (2023.02.16)
태어난 곳을 떠나 타지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려는 이들의 역사는 쉽게 언어화되지 않는다. 탈북의 기억은 각자에게 다르게 기억되며, 그들이 겪는 지금 역시 서로 다르다. 작가는 그들의 선택을 가장 인간적인 이야기의 순간으로 가져온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침묵에 잠겨 있던 '사적인, 너무도 사적인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북한에서 맺은 관계와 탈북을 위해 맺은 관계, 남한을 비롯한 새로운 정박지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심지어는 탈북민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관계. 그 모든 양상을 두루 꼼꼼히 살피면서, 하나의 점으로서 존재하는 탈북자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씨실과 날실로 교차되어 함께 하나의 직물을 만드는 탈북민 이야기를 펼쳐냈다. 『여름 손님』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곁을, 그 침묵 속을 조명하며 바야흐로 우리가 인간 존엄성에 대해 성찰할 때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신독자분들께 이번 소설집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세요.
탈북자를 다룬 연작 소설집입니다. 2017년 단편 소설집 『한여름 비치 파라솔 안에서의 사랑법』 출간 이후 발표한 작품들을 엮었습니다. 독일 뒤셀도르프, 중국 내몽골, 연길, 도문, 훈춘, 단동, 개산툰 등 취재 여행차 머물렀던 곳들이 집필 과정에서 저절로 올라왔을 때 새로웠습니다. 그 길에서 만났던 이들도요.
제목 '여름 손님'에 담긴 의미가 궁금한데요.
'여름 손님은 반기지 않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탈북자를 일정한 절차를 거쳐 국민으로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여러 차원에서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요. 그런 점에서 연작 소설집 전체의 제목입니다. 첫 번째 수록 작품 제목이기도 하고요. 단편 소설 「여름 손님」 안에서는 화은에게 철진이, 철진에게 독사(毒蛇)가, 독사에게는 빈집을 사서 이사 온 화은이 '여름 손님'이지요.
오래 터를 잡으며 빈집에서 살다가 위협을 느끼자 철진을 물어 위급 상황에 몰고 간 독사, 살인 혐의를 받으며 도망 다니다 화은을 찾아온 철진. 심신의 상처를 추스를 방안으로 시골집을 사서 이사한 화은, 이들을 주시해야 하는 새터민 보호 담당 경찰관 등은 '반갑지 않은 손님'의 관계망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안전한 터전을 지키고 가꾸려는 이들에게 치열한 몸부림으로 다가오는 생물과의 맞닥트림을 상징합니다만, 독자들에게 같은 해석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여섯 편의 소설이 묶인 소설집인데요. 첫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른 작품에서도 언급되는 식으로 얽히고설킨 연작 소설집이라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런 형식을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2018년에 계간지 <모든 시>에서 원고지 30매의 '시소설'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습니다. 시이면서 소설을요. 처음 받아보는 장르에 분량을 지켜야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술술 흘러나. 「여름 손님」 속 '화은'의 목소리였지요. 제 의식 너머에서 그녀의 중국 훈춘 시절이 펼쳐졌습니다. 철진을 떠나보내고 생의 끈 한 자락이라도 잡아보려는 몸부림도요.
「바람빛 자장가」를 쓰는 동안에는 수년 전 중국 동북 3성 여행길에서 만난 이들이 쏙쏙 손을 내밀었습니다. 한국에서부터 동행했던 나이든 조선족 가이드가 압록강 너머 신의주를 바라보던 눈빛도 떠올랐지요. 고기 잡으러 나온 북한 사람들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는 유람선이 곧 떠날까 봐 안달을 하며 흘려들었던 그의 말도요. 세심한 독자들이라면 궁금해 할 「심봤다」 속 '화진의 남한살이'와 중국과 북한에 남겨졌던 자식들이 오래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내밀더군요.
작품을 집필하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문창과 소설 창작 강의를 하며 늘 강조했던 게 메시지입니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메시지가 있다고, 그것 없이는 문장들의 나열일 뿐이라고요. 극구 강조했기에 이번 창작집을 엮는 과정에서 특히나 힘들었습니다. 메시지를 굳이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역설적이게도 이 질문의 답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뭐? 그러니까 어쩌라고?' 스스로의 물음에서 자유롭지 않았지요.
지금도 김현 선생님이 주창한, 문학의 역할 그 언저리에라도 닿기를 바라는 욕심을 부려보고 싶습니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하셨지요.
영화 <미나리>나 책 『마이너 필링스』, 『H마트에서 울다』 같은 디아스포라를 다룬 작품들이 최근 많이 등장한 것 같아요. 그런데 특별히 탈북민에 주목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그들은 역사로 인해 남 아닌 남이 되어버린 사람들입니다. 2015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제교류부 해외레지던스 파견작가로 세 달간 이란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이란 한국대사관에 문화 홍보 관련 일을 하러 온 분이 초등학교 5학년생인 아들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테헤란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낯선 아이들 속에서 만난 북학 학생과 가까워지고 싶어 자꾸 말을 거는데, 북한 주재원들은 한국 학생들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는 교육을 철저히 시키고 있다고요. 테헤란을 떠나 고대 실크 로드를 여행하는 내내 관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작가님께서 특별히 좋아하는 구절이나 장면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 늙은 부부가 아몬드를 까며 부르더라고요. 정원에서요.
영화 속 정원에 지금 이곳처럼 키 큰 나무들이 많았다고 말하며 화진은 사방 멀리로 둘러 있는 산의 능선을 바라보았다. 집주인 여자 행세를 하는 게 들통나지 않으려면 말을 아껴야 했다. 남자가 여전히 노래를 기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어 화진은 기억을 더듬어 가사를 떠올렸다.
— 너의 창문 아래 꿀단지를 숨겨뒀어~ 비밀로 해주면 조금 먹어도 돼~
이제는 목이 가서 매가리가 없다고, 가사가 가물가물하다고 남편 아우구스트가 코를 훌쩍이며 부르는 노래를 아내 나티가 이어받아 부르던 가을빛 가득한 영화 속 정원이 떠올랐다.
— 영화 좋아하시나봅니다?
남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 우연히요. 그저 우연히... 저는 어디 붙어 있는지도 모르는 먼 나라 영화예요. 스페인 남부라나...
집주인을 간호하며 병상 침대 아래 쭈그리고 앉아 영화를 봤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늙은 아내에게 수영복을 입어보라고 조르던 남편과 농원 근처 계곡 위를 가볍게 뛰놀던 노루와 사슴들이 떠올라 화진은 절로 환하게 웃었다. _『여름 손님』 179쪽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여름 손님』을 먼저 본 독자로서, 수록된 작품 수순으로 읽으시길 권해드립니다. 마지막의 「사적인, 너무도 사적인 침묵의 역사」를 덮을 때면, 장편 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발표한 년도 순으로 작품들을 배열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중단편 창작집을 읽는 묘미는 왠지 끌리는 제목이나, 무심히 펼쳐든 페이지 속의 이야기와 만나는 설렘도 있긴 하지만요. 무엇을 잡든 따스한 빛과 닿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윤순례 1967년 전북 부안에서 태어났다.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중편소설 〈여덟 색깔 무지개〉로 제18회 문예중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0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소설 부문 신진예술가상, 2005년 오늘의작가상, 2012년 아르코문학상을 수상했고, 장편소설 《아주 특별한 저녁 밥상》 《낙타의 뿔》, 소설집 《붉은 도마뱀》 《공중 그늘 집》을 출간했다. 2017년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 우수문학작품으로 소설집 《한여름 비치파라솔 안에서의 사랑법》이 선정되어 출간하였으며, 2021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코로나19 예술로 기록’에서 중편소설 〈심장 아래 유리창〉이 대국민 감동 프로젝트 TOP 11에 선정되어 ‘온라인 미디어 예술활동 누리집’에 게재되었다. 2016년에서 2018년까지 추계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 교수로, 2019년에는 코스타리카 국립대학교 초빙 교수로 근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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