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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동안, 입은요?] 아무 곳에서나!

쓰는 동안, 입은요? 9화 - 백색 소음을 듣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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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건 '장작불 타오르는 소리'인데, 이젠 너무나 습관이 들어버려서 이 소리를 틀어두기만 해도 무조건 반사로, '자, 일 하자, 일...'하는 마음이 든다. (2023.01.05)


소설가는 마감 때 무엇을 먹을까?
염승숙 소설가와 윤고은 소설가가 글쓰기와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번갈아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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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 글을 쓰기 위한 최적의, 맞춤한 장소를 갖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꽤 긴 시간 글을 써왔으면서도 아직 가져보지 못했다는 단순한 이유로, '작업실'이라는 세 글자는 내게 미지의 단어다. 작업 공간에 관해 다양한 이력들을 갖춘 작가들이 많을 텐데, 나는 하다못해 작가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레지던스 입주 경력조차 없어서...

지난 어느 계절엔가는 몇몇의 절친한 작가들로부터 똑같은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받고 웃어버린 기억도 난다. 개인 집필실을 신청받는 창작촌 입주 공고가 사이트에 게시되자마자 모두가 동시에 나를 떠올렸다고 생각하니, 그들의 다정함에 힘입어 이번에는 정말 신청해볼까, 하는 의욕이 솟았지만 어째선지 또 망설이다 기한을 놓치고 말았다.

"아니 왜 신청 안 해? 소설 안 쓸 거야?"

작업실을 따로 두고 있는 동료 작가 J는 나의 게으름을 진심으로 의아해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듯 어물쩍 넘어가버린다. "그래, 맞아... 소설은 써야지, 나는 지금 죽으면 유작도 없다고..."라며 반성하면서도, 소설을 쓰기 위한 목적으로 어딘가에 정착한다고 생각하면 영 낯설어지고 만다.

이쯤 되면 '어디서' 글을 쓰는가의 문제는 내게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나, 변명부터 하고 싶어진다.

이십대 초반부터 소설을 쓰며 살아왔으니 여러 공간을 무수히 거쳐왔다. 그것만은 틀림이 없다. 노트북을 이고 지고 다니며 학생 때는 빈 강의실이나 도서관 어느 구석 자리에 파묻혔고, 대학원에 다니면서는 학과 사무실이든 연구실이든 가리지 않고, 홀로 지내던 오피스텔에서도 밤낮으로... 말하자면 마감에 맞춰야 하는 원고가 있다면 어디서든 쓰고, 또 어디에서나 가능하다는 생각만을 해왔던 듯하다. 

더군다나 나는 다소 정신 사나울 정도로 산만하고, 시간 개념이나 날짜 감각도 몹시 부족한 '열혈딴짓대마왕(!)'이기 때문에, 좀 우스꽝스러운 표현인지는 모르지만 뭔가 할 때마다 '각' 잡고 시-작! 이런 것을 할 수 없다. 말하자면 출발선에서 멈춰 서서 '탕' 발사되는 총소리를 기다리기도 전에 나도 모르는 새 이미 달려버리고 있는 상태랄까.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결승선도 알지 못하면서 그저 혼자 몰두해 궤도에 올라버리는 타입이랄까. 안타까운 건 대체로 그 질주가 소설 쓰기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는 점이지만, 이건 대체로 내가 이중고(二重苦)의 글쓰기를 해왔던 탓이 크다.

학부생 시절에 등단한 이후 나는 국문과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사실 이 과정에는 어떠한 고민이나 생각도 없었다. 미리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꽤 단순한 면도 가지고 있어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싶지만, 우선 소설을 써보고 싶으니 학부에서는 창작을, 졸업 후에는 대학원에 가서 연구자가 되자고 마음먹었던 터라 그대로 실행에 옮겼을 뿐이었다. 이건 바꿔 말하면 당시엔 너무 어려서, 소설가로서의 자각과 작품을 쓰기 위한 단단한 각오 같은 게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다시 돌아간다면 선택은...)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한 뒤로는 학기마다 수업을 들으며 여러 편의 소논문을 완성하느라 허둥댔고, 한편으로는 공부도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소설가와 연구자 사이에서 소위 '모드'를 빠르게 전환시키는 훈련을 혼자 해야만 했다. 논문을 쓰기 위한 자료를 살피다가도 '정신 차리자, 이것만 보고 진짜 소설 써야 된다고...' 결심하던 자정 이후의 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는 걸 보면, 그다지 생산적이진 않았던 것 같지만.

감정을 밖으로 잘 드러내는 편이 아니라서 남들이 보면 느긋하고 태평해 보일 수 있는데, 나 스스로는 조급함에 자주 시달리고 내적 긴장도가 높은 까닭에 항상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문학 비평을 본격적으로 해볼까 싶어서 데뷔한 이후로는 다시 소설과 평론을 병행하고 있기에 책상 위에 읽을거리는 넘쳐나고, 이중고의 글쓰기는 여전히 진행형인 셈.

어쩐지 쓸데없는 소리가 길어졌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래서, 무언가 써야 할 때 어디서든 쓸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다 보니 언제나 시간만이 화폐인 듯 절실하고, 아이를 낳아 돌보는 엄마로 살면서는, 창의적 글쓰기와 비평적 글쓰기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무엇보다 '효율'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부자유에 잠식된 일상인 동시에 아이의 발달과 성장에 종속된 삶이라서 정말이지 어디서든, 장소를 가리지 않아야만 했던 것이다. 더욱이 마감에 늦은 상태라면, 내가 자리를 가릴 형편은 아니잖아... 그럴 자격도 없지... 침울해지려는 자신을 서둘러 다독이기까지 해야 한다는 난관에 봉착하기까지!

가급적 군중 속에 익명으로 숨어들고 싶고, 그나마 뭐든 손쉽게 챙겨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고집하던 때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지도 오래되었다. 두 권의 장편 소설을 쓰던 때에 특히, 몇 달간 오전 일곱시에 똑같은 카페로 가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한 뒤 원고를 쓰고 오후 한시에 나오곤 했었는데,(놀랍게도 그런 때가 있었네요!) 지금은 거꾸로 내가 앉아 있는 자리를 카페로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게 빠르다.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면서도,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제 이 방식이 내게 잘 맞는다는 걸 인정해야 할 듯하다.

시작은 백색 소음. 곰곰이 돌이켜보니 중학생이 될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집에는 휴대용 학습기가 있었는데, 나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것을 애용했다. 이어폰을 끼면 뇌에 다양한 자극 반응을 일으키는 진동이나 주파수가 흘러나오고 그것이 집중력에 도움을 준다는 취지의 기계였지만, 효과는 딱히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저 화이트 노이즈 정도로만 의식했다. 그 기계엔 폭풍우에 가까운 빗줄기가 창문을 덜컹이거나 개구리가 간간이 우는 시냇가 풍경 같은 '자연의 소리'도 녹음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그것에 의지하기도 하면서 공부를 해왔던 것이다. 지금 그 기계는 가지고 있지 않고, 마지막에 어떻게 처분했는지도 전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아서 아쉽다. 다만, 뭔가 해야 할 때 백색 소음을 들어야 하는 건 좀 습관이 되어버려서, 나는 여전히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껴야만 집중이 잘 된다. 

백색 소음에 대한 집착이 심했을(!) 때는 호기심에 여러 웹사이트들을 돌아다니며 유료 구매도 해보았고, 나는 그걸 계기로 백색 소음 앱 개발자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단편 「양의 얼굴」(『그리고 남겨진 것들』 수록)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나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저널리스트로 일하던 시절의 일화를 알게 되었다. 직원들 모두가 집에 돌아간 밤, 그는 신문사에 홀로 남아 일하곤 했는데, 그건 그가 신문을 인쇄하는 라이노타이프 식자기의 소리 옆에서만 제대로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쇄기가 멈추면 고요 속에 남겨져 일을 할 수 없었다고. 타이프 소리가 빗소리처럼 들려서 좋아했다는 그의 이야기에 공감, 또 공감!

책을 읽을 때도, 원고를 쓸 때도, 그래서 나는 이어폰만 끼면 바로 작업실에 도달한 심정으로 일을 시작한다. 사실은 그래서 실제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물리적인 공간은 그다지 중요하지가 않아진다. 어떤 곳이든, 작업실처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성능 좋은 이어폰이나 헤드폰에 대한 집착도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동영상 사이트에서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는 시대를 살면서 나는 점점, 백색 소음을 넘어선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원한다. 상상도 못할 곳에 다다르고 싶고, 여행 가방을 챙길 필요 없이 나의 자리를 가볍게 옮겨놓고 싶어진다. 그래서 엊그제는 도쿄, 어제는 뉴욕, 오늘은 베를린의 스타벅스에 앉아서 일한다. 어느 날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맨해튼이나 런던의 어느 뒷골목 작은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고, 어느 날엔 시험 기간의 그레이트홀에서 호그와트 학생들 틈바구니에 끼어 키보드를 두드리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 라이브러리의 '오디오 룸'에는 그가 소장한 재즈 음악도 흘러나오므로, 제법 집중하기가 좋다.

이 모든 건 내가 어디에서 일을 해도 수월히 만들 수 있는 나만의 작업실 환경이 된다. 음질이 뛰어난 이어폰만 있다면! 물론, 나라별로 다른 스타벅스의 카페라테 맛을 가려볼 수 없다거나, 하루키가 키우던 치즈 고양이 '피터 캣'에서 따왔다는 시그니처 메뉴인 소다 음료 '오렌지 캣'을 마셔볼 수 없다는 건 애석하지만, 그쯤이야 당장 눈앞에 닥친 마감의 중압감에 비한다면야 더 이상 바라는 것은 사치...

전 세계 곳곳으로 자리를 옮겨볼 심적 여유도 없이 피로하다면? 그럴 때 가장 좋아하는 건 '장작불 타오르는 소리'인데, 이젠 너무나 습관이 들어버려서 이 소리를 틀어두기만 해도 무조건 반사로, '자, 일 하자, 일...'하는 마음이 든다. 장작 태우는 소리는 머릿속에 당분을 들이부어 에너지를 타오르게 하는 '업무 양갱' 같은 느낌이라서 안정감을 준다고나 할까. 

글쓰기를 하는데 가장 좋은 장소가 있느냐는 질문에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답변은 인상적이다. 

"아무 곳에서나!"

단순하고 명쾌해서 나는 은근히 기뻐하게 된다. 내가 이상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언젠가는 제대로 된 작업실을 만들어보고 싶은걸요, 좋아하는 차와 견과류도 잔뜩 쌓아놓고... 뭐 그런 소소한 바람도 가져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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