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들이 북촌을 지켜내는 방법
『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 이한솔 교사 인터뷰
살아 숨 쉬는 북촌의 역사를 마주한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 공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2022.12.27)
연일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서울 북촌 계동길. 화려한 관광지의 이면에는 살 곳을 잃고 마을을 떠나야 하는 주민들이 있다. 중앙중학교는 학생들이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북촌을 돌아보길 바랐다. 마을결합형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은 마을을 답사하고, 북촌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게 스무 곳을 골라 사장님들을 인터뷰했다. 살아 숨 쉬는 북촌의 역사를 마주한 학생들은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을 공간의 소중함을 느꼈다. 우리 동네의 소중함을 어떻게 알릴지 고민한 흔적을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 전원이 쓴 71편의 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다른 지역에서 진학하여, 북촌이 처음인 학생들도 북촌에서의 시작(始作)을 시작(詩作) 활동을 통해 마을에 뿌리내리면서 『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가 탄생했다.
『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를 통해 처음 만나는 독자들께 저자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중앙중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 국어 과목을 공부하고 있는 이한솔입니다. 이번 책의 저자인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표해서 독자분들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중앙중학교는 북촌에 있는 작은 학교입니다. 한 학년에 4반, 한 반에는 18명의 학생들이 선생님들과 옹기종기 모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작은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니, 교사로서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서로 개인적인 고민을 나누고, 함께 교실을 벗어나 다양한 경험을 공유하고, 또한 그 기억들을 엮어서 책으로 남겨보기도 하고요. 덕분에 학생들과 함께 나눈 소소한 경험을 널리 알릴 기회가 찾아온 것 같습니다. 이번에 발간된 『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를 통해 우리 중앙중학교 학생들의 밝고 환한 목소리가 많은 독자분들께 닿을 수 있길 바랍니다.
2022년 1학기 수업을 진행하신 중앙중학교 이한솔 선생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시를 쓰는 이색적인 수업을 하셨는데, 이러한 수업을 계획하게 되신 계기가 있으실까요?
국어 교사로서 창피한 일이지만, 사실 저는 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습니다. 시보다는 소설, 소설보다는 영상 매체에 익숙한 삶을 살고 있던 저에게 시가 다가온 것은 우연히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2021년 가을, 서점에서 박연준 시인의 산문 『쓰는 기분』을 읽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전하는 '부드러운 용기, 작은 추동을 일으키는 바람, 따뜻한 격려'를 건네받으며, 학생들과 함께 시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움텄습니다. 제대로 시를 써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는 초보 교사였지만, 학생들과 '시 쓰는 기분'을 나누며 서로의 삶에 안긴 시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이 이번 수업에서 꼭 얻어 가기를 바라는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번 수업의 가장 큰 목적은 '나'에서 '타인'으로 시선을 확장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문학을 공부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 막 중학생으로 발돋움한 학생들과 '시'를 매개로 수업 활동을 진행하며 '나'의 삶뿐만 아니라, '타인'의 삶 역시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만약, 학생들이 '삶이 시가 되는 순간들'을 포착해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기른다면, 이해와 공감을 통해 삶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2022학년 국어 수업을 구상해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번 학기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북촌 마을의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얼마 전, 퇴근길에 종종 방문하던 작은 가게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말수가 많지는 않으셨지만, 따뜻한 미소와 함께 맛있는 밥상을 내어주시던 사장님이 계시던 공간이었습니다. 물론, 상업 논리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정든 가게들이 사라진 자리를 채우는 프랜차이즈를 바라보며, 마을에 불어온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중앙중학교는 서울의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북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학교 주변은 북촌 한옥 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로 연일 붐비지만, 점점 높아지는 가게 임대료와 밀려들어오는 문화·상업 시설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많은 고민을 품고 생활하고 있습니다. 문득 학생들에게도 우리 동네의 일원으로서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등하굣길에 스치는 우리 동네의 여러 공간이 품은 문제들을 들여다보고, 우리 이웃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 바로 이 점이 학생들이 문학을 공부하는 이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지도하시며 가장 인상 깊었던 학생들의 반응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나요?
우리 동네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 현안을 주제로 시 창작 수업을 하다 보니 학교 밖으로 나가는 활동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접 마을을 돌며 가게의 현황을 파악하고, 사장님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과정이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어려운 과제는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학생들의 눈빛은 학교 밖에서 더욱 빛났습니다. 교실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웃고 떠들면서도,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활동에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들이 쓴 작품들을 책으로 엮으면서 수업 활동을 진행했던 당시의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이번 책 출간을 통해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 역시 자신의 빛나는 순간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학생들은 시를 쓸 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 쓰고, 또 힘들어했나요? 이러한 수업을 통해 달라진 점, 시를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북촌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이전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학생들은 시를 쓸 때 '나'의 시각이 아닌, '인터뷰어'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했습니다. 학생들은 가게 사장님과 인터뷰를 했던 내용을 기반으로 시를 써야 했는데, 이 부분에서 많은 고민이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 시를 쓰면서 재동문구점 사장님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했는데, 인터뷰에 나온 사장님의 말씀과 감정을 나의 시에 최대한 녹여내고 싶었고, 누구나 이 마음을 느끼게 하고 싶어 이 부분을 특히 더 신경 쓴 것 같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장님의 시각으로 시를 써려다 보니, 시에 사장님의 시선과 감정을 함께 담아내야 해서 그것들을 표현하는 건 조금 어려웠다. (유연주 학생)
나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를 글 속에 담는 작업은 중학교 1학년 학생들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민의 과정은 학생들을 한층 성장하게 했습니다.
'공간은 변해도 / 사람은 안 변한다. // 안 변할 것이다.'에서 공간의 모습은 리모델링 같은 것을 통해 바뀌어도 그곳에서 일하시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 모습을 나타내고 싶었다. 떡볶이집 사장님이 변하지 않고 계속 계셨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한 내용을 기반으로 시를 써보니 한층 더 사장님의 마음에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김유성 학생)
'소녀', '어머니', '사랑' 등 여러 가지 비유할 대상이 생각났지만 결국, '정애 쿠키'와 사장님을 표현하기 위한 건 쿠키라고 생각해서 시의 제재를 '쿠키'로 정했다. 시를 쓰는 그 과정에 인터뷰한 내용을 담아내는 것이 나는 제일 좋았고 재미있었다. (한나 학생)
학생들은 이번 수업으로 타인의 마음에 공감하는 방법을 연습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한 번의 수업이 학생들의 삶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평소 스치듯 지나치기 바빴던 우리 동네, '북촌'의 곳곳에 소중한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중앙중 학생들의 마음에는 분명 작은 틈이 생겨났을 것이라 믿습니다. 학생들의 마음속 작은 틈을 헤집고 피어날 예쁜 꽃망울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다양한 수업을 고민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학생들의 마음을 담아 엮은 『시와 함께하는 우리 동네 한바퀴』를 통해 북촌이 품고 있는 다양한 가치가 더욱 많은 분들에게 공유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이 시가 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시 쓰는 기분을 느껴본 중앙중학교 학생들의 이야기가 '우리 동네'의 가치를 '이해'하고 '공감'하기 위한 작은 씨앗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들과 이한솔 교사 2021년 가을, 중앙중학교 국어 교과 이한솔 교사는 우연히 박연준 시인의 산문 『쓰는 기분』을 만났다. 시인이 전하는 '부드러운 용기', '작은 추동을 일으키는 바람', '따뜻한 격려'를 건네받으며, 학생들과 함께 시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움텄다. 제대로 시를 써본 적도, 느껴본 적도 없는 초보 교사였지만, 학생들과 '시 쓰는 기분'을 나누며 서로의 삶에 안긴 시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22년 1학기 교과 융합 수업을 진행하여 71명의 중앙중학교 1학년 학생이 모두 각자 한 편의 시를 썼고, 이한솔 교사가 이를 엮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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