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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초상화 밖으로 걸어 나온 여자들 - <코르사주>

김소미의 혼자 영화관에 갔어 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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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주의 여성 시대극인 <코르사주>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묘사를 오히려 더욱 진실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초상화 밖으로 걸어 나와 영화 속을 거세게 달린 과거의 여자들이 결국은 우리의 안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2022.12.16)


영화 평론가 김소미가 극장에서 만난 일상의 기술을 소개합니다.
서울을 살아가는 30대로서 체감한 영화 속 삶의 지혜, 격주 금요일 연재됩니다.



이번 주는 혼자 영화관에 가지 못했다. 코로나 양성 확진을 받았다. 언론 배급 시사회를 마친 <코르사주>의 수입사에 혹시 스크리너를 받아볼 수 있을지 문의했다.

"황실에 갇힌 엘리자베트에 더 공감하시겠군요!"

담당자의 농담에 웃으면서도 반신반의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황후의 삶에 현대 여성인 나는 무엇을 공감할 수 있을까. 자기만의 방에 갇힌 21세기 평범한 글쓰기 노동자인 나는 조금 막막한 심정으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에 발을 들였다. 결론부터 말해 <코르사주>는 전기 영화와 시대극의 엄밀한 정의에서 모두 기꺼이 이탈해 나오기를 택한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이 <엘리자베트>가 아닌 <코르사주>라는 점도 마리 크로아처 감독의 분명한 지시처럼 보인다. 서서히 이질감을 일으키다 아예 시대극의 미장센을 과감히 포기해버리는 불손한 후반부 즈음에 이르러, 나는 이 영화가 19세기 코르셋 시대를 빙자해 21세기 '탈코르셋' 시대의 안위를 질문하는 매우 세련된 몸짓의 총화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며칠째 축축한 식은땀에 절어있던 몸에 표표히 열기가 돌았다. 내내 닫아두었던 창문을 크게 열었다.

"그녀의 영혼은 혼란스러운 박물관 같다. 

쓰일 수 없는 보물로 가득 차 있다. 

본인도 어찌 쓸 지를 모른다."

늦은 밤, 시녀 마리가 엘리자베트 황후를 지켜보며 기록한 일기 속에는 현실에서 만족스러운 쓰임을 찾지 못한 누군가의 재능과 열의가 결국 신경증으로 기화되고 마는 광경에 대한 안타까움이 적혀 있다. 오늘 우리는 코르셋보다 탈코르셋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쓰지만, <코르사주> 속 여성들, 특히 당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칭송 속에서 살아간 엘리자베트는 평생 몸과 코르셋의 동행을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매일 아침 그 안에 장기를 욱여 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칼에 찔려 암살당한 마지막 순간에도 코르셋의 압박 속에서 통증과 출혈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코르사주>는 평생 가슴 아래에 육중한 물리적 억압을 달고 살아가면서도, 정작 자기 삶의 방해물로 타고난 내면과 성격을 지적받아야 했던 한 실존 여성의 삶을 재기술(re-writing)하는 영화다. 1970년대 미국 팝송 'Help Me Make It Through the Night'이 흐르는 19세기 시대극의 '새로 쓰기'는 엘리자베트의 죽음까지 아름답고 장대한 풍경으로 바꾸어 놓으며, 수정주의 여성 서사의 유려한 예를 완성한다.



"영원히 아름답길, 언제나 영원토록."

미성의 소년 합창단이 황후에게 바치는 최고의 찬사를 노래한다. 1877년, 40세 생일을 맞이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후가 제국의 미래를 위해 부응해야 할 최상의 덕목은 변치 않는 아름다움이다. 자본주의가 자기 계발의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고 믿는 우리들에게 19세기 엘리자베트의 '데일리 루틴'은 여성에게 심어진 유구한 자기 관리의 신화를 새삼 자각하게 만든다. 그는 좀처럼 황후나 어머니,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되는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다. 욕조에 들어가 숨 참기, 아침마다 졸도와 구토를 유발하는 코르셋 착용하기, 1kg가 넘는 장발의 머리를 하루에 3시간 동안 빗어내기, 그리고 식탁에 앉아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기가 심미적 육체를 위한 처방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 <팬텀 스레드>에서, 굶주림을 모르는 야수처럼 참을성 있게 잠복했다가 마침내 다니엘 데이 루이스를 거의 먹어 해치우는 데 성공했던 유럽 영화의 새 기대주 비키 크리엡스는 이번에도 자기 앞에 늘어진 속박의 과제들을 우선 덤덤히 해치우고 전복의 계획을 세운다.

많은 사료들이 황후 엘리자베스의 정신적 괴로움을 그의 자유분방한 성격에서 찾는다. 보수적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통과 달리, 그는 권력의 종탑에서 탈락한 귀족 가문만이 누릴 수 있는 쓸쓸한 자유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제1차세계대전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1870년대 후반에 왕가의 마지막 권위를 대변하는 일이 엘리자베스에게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기만과 권태를 유발했을지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를 이기고자 수준급의 승마와 펜싱을 즐겼고, 헝가리어, 라틴어를 비롯한 다양한 언어에 능했으며, 문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역사적 기록들은 부연하고 있다. <코르사주>는 익히 알려진 엘리자베스의 지성적·교양적 면모를 그대로 영화 속에 담되, 시녀 마리가 발설한 관점대로 그 모든 보물들이 어찌나 혼란스럽게 '진열'되고만 있었는지 보여준다. 한 개인의 생에서 제대로 쓰이지 못하는 열정처럼 도덕적으로 잔인한 것은 없다.




시대가 요구하는 역할에 고통받는 여성의 전기 영화에서 주로 부각되는 것은 외부의 강력한 억압이다. 아찔할 정도로 기울어진 운동장, 차별과 혐오의 묘사가 때로는 카메라 앞에서 가학적 태세를 취하는 순간들에 아찔해져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코르사주>에서 특기할 것은, 엘리자베스 황후와 코르셋 간의 대결에서 영화가 후자가 주는 고통이 아닌 전자의 몸집을 육중하게 불리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울의 징후가 40세를 아름다움의 종말로 인식한 여성의 내면에서만이 아니라, 왕조 전체에 독처럼 퍼지고 있어서다. 요제프 황제는 정무가 끝나면 거추장스러운 인조 수염을 볼에서 떼어내고, 장남 루돌프는 왕조는 끝났다고 읊조린다. 쇠락한 영지를 지키고 사는 황후의 귀족 사촌은 온 이가 다 썩어가면서도 입 속에 초콜릿을 들이붓는 쾌락적 자학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이 무렵 <코르사주>는 궁정 실내를 미니어처처럼 왜곡시켜 엘리자베스가 소인국에 갇힌 거인처럼 보이게 한다. 감지되는 것은 그녀를 짓누르는 세계의 위용이 아니라, 여인 자신의 팽창이다. 더이상 그 세계에 머무를 수 없는 탈출의 불가피함 혹은 질식의 임박함도 뒤따른다.

영화 속에서 엘리자베트가 주로 서 있는 공간은 화려한 응접실이나 안락한 침소가 아니다. 황후는 주로 어디로 향하는 지도 잘 분간하기 어려운 퀴퀴한 복도에 서 있다. 말하자면 <코르사주>는 귀족들이 황후를 우러러보는 연회장 한가운데가 아니라, 그 앞에 서서 입장을 기다리며 서 있는 지루한 순간에서 카메라의 촬영 버튼을 누르는 영화다. 여기에서 저기로 끝없이 이어지는 음울한 방갈로를 이동하는 시간에 관한 영화다. 벽지가 다 뜯겨진 옛 건물을 로케이션으로 채택한 다음 그곳을 전혀 손보지 않고 찍은 듯한 <코르사주>의 프로덕션은, 종종 엘리자베트가 시간의 연결통로에서 길을 잃고 과거와 현대 사이 어디쯤에 버려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 영화 말미에 엘리자베스가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 오르는 대형 선박은 사실상 21세기의 여객선과 차이가 없고, 감독은 이런 오류를 그대로 노출시키는 선택을 감행했다.

그 결과 거추장스러운 의복을 갖춰입은 하나의 거대한 도상이 되어 성공적인 '코스프레'를 수행한 비키 크리엡스의 얼굴 위로 또다른 쌍둥이가 겹쳐 보인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만들고 키얼스틴 던스트가 주연한 <마리 앙투아네트>다. 시대상 속에서 개념적으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황후이며 상반된 역사적 평가를 안고 있고, 평생을 호화로운 외로움의 섬망 속에서 살았다는 점에서 그들은 하나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성 인물들의 개성을 다루는 두 감독의 스타일이 공명한다. 엘리자베트와 마리앙투아네트가 황후이기 이전에 가졌던 1인분의 성격과 특질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두 영화는 그들에게 컨버스를 신기거나 21세의 풍경을 대령한다. 코폴라와 크로이처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단지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독되거니 바난받는 여성들의 현재 진행형 '시대극'을 위해선 포스트모던한 화법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사실을.



<코르사주>가 제공하는 허구의 상상력 중에는 엘리자베트 황후가 셀룰로이드에 최초로 움직이는 이미지를 촬영한 루이스 르 프린스와 만나 엔터테인먼트의 희열에 빠졌다는 가설이 있다. 구태여 왜? 내가 덧붙일 수 있는 추측은 마리 크로아처 감독이 실존 인물과 영화 <코르사주>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메타적 인용을 시도했으리란 점이다. <코르사주>의 영화 속 영화, 빠르게 연속 촬영된 셀룰로이드 필름 속 엘리자베트는 무성 영화의 희극인처럼 어떤 권위와 우울도 없이 가뿐하다. 아름다움만을 역설하는 궁정 초상화로서는 담아낼 도리가 없는 영역, 한 인간의 숨겨진 내면적 오라를 시각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영화의 기술이다. 갇힌 여자의 탈출 서사를 영화로써 새로이 쓴다는 사실에서, 이쯤되면 몇 개의 영화를 더 불러볼 법하다. 크리스마스 왕실 행사를 맞이해 샌드링엄 영지를 찾은 <스펜서>의 다이애나, 밀라노에서의 결혼을 앞두고 어머니에 의해 감금되다시피 한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엘로이즈, 그리고 하녀 숙희를 만나 해방으로 나아가는 <아가씨>의 히데코가 있다. 오늘의 영화는 이 과거의 여성들에게 무엇을 선사하는가. 영화는 그들이 어딘가로 거세게 달리고 온 몸을 던져 뛰어내리는 움직임을 장면에 새긴다. 반드시 이야기 차원에서 성공에 탈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움직이는 이미지의 예술적 효용, 즉 자기 세계에서 격동하는 여자들의 운동을 기록하여 다시 현재의 시간에 데려다놓는다. 그런 의미에서 수정주의 여성 시대극인 <코르사주>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묘사를 오히려 더욱 진실한 것으로 느끼게 한다. 초상화 밖으로 걸어 나와 영화 속을 거세게 달린 과거의 여자들이 결국은 우리의 안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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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소미 <씨네21> 기자

보는 사람. 영화를 쓰고 말하는 기자. <씨네21>에서 매주 한 권의 잡지를 엮는 일에 가담 중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독립 영화잡지 <아노>의 창간 에디터, CGV 아트하우스 큐레이터 등으로 일했다. 영화의 내면과 형식이 만나는 자리를 오래 서성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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