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텀블벅 화제작 『요나단의 목소리』 정해나 작가 인터뷰
『요나단의 목소리』 정해나 작가 인터뷰
『요나단의 목소리』는 사랑이라고 불리는 학대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러나 사랑으로 삶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저 스스로를 위해 시작했고, 우리의 잘못으로 잃어버린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끝까지 그렸습니다. (2022.11.14)
좋은 이야기는 송곳과 같다. 아무리 두툼한 주머니 속에 넣어도 그 날카로운 끝을 드러내고 독자를 만날 방법을 찾아내고야 만다. 정해나 작가의 장편 데뷔작 『요나단의 목소리』는 그런 작품이다. 4년 전, 알려지지 않은 플랫폼에서 흑백의 그림체로 비정기 연재를 시작했던 이 작품은 "울지 않을 수 없다", "갓작"이라는 추천에 힘입어 점점 입소문을 탔고 마침내 연재가 종료된 시점 텀블벅에서 그해 하반기 만화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기독교 청소년 퀴어라는 독특한 사각에 자리한 주인공을 두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하나의 입장을 이해하고 상상하는 경험일 뿐만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지극히 사랑할 줄 알고 또 하늘이 무너지듯 실망할 수도 있었던 그 마음으로 돌아가는 일이기도 하다. 00년대 순정만화의 전설 권교정 작가가 "더하거나 뺄 것도 없이, 이대로 완전해진 이야기"라고 극찬한 『요나단의 목소리』의 정해나 작가를 만나보았다.
이번 작품이 작가님의 장편 데뷔작이라고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계기랄 것은 기억나지 않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리고 있었습니다. 어릴 때 만화 보는 것을 좋아했고 열 살 쯤부터는 습관적으로 만화를 그렸던 것 같아요. 만화의 방향에 대해서 처음 고민한 것은 권교정 작가의 단편 「피터팬」을 읽고나서였습니다. 첫 눈에 반해 권교정 작가의 절판된 책까지 모조리 사 모았고, 제가 그리는 만화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국의 여느 고등학교라는 꽤 평범한 배경에서 펼쳐지지만 기독교 퀴어라는 소재가 눈에 띕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셨나요? 무게가 있는 주제인데 그리는 것이 정신적인 부담이 되진 않으셨나요? 작업 중 어떤 점이 특히 힘드셨는지 궁금합니다.
개신교 가정에서 성장했고, 종교 사회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왔습니다. 교회를 떠나고 몇 년 후, 여행 중에 방문한 대학 교회에서 학생들이 부르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을 기회가 있었어요.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교회 음악을 듣자, 제가 자라온 곳에 대해 할 말이 아직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가를 부르는 주인공의 이미지에서 출발해 주변을 상상하다 보니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습니다. 주제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작품 외적으로 뉴스나 주변을 볼 때, 더 나아질 세상을 향한 믿음이 자꾸 흔들려 작업 속도를 더디게 만들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곁에 있는 친구들이 다시 펜을 잡을 힘을 주었어요.
선우, 다윗, 주영, 의영. 인물 네 사람이 각자의 개성이 견고하고 무척 매력적이에요. 어떻게 이 아이들을 구상하게 되셨는지, 영감의 대상이 따로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이 상황마다 적확하게 구사하는 유머감각도 좋은데 작가님께서도 평소에 농담을 잘하는 편이신지도 알고 싶어요.
주변인을 웃기는 것은 좋아하지만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제 농담을 듣는 사람의 수는 극히 적고요, 만화에서 소극적으로 표출하는 편입니다. 다윗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인물들에게 개성을 부여하려 노력하진 않았어요. 이야기에 필요한 역할들이 있었고, 살면서 만났거나 스쳐간 다양한 사람들과 픽션 속 사랑했던 인물들을 떠올리며 캐릭터를 채워넣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연극 <타지마할의 근위병>의 두 인물 '휴마윤'과 '바불'이 만화 곳곳에 영향을 주었답니다. 이 연극은 한국에서 정식으로는 2017년에 단 한 시즌 상연한 작품인데, 꼭 다시 올라와서 더 많은 관객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요나단의 목소리』에 숨겨진 주인공이 있다면 음악일 것 같아요. 찬송가, 가요, 팝, 클래식 등 다양한 레퍼토리가 나오고, 소리라는 요소가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당장 제목에서도 드러나고요. 구상하실 때부터 염두에 두셨던 부분인가요?
노래를 부르는 주인공을 내세웠기 때문에 물론 음악이 어느 정도는 나올 계획이었지만, 이야기를 만들어갈 때 생각보다 훨씬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대 배경을 보여주는 데에 대중음악만한 것이 없더군요. 종종 주요 인물들과 동년배라서 작품이 친근하게 느껴졌다는 독자 감상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복음성가 중 「이 시간 너의 맘 속에」는 실제로 제가 어릴 적 외롭거나 무서울 때 혼자서 부르던 노래입니다. 그 기억 때문에 작품 속에서도 주요한 곡으로 쓰였고요. 이 자리를 빌어 『요나단의 목소리』가 곡을 빌린 음악가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하고 싶습니다. 반면, 만화에 나오는 '목소리'로 통칭한 많은 소리들은 만화를 읽는 개개인의 머릿속에서 모두 다른 소리일 것이고 이것은 소리가 없는 매체가 가진 아주 재밌는 강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상대적으로 트래픽이 적은 딜리헙에서 비정기적으로 연재하셨다고 들었어요. 왜 이런 결정을 하셨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언제부터 독자 반응을 느끼셨는지도 알고 싶습니다,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는 큰 포털에 연재하고 싶은 의사는 없으셨나요?
구상 단계부터 웹툰 시장에 어울리는 작품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또, 작품을 정기적으로 작업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연재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만화가 결말까지 완성된 뒤에 공개할 생각이었으나, 첫 30페이지 정도를 그렸을 때 이미 혼자 작업하는 일이 지겨워졌고 친구들에게 감상을 갈취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개인적으로 만화를 올릴만한 플랫폼을 찾다가 딜리헙에서 비정기 연재를 시작했는데, 뜻밖에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독자층이 한정되어 있어서 반응 하나 하나를 꼼꼼히 읽을 수 있었고 한동안은 남겨주시는 후기를 모조리 캡쳐해서 컴퓨터에 보관하기도 했답니다.
특히, '주변에 선우 같은 친구가 있다면 나도 의영이가 되어주고 싶다'라는 감상을 보았을 때 예상치 못하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 만화가 어떤 마음가짐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기약 없는 연재를 실시간으로 기다려 읽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딜리헙에서 함께 해주신 독자님들 덕에 게으른 성정에도 불구하고 완결까지 꾸준히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픽션에 꼭 메시지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요나단의 목소리』는 분명히 전하고자 하는 바가 있다고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누군가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어떤 목표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 메시지를 간단하게 풀 수 있다면 무엇인지 들려주세요.
『요나단의 목소리』는 사랑이라고 불리는 학대에 관한 이야기이고, 그러나 사랑으로 삶을 되찾는 이야기입니다. 저 스스로를 위해 시작했고, 우리의 잘못으로 잃어버린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끝까지 그렸습니다.
연출에 있어 확고한 개성과 절제가 인상적인 작품입니다. 빽빽한 대사나 화면이 아닌데, 크게 눈여겨보지 않았던 인물들의 동작이나 디테일이 모두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요. 어떤 레퍼런스나 문화적 영향력이 있나요?
연극을 10년가량 즐겨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무대 위에서 무엇을 하는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지가 작품을 완성하더라고요. 제 만화가 그런 경지는 아니지만 인물들의 연기가 과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하며 빈 공간, 칸과 칸 사이를 채우는 독자들의 상상력에 기꺼이 기대고 있습니다.
*정해나 (글·그림) 만화가. 『요나단의 목소리』는 그의 데뷔작이다. 『요나단의 목소리』는 딜리헙에서 연재되던 중 탁월한 연출과 스토리텔링만으로 화제가 되었고, 제 5회 무지개 책갈피 퀴어 문학상을 수상했다. 갈등과 슬픔, 그리고 그 안에서도 살아갈 이유를 놀라운 섬세함과 통찰력으로 펼쳐놓은 이 작품은 연재 당시에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중학생부터 직장인, 동료 작가들을 비롯한 넓은 독자들 사이에서 명작으로 회자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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