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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4개월, 짧은 생이 남기고 간 한 줄기 빛

『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보연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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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에 담긴 찰나였지만 찬란했던 은찬이의 삶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데 귀감이 되어준다. (2022.11.14)


여섯 살 은찬이는 무릎이 아파 성장통인 줄 알고 찾은 병원에서 급성림프백혈병 진단을 받는다. 이후 7년간 항암 치료, 방사선 치료, 조혈 모세포 이식, 뇌출혈, 세 번의 재발을 반복하다 열세 살에 결국 하늘의 별이 된다. 은찬이를 살릴 방법은 있었다. '킴리아'라는 꿈의 항암제가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5억 원이라는 막대한 치료비를 마련하기 위해 집을 팔아야 했고, 복잡하고 느린 행정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점점 죽어갔다.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에 킴리아 치료를 위한 첫걸음을 내딛기로 한 날, 은찬이는 눈을 감고 만다. 『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는 평범한 투병기가 아니다. 자식 잃은 엄마가 참척의 아픔보다 더 큰 사랑과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려낸 아들의 부활기다. 책 한 권에 담긴 찰나였지만 찬란했던 은찬이의 삶은 우리가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타인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데 귀감이 되어준다.



첫 책 『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저는 은찬이 엄마이자 이 책의 작가 이보연입니다. 이 책은 백혈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하다가 떠난 제 아들, 은찬이에 관한 이야기예요. 하지만 가슴 아픈 투병기만 그리지는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7년이라는 시간 동안 투병하다가 열세 살에 떠나간 아이의 이야기라고 하면 그 모든 과정이 슬프고 괴로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았거든요. 아픈 아이를 키우면서도 느낄 수 있었던 행복과 기쁨, 좌절과 고통 속에서도 그것을 이겨내며 희망을 잃지 않던 어리지만 훌륭했던 은찬이의 모습을 다른 분들께도 전하고 싶어 쓴 책입니다. 또 '킴리아'라는 마지막 방법이 있었음에도 이런 소중한 아이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무관심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은찬이의 이야기를 글로 써내려가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하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주변의 독려가 있기도 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은찬이였어요. 은찬이가 떠나자 제가 맡아온 많은 일도 함께 사라지더라고요. 아픈 아이의 엄마, 환자의 간병인, 아들의 친구, 아이의 선생님 같은 은찬이를 위해 했던 수많은 일들이요. 저에게 시간이 너무 많아진 거죠. 은찬이가 그렇게도 살고 싶어 하던 그 시간들을 허투루 보낼 수가 없었어요. 은찬이 대신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그중 하나가 글을 쓰는 것이더라고요. 은찬이처럼 살 수는 없겠지만 은찬이를 통해 배운 것들을 글로 전달할 수는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은찬이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기로 결심했죠. 은찬이의 삶을 통해 분명 누군가 좋은 에너지를 받을 거라는 이상한 확신이 있었어요.

'우리도 아이가 아프기 전까지는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될 줄 꿈에도 생각 못 했었다 (...) 내가 결국 자식 잃은 부모가 될 거라고는 몇 년 전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247쪽)라고 하셨어요. 은찬이는 무릎이 아파 찾았던 병원에서 백혈병 판정을 받았는데요, 처음엔 믿기 힘드셨을 것 같아요.

사람들은 백혈병이라고 하면 흔히 코피를 흘리거나 쓰러질 듯 가녀린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여섯 살 남자 아이가 무릎이 아프고 몸에 멍이 한두 개 생기는 건 너무나 평범한 일이잖아요. 피검사 한 번 하고 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는 순간, 꿈같았고 오진이길 바랐죠. 아이들 어릴 때 감기 걸리는 것도 피하려 어린이집도 안 보냈고, 알레르기라도 생길까 봐 시판 과자는 사 먹여본 적도 없었어요. 건강하게 키우려고 다 만들어 먹였지요. 그렇게 키운 내 아이가 백혈병이라니... 믿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소아암 병동에 입원하고 보니 같은 병실에 입원한 아이들 모두가 정말 평범했어요. 특별히 방사선에 노출된 아이도 없고, 방치되어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도 없었고요. 피아노 치기를 좋아하는 아이, 태권도가 특기인 아이, 휴대폰 게임 때문에 엄마와 실랑이하는 아이... 그냥 우리 이웃집에 사는 그런 아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런 병 판정을 받고 그날부로 소아암 환아가 돼요.

은찬이는 어른들도 견디기 힘든 고통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자기 삶에 진심이었던 훌륭한 아이였어요. 자기처럼 아픈 아이들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다던 은찬이는, 비록 12년 4개월 짧은 생을 살다 갔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을 주는 생애를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은찬이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요?

어른들이요. 기성세대, MZ세대 할 것 없이 이 시대의 모든 어른들에게 은찬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우리가 살기 팍팍한 세상에 살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삶 속에서 좌절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의 시간은 귀하고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시력까지 잃은 와중에 귀로 들어서라도 공부하려 했던 은찬이를 기억하며 본인이 가진 것들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면 좋겠어요. 아울러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어 했던 은찬이처럼 내가 가진 것을 남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된다면 더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희와 같이 가족을 잃은 슬픔을 겪고 있는 분들께도 떠난 이를 기리는 일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음을, 떠난 이와 함께 더 단단하게 살 수 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은찬이는 떠났지만 '신약의 신속 등재와 킴리아 건강 보험 급여 적용'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 진행, 1인 시위, 국정 감사 출석, 기자 회견 등의 활동을 해오셨어요. 아무리 엄마라고 해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요, 작가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더불어 킴리아가 건강보험에 등재된 지금, 우리 사회가 더 해야 할 숙제는 무엇일까요?

저는 사실 발표하는 것도 싫어하던 사람이라 남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카메라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부담이고 어려움이었는데요. '이보연'이라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은찬이 엄마'라는 이름으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두렵지가 않더라고요. 만약에 은찬이가 킴리아 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살아 있었다면 휠체어를 타고라도 그 자리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을 아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일을 제가 대신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어요. 

게다가 은찬이를 보낸 후, 킴리아 치료가 필요한 아이를 몇 알게 되었는데 비용 문제로 약의 건강 보험 등재만을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이들은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그 아이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주고 있지 않더라고요. 저라도 나서지 않으면 그 이후로 여러 가정에 줄줄이 저희 같은 일이 생길게 분명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습니다. 

킴리아가 급여 등재 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 사회가 남의 일에 관심은 많지만 정작 그를 해결하기 위한 목소리를 내는 데는 굉장히 소극적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나 나의 일이 아닌, 앞으로도 내 일이 아닐 것 같은 일에는 더더욱 그렇더라고요. 어려운 사람,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 사람을 한 번 더 돌아보며 서명 한 번 하는 일, 글 한 번 퍼 나르는 별것 아닌 일이 모여 생명을 살리고 법안을 만들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은찬이의 평생을 손수 담은 이 책이 작가님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은찬이가 이 책을 본다면 뭐라 해줄까요?

저는 이 책을 제 책이 아니라 '은찬이 책'이라고 말하거든요. 이 책은 사실 제게 그냥 은찬이예요. 은찬이가 자라는 모습,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 아이는 정말 훌륭하게 자라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일을 할 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결국 그러지 못하고 떠난 은찬이가 이 책을 통해 여러 사람을 변화 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기에 이 책은 저에게 은찬이와도 같은 존재예요. 생전의 은찬이는 제가 하는 일은 뭐든 "엄마 멋지다, 잘했다"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던 아이였어요. 그래서 이 책을 쓴 것도 아마 기뻐하며 멋지다고 칭찬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고마워요"라고 말해주면 정말 행복할 것 같고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주인공, 사랑하는 아들, 우리 은찬이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은찬이가 떠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눈물이 앞을 가려 은찬이에게 제대로 말을 걸어본 적이 없거든요. 이 기회를 빌어 이야기 해봐야겠네요. 

은찬아, 이따금 눈을 감고 네가 있는 그곳을 상상해본단다. 네가 좋아하는 꽃과 나비가 있는 밝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자전거도 타고 마음껏 책도 읽고 있겠지? 네가 없는 이 세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프고 슬프지만 너에게 배운 것들 잊지 않으며 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 '하늘나라에서도 같이 살아요'라던 너의 문자메시지 기억하며 너와 같은 곳에 가기 위해 열심히 살려고 해. 나중에 은찬이를 만났을 때 "엄마 씩씩하게 잘 살다왔지!"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네 몫까지 훌륭하게 살아낼게. 엄마 만날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줘. 나의 천사. 나의 아들. 사랑해.



*이보연

낮에는 아이들을 키우고 밤에는 공부를 하며 사회 복귀를 꿈꾸던 평범한 주부였다. 2014년 11월 아들 은찬이가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7년간 아이를 간호했고, 2021년 6월에 아이를 떠나보내고 9월부터 아이가 쓰지 못하고 간 약 '킴리아'를 다른 아이들은 쓸 수 있도록 기자 회견, 국정 감사 참고인 출석, 1인 시위 등을 해왔다. 이 책을 쓰는 일도 은찬이가 엄마에게 남겨준 몫이라 생각하며 매일 은찬이를 기억하고 기록한다.




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은찬이의 연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보연 저
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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