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을 쓰며 자라는 마음 - 윤여림, 천미진 작가 인터뷰
『상상하는 어른』 윤여림, 천미진 작가 인터뷰
평상시에는 엄마로, 직장인으로 살다가 글을 쓸 때는 어린이의 마음에 빙의해서 창작하는 두 작가의 일상과 작업 이야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2022.10.21)
『상상하는 어른』은 이십여 년 동안 그림책에 글을 쓰며 살아가는 윤여림, 천미진 두 작가의 첫 에세이다. 윤여림 작가는 전업 작가로 살면서 일상의 조각이 상상력을 만나면서 그림책 한 권이 되기까지의 집필 과정을 썼다. 천미진 작가는 현직 편집장으로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창작 노하우를 중점적으로 담았다. 그림책은 어린이가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가들이 창작하는, 어린이의 세계와 가장 가까운 장르다. 평상시에는 엄마로, 직장인으로 살다가 글을 쓸 때는 어린이의 마음에 빙의해서 창작하는 두 작가의 일상과 작업 이야기에 대해 물어보았다.
두 분은 20여 년간 수십 권의 그림책에 글을 쓰는 작가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림책 글 작가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생소할 수도 있는데요, 소개 부탁드려요.
윤여림 : 쉽게 말하자면, 그림책을 위해 글만 쓰는 사람. 그가 바로 그림책 글 작가입니다. 그림책 글 작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솜씨가 없는 대신에 장면마다 들어갈 그림을 생생하게 떠올리는 상상력이 있습니다. 상상력으로 떠올린 장면에 맞춰 글을 써나가는 것이지요. 그림책의 글과 그림은 마치 퍼즐 조각과도 같습니다. 하나만 있을 때에는 완벽한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퍼즐 조각들이 빈틈없이 제자리에 들어갈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되듯이 글과 그림이 함께 있을 때 한 권의 그림책이 완성되지요. 우리 그림책 글 작가는 완성된 퍼즐 작품인 그림책을 상상하면서 글 조각 하나하나를 만듭니다. 그 글들이 나중에 그림작가가 그린 그림들과 딱 맞아떨어질 때의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답니다.
그림책의 출판 과정이 생소하신 분들에게 그림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천미진 : 처음 구상을 떠올리고 완성하는 데까지는 여러 해가 걸립니다. 글이 완성된 후에는 작화를 시작하는데 저는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출판사의 편집자, 디자이너와 의논을 거쳐 글에 어울리는 그림 작가를 섭외합니다. 그리고 그림 작가가 제 글을 보고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 뜻을 밝히시면 비로소 작화가 시작되는 거지요. 그림을 그리는 데는 약 6개월에서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려요. 스케치 상에서 원고의 분위기와 의미가 잘 전달되었는지 일차적으로 살펴보고, 채색 중에도 글 작가를 비롯해 편집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그림 작가가 계속 소통을 이어갑니다. 그렇게 그림까지 완성되고 나면, 두세 달의 편집과 인쇄 및 제본 등의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그림책 한 권이 완성되는 데는 약 1~2년 정도가 소요됩니다.
훌륭한 그림책이 많이 출간되면서 어른들 사이에서도 그림책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윤여림 : 그림책은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감각을 충족시켜줍니다. 먼저, 시각적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지요. 그림책을 펼치면 그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이 그림의 매력이 어마어마하거든요. 청각적인 즐거움 또한 큽니다. 그림책의 글은 시처럼 소리 내어 읽을 때 그 매력이 배가 되니까요. 게다가 그림책은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줄 때가 많아요. 아이가 부모의 목소리와 함께 그림책을 읽는 것처럼 어른도 누군가의 목소리로 그림책을 감상할 때가 있잖아요. 그렇게 시각적, 청각적 쾌감을 제대로 맛본 사람들은 그림책의 매력에서 쉽게 헤어나오기가 어렵지요. 그림책으로 만나는 주제가 다양하다는 것도 그림책의 매력입니다. 아이들의 기본 생활 습관을 알려 주는 그림책에서부터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그림책까지 다루는 주제의 폭과 깊이가 엄청나지요.
천미진 : 저는 마음이 메마르고 힘들었을 때 그림책이 좋아졌어요.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또 일을 떠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몰라 작은 방황을 하고 있을 때, 그림책이 제게 무엇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지 알려주었어요. 그것도 어린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도 짧은 글로, 커다란 감동과 깨달음을 제 마음에 심어주었습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고 간결한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 휴식과 사랑을 전한다는 것. 이것이 그림책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읽고 쓰는 삶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윤여림 작가님이 아이디어 씨앗에서 책이라는 꽃으로 피어나는 과정이 담긴 집필 노트가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보통 완성된 글만 만나게 되니까요. 천미진 작가님의 글쓰기 워크숍 내용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방향타가 되어주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도 자기에게는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이런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윤여림 : 시를 쓰는 재능과 논픽션 글을 쓰는 재능과 이야기를 쓰는 재능은 서로 다른 것 같아요. 이야기에도 여러 장르가 있는데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장르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저는 먼저 자기의 능력이 어느 글쓰기에 특화되어 있는지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상상하는 힘이 있다면 주저 없이 이야기 쓰기에 도전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이미지의 조각과 합을 이루는 글을 쓰는 능력이 있다는 걸 발견한 분들은 그림책 글쓰기에 도전해보세요. 그림책 글쓰기 기술은 노력하면 늘 수 있거든요. 다른 글쓰기처럼요.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냐고 질문을 할 때마다 해 주는 대답이 있어요. "무조건 쓰세요. 잘 쓰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쓰세요." 그게 글쓰기의 시작이거든요. 어떤 장르의 글쓰기든 글을 쓰고 싶은 모든 분들에게 이 조언을 그대로 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쓰세요."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의 습작을 살펴보면,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나 나의 잊지 못할 추억을 그대로 담아오는 경우가 많다."라고 하셨습니다. 나의 이야기가 책이 되려면 어떻게 써야 할까요?
천미진 : 대부분의 이야기는 작가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영감으로부터 시작될 거예요. 다만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은 벌써 수십 년 전 이야기겠지요. 그때의 문화와 환경, 정서가 지금 아이들과 다른 점이 많기 때문에 요즘 아이들도 관심과 호기심, 공감을 가질 수 있는 이야기인가 다시 한번 점검해보자는 뜻에서 『상상하는 어른』에 그런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또, 저는 작가가 이야기를 창작했어도 책은 결국 독자의 책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면 독자의 정서가 소외될 수 있어요. 작가의 추억을 독자가 제삼자의 입장에서 구경하기보다는 작가가 쓴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의 내면을 살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하되,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명확히 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이야기의 재미와 상상력, 그리고 짜임새의 완성도를 더해 더 훌륭히 가공하는 작업이 창작에는 꼭 필요합니다.
윤여림 작가님은 두 아이를 양육하며 22년간 글을 써오셨고, 천미진 작가님은 그림책 출판사의 편집장으로 일하시면서 작가로의 삶을 유지하고 계십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동시에 하고 싶지만 대다수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요. 일과 창작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셨는지 궁금합니다.
윤여림 : 글을 쓰지 못하면 못 살 것 같다는 절박한 열망이 육아와 창작의 균형을 맞췄다고 일단 멋있게 말씀드릴게요.(웃음) 실상은 '멋있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잠을 안 자는 아기에게 성질을 낼 때가 많은 모자란 엄마였고, 패배감에 절어 있던 작가였어요. 게다가 동네 친구가 "나는 그때 언니가 오래 못살 것 같다고 생각했어"라고 말할 정도로 늘 지쳐 있었어요. 그래도 돌이켜보면, 엄마로서의 삶도 작가로서의 삶도 포기하지 않은 내가 대견해요. 완벽한 엄마는 아니었지만, 아이들이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부터는 엄마로만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아이들이 기관에 가 있거나 자는 시간에는 작가로만 보내려고 노력했고요. 아무리 고단해도 그 원칙만은 깨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천미진 : 제가 작가 지망생일 당시 그림책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너무나 강했기 때문에 제 꿈을 주저하거나 미뤄둘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혹시 일과 병행하기 버겁지 않을까를 걱정하며 이성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뜨거운지 차가운지도 모른 채 일단 물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저는 현재 도서출판 다림의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가로 활동하며 편집자로 일하는 것은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기도 합니다. 저는 창작자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하는 편집자이자, 편집자의 업무와 여러 사정을 너무나 잘 이해하는 작가로 일하고 있어요. 저는 편집자로서 퇴근한 후에도 그림책을 생각합니다. 휴일에도요. 언제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없나, 지금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까를 늘 고민하지요. 그래서 머릿속이 좀 복잡하고, 그 외의 다른 일에는 잘 신경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저는 그것이 저만의 워라벨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도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퇴근 후에도 제 일에 대해 생각하는 것. 그리고 두 가지 일이 상호작용을 하며 느리고 서툴더라도 조금씩 성장하며 나아가고 있다고 믿고 있어요.
두 작가님께서 "어린이 작가가 되기를 잘했다"라고 공통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윤여림 : 저는 남들이 보기에 늘 밝은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사실은 마음 깊은 곳에 어두운 늪이 있었지요. 엄마가 되고 나서, 또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고 나서부터 늪이 점점 더 그 실체를 드러내더니 저를 빨아들이려고 했어요. 그때 저를 구원한 건 제가 상상한 그림책 이야기, 동화들이었어요. 나를 찾아온 이야기들은 늘 희망에 차 있었거든요. 이야기 속 아이는 좌절하지 않았고 끝내 웃었어요. 두려움을 이기고 헤엄을 쳤고, 친구를 만났고, 적을 물리쳤고, 행복을 찾았어요. 그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다 보니 어느새 저도 그 아이들을 닮아가더라고요. 지금은 어두운 늪이 아주 작아졌어요. 아예 사라진 게 아니기 때문에 저는 앞으로도 계속 어린이와 함께하는 이야기를 써야만 해요.
천미진 : 제가 그림책 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저는 오래도록 마음에 담아온 그때의 감사함을 『밤의 노래』에 담아 표현할 수 있었어요. 우리가 하는 일들이 세상을 얼마나 안전하고 따뜻하게 지키는가에 대해 말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요. 저는 그림책 『우리는 벚꽃이야』를 통해 우리에게 간혹 추운 겨울이 오더라도 벚꽃처럼 견뎌내자는 이야기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에요. 『떡국의 마음』을 통해 새해 복을 비는 덕담과 기도를 아이들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행운도 가질 수 있었지요. 제가 하는 일이 세상에 위로와 사랑, 따스함과 행복을 전할 수 있음에 문득문득 큰 감사를 느끼며, 그럴 때마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윤여림 출판사에서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다 그림책의 세계에 홀려 작가가 되었다. 재미난 이야기를 쓰면서 밝아졌고, 성장을 노래하는 이야기를 쓰면서 어른이 되었고, 희망을 꿈꾸는 이야기를 쓰면서 씩씩해졌다. 어린이처럼 언제까지나 자라나는 작가이고 싶다. *천미진 이십 년 가까이 그림책 편집자로 일하면서 그림책 글을 쓰는 작가로 살고 있다. 그리운 것과 자랑스러워하는 것, 사랑하는 것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최근에는 꾸준히 그림책 글쓰기 워크숍을 이어가며 그림책 작가를 꿈꾸는 분들과 창작의 기쁨과 괴로움을 공유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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