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릭의 창작 일기] 나의 수상한 취미와 K씨의 세상
슬릭의 창작 일기 10화
누군가의 삶을 죄책감 없이 조롱하고 비난하며 가벼운 구경거리, 가십거리로 여길 빌미를 제공한다. 인신공격을 오락 삼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비참한가. (2022.10.11)
몇 년 전부터 특이한 취미가 생겼다. 이름하여 '이상한 유튜브 찾아다니기'. 어렸을 때부터 남들이 잘 찾지 않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아버린, 이른바 '마이너 감성'이 충만했던 나는 코로나가 터진 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자 유튜브 세계 속으로 빠졌고, 그 안에서도 '마이너'한 동영상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자신 있게 말하기는 좀 부끄럽지만 몇 가지 예를 들자면 인천의 한 드럼 학원에서 운영하는 취미반 홍보 채널, 도박으로 전 재산을 잃고 단도박을 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며 매일의 다짐을 기록하는 개인 채널, 무속인의 사주 풀이 및 신굿 브이로그 채널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최근에 가장 자주 보는 채널은 한 인터넷 방송인 K씨의 채널이다. 이 글이 그의 채널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그래서 그가 계속해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혹여 그에게 원치 않은 일이 될까 하여 채널명은 밝히지 않겠다.
어느 날 우연히 인물 취재 전문 유튜브 채널(마이너한 유튜브 채널을 찾는 데에 적격이다)을 통해 K씨를 알게 되었다. 그는 트랜스젠더로 스스로를 소개했고 성확정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의 가시화를 위해 인터뷰를 신청했다는 말과 함께 그는 자신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담담한 어조로 조곤조곤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 그대로였다. 성별 이분법으로 나뉜 공중화장실을 사용하는 데에 대한 애로 사항, 성별 패싱이 모호한 외모로 인해 병원 등에서 생기는 편견이나 오해, 인터넷 방송을 하면서 듣는 무수한 성차별적 악플 등 성 소수자로 살아가며 느끼는 사회에 대해 더없이 솔직한 경험을 고백했다. 그의 말 속에 은은히 묻어있는 '언PC함'(PC: 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을 쉬이 무시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의 세상이 궁금해졌다. 바로 그의 유튜브 채널을 찾아내었고, 인터넷 세상에 떠도는 이러저러한 그의 정보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K씨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프리카TV라는 플랫폼을 통해 개인 인터넷 방송 채널을 운영했다고 한다. 그 시절의 방송을 볼 수는 없지만 위키 사이트에 의하면 베스트BJ(방송 시간 500시간 이상, 애청자 1000명 이상, 최근 3개월 내 방송 일수 60일 이상 등 일정 조건을 만족할 시 부여되는 채널 등급)에 선정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갔지만 과도한 노출, 신체 자해 등으로 채널이 정지되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요 콘텐츠는 메이크업, 댄스, 일상 및 라이브 방송이다. 사실 그의 영상 속 대부분의 모습은 스스로의 얼굴이 카메라에 어떻게 찍히는지 쉴 새 없이 확인하며 용모를 가다듬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자신의 마음에 드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을지, 그는 장장 4시간이 넘는 라이브 방송 내내 긴 머리카락을 빗어 넘기고 화면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며 표정을 미묘하게 바꾼다. 시청자들과의 채팅 내용도 대부분 외모에 관한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보일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노력한다. 그 '예쁨'의 기준은 가부장제 아래 구성된 사회 문화적 '여성스러움'에 있다. 작고 여리며 마른 몸, 하얗고 잡티가 없는 피부, 비교적 높은 음역대의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 길고 정돈된 머리카락 등의 것들이다. 사람은 각자 갈망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이 있고 때로는 그것이 사회 통념상의 성별성을 띠기도 한다. 그렇기에 K씨의 '여성스러워'지고픈 욕망은 조금 기이할 만큼 극단적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성스러워'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상상치 못할 만큼 심한 욕설과 악담을 듣는다. 그의 '여성스럽지 않음'을 조롱하는 게시판이 있을 정도이다. 어떻게 견딜까 싶을 정도로 무자비한 비난의 글들은, 그가 라이브 방송을 하는 날에는 실시간으로 쏟아지기도 한다. 그리고 K씨는 자신의 외모가 얼마나 왜곡적으로 촬영되었는지 해명하는 메시지를 담은 동영상을 업로드한다. 더 좋은 카메라를 구입하고 그 앞에서 더 예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때로는 자신의 체구를 자조하기도 한다.
나는 아연실색하고 만다. 정말 싫지만 존재는 할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했던 세상의 시퍼런 일면을 실감하게 된다. K씨는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험하고 나쁜 말들 속에 살아야 하는 것일까. 무엇때문에 끊임없이 그의 '여성스러움'을 증명해야 하는 것일까. 성별 이분법, 루키즘(외모 지상주의), 미소지니(여성 혐오)와 익명성의 끔찍한 조합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 자격을 잃게 한다. 누군가의 삶을 죄책감 없이 조롱하고 비난하며 가벼운 구경거리, 가십거리로 여길 빌미를 제공한다. 인신공격을 오락 삼는 사람의 삶은 얼마나 비참한가. 그 가운데 날 선 비웃음을 온전히 감당하고 있을 K씨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도 헤아리지 않을 수 없다. 사이버 수사대에 신고를 해야 하나, 악플 달지 말라는 댓글을 달아야 하나. 무엇을 떠올려도 내가 당장 바꿀 수 있는 것은 없어 보였다. 오랜 시간 축적된 고통이 딱딱하게 굳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슬퍼하고 화를 내야 할 지 모를 그의 세계였지만 나는 왠지 그곳으로부터 쉽게 도망칠 수가 없었다. K씨가 그곳에 살아있기 때문이었다.
문득 몇 년 전에 벌였던 온라인 설전이 떠오른다.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는 이름으로 시스젠더(태어날 때 지정된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의 인권 신장만을 페미니즘이라 주장하는 사람들과 트랜스젠더에 대해 다소 과격한 논쟁을 한 적이 있다. 모든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내게 MTF 트랜스젠더(Male to Female, 지정 성별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 전환)의 존재는 시스젠더 여성의 인권과 상충한다는 의견을 보내왔었다. 성 정체성, 즉 젠더는 가부장제 아래 형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가부장제가 사라진 성평등한 세상에서 실존할 수 없으며, 오로지 태어날 때 부여받은 생물학적 성별만이 여성/남성/간성(중성)으로 실존하고, 그렇기 때문에 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은 대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고픈 지정 성별 남성만이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당장 내 주변에 수많은 젠더퀴어(자신의 지정 성별과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지 않고, 그 성별 정체성이 남성도 여성도 아닌 상태, 또는 그 사람)들과 그들의 다양한 삶이 이 납작한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었지만, 이 주장이 온전히 '과학적'으로 타당한지 궁금하여 수많은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최근 연구들은 여태까지의 생물학적 성별의 구분이 과학적으로 얼마나 모호한 기준을 따라왔는지 증명하고 있다. 이를테면 인간의 생물학적 성별을 구분해왔던 염색체, 유전자, 내/외성기의 형태와 기능, 호르몬, 뇌구조(!) 등은 여성/남성/간성의 일관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음이 밝혀졌다. 주요 연구 결과들을 살펴보면, XY 염색체를 가진 사람(전통적 구분법으로는 남성에 해당됨) 중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에 반응하지 않아 여성적 특성을 지닌 사람이 존재한다. 특정 의학적 상태인 XX염색체를 가진 사람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XY 염색체를 가진 사람과 구분할 수 없다. 2021년 미국에서 태어난 1억 4000만 명의 사람 중 최소 28만 명은 남성기/여성기의 전형적 모델에 맞지 않은 성기를 가지고 태어났다. 성별에 따른 뇌구조의 차이 역시 유의미한 지표를 얻지 못했다. 즉, 성별은 생물학적으로 이분(혹은 삼분)될 수 없다. (이 문장을 믿을 수 없다면 성별 이분법이 '믿음' 위에 존재했다는 것이 증명된다. 농담이고 최근의 생물학 연구를 찾아보시길 바란다)
K씨의 존재는 여성인권과 상충할까? 그가 '생물학적 남성'이면서 '여성 패싱'을 원하기 때문에,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기 때문에 지정 성별 여성들의 삶과 권리, 인간적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을까? 아니,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어떤 생물학적 남성이 성범죄를 위해 '여장'을 했다면, 그리고 범죄 행각을 들킨 그가 자신을 '트랜스젠더'라고 변명한다면 그것은 K씨와 같이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는 트랜스젠더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걸까?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대상화와 타자화는 이런 식으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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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 작가. 누구도 해치지 않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괄호가 많은 편지』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