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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 "그런 게 저한테는 행복이에요"

그림 에세이 『은혜씨의 포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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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만나서 대화도 하고 "같이 카페 갈래? 가서 커피 마실래?" 그런 게 좋아요. 그런 게 저한테는 행복이고, 전 그런 걸 제일 좋아해요. (2022.09.23)

인터뷰 장소 협찬 : 카페꼼마 여의도신영증권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준 배우 정은혜. 극중에서 이영희를 연기한 그는 동생 이영옥 역의 한지민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다운증후군 배우가 주조연급으로 등장하는 것은 TV 드라마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시청한 많은 이들이 정은혜의 더없이 사실적인 연기에 함께 울고 웃었다. 배우로서 정은혜는 2005년 옴니버스 영화 <다섯 개의 시선>에 출연한 바 있다(<언니가 이해하셔야 돼요>, 박경희 감독). 그러나 진짜 직업은 따로 있다. 바로 화가. 2016년 문호리 리버마켓에 셀러로 참여하면서 '니 얼굴'이라는 이름의 부스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4000여 명의 얼굴을 그렸다. 『은혜씨의 포옹』은 화가 정은혜의 첫 번째 그림 에세이다. 

사람들을 안아주는 것도 안기는 것도 좋아하는 작가가 포옹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을 모았다. 가족과 지인들, 김미경 화가, 한지민 배우, 김우빈 배우, 노희경 작가 등 자신이 뜨겁게 끌어안은 이들이 주인공이다. 함께 담은 글을 통해 솔직한 마음도 전한다. 


"못난 사람은 없어요."

"그림은 누군가에게 내가 뭔가를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지금은 사람들 속에 있으니까 너무 행복해요."

"긴장할 게 뭐 있어요. 할 수 있는 만큼 해야죠."

"나는 포기하지 않아요."


그의 꾸밈없는 말들은 독자들을 포옥 안아주고 위로를 건넨다. 

지난 13일, 정은혜 작가와 만난 자리에는 그의 어머니인 장차현실 만화가도 함께했다. 장차현실은 1997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에 『색녀열전』을 연재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만화를 통한 여성과 장애인 운동을 이어왔다. 자전적 만화 『또리네 집』을 비롯해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먹자』『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등을 쓰고 그렸다. 한국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회장으로서 발달 장애인 권리 확보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그런 게 저한테는 행복이에요

책 나오니까 좋으세요? 

정은혜 : 네.

유튜브 채널 <니얼굴 은혜씨>에서 봤어요. 초판본에 사인하시는 모습. 처음 책 보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장차현실 : 그때 (이연실 대표에게) 뭐라 그랬더라? 수고했어요, 그랬던가.(웃음)

정은혜 : 대단하죠. 수고하고.

작가님이 제일 수고하셨잖아요. 

정은혜 : 그런가?

다 작가님 덕분이죠.(웃음)

정은혜 : 그렇죠, 제 덕이고. 이연실 대표님 덕분에 이렇게 책도 나오고.

전시회는 잘 마치셨어요? 출간과 함께 개인전 <포옹전>을 여셨는데요. 

정은혜 : 잘 마쳤죠. 사람들이 좋은 반응이 있었고. 사인도 해드려야 하고 사진도 찍고 하니까, 팔 떨어지게 했죠.

초판본에는 사인과 함께 낙관이 찍혀 있어요. 병아리 문양의 낙관인데, 왜 병아리인가요? 

정은혜 : 제가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그림을 그렸었고. 음... 거기가 문호리니까 병아리 상징이에요. 

장차현실 : 문호리 리버마켓의 상징으로 병아리를 많이 쓰는데요. 은혜한테 너무 적당한 것 같더라고요. 이제 날갯짓을 하고 날아오르려는 병아리가. 그래서 제가 도장을 팠어요. 그걸 낙관으로 썼죠.

정은혜 : 신해철 씨 아시죠? '날아라 병아리'

그럼요, 그 노래 좋아해요. 

장차현실 : 마켓이 끝나는 시간을 알리는 노래로 신해철의 '날아라 병아리'를 틀어요.




이번 책의 가장 앞에 실린 그림이 자화상이에요. 지금까지 자화상을 여러 개 그리셨죠?

정은혜 : 그렇죠.

그 중에서 왜 지금의 그림을 고르셨어요? 

정은혜 : 제가 잠실창작스튜디오에 다녔었는데, 그때 채색으로 했어요. 다른 작가님들도 있고, 저는 10기 입주로 들어갔고, 채색을 많이 했죠. 그 중에 자화상 그렸어요. 저니까. 자화상 (속의) 그 옷이 원래 있었어요. 긴팔에 줄무늬에, 있었어요. 줄무늬에 잘 맞은 걸로 배경으로 줄무늬를 그렸어요.

책 제목이 『은혜 씨의 포옹』이에요. 포옹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쓰셨는데, 사람들을 안는 게 좋으세요? 

정은혜 : 그럼요. 

장차현실 : 올해 은혜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자료를 찾다 사진을 보는데, 끌어안고 찍은 사진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게 또 재밌고...

정은혜 : 제가 그린 적이 있어요. 

장차현실 : 포옹 그림?

정은혜 : 응.

장차현실 : 은혜는 키가 작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안으면 대부분 은혜 머리가 심장 있는 데에 딱 들어와요. 어떤 때는 얼굴 두 개가 겹쳐지기도 해요. 그게 너무 재밌고.(웃음) 코로나 때문에 '가까이'는 금기가 됐잖아요. 포옹은 더 그렇고. (포옹이) 너무 아련하고 그립기도 하고, 그래서 (은혜한테) '그려볼래?'했더니 그리겠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그린 거 말고도 포옹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몰라요.

사람이 왜 그렇게 좋으세요?

정은혜 :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사람들 만나서 대화도 하고 "같이 카페 갈래? 가서 커피 마실래?" 그런 게 좋아요. 그런 게 저한테는 행복이고, 전 그런 걸 제일 좋아해요.



장애가 낳은 예술하는 힘

노희경 작가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어요? 

정은혜 : 2020년 개인 전시를 했는데 노희경 작가님이 오셨고, 저를 보고 싶어 해서. 제가 2006년에  <다섯 개의 시선>을 촬영했었고, 노희경 작가님이 그걸 보시고 찾아오신 거예요. 저를 보고 싶어 해서 인터뷰를 오신 거예요. 그때부터 섭외 돼서 다운증후군 언니로 출연하게 된 거죠. 그래서 저희가 제주도에서 가서 첫 촬영을 했죠. 3개월.

3개월 동안 촬영하셨군요. 

정은혜 : 사람들이 어떻게 연기를 잘하냐고 하면서, 어려운데 대사도. 힘들지 않냐고 해서, 알아보시죠. "저랑 사진 찍어주세요"도 있고 "사인을 해주세요"도 있어요. 길가에서도 "(영옥의) 친언니가 쟤야? 이영희야?" 알아보시고 "저 혹시 이영희세요?" 이렇게 보시고. "<우블스> 잘 봤어요"도 있고 "재밌었어요, 울었어요" 그렇게 보시고. 노희경 작가님 덕분에 이렇게 되었죠.

노희경 작가님이 연기에 대해 말씀하신 적은 없나요? 

장차현실 : 너무 잘한다는 얘기만 해주셨어요. "은혜 씨, 너무 최고야."

정은혜 : 저도 봤어요. 봤는데...

장차현실 : 뭘 봤어? 

정은혜 : 저도 <우블스> 속에서 봤는데, 그냥 저예요.

장차현실 : 노희경 작가님이 은혜의 캐릭터를 드라마에 너무 잘 녹이신 것 같아요. 촬영 현장에서는 대사를 여러 번 반복해요. 감정을 끌고 가면서 그렇게 반복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은혜가 되게 잘 하더라고요. 처음에 대사할 때보다 나중에 더 잘하는 정도로 그렇게 반복을 하고...

정은혜 : 근데 반복하는데 별로 힘들지 않았어요. 재밌어요. 

장차현실 : 이건 에피소드인데,(웃음) 처음에 노희경 작가님하고 김우빈, 한지민 배우하고 만나는 시간이었어요. 그때 작가님께서 은혜한테 각서 받으셨어요.(웃음)

무슨 내용이었나요? 

장차현실 : 반복해도 짜증내지 않는다,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다... 각서 내용이 너무 재밌어서 아직도 갖고 있어요.(웃음)

술에 대한 내용이 궁금한데요.(웃음) 주량이 맥주 큰 캔으로 한 캔이라고 들었어요.

장차현실 : 큰 거는 한 캔. 그렇지?

정은혜 : 응.

장차현실 : 작은 거는 두 개? 세 개?

정은혜 : 그렇지. 두세 개.

그만큼 술을 많이 드시면 어떻게 되세요? 

정은혜 : 취하죠, 뭐.

(웃음) 취하면 노래하고 춤추세요?

정은혜 : 그냥 노래만 부르죠, 뭐...

장차현실 :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유튜브 영상으로 봤어요. 얼마 전에 제주도 가셨을 때, 정말 필 받으셨던 데요?(웃음)

정은혜 : (웃음)아... 거기는 삼달다방이에요.

'2022 올해의 양성평등문화상'에서 신진여성문화인상을 받으셨어요. 수상 소감으로 어머님처럼 오래 작품 활동을 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기억하세요?

정은혜 : 그럼요.

장차현실 : 나는 이제 그림 안 그리는데? 나처럼 늙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다고?

정은혜 : 응.

어머님이 화가라서 좋은 점이 있다면 뭐예요? 

정은혜 : 좋은 점?

장차현실 : 내가 그림 그릴 줄 알아서 어떤 게 좋아? 엄마가 그림을 그릴 줄 아니까 네가 그림 그리는 데 도움이 돼?

정은혜 : 상관없어.

(웃음) 왜요, 어머님 아니셨으면 재능을 물려받지 못했을 수도 있잖아요. 

장차현실 : 물려받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지? 

정은혜 : 그렇지.(일동 웃음) 

장차현실 : 하긴, 나보다 더 훌륭하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장차현실 : 네, 제가 못 가진 걸 다 가진 것 같아요.

다큐멘터리 <니얼굴>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셨죠. 동료 화가로서, 정은혜 화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장차현실 : 예술을 할 자질을 갖고 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힘이 장애 때문에 오는 것 같아요. 저는 입시 미술을 통과해서 미술 대학을 나왔고, 머리로 그림을 그려요. 이렇게 그리면 더 좋겠지, 이번보다 다음에 더 잘 그려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려요. 그러니 한계치가 빨리 보이는 거예요. 사실 인간이 생각해서 그리는 게 얼마나 되겠어요. 

은혜는 그런 한계를 갖고 있지 않은 거예요. 감각과 직관으로 그리는 거죠. 공감각이라는 굉장히 좋은 자기 도구, 자기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인 거예요. 공감각이라는 게 사람이 어릴 때 이미 타고나는데 사회화되고 교육되면서 점점 사라지는 거래요. 우리는 교육 속에서 사회화되면서 그런 감각들을 잃어가는 거죠. 은혜는 사회화되지 못했어요. 그런데 예술하는 힘은 거기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은혜의 그림에서 보는 아주 자유로운 원초적인 힘도 거기에서 오는 거예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거죠.

정은혜 화가의 그림은 어떻게 다른 것 같으세요?

장차현실 : 내 그림을 보면 나의 답답한 삶만이 생각나는데, 은혜의 그림을 보면 너무 부러워요. 작업하는 과정을 지켜봐도, 우리는 공식 매뉴얼에 따라서 그리잖아요. 은혜는 그런 게 없어요. 대상을 보고 꽂히는 부분부터 그리기 시작해요. 그리고 완성해요. 보면 데생도 다 틀려 있고 방향도 제각각이고 크기도 달라요. 그런데 완결성은 훨씬 큰 거예요. 우리는 그렇게 그릴 수 있을까요? 못하겠죠. 틀렸다고 지우개로 지우고, 또 지우고, 어설프게 똑같은 그림을 그리겠죠. 피카소나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업은 그런 것들을 뛰어넘었기 때문에 우리가 대단하다고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 건데, 이 발달 장애인 작가는 한순간에 바로 표현해내는 것 같아요. 도구의 쓰임이 자유로워지면. 채색 작품은 2019년부터 그린 거예요.

그 전에는 채색을 안 하셨군요?

장차현실 : 안 했죠. 4년밖에 안 된 거예요.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생각해봤어요. 은혜가 2016년부터 캐리커처를 그렸고, 1년 되니까 (그린 사람이) 1,000명이 됐고, 2년 되니까 2,000명이 넘더라고요. 지금은 4,000명이 넘었어요. 자기의 감각으로 4,000명의 사람을 그리면서 드로잉에 힘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연필로 시작된 그림이 채색으로 옮아갔을 때 바로 그려진 거예요. 그렇게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 자화상이에요. 그때부터 채색을 하기 시작한 거예요. 

정은혜 : 이제는 새로운 거 그려야지, 이제.

장차현실 : 하나 더 그릴 거야?

정은혜 : 응. 

장차현실 : 좋은 생각이야.

어머님이 작가님이 그림을 칭찬해주실 때, 기분이 어떠세요?

정은혜 : 업됐어요.

장차현실 : 내가 업돼있어?(웃음)

아, 어머님이 업됐다고요.(웃음) 작가님이 어머님의 그림을 볼 때는 어떤 느낌이 드세요? 

정은혜 : 그냥 뭐 재밌고. 뭐, 그냥, 상관없어요. 

장차현실 : (웃음) 이제 내 만화에서 너 못난이로 그려줄 거야. 

정은혜 : 하든지 말든지.(일동 웃음)



너는 내 편

작가님은 재능이 출중한 따님 때문에 개인 작업을 뒤로 미뤄두고 계시잖아요. 

장차현실 : 미룬 게 아니에요. 포기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다시 할 수 있을까?' 싶어요. 요즘 몸도 안 좋아지고 그러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더 드는데, 이게 발달 장애 자녀를 둔 부모의 현실이에요. 저는 제가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살아왔어요, 정말. 그런데 어느 순간이 있었어요. 은혜가 스물네 살 때 '아, 두 개를 다 할 수 없는 거구나' 알게 됐어요. 그리고 기도했죠. 나를 내려놓을 테니, 욕심 안 부릴 테니, 제발 우리 은혜는 살게 해달라고. 진짜 하늘은 너무 잔인해요. 꼭 하나는 뺏어야 하나를 줘요. 

그런데 그냥 놔두면 은혜의 삶이 저 모습 그대로 세상에서 사그라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너무 견딜 수가 없더라고. 내가 아무리 잘돼도 행복할까? 생각해 봤을 때 그럴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겠어서, 나를 던지고 은혜한테 올인하게 된 거죠. 엄청난 가능성이 보여서 그런 건 아니에요... 내가 요즘 이렇게 눈물이 많아요... 그냥 은혜가 뭔가를 그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더라고요. 그때는. 그런데 점점 넓혀가더라고요. 은혜도 너무 좋아지고.

지금 어머님이 말씀하신 때 있잖아요. 작가님 스물네 살 무렵이요. 책에서 '동굴'이라고 표현하신 시절인데, 그때 기억하세요?

정은혜 : ...글쎄.

장차현실 : 뇌리에서 지운 것 같더라고요. 마치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처럼, 은혜가 그 시기를 기억 못하는 것 같아요. 그건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닌 것 같기도 해요. (정은혜 작가를 향해) 그런 건 기억이 안 나, 기억이 없어. 그치?

정은혜 : 응. 

장차현실 : 다행이에요. (정은혜 작가를 향해) 기억 안 해도 돼.

어렸을 때, 어머님이 그림을 가르쳐준 적 없었나요? 

정은혜 : 없어요.

화가 엄마로서 '내 새끼, 재능 있나 한 번 볼까?' 생각하실 법도 한데요. 

장차현실 : 그러니까요. 그래서 제가 가슴을 쳤죠. 뭐라고 할까요. 은혜가 장애를 안고 태어났지만 인간답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계속 은혜를 치료해야 되고 교육해야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은혜를 하나의 가능성 있는 존재로 본다기보다는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조금이라도 비장애인이랑 비슷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하려 한 거죠. 저도 스물여섯에 은혜를 처음 낳고 다운증후군인 사람을 처음 본 거예요. 무슨 지식이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나를 믿지 못하고 전문가를 믿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께 어머니는 가장 친한 친구예요?

정은혜 : 글쎄.

장차현실 : 은혜는... 내 편. (눈물을 닦으며) 늘 내 옆에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너무 힘들 때, 너무 슬플 때, 너무 배고플 때, 즐거울 때, 늘 은혜가 내 옆에 있었던 것 같아.

정은혜 : 응?

장차현실 : 고맙다고.

정은혜 : 응. 

장차현실 : 지금도 툴툴거리지만 은혜는 늘 제 옆에 있어요. (정은혜 작가를 바라보며) 은혜가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정은혜 : 응?

장차현실 : 인생 최고의 망나니로 살 수 있었는데.(웃음) 

정은혜 : 왜?

장차현실 : 너 때문에 너무 도덕적으로 살았잖아, 내가.(웃음)

사람들이 정은혜 작가님을 정말 좋아하잖아요. 그림도 좋아하고 연기도 좋아하고. 작가님이 생각하는 자신의 매력은 뭐예요? 

장차현실 : 너의 매력은 뭐야? 어떤 거야?

정은혜 : 글쎄.

장차현실 : 사람들이 왜 이렇게 널 좋아해?

정은혜 : 몰라. 

장차현실 :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은혜는 별로 달라진 게 없어요. 이전의 은혜랑 똑같아요. 뜨개질하는 거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고, 성질 내는 거 똑같고, 늦잠 자는 거 똑같고. (웃음) 사람들이 달라진 거죠. 사람들이 시선이 달라졌어요, 확실히. 최근에 제가 그 감정을 느꼈어요. 제가 외출하려고 하는데 우리 개 '지로'가 쳐다보면서 저도 데려가라고 눈을 반짝이면서 꼬리를 흔드는 거예요. 그 순간 제가 '우리 지로 옷을 하나 사줄까? 거기에 지로라고 수를 놓을까?' 싶으면서, 지로 이름을 수놓는 생각을 하니까 너무 행복한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은혜에게 이런 마음이구나 하고 알았어요. 얘가 많은 걸 갖고 있어서 얻고 싶은 게 아니라, 은혜에게 주고 싶은 마음이 진정 생긴 것 같아요.

정은혜 : 지로는 어릴 때 저한테 다가온 거예요. 저를 좋아하니까. 사랑도 받고. 저도 지로가 귀여우니까 해주고 싶은 게 있고. 귀엽게 봐주니까.

작가님이 지로를 사랑해주니까 지로도 작가님을 사랑하는 거네요.

정은혜 : 그렇죠.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작가님이 먼저 사랑을 주니까 작가님을 사랑하는 걸 수도 있겠네요.

정은혜 : 그렇죠. 근데 (지로가) 낯선 사람들은 물죠. 왕! (일동 웃음)

사람들이 작가님께 어떤 말을 할 때 제일 좋으세요?

정은혜 : 귀엽다고 하죠.

장차현실 : (웃음)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할 때?

정은혜 : 응.

(웃음) 귀엽고 사랑스러우세요. 

정은혜 : 아. (일동 웃음)

장차현실 : 사람들이 그런 마음을 내보인 적이 별로 없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존재를 보고 애틋해하고 눈물 흘리고 마음 아파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지금 우리 집에 너무 부담스러운 물질들이 쌓여 있어요. 수많은 편지, 은혜를 그린 그림, 메시지, 립스틱... 영화(다큐멘터리 <니얼굴>) 속에서 은혜의 터진 손을 보고 보내준 핸드크림, 발 크림... 뜯지도 못하겠어서 그냥 쌓아두고 있는데, 몇 개는 쓰고. 저는 그게 엄청 부담스럽더라고요.(웃음)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건 없어요 

지금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계시죠? (정은혜 작가는 경기도가 제공하는 중증 장애인 일자리에 예술 노동자로 채용돼 매일 출근하고 있다.)

정은혜 : 네.

기분이 어떠세요?

정은혜 : 유일한 돈 버는 소녀 가장.(일동 웃음)

(웃음) 능력자라고 하죠. 

장차현실 : 우리 가족의 부양 의무자.(웃음)

정은혜 : 밑으로 열여덟 살 고2 동생도 있어요. 

장차현실 : 이 자본주의 세상에 돈을 버느냐 못 버느냐가 너무 중요하거든요. 돈을 버는 발달 장애인은 집에서의 위상이 달라요. 스물일곱 청년이 하루 종일 집에서 밥 먹고 TV 보고 뒹굴 거리다가, 자기도 분이 쌓이니까 확 터져서 깨부수고... 그런 날의 연속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진짜 악몽이거든요. 연금이 나온들 무슨 소용이 있어요.

첫 월급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정은혜 : 글쎄.

장차현실 : 하도 오래 돼서.

급여 받으며 일하신지 얼마나 되셨죠? 

장차현실 : 청소 일까지 하면 한 5년 됐을 거예요. 처음에는 청소 일을 했죠. 은혜가 그림을 그렇게 잘 그려도 발달 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청소 일밖에 없더라고요.

복지관에서 청소를 하셨죠?

장차현실 : 네. 그래서 제가 양평에 (장애 운동) 단체 만들고 장애인 일자리 만들어서 예술 노동이 가능하게 했어요. 지금 20명의 발달 장애인이 예술 노동 하고 있어요.

정은혜 : 제 돈으로 보증금을 냈어요.

장차현실 : 사무실 보증금을 은혜 돈으로 냈어요.

작가님 진짜 능력자세요!

장차현실 : 은혜가 돈을 잘 모으는 이유가 있어요. 소비가 많지 않은 거예요. 발달 장애 청년들을 보면 다들 그래요. 비장애인들은 90만 원 받으면 이걸 가지고 어떻게 사냐고 그럴 거예요. 은혜가 스물네 살에는 발달 장애 3급이었는데, 그때 면사무소에 가서 국가 지원으로 받을 수 있는 게 얼마나 있는지 알아보니까 4만 원을 준다고 했어요. 그거는 '당신은 여기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인 거죠. 그때 제가 너무 분노하고 화가 나서, 그때부터 (장애 운동 단체) 조직을 하고 일자리를 만들었어요. 국가가 안 해주면 부모들이라도 해야지 어쩌겠어,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래서 일자리 만들고 데이케어 센터 만들고 그렇게 했죠.

작년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 때 생일 파티 하셨죠?

정은혜 : 네.

조금 있으면 생일인데, 올해 생일 소원은 뭐예요?

정은혜 : 남자 생기는 거?(일동 웃음)




이번 책에 실린 그림 중에서, 제일 좋아하시는 그림을 하나만 꼽으실 수 있어요?

정은혜 : 이 중에?

네, 작가님이 제일 좋아하는 그림이요.

정은혜 : 이거.

노희경 작가님의 그림이네요.

정은혜 : (그리고) 이거랑 이거.

한지민, 김우빈 배우의 그림이군요. 이 그림들은 왜 고르셨어요?

정은혜 : 노희경 작가님은 마음씨가 따뜻하고 멋있고, 좋은 말도 해주시고, 뜨거운 말도 해주시고. 그리고 지민 언니는 참 이쁘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한데, 나이가 많죠. 근데 남자도 없고.(일동 웃음) 근데 그러다가 저를 도와주고 하죠.

김우빈 배우는요? 

정은혜 : 우빈 오빠도 멋있고 또 잘생겼고. 그리고 <상속자들> 보면 진짜 내 팬이다 했어요. 카리스마도 있고.

드라마 <상속자들> 보면서 팬이 되셨어요?

정은혜 : 네. 근데 짝 있죠. 신민아 언니도 있고. 너무 좋아하면 안 돼요.(일동 웃음)

제일 그리기 어려웠던 그림은...

정은혜 : 없어요.

여러 번 고치면 어렵지 않으세요? 

정은혜 : 고치는 거 없어요.

그림 그리시는 데 보통 20~30분 걸리신다면서요. 어떻게 그렇게 빨리 그리세요?

정은혜 : 문호리에서도 천천히 그렸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그려보니까 늘고, 실력도 늘고 하니까 빨라진 거죠.

그림 그리면서 힘들다고 생각하신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정은혜 : 없어요.

더 잘 그려야 되는데, 하고 생각하시거나...

정은혜 : 더 잘하는 건 없어요.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건 없어요?

정은혜 : 네.

선문답 하는 것 같네요. 

정은혜 : 글쎄,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장차현실 : 아니, 그건 나 아니야.(웃음)

앞으로도 계속 사람을 그릴 것 같으세요? 사람 말고 그려보고 싶은 게 있나요? 

정은혜 : 사람들을 그렸지만 이제는 새로운 걸 그려야죠. 사계절. 그리고 동물. 고양이. 많이 그리고 해야죠.

책에 직접 쓰신 글도 실려 있는데요. 저는 예전에 작가님이 쓰신 시들을 본 적 있어요. 요즘도 시를 쓰세요?

정은혜 :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거를. 

장차현실 : 쑥쑥 써진대요. '시가 막 쑥쑥 써지네?' 그러더라고요.(웃음)

어떤 내용인지 여쭤봐도 돼요?

정은혜 : 그거는 제 개인 시니까.

비공개군요.(웃음) 또 다른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양평 폐공장에서 열린다고요. 

정은혜 : 네.

언제 참여하시나요? 

장차현실 : 9월 30일부터 10월 3일까지예요. 

여러 작가들과 같이 참여하세요?

정은혜 : 네.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일자리 노동자 분들이랑 같이 하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정은혜 : 글쎄. 잘 봤으면 좋겠다.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 대박 났으면 좋겠다.(일동 웃음)



*정은혜 (글·그림)

뜨개질을 좋아한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양희은과 김광석 노래 부르는 것도 좋아한다. 가끔 립스틱을 바르고 나들이하는 것도 좋아한다. 무엇보다 그림 그리기가 좋다. 2016년 8월부터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4,00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캐리커처를 그렸다. 다큐멘터리 영화 <니 얼굴>의 주인공이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한지민 배우의 쌍둥이 언니 '영희'로 출연했다. 그림만큼이나 사람을 좋아한다.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




은혜씨의 포옹
은혜씨의 포옹
정은혜 글그림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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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은혜씨의 포옹

<정은혜> 글그림15,120원(10% + 5%)

노희경 작가, 최은영 소설가 추천 [우리들의 블루스] 영희 역 정은혜의 뜨거운 위로 “마음 아픈 사람들, 방황하는 사람들 은혜씨가 꼭 안아줄게요.” “사람을 안아주는 게 좋아요. 사람을 안으면 제가 따뜻해지죠. 따뜻하면 기분이 좋아요. 포옹은 사랑이에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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