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본 TV] 허리케인 카트리나 실화를 담은 <재난, 그 이후>
드라마 <재난, 그 이후>
공포와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확신하며 무엇을 선택하나. 어떤 선택까지 해버리는 걸까. 자문하는 동안 들려온 한 마디 대사가 서늘했다. "상황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죠." (2022.08.26)
2005년 8월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에 상륙했다. 당시 메모리얼 병원에는 입원한 환자들과 의료진, 대피한 시민들이 함께 있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그곳에서 45구의 시신이 발견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드라마 <재난, 그 이후>는 이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이자, 우리에게 그 질문을 되돌려주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 작품은 병원에 고립됐던 2천여 명의 사람들, 그들이 함께 보낸 5일의 시간을 재구성한다.
첫 날, 의료진은 침착하게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병원으로 대피한 시민들을 맞는 일이 처음이 아니었고, 다행히 건물은 수십 년 동안 태풍을 맞으면서도 건재했다. 이런 상황을 처음 경험하는 '애나'만이 혼잡해진 병원을 보며 불안함을 느낀다. 비대위 위원장 '수전'은 차분하게 직원들을 이끌던 중, 예상치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비상전원장치가 지하에 있어서 건물이 1m만 침수되어도 모든 전력이 끊어지는 것. 서둘러 긴급 상황 매뉴얼을 살펴봤지만 침수 시 대응 방법은 없었다. 그 사이 병원은 강풍에 유리창이 깨지고, 건물을 잇는 연결통로가 부서지고, 병원 밖의 수위는 점점 상승했다.
다행히 둘째 날에는 비가 그치면서 수위가 낮아졌다. 안도한 사람들은 기쁨에 들떴다.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운하의 둑이 무너져 엄청난 양의 물이 밀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사태를 파악한 수전은 환자들을 대피시키기 위해 정부기관에 차량과 헬기를 요청하고, 메모리얼 병원의 모회사에 도움을 요청한다. 하지만 응답도 지원도 더딜 뿐이다. 시간은 흘러 날이 바뀌고 우려하던 대로 전기 공급이 중단된다. 헬기가 도착하면서 환자 이송이 시작되지만... 의료진은 피할 수 없는 현실과 맞닥뜨린다. 그들은 답해야 한다.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메모리얼 병원의 비극을 만든 건 허리케인이 아니었다. 당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숱한 문제들이었다. 병원에는 제대로 된 재난 상황 매뉴얼이 없었고, 그건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이 운영하는 병원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서 이윤을 창출하는 곳일 뿐, 시민의 건강과 안전을 지킬 의무 같은 건 없었다.
<재난, 그 이후>는 그러한 진실들을 짚으면서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에 내몰리는지' 보여준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묻게 됐다. 공포와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어떻게 하나.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확신하며 무엇을 선택하나. 어떤 선택까지 해버리는 걸까. 자문하는 동안 들려온 한 마디 대사가 서늘했다.
"상황은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죠."
이 드라마는 셰리 핑크의 저서 『재난, 그 이후』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의사이자 기자인 셰리 핑크는 메모리얼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재구성한 기사 '메모리얼의 치명적인 선택The Deadly Choices at Memorial'으로 2010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6년 동안 진행한 500여 회의 인터뷰 내용을 더해 『재난, 그 이후』를 썼다. 책이 나왔을 때 <뉴욕타임스>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추상적이기만 한 영광, 명예, 영웅주의 같은 단어들, 즉 들을 때는 당장 자부심으로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어주지만 사람이 북적이고 핏자국이 낭자한 병원 복도에서는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는 이런 단어들에 대한 확실한 해독제 역할을 한다. 이 책은 단순히 타인을 위한 교훈담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자신을 위한 교훈담이다."
처음 <재난, 그 이후>를 알게 됐을 때 휴머니즘 드라마를 상상했던 게 사실이다. 허리케인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서로를 지켜낸 시민들, 그들의 뜨거운 인류애와 숭고한 희생정신을 그려냈을 거라 기대했다. 물론 그런 마음들이 반짝이는 순간도 있지만, 더 끈덕지게 따라붙는 것이 있다. 바로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다.
'그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답해야 한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재난, 그 이후>는 교훈담이 될 수 없다.
8월 12일에 처음 공개된 <재난, 그 이후>는 매주 금요일 Apple TV 에서 새로운 에피소드를 선보인다. 총 8부작으로 예정됐으며 현재 4부까지 공개됐다.
# 2005년의 뉴올리언스를 기억하고 있다면
# 뉴스가 보여주지 않은 진실이 궁금하다면
# <재난, 그 이후>를 추천합니다
추천기사
관련태그: 채널예스, 예스24, 그냥본TV, 재난그이후
<채널예스>에서 작가를 인터뷰하고, 팟캐스트 <책읽아웃> ‘황정은의 야심한책 - 삼자대책’ 코너에서 책을 소개한다.
<셰리 핑크> 저/<박중서> 역25,200원(10% + 5%)
6년간 500번의 인터뷰로 재현한 메모리얼 메디컬 센터 지옥의 5일 퓰리처상 수상 기자가 파헤친 진실과 정의를 향한 여정 재난은 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막을 수 없는가? 광주 학동 건물 붕괴, 울진 산불… 재해가 끊이지 않아 매년 수천명이 목숨까지 잃는다. 사건이 발생하고 초동 대응을 잘못해 사태가 걷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