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대중문화 > 김윤하의 전설이 될 거야
여름, 청춘이었다 : 뉴진스와 아이브의 여름
뜨겁고도 푸르른 여름의 청춘
멤버들의 이야기를 메신저 형식으로 전하고 있는 '뉴진스'와 서로를 마주 보던 까만 눈빛 아래 잠긴 이야기를 이제 막 풀어내기 시작한 '아이브'. 이들의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2022.08.03)
여름과 청춘은 이상스레 사이가 좋다. 정말이지 좀 이상할 정도다. 청춘(靑春)을 이루는 한자부터 보자. '푸를 청', '봄 춘'. 이미 이름부터 ‘나는 봄이요’하는 태그를 붙이고 당당히 등장하는 이 단어를 두고, 우리는 집요하리만큼 여름을 떠올린다.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멈추지 않고 흐르는 땀에 절로 찡그려진 미간과 펄럭이는 얇은 셔츠, 여기에 기본은 달리기, 옵션으로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붙는다. 여름 방학으로 텅 빈 학교 복도에는 무더위를 품은 꼬리 긴 노을이나 매미들의 떼창이 내려앉고, 지구 위 모든 생명력이 범람하는 한가운데 놓인 주인공은 그 대상이 사람이건 무생물이건 상관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아낌없이 사랑한다. 그게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는 듯이,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는 듯이. 여름의 청춘은 그렇게 달리고, 사랑하고, 끝내 연소한다.
그것이 진짜 청춘이 남기고 간 잔상인지, 아니면 그런 청춘을 즐겨보지 못한 이들이 아름답게 윤색한 상상인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 모든 것이 '청춘'과 '여름'을 떠올린 사람들의 머릿속에 맴도는 전형적인 이미지라는 사실이다. 마침, 그 세대의 플레이어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케이팝이 이렇게 잘 차려진 밥상을 마다할 리가 없다. 수십 년에 걸쳐 몇 번이고 넓게 저며지고 펴 발라진 케이팝의 청춘과 여름 찬양 속, 2022년 꼭 기억해야 할 순간들이 등장했다. '언제 입어도 질리지 않는 진처럼 시대의 아이콘이 되겠다'는 선언과 함께 데뷔한 신인 그룹 뉴진스(NewJeans)와 자신들의 이름을 응용한 ‘I’VE SUMMER’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서머 필름으로 8월 컴백을 알린 그룹 아이브(IVE)다.
뉴진스가 등장과 동시에 펼쳐 놓은 풍경이 가져온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케이팝 마니아들은 물론 생애 단 한 번이라도 청춘이라는 단어에 애정과 노스탤지어를 느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마디씩 얹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 기본적인 멤버 소개나 티저 없이 바로 앨범 수록곡 전곡의 뮤직비디오를 공개해버린 이들의 공격적인 홍보 방식은 음악과 영상이 그려낸 풍경 그대로 '뉴진스'라는 그룹의 이미지가 되었다. 자신이 살아온 시대, 사랑한 콘텐츠에 따라 일본 그룹 스피드(Speed)에서 드라마 <하트스토퍼(Heartstopper)>까지 청춘을 그린 다채로운 문화 콘텐츠를 소환한 영상은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호평을 끌어냈다. 그 나이만이 낼 수 있는 싱그러운 에너지와 여자 아이들끼리만 통하는 이야기의 이상향을 모아 담은, 그런 음악과 영상이었다. 아이돌 대포화 시대, 신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빠른 위치 선정이자 확실한 자리매김이었다.
아이브의 ‘I’VE SUMMER’는 그런 여자 아이들이 주고받은 교환 일기였다. 반짝이는 스티커와 찢어진 잡지 등 좋아하는 것들로 이것저것 꾸민 표지를 한 페이지씩 넘겨 본다.
우리가 싸우고 울어버릴 땐 진짜 밉지만 / 그럴 때도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 무릎엔 흉터가 있어도 마음엔 없기로 해(원영)
우리가 변해버릴 거라는 사람들에게 틀렸다고 말해줄 거야 / 우리가 그대로인 걸 보여줄 거야 / 계속 같이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래 / 널 만난 이후로 내 소원은 그거 하나야(이서)
동그랗고 강한 마음을 가진 친구들의 일기장 한구석에 쓰여있을 것만 같은 말들은 소설 『피프티 피플』과 『지구에서 한아뿐』,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알려진 정세랑 작가가, 영상은 특유의 감각적인 영상으로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노상윤 감독이 맡았다. 없었지만 마치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한 여름 풍경을 배경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솔직한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울고, 웃고, 뛴다. 데뷔 후 ‘ELEVEN’과 ‘LOVE DIVE’로 화려하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앞세웠던 이들로서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변화다.
솔직히 말해 여름의 한가운데 쏟아진 여자 아이들의 이야기가 그저 반갑다. 너랑 친해지고 싶다며 불쑥 내민 쪽지 같기도,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여름 소나기 같기도 하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잠깐 뜬 무지개나, 풀벌레 소리만 간간히 들리는 한여름 밤 동네 놀이터에서 몰래 만나 듣는 친구의 비밀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이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청춘의 여름이라는 커다란 대의 아래 아련한 첫사랑이나 극 중 갈등을 증폭시키는 요소로 등장하기 마련이던 여자 아이들이 비로소 ‘나의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다. 앨범과 뮤직 비디오는 물론 전용 애플리케이션 '포닝(Phoning)'을 통해, 멤버들의 이야기를 메신저 형식으로 전하고 있는 '뉴진스'와 서로를 마주 보던 까만 눈빛 아래 잠긴 이야기를 이제 막 풀어내기 시작한 '아이브'. 이들의 이야기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2022년 여름, 청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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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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