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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이 케이팝의 미래일까?

에스파, 슈퍼카인드로 보는 버추얼 아이돌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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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추얼 아이돌이 당장 다가올 케이팝의 미래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의 말은 한 번 의심해 보는 게 좋다는 사실이다. 이건 몇 번을 두드려도 부족하지 않은 돌다리다. (2022.06.22)

SM엔터테인먼트 제공

‘대면’과 ‘비대면’이라는 단어가 매일 아침 밥상에 놓인 수저처럼 익숙해진 2년 반이었다. 뭐가 되었든 아무튼 '비대면', '인공 지능', '메타버스', '버추얼'만 앞에 붙이면 말이 되는 분위기 속에서 트렌드에 목숨을 거는 케이팝도 당연히 이 광풍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본격적인 버추얼 아이돌이라고 하기엔 좀 머쓱하지만, 버추얼 개념과 아이돌의 만남으로 실질적인 성과를 낸 대표적인 그룹이라면 역시 에스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온라인 캐릭터를 뜻하는 아바타(Avatar)와 체험을 뜻하는 익스피리언스(Experience)의 머리글자를 합한 ‘아이(æ)’를 그룹명과 멤버 이름에 모두 접붙인 이들의 활약은 버추얼을 비롯한 과학 기술과 아이돌의 성공적인 만남으로 데뷔 이래 줄곧 환영받았다. 물론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작곡가 유영진을 앞세운 SM의 정신을 오른손에, SM의 육체를 대변하는 SMP를 왼손에 든 SM-뉴트로가 몸통을 이루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버추얼이라는 실체가 주는 무게감보다는 관념이 주는 새로운 자극이 중요한 세계관이었기 때문이다.

에스파가 나팔을 울린 뒤, 버추얼 아이돌은 생각보다 길어진 코로나 시국을 통과하며 점차 구체적 형태를 띠어갔다. 2021년 12월 데뷔한 '이세계 아이돌', 줄여서 '이세돌'이 대표적이다. 이세돌은 인기 스트리머 ‘우왁굳’의 기획을 통해 탄생했는데, 버추얼 아이돌의 개념 가운데에서도 ‘가상’에 초점을 맞췄다. 현실에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VR Chat의 아바타로만 존재하고 활동하는 이들은 소리 소문 없이 데뷔 싱글 ‘RE: WIND’를 벅스 실시간 차트 1위에 올렸고, 두 번째 싱글 ‘겨울봄’으로 MBC 음악 프로그램 <쇼! 음악중심> 순위 14위를 기록했다. 비교적 가볍게 시작한 프로젝트의 결과로서는 놀랄만한 성과였다. 


딥스튜디오 제공

‘버추얼 휴먼’이 정식 멤버에 포함된 보이그룹 슈퍼카인드(SUPERKIND)의 경우도 있다. 지난 20일 디지털 싱글 ‘Watch Out’으로 정식 데뷔한 이들은 버추얼 캐릭터 가상 멤버인 세진과 현실 멤버 유진, 건, 대이먼, 시오로 구성된 5인조 남성 그룹이다. 올해 초부터 꾸준히 티저를 공개하며 케이팝 팬덤 사이 소소한 화제를 모은 이들이 가장 주목받은 건 다른 무엇보다도 실제 사람인 다른 멤버들과 크게 이질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자연스럽게 영상에 스며든 세진의 모습이었다. 

특히, 상당히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4K 화질도 거뜬히 이겨내는 피부결 등에 놀란 이들이 많았다. 국적도 MBTI도 아닌 ‘종족’으로 분류된 멤버들은 현실 멤버를 칭하는 ‘프리드(PRID)’와 가상 멤버를 부르는 ‘누크(NUKE)’로 구분된다. 현재로서는 유일한 ‘누크’ 멤버인 세진은 캐스팅마저 가상 세계를 의미하는 스토리 월드에서 이루어졌는데(현실 멤버는 피지컬 월드에서 캐스팅된다), 그가 캐스팅된 곳은 인기 생존 게임 ‘이터널 리턴(Eternal Return)’이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다수의 버추얼 멤버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는 버추얼 아이돌의 시대인가? 답은 물음표다. 심지어 물음표의 크기가 상당히 크다. 에스파의 인기는 가상 멤버인 ‘아이(æ)’의 활약과는 큰 상관이 없다. 현실 멤버들의 매력과 음악 및 퍼포먼스 등 기존 케이팝이 사랑받아 온, 말하자면 고전적인 콘텐츠를 통해 형성된 인기다. 이세계 아이돌과 슈퍼카인드 사례도 조금씩 다른 사정을 가지고 있다. 이세계 아이돌의 성공은 버추얼 ‘아이돌’보다는 ‘버추얼’ 아이돌의 성공이라 보는 게 옳다. 

실제로 이들의 인기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둬온 ‘버추얼 스트리머’나 ‘버추얼 인플루언서’의 역할이나 인기가 아이돌이라는 ‘형태’로 확장된 결과였기 때문이다. 이제 막 데뷔한 슈퍼카인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상 멤버는 아직 한 명뿐이고, 새로운 단체 사진 하나 제작에도 최소 일주일의 시간이 소요된다. 현실 멤버들은 가상 멤버 세진을 두고 ‘영원히 늙지 않고, 아프지 않고, 매일 머리색을 바꿀 수 있다는 게 부럽다’고 했지만, 케이팝 아이돌의 꽃인 퍼포먼스를 음악 방송에서 함께 보여주기는 아직 요원해 보인다.

무엇보다 슈퍼카인드 현실 멤버들이 꼽는 가상 멤버의 장점이 흥미롭다. 이들의 부러움을 사는 가상 인간의 장점은 객관적으로 장점인 동시에, 그들을 사랑하기 위한 준비가 된 이들에게는 대상을 비인간적으로 느끼게 하거나 이질적인 면모로 인해 ‘입덕 장벽’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잘 만들어진 콘텐츠에 대한 감탄을 넘어, 그 안의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깊이를 더할 수 없는 케이팝 팬덤의 기본적인 성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걸음마를 걷고 있는 버추얼 아이돌의 미래가 어떤 식으로 펼쳐 나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특히, 미래 예측에 번번이 실패하는 사람이라 더욱 조심스럽다. 다만 분명한 한 가지는, 버추얼 아이돌이 당장 다가올 케이팝의 미래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의 말은 한 번 의심해 보는 게 좋다는 사실이다. 이건 몇 번을 두드려도 부족하지 않은 돌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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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하(대중음악평론가)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케이팝부터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대해 쓰고 이야기한다. <시사IN>, <씨네21>, 등 각종 온·오프라인 매체에 기고하고 있으며 KBS, TBS, EBS, 네이버 NOW 등의 미디어에서 음악과 문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와 EBS 스페이스공감 기획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TBS FM 포크음악 전문방송 <함춘호의 포크송> 메인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일 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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