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욱 “한국 문단 안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화해의 몸짓』 장성욱 소설가 인터뷰
모두 8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에서 장성욱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섬뜩하게, 또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2022.06.07)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장성욱 소설가의 첫 번째 소설집 『화해의 몸짓』이 출간됐다. 모두 8편이 실린 이번 소설집에서 장성욱은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섬뜩하게, 또 능청스럽게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장성욱의 작품 속 인물들은 대부분 인생의 불운한 날을 만나 어떻게든 돌파해보고자 분투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 끝에는 모든 고통을 감내해도 좋았을 만큼의 보상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것을 기대하거나 그에 대해 답을 내리는 것도 어쩌면 순진한 자의 몫이라는 듯 장성욱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다. 작가의 다채로운 면모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작품들로 채워진 이번 소설집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첫 소설을 발표하셨지요. 그때와는 또 다른 기분이 드실 듯한데 책을 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책을 내고 조금 시간이 흐른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개인적으로는 책을 내는 일에 대해서 마음을 비우고 있는 중이었어요. 저는 최선을 다해서 쓴 소설들이지만 시장의 평가는 별개의 일이니까요. 그냥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죠. 우연찮게 아시아 출판사와 인연이 닿아서 책이 나온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쓴 소설들에게 빚을 갚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개인적으로 단편집을 준비하면서 글을 쓰는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거 같아요.
책을 냈다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일은 없어요. 언제나처럼 책을 읽고, 소설을 쓰죠. 얼마 전에는 제 소설 중에 ‘티셔츠’라는 단편 소설을 직접 영어로 번역해서 원고를 넘겼어요. 쉽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만만하게 봤다가 고생을 많이 했죠. 덕분에 한국어가 가지는 어떤 특유의 정서나 질감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었어요.
작품 속에는 청년세대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합니다. 물론 작가님이 통과해왔고 또 통과해가고 있는 세대의 이야기가 주로 등장하는 것일 텐데요. 많은 세대와 인물들 중에서도 이들의 이야기를 선택해서 쓰시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소설 속에서도 여러 방식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작가님이 느끼시는 오늘날 청년세대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특별히 의식해서 20대 이야기를 쓴 건 아니었어요. ‘이건 20대의 이야기야’라고 생각했던 소설은 「수족관」이나 「비극의 제왕」 정도였죠. 개인적으로는 ‘20대’라는 게 이미 사라진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이전에는 항상 이 세대를 부르는 호칭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MZ 세대’라는 말을 쓰잖아요. ‘MZ세대’라는 말은 비단 20대뿐 아니라, 10대 후반에서부터 30대 후반까지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포함한 말이죠. 이름을 붙이는 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세대의 생활패턴이나 소비형태 혹은 정치적 감각까지 더 이상 유의미하게 구분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죠. 이건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데뷔작 「수족관」은 뜻하지 않게 살인사건에 휘말린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또 표제작 「화해의 몸짓」에서도 살인사건이 주요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물론 살인사건이 등장할 뿐 두 소설은 아주 다른 노선을 취하고 있는데요. 두 작품 모두 모든 것이 눈에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고, 수많은 죄들이 때로는 손쉽게 은폐되어버리곤 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앞의 이야기와 이어질 수 있을 거 같은데, 「수족관」은 2015년도에 발표를 했던 소설이에요. 제가 당시에 생각했던 20대에 대한 이야기죠.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당시에 제가 바라보던 20대들은 전혀 화합 혹은 연대가 되지 않는 세대였어요. 그건 저를 포함한 이 세대가 어릴 때부터 화합보다는 경쟁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거예요. 경쟁에는 항상 남과의 비교가 전제되어 있죠. 나와 상대방을 끝없이 비교하며 자괴감에 빠지고, 때로는 우월감에 느끼는 거죠. 그게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이기주의에 빠져서 진짜 문제에서는 눈을 돌리게 되죠. 「수족관」은 그런 순간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는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얘기해요. 이건 지나치게 쉬운 답변이에요.
심지어 일부 20대 당사자들도 기성세대들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우리가 이렇다고 피해자를 자처해요. 당사자가 되어 해결할 의지가 없는 거죠. 그렇게 되면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화해의 몸짓」은 20대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가 흔히 가지는 화해의 한 형태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문제를 직접 대면하기 보다는 외부의 적을 설정하고 함께 그 적을 미워하는 방식으로 화해를 하는 경우죠. 편한 방법이죠. 물론 제 개인의 의견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 안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좋다, 나쁘다 판단을 내릴 생각은 없어요. 물론 그럴 자격도 없고요. 가능한 한 투명하게 질문을 남기는 방식으로 쓰고 싶다는 게 제 바람이에요.
수록된 소설들 중 몇 편은 종종 이야기가 절정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을 때 돌연 끝나버리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독자로서는 끝이 나버리는 것이 아쉬워 더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게 되기도 하는데요. 작가님은 소설을 쓰시면서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야 한다는 것은 어떻게 결정하시는지요?
제가 철저하게 구조를 짜고 쓰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작가로서는 반성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대개는 어떤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굴리다가 어느 정도 되었다 싶으면 이제 슬슬 써볼까 하는 느낌으로 쓰기 시작하죠. 그러다 보니까 끝이 오는 순간도 감을 잡을 수 없어요. 쓰다 보면 이제 더 할 이야기가 없다는 순간이 오고, 그러면 마침표를 찍는 식이죠. 어떤 소설에서는 급작스럽게 끝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쓰실 때 이 소설들을 읽게 될 구체적인 독자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있을까요? 작가님의 작품을 어떤 독자들이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지, 혹은 이런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고 생각하신 적이 있으실지요.
저는 스스로를 코미디 작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소설집에 썼던 소설들도 모두 어느 정도는 코미디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도 블랙코미디 쪽에 가깝겠죠.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분들의 책 리스트 마지막에 제 소설집이 있다면 작가로서 가장 행복할 거 같아요.
수록된 작품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소설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문장도 있으면 추천해주세요.
부끄럽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집 속에서 「네가 웃어야」라는 소설을 좋아해요. 우리는 이런저런 매체를 통해 ‘미담’이라는 걸 흔하게 접하죠. 요즘에는 대놓고 ‘사회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유튜브 같은 곳을 통해서 소비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 걸 접하고 나면 마음이 충만해지죠. 세상이 살만한 곳처럼 느껴지고. 그런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 궁금했던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는 "목표를 이루었기에 이제 무얼 위해 써야 하나 스스로 조금 혼란스럽다"라고, 하지만 지금처럼 "이야기에 헌신"하겠다고 남기셨는데요. '이야기에 헌신'한다는 것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일까요? 그와 함께 지금 집필중인 작품이 있는지, 앞으로 어떤 작품을 써나가고 싶은지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도 좋습니다.
질문들이 워낙 첨예해서 사회가 어떻고, 20대가 어떻고 한참 얘기를 했지만 막상 소설을 쓸 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쓰는 편은 아니에요.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사후적으로 ‘아, 이건 이런 이야기구나’ 생각할 뿐이죠. 제가 고민하는 건 어떻게 하면 나에게 온 이야기들을 가장 효과적으로 소설이라는 틀을 통해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죠.
이야기에 헌신한다는 얘기는 바로 그 순간에 충실하고 싶다는 바람이었어요. 한동안은 한국 혹은 한국 문단 안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정말 팔리지도 않고, 누구도 읽고 싶어하지 않을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 장성욱 201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단편소설 「수족관」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화해의 몸짓』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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