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을 기다립니다] 정지우 작가에게 - 김민섭 작가
<월간 채널예스> 2022년 3월호
작가님은 저에게 다음 책을 궁금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책도 그렇지만 다음 삶이 궁금해지는 사람입니다. 고전, 청소년, 사회, 일상, 글쓰기, 소설, 여러 글을 써 온 것도 같지만 그 안의 결은 거의 비슷합니다. 한결같은 단단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2022.03.07)
안녕하세요? 정지우 작가님, 누군가에게 3줄 이상의 편지를 써 보는 것이 무척 오랜만입니다. 초등학생 때 어버이날 썼던 효도 편지, 중학생 때 천리안에서 만난 여학생과 꽤 오래 주고받았던 손편지, 그리고 군대에서 썼던 몇 통의 편지 이후에는, 처음인 게 분명합니다. 그 대상이 남자인 데 이르러서는 거의 최초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언젠가 작가님께서 아내에게 자주 손편지를 쓴다고 하셨는데, 몹시 부끄럽네요.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인지하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5년 전쯤, 제가 부산에 갈 일이 있었을 때 누가 먼저였는지 만나자고 했고, 그래서 작가님이 저에게 낙곱새라는 음식을 사 주셨죠. 고백하자면 저는 첫날엔 독서모임에서, 다음날엔 부산의 친구와 함께 낙곱새를 먹었고 그것이 세 번째였습니다. 낙지와 곱창과 새우를 섞은, 거기에 우동과 밥까지 스까 먹는, 아 이것이 실로 부산의 음식이구나 싶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부산이란 낙곱새와 정지우 작가로 아직도 기억됩니다. 그날 작가님을 처음 봤을 때, 뭔가 만화를 찢고 나온 사람이 저에게 걸어오고 있는 그런 기분이 되었습니다. 많은 작가들을 만나보았지만 그처럼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저도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너는 글을 쓸 때, 아니면 글을 쓸 소재를 발견했을 때, 소년의 얼굴이 된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제가 만난 작가님은 일상에서도 소년의 얼굴 그 자체였습니다. 어쩌면 그건 매일 스스로를 기록하는 사람이 가지게 되는 반짝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글로 먼저 만났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제목이 비슷한 책을 썼습니다. 제가 쓴 것이 『대리사회』이고 작가님이 쓴 것이 『분노사회』입니다. 무엇보다도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일상을 담은 꽤 긴 글을 페이스북에 자주 올렸습니다. 저는 언젠가부터 작가님의 글을 찾아 읽기 시작했고, 작가님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글에 좋아요를 꾸준히 눌렀던 것 같으니까요.
제가 작가님을 정말 좋아하게 된 건 페이스북에 올라온 두 편의 글 때문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한 작가들을 어떻게든 인지하게 됩니다. 80년대생 작가들의 이름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몇 년 전 저와 동갑인 남궁인 작가가 피해자의 담당의로서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에 대한 글을 썼을 때 이런저런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때 작가님은 가해자에 대한 혐오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꽤 긴 글을 올렸습니다. “수백 명의 증오도, 수천 명의 악질적인 상상력도, 수만 명의 비열한 웃음 소리도 진정한 애도를 이기지 못 한다. (...) 진실 앞에서 침묵하고, 진실에 복종하고, 진실의 곁에 선 사람을 바라봐야 한다. 길은 그들이 알고 있다. 그들의 애도가 곧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 그 글이 올라왔던 날 저는 글쓰기 수업을 하러 가고 있던 길에 그날의 수업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수강생들과 함께 그 글을 읽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하고, 그러한 글을 써야 한다.”라고요.
타인의 분노를 부추기는 건 쉬운 일입니다. 스스로를 정의롭게 보이고 싶은 욕망도 모두에게 있고요. 그러나 작가님은 그런 글을 써 온 일이 없습니다. 개인적인 분노를 사회적인 증오와 혐오가 아니라, 사회적인 애도로 확장시키는 것. 그걸 해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제가 아는 80년대생 작가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에 이르러서도 그렇습니다. 그러한 길에 서 있는 작가님을 보며, 뭔가 만화의 주인공을 보는 듯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글로서 단단히 무장한, 동료들을 보살피며 앞으로 나아가는 파티의 주인공을.
작가님을 사랑하게 된 다른 글 하나는 무엇이냐면, 아이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저도 작가님도 많이 바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글을 쓰면서 “아이와 봄나들이도 가지 못 할 인생이라면 차라리 실패하는 것이 낫다.”라고 마무리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어떤 고민을 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서울시에서 어떤 중요한 기구의 자문위원을 맡아 출범식에 참석해 줄 수 있느냐고 했고, 마침 제 아이와 바다에 놀러 가자고 했던 날과 겹쳤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 잠시 고민하다가 “죄송하지만, 주말은 제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날이어서요. 참석이 어렵겠습니다.” 하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게 과연 잘한 일인가, 여기에 다녀오면 서울 시장의 얼굴도 볼 테고 다시 못 할 경험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아아, 다녀올걸 그랬나, 하는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작가님의 글이 마치 저에게 잘했다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라고, 아니 그렇게 하자고, 말해 주는 듯했습니다. 그날 강릉의 바다에 간 아이와 저는 잘 놀았습니다. 경포호를 걸으며 벚꽃도 보고, 안목해변에서 비둘기에게 새우깡도 주고, 사람들을 따라 낚시라는 것을 하다가 몇 마리의 물고기도 잡고요. 그러한 기억들이 보태져 어느 날 아이에게 “우리 바다에서 살까.” 하고 묻게 되었고, 저희는 지금 강릉 초당동에 살고 있습니다. 여기에 작가님의 지분이 있다고 이제야 말씀드리게 되네요. 언젠가 강릉에 오시면 낙곱새가 아니라 회를 꼭 대접하고 싶습니다. 현지인 맛집 그런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잡은 물고기를 직접 회를 떠서 드릴게요. 부산 사람은 다 회를 좋아한다는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으니까 좋아하시는지는 굳이 여쭙지 않겠습니다.
작가님은 얼마 전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라는 책을 냈습니다. 다음 책이 궁금하다고 하면 안 되겠으나, 우리는 작가들에게 그것이 최고의 칭찬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첫 책을 냈을 때 어떤 평론가께서 “최고의 작가는 최고의 책을 쓴 사람이 아니라 다음 책을 궁금하게 만드는 작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아 그게 무슨 말이야 최고의 책을 써야지, 싶었는데, 지금은 정확히 알 듯합니다. 작가님은 저에게 다음 책을 궁금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책도 그렇지만 다음 삶이 궁금해지는 사람입니다. 고전, 청소년, 사회, 일상, 글쓰기, 소설, 여러 글을 써 온 것도 같지만 그 안의 결은 거의 비슷합니다. 한결같은 단단함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소재를 다루든 정지우의 것으로 가져오는 작가님의 다음 글과 삶이 궁금합니다. 얼마 전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이제는 강남의 직장인이자 법조인으로 살아가게 될 작가님의 글은 무엇이 될까요. 아직 다음 지점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저로서는 작가님을 경이롭게 지켜볼 뿐입니다.
부디, 계속 쓰는 삶을 살아가시면 합니다. 독자로서도 작가로서도 그것을 바랍니다. 저도 함께 쓰는 사람이 있음을 감각하며 계속 써나가겠습니다. 그러면 덜 외로울 테니까요. 물론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그럴 것을 알고 있어서 저만 잘하면 될 듯합니다. 작가님이 그려나가는 만화에서 저도 언젠가 동네사람1이 아니라 서로의 모험을 들려주는 동료로서 종종 만나겠습니다.
추신 : 왠지 추신을 꼭 써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저와 북토크를 했던 날 작가님이 “나의 작가, 김민섭을 만나고 왔다.”라고 글을 쓰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정확히 그런 마음입니다. 나의 작가님, 강릉에 꼭 놀러 오세요. 4월에 오시면 봄전어를 대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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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타트업 북크루의 대표. 『당신이 잘되면좋겠습니다』, 『아무튼, 망원동』, 『대리사회』,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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